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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뭐가 가장 무서워?"

누구나 한 번쯤은 어렸을 적 어른들의 뜬금없는 질문에 꽤 고민했던 경험이 있게 마련이다. 으레 비슷비슷한 어른들의 질문들. 대부분 어린이들에게 최악의 질문으로 기억되는 '엄마와 아빠 중 누가 더 좋으냐?'는 질문에서부터, 역설적으로 나이를 먹으면 먹을수록 난감해지는 '커서 뭐가 되고 싶으냐?'는 질문 등등.(개인적으로는 '특기'에 관한 질문이 가장 어려웠으며, 이는 아직까지 현재형이다.)

비록 사람들에 따라 그 표현이 천양지차인 것은 사실이지만 위 질문들의 공통된 특징은 그 답이 커가면서 항상 달라진다는 것이며, 묻는 이 또한 그 답보다는 정작 대답하는 이의 반응에 관심을 보인다. 따라서 때때로 위 질문들은 무의식적으로 그 사람의 정신연령이나 현재 심리 상태의 기준이 되기도 하며, 때문에 사람들은 자기가 어렸을 때 들었던 그 애꿎은 질문들을 또 다시 자라는 아이들에게 던지곤 한다.

그러나 그 모든 질문들에 대한 답이 항상 오랜 시간을 필요로 하는 것은 아니다. 가끔 사람에 따라, 질문에 따라 일찍이 그 답이 정해지는 것들이 있는데 나의 경우는 다음과 같은 질문의 경우였다. "세상에서 뭐가 가장 무서워?"

솔직히 그 질문의 정확한 표현이 '무서움'에 관한 것이었는지, 아님 '싫음'에 대한 것이었는지는 분명치 않다. 지금도 가끔 싫음과 무서움의 경계가 불분명한데 어렸을 때는 오죽했으랴. 다만 나의 대답은 한결 같았다. 무서웠던 동시에 끔찍이도 싫었던 존재. 바로 그 이름 '모기'

모기는 내게 항상 공포의 대상이다. 어렸을 적 뇌염모기 때문에 맞은 예방주사의 아픈 추억도 추억이지만, 아직까지도 난 모기의 주요 희생자이기 때문이다. 혈액형 O형의 피가 가장 달콤하다는 일설이 맞는지는 확인할 수 없지만, 어쨌든 난 항상 친구들에게 한여름 밤 기능 좋은 모기약이다. 여러 명과 같은 공간을 북적이더라도, 자기 전 혼자 아무리 깨끗이 씻어도 어김없이 나만 골라 무는 녀석들의 그 집요함.

따라서 선풍기를 꺼내기도 뭣한 초여름 밤 귓가에 들리는 모기소리, 그것은 분명 하나의 재앙이다. 이불을 덮어쓴 채 잠을 청하기에는 덥고, 그렇다고 그냥 자기에는 모기의 제물이 될 것이 뻔한 사면초가의 상황. 모기에게 어설피 물린 분을 삭인 채 잠을 청하노라면 모기에게 물린 곳이 더더욱 화끈하고 간지러우며, 막상 불을 켜고 범인을 찾노라면 그날 밤은 하얗게 지새워야 한다.

또한 많은 이들은 그 혐오의 대상으로 바퀴벌레나 쥐를 꼽기도 하지만 그것들은 모기를 따라올 수 없다. 녀석들은 최소한 인간이 다가가면 도망가기라도 하지, 모기는 도망치다가도 인간이 틈만 보이면 다시 '웽~'하고 돌아와 자신의 배를 채우지 않는가. 물론 바퀴 등을 살생할 때 느끼는 끔찍함은 모기를 앞서고도 남지만, 녀석들과의 전쟁은 모기와는 달리 시대가 변할수록 철 지난 이야기가 되어가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내게는 이 모든 이야기에 필적하는 모기와의 추억이 있으니, 그것은 바로 군대에서 맞닥뜨려야 했던 소위 '전투모기'와의 매콤한 전쟁이다.

임진강변의 말라리아모기

▲ 추억의 모기약 '이온스'
ⓒ 이희동
제대 이후 몇 년 동안 난 헌혈을 권유하는 분들에게 있어 계륵과 같은 존재였다. 보면 볼수록 탐나지만 결국 건질 것 없는 그런 계륵. 결코 왜소하지 않은 체격 덕에 많은 분이 내게 헌혈을 권유했지만, 나의 군복무지역을 언급하노라면 그분들의 반응은 한결같았다. 매우 아쉽지만 어쩔 수 없다며 다음을 기약하자는 것이었다.

끈질기기로 유명한 그분들조차 포기하게 만드는 나의 군복무 지역. 그곳은 바로 전방 임진강변이다.

언제부터인가 여름이 시작되면 TV에서는 으레 임진강 말라리아모기 소식을 언급하곤 한다. 입대 전에는, 열병으로 인식되었던 말라리아가 북상할 정도로 지구 온난화가 진행되었는가를 살짝 고민하게 만들었던 평범한 그 뉴스. 하지만 군에 입대해 직접 그곳에서 군복무를 하자니 그 뉴스의 가벼움은 서러움으로 다가왔다. 사람들은 임진강변의 극성스러운 모기를 과연 뉴스 한 꼭지로 상상이나 할 수 있을까.

전투축구, 짬밥 등 비록 휴전이라는 비정상적인 상황 아래 군사정부에 의한 징병제가 내면화되면서 우리의 언어사회는 군사용어로 오염되었지만, 내게 그 중 딱 하나 가장 들어맞는 용어를 꼽으라 한다면 그건 바로 '전투모기'라는 용어이다.

늦은 4월이면 어김없이 한두 마리 나타나기 시작해, 6월 말이 되면 떼가 되어 돌아다니는 임진강변의 모기들. 늦은 여름 밤 위병소에서 근무를 설 때면 녀석들은 두꺼운 가죽의 전투화마저 비집고 들어와 피를 빨고야 만다.

그뿐인가. 아직까지도 군생활의 가장 끔찍했던 얼차려는 한여름 밤 팬티 바람에 연병장으로 소집당해 부동자세를 명령받는 경우였다. 집합 후 얼마 되지 않아 팔다리에 다닥다닥 들러붙은 모기들에게 쪽쪽 피를 빨리는 그 느낌. 그리고 손으로 팔다리를 쓸 때마다 뭉개지는 피 빤 모기들의 흔적. 내무실로 돌아와 황급히 물파스를 뒤집어쓰지만 그 화끈거림과 가려움은 쉬이 사라지지 않았다.

그러나 임진강변 모기의 가장 끔찍한 점은 바로 그 모기가 말라리아의 숙주라는 점이었다. 최대 잠복기가 ○년이 된다는 말라리아는 서부 전선 장병들이 가장 조심해야 하는 전염병으로서 군대는 위 말라리아를 예방하기 위해 초여름부터 장병들에게 약을 먹이기 시작한다. 무슨 사육하듯이.

하루에 한 알씩, 너무 독하니까 꼭 식후에 먹으라고 강요받는 그 동그란 알약. 우리는 매일 밤 그 알약의 복용 여부를 확인받았으며 여름이 끝나갈 때쯤에는 또 다시 그 예방제의 해독제를 근 한 달 동안 먹으며 체크 받아야 했다. 도대체 얼마나 몸에 안 좋기에 오랜 시간 해독제를 복용해야 하는 걸까? 과연 밖에서도 말라리아를 예방하기 위해 이 약을 먹기나 하는 것일까?

결국 이와 같은 의문은 군대서 나오는 음식이나 약품, 그리고 약을 제조하는 이에 대한 불신의 결과였다. 하루 세 끼 닭과 관련된 음식이 나오면 그날 저녁 폐사된 닭들이 뉴스를 장식하고, 제주도에서 귤 파동이 벌어졌다는 뉴스가 들리자마자 장병 개개인당 귤 몇 박스가 지급되고 마는 우리의 군대.

학창시절에 배우길 농산물의 가격 안정을 위해 정부가 수매를 조정한다더니, 결국 그 물품의 소비는 대부분 하극상을 가장 큰 엄벌로 다스리는 군인의 몫임을 나는 군대서 절절히 깨달아야 했다. 각 개인의 권익은 병역의 의무에 저당 잡혀 자신이 먹는 음식물조차 검열하지 못하는 열악한 상황에 처하는 것이다.

음식뿐이던가. 이미 많은 예비역들이 인정하고 있듯이 군부대의 의약체계는 그야말로 엉망진창이다. 가슴이 아파서 '빨간약'을 바르는 고두심의 명연기는 드라마니까 아름답지만, 대부분 의무병들은 전문적인 지식이 결여된 채로 되나마나 포비돈을 바르며 배탈에도, 감기에도 같은 성분의 알약을 처방하는 것이 끔찍한 군대의 현실이다. 입대 전 간호학원에서 한 달 정도 수업을 받으면 어렵지 않게 의무병으로 채택되는 우리의 군대. 결국 열악한 군의 의무체계는 장병 개개인의 젊음의 희생을 전제로 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그것은 혹자들이 주장하듯이 부유하지 못한 국가가 60만의 징병제를 유지하기 위한 고육지책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말로만 선진화를 외칠 뿐, 기득권층의 온갖 병역비리가 판을 치고, 어마어마한 국방예산은 어떻게 눈먼 돈으로 소비되는지도 모르는 이 한심한 체계 속에서 어떤 이가 군대의 비겁한 변명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일 수 있겠는가.

21세기에 꾸려지고 있는 전근대적 군대. '군대에서 나오는 건빵에는 정력 감퇴제가 섞여 있다'는 고전적인 냉소는 결국 군역을 감당해야 하는 일반 민중들의 불신에 찬 자조이며, 국가 징병제에 대항하는 개인의 소극적인 저항이다.

모기박멸용 '폭탄'

매일 밤 이와 같이 끔찍한 모기와의 전쟁이 벌어지고 있는 야전. 그러나 중앙의 보급은 터무니없었다. 한 달에 그 넓은 내무실 당 모기향 두세 통이 전부. 가끔 막사 주변을 뿌옇게 소독하며 전시 행정을 보여주지만 이미 노련해질 대로 노련해진 전투 모기에게 소독약은 아무런 영향을 끼치지 못했다. 그러나 그렇다고 넋 놓고 모기에게 당할 수만은 없는 일. 그래서 예전에 개발되어 내려온 모기박멸 자구책이 있으니, 그것은 바로 소위 '폭탄'이다.

얼마나 많은 부대에서 우리와 같은 자구책을 사용하고 있는지는 모르겠으나 모기박멸을 위한 '폭탄'의 역사는 꽤 오래된 방법임이 분명했다. 난 부대에 도착해 여름이 되자마자 폭탄 제조법을 배웠고, 그것은 일·이등병 시절 한 달에 20일 정도 해야 하는 중요한 나의 일과가 되었다.

'폭탄'의 제조법은 간단했다. 동그란 모기향을 일정한 크기로 똑똑 분지른 다음 그것들을 성냥이나 장작으로 탑을 쌓듯 구두약 뚜껑 위에 쌓아 올린다. 그리고 부대에서 지급되는 바르는 모기약(우리는 그것을 이온스라 불렀다. 나중에야 그것이 약품의 이름이 아니라 2온스, 단위라는 걸 알게 되었지만 한 번 이온스는 영원한 이온스일 뿐이다. 모기약 성분이 휘발성인지 불이 잘 붙었다)을 그 위에 뿌린 뒤 불을 붙이고, 모든 모기향에 불이 붙은 걸 확인한 후 입으로 불을 끈다.

그 다음은 상상하는 바와 같다. 그것은 적어도 모기향 50개 정도를 한꺼번에 피는 것과 같은 효과를 발휘했다. 문을 꼭 닫은 내무실은 뿌옇고 매콤한 모기향으로 가득 찼으며 우리의 옷가지나 모든 침구류에는 모기향이 강하게 새겨졌다. 몇몇 오버하기 좋아하는 고참들은 방독면을 꺼내 썼고, 얄궂은 선임들은 일정 시간이 지나면 후임들에게 입을 벌려 그 모기향을 들이마시라며 윽박지르거나 노래를 시켰다. 한여름 내내 맡아야 했던 그 매콤한 모기향이란.

처음에는 이렇게 무식한 방법으로 과연 그 극성맞은 전투 모기들이 죽겠나 싶었지만, 희한하게도 '폭탄'을 터뜨린 이후에는 모기들이 현저히 줄어들었고 우리는 고된 잠을 그나마 쉽게 청할 수 있었다. 아마도 이 예기치 못한 효과가 전설이 되어 '폭탄'이 하나의 관습으로 굳어진 것이겠지. 그러니 나 역시 병장이 되어서 폭탄을 애용했음은 물론이다.

군대서 먹었던 뽀글이와 마찬가지로 제대 한 이후 꼭 한 번 만들고 싶었던 '폭탄'. 그러나 쉽사리 해먹을 수 있는 뽀글이와 달리 그것은 마땅한 장소가 마련되지 않으면 만들기 힘든 것이었고, 무엇보다 '이온스'가 없이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기에 '폭탄'은 고이 추억으로만 남길 뿐이다.

지금도 가끔 귓가에 모기소리가 들릴 때면 매콤한 '폭탄'의 냄새가 그리워진다.

덧붙이는 글 | <여름의 불청객 '모기'를 말한다> 응모글


태그:#모기, #임진강변, #전투모기, #임진강변, #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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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와 사회학, 북한학을 전공한 사회학도입니다. 물류와 사회적경제 분야에서 일을 했었고, 2022년 강동구의회 의원이 되었습니다. 일상의 정치, 정치의 일상화를 꿈꾸는 17년차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로서, 더 나은 사회를 위하여 제가 선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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