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지금 조조 예약할거니까 갈사람 바로 문자주세요."
"저 가요."

짧게 문자에 답장을 보냈다. 늘 회의와 활동에 묻혀 살던 우리 생협의 이사들이, 한 달에 단 한 번, 회의 말고 일 말고, 같이 쉬는 날을 보내자고 한 지 두 달째이다. 전 달은 영화 <풍산개>를 봤고 이번 달은 <도가니>를 보기로 했다.

사무실에 매주 배달되는 <씨네21>의 짧은 영화소개만 보고, 의미있는 영화겠거니 하는 막연한 생각이 있었다. 또 영화를 본다는 그 자체로 설렜다. 이후의 불편함은 상상도 못한 채.

영화가 시작되었다. 인호(공유)가 무진시의 자애학교를 찾아가는데 몰고가던 자동차 유리창에 사슴이 부딪혀 죽는다. 놀라고 안타까워하는 인호의 모습을 비췄다. 왜 사슴 장면을 넣었을까? 궁금함을 안고 영화는 계속되었다.

교무실에서 선생님에게 무지 맞고 있는 아이, 그 와중에 상관없다는 듯 쳐다보지도 않고 자기 할 일만 하고 있는 다른 선생님들, 화장실에서 들려오는 아이의 울음소리, 아이를 벌준다고 돌아가고 있는 세탁기에 아이 머리를 넣고 있는 기숙사 사감, 노골적으로 인호에게 돈을 요구하는 교장, 그 외 여러 가지로 학교는 이상한 일들이 계속 벌어진다.

그러다가 학교에서 성폭행이 벌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처음부터 어둡고 음침한 기운이 학교에 느껴졌는데 이 때문이었다. 아이들을 인간으로 대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욕망을 채우는 도구로 보는데 어떻게 밝은 기운이 생길 수 있을까.

영화는 이 과정을 담담히 사실만 보여줘 더 섬뜩함을 느끼게 했다. 귀엽고 천진한 아이들, 부모 사랑 받고 한창 꺄르르 웃으며 자라야 할 아이들이 폭행과 성폭행에 시달리고 있었다. 실제로 그 아이들은 5년이 지난 지금도 마음의 상처를 받고 있고 성폭행을 당한 남자 아이는 자신을 예쁜 여자로 생각한다고 한다. 어릴 때 상처받은 마음은 쉽게 회복되기 않을 것이다.

극장을 나온 후, 뭐라 말 할 수 없는 기분이었다. 같이 본 이사들도 보면서 화가 났고, 성폭행 당하는 장면은 아예 보지를 못했고 마음이 너무 불편해서 영화를 본 것을 후회한다는 사람도 있었다. 영화를 본 며칠 후까지도 우리는 모여서 <도가니> 얘기가 나올 때면, 잘 때도 생각났는데 꿈에 나올까봐 생각을 안 하려고 하며 잤다고 했고, 여전히 불편하다고 했다. 무엇이 우리 마음을 이렇게 불편하게 할까? 이 불편함의 정체는 무엇일까?

사건의 핵심은, 교장과 힘 있는 자들이, 장애인 그 중에서도 부모가 없거나 있더라도 장애가 있는, 가장 힘 없는 아이들을 자신의 욕망이 도구로 삼았다는 것이다. 인간으로 존중한 것이 아니라 힘을 이용해서 마음대로 괴롭혔다.

누구든 살아오면서 작게 혹은 크게 강한 자에게 당해본 경험이 있을 것이다. 학교에서 떠든다고 혹은 성적이 떨어졌다고 선생님에게 맞거나 맞는 친구를 본 경험도 있고, 뉴스에 드라마에 영화에, 폭행은 이 사회에서 언제든 볼 수 있는 흔한 일이다. 그때 느꼈던 억울한 분노가 마음속 어딘가에 쌓여 있을 것이다. 그 경험을 건드렸기에 영화에서 성폭행 당한 아이들이 남의 일이 아니라 마치 자신의 일처럼 느끼게 한 것이 아닐까.

영화는 5년 전일 을 그렸지만, 가해자는 처벌을 거의 받지 않았고, 아이들은 여전히 피해자로 힘들게 살고 있어 변한 게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되자 부끄러웠다. 그런 일이 있는데도 아무것도 몰랐고 관심 가지지 않았기 때문인 것 같아서 뭔가를 해야 할 것 같았다. 대책위 사이트를 찾아 후원금을 보내고 가해자 처벌을 촉구하는 서명을 하면서도 이것밖에 못하는 것이 미안했다. 정말 불편한 영화다. 뭔가는 해야 한다는 생각을 들게 만들고 아주 작은 그 뭔가를 하면서도 해소되지 않는 미안함이 남아 있다.

이후 영화가 화제가 되고 장애인 성폭력에 대한 법이 여론에 오르자 법 개정이 추진된다고 하니 반갑다는 생각이 들었다. 장애인을 상대로 한 성폭력 범죄에서 친고죄가 폐지되고, 장애인에게 단 한 차례라도 성범죄를 저지를 경우, 전자장치가 부착된다고 한다. 그러나 장애인 성폭력 사건에 대한 공소시효 폐지는 제외되었다고 한다. 여론에 밀려 정부의 생색내기가 아닐까 하는 의심도 들고 한편에서는 그래도 많은 사람이 얘기하니까 변하는구나 싶어서 힘이 난다.

영화가 만들어졌더라도 시민이 가만히 있었다면 아무것도 변하지 않았을 것이다. 여론을 만들고 온라인에서 계속 의견이 나왔기에 그나마 변하려고는 한다.

하지만 정부의 대책이 나온 이후는 오히려 잠잠해진 듯하다. 정부의 대책 발표가 이후 어떻게 실행되는지, 정말 필요한 요구는 빠진 게 없는지, 빠진 것은 계속해서 추진하도록 지속적인 관심이 필요한데 말이다.

영화를 같이 본 우리 이사들도 처음에는 만나면 얘기 나누고 트위터로 불편한 마음을 나누고 관련 기사들 퍼오고 했는데 요즘은 얘기하지 않고 있다. 또 다른 바쁜 일상들이 있기에 처음만은 못하겠지만, 지속적인 관심이 필요하다. 그리고 법뿐만이 아니라 일상에서, 또한 사회 곳곳에서 일어나는 힘 가진 사람들이 힘없는 사람들에 대한 폭행을 외면하지 말고 관심 가지고 앞에서든 뒤에서든 뭐라고 말 할 수 있어야겠다. 그래야지 또 다른 인화학교 같은 일이 생기지 않을 것이다.

"니는 니 딸보다 그 아이들이 더 중요하냐"라고 묻는 어머니에게 인호가 "제 딸 소리가 있기에, 제가 그만 두면 소리에게 미안할 것 같아요"라고 말했다. 자식 가진 부모라면 충분히 공감할 수 있다. 내 자식이 생각나서, 남의 일 같지 않아서, 성폭력이라는 것이 존재하는 한에는 누구나 당할 수 있기 때문이다.

계속 함께 하지 못한 인호의 입장도 이해가 간다. 아픈 딸과 나이든 어머니를 모시고 생게를 유지해야하는 입장이기 때문이다. 모든 사람이 다 싸움에 전념 할 수는 없다는 것을 이해할 수 있다. 인호는 무진시를 떠났지만 퍼붓던 물을 맞고 쓰러진 몸이 기억할 것이고 놀라고 아팠던 마음이 잊지 못할 것이다.

우리도 점점 도가니에 대한 말이 적어졌지만, 영화를 보면서 눈물 흘리던 눈에 남아있고 불편했던 마음에 새겨질 것이다. 나보다 힘 있는 사람 앞에서 치사하다고 입 다물지 말고 할 말은 하고 살아야 겠다. 조금은 더 용감해지는 기분이다.                                 


태그:#도가니 , #폭력, #성폭행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