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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장애아'라고 하면 '불쌍하다' '안 됐다' 등의 말이 따라붙곤 합니다. 하지만 여기, '행복하다' '네 덕분에 산다'며 미소 짓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들을 키우는 부모들입니다. 사회의 편견을 딛고 한 걸음 한 걸음 사랑으로 사는 그들. <오마이뉴스>와 사회복지법인 밀알복지재단(www.miral.org)이 이들을 만나러 갑니다. [편집자말]
친구같은 모녀. 예인이와 이선혜씨
 친구같은 모녀. 예인이와 이선혜씨
ⓒ 추연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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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하루가 급해요. 제게 남겨진 시간이 얼마 없거든요. 그래서 자꾸 예인이를 다그치게 돼요. 우리는 다르잖아요. 다른 사람들은 몸을 움직여서 뭐든 할 수 있지만 우리는 그것도 할 수 없으니까요. 공부 잘해서 공무원이 되라고 했어요. 안정된 직장을 구하면 걱정이 없을 것 같아서요. 그러려면 지금부터 공부에 최선을 다해야 하는데..."

올해 중학교 3학년인 딸 예인이(전예인·14)와 목하 전쟁 중이라는 이선혜(45)씨. 전쟁은 예인이가 중학교 2학년이었던 지난해부터 시작됐다. 중학교 1학년 때까지만해도 엄마 말이라면 무조건 순종하던 착한 딸이었는데 한 해 사이에 아이에게 무슨 일이 생긴 것인지 엄마는 두렵기만 하다.

"엄마가 괜한 걱정에 잔소리를 너무 많이 해요. 엄마는 제가 아무 생각 없이 사는 줄 알지만 저도 제 미래에 대해 많이 하거든요. 엄마가 제 진로에 대해 걱정하는 건 아는데 무엇보다도 제가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게 좋은 거 아닌가요? 그리고 저 지금 중3인데 한창 그럴 나이잖아요. 하하하." 

남 이야기하듯 엄마 말을 유쾌하게 받아치는 예인이. 세상에 무서운 것도 두려운 것도 없어 보이는 예인이는 중학교 3학년. 북한 병사들도 무서워한다는 '중2'를 이제 갓 넘어선 나이다. 엄마는 '중2병'을 앓고 있는 딸을 이해하면서도 자신도 모르게 밀려오는 두려움 때문에 순간순간 가슴이 조여 온다.

중간고사 준비를 위해 먼저 자리를 뜨는 예인이에게 '열심히 공부하라'는 말까지 하고 나서야 비로소 한숨을 돌리는 엄마. 예인이의 빨간색 전동스쿠터가 시야에서 사라질 때까지 눈을 떼지 못하는 엄마는 눈을 감는 순간까지도 예인이 걱정을 놓지 못할 듯하다.

"태어날 땐 몰랐지요. 그런데 두 살 무렵 막 걸음마를 배울 때인데 예인이가 '어머니, 다리가 아파요'라는 거예요. 제가 시어머니께 '어머니, 어머니'라고 하니까 예인이도 제게 '어머니 어머니' 그랬거든요. 아기가 '어머니, 다리가 아파요' 그러는데 가슴이 뚝 떨어지면서 뭐라 설명할 수 없이 쓰리고 아프더라고요."

연골무형성증이란?
연골무형성증은 10만 명당 2명꼴로 발생하는 희소 질환이며, 비정상적으로 저신장을 일으키는 유전적 장애다. 부모 중 한사람이 연골무형성증일 경우 태어날 아기가 연골무형성증을 가질 확률은 50% 가량 된다. 평균신장은 남성의 경우 131cm, 여성의 경우는 124cm. 연골무형성증은 골성장의 장애로 유전자의 돌연변이 때문에 발생하는데 약 90% 이상이 새로 발생하는 돌연변이기 때문에 가족력은 없다.
즉시 병원에 데려갔지만 엄마는 예인이의 진단 결과를 듣지 못했다. 의사가 "병(연골무형성증) 때문"이라고 말하는 순간 오열과 함께 정신을 놓아버렸기 때문이다. 열네 살 예인이의 키는 120cm, 마흔다섯 엄마는 100cm. 남다르게 키가 작은 두 모녀는 희소질환인 연골무형성증을 앓고 있다.

"엄마를 닮아서(유전적 요인으로) 그렇다는 말을 들을까봐 두려웠어요. 한국에서는 검사가 어렵다고 해서 없는 돈에 뉴질랜드에 의뢰해 검사를 받아봤는데 유전자 이상은 없는 것으로 나왔거든요. 아무 이상 없다고 축하한다고 그러더니 병이라는 거예요. 병이라는 것을 안 그날부터 매일 '이혼해야지' '죽어야지' 그런 생각만 했어요."

엄마에게 받은 상처... 딸에게 주고 싶지 않았다

예인이를 생각하면 눈물부터 흐르는 엄마
 예인이를 생각하면 눈물부터 흐르는 엄마
ⓒ 추연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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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으로 태어났다는 이유로 받아야 했던 지독한 멸시와 천대. 남도 아닌 낳아준 엄마로부터 받은 정신적 학대는 자신감을 빼앗고 자존감을 상실하게 했다. 그런데 딸마저 자신과 같은 운명이라니... 친엄마도 그렇게 밀어내고 부인했는데 남편이라고 무엇이 다를까. 결국에는 자신도, 딸도, 남편에게 짐만 되다가 버림받게 되겠지 하는 불안함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엄마는 저를 사랑하지 않았어요. 키 크고 잘생긴 부모와 형제들 사이에 저 같은 아이가 있다는 것에 대해 늘 창피하게 생각했지요. '너는 내 자식이 아니다'라는 말까지 했어요. 당신 사주에는 자식이 셋뿐이라고... 그런데 구석에 병든 것이 하나 조그맣게 있다는 둥... 엄마로서 하지 말아야 할 말들을 너무 많이 했죠. 엄마를 기쁘게 해드리고 싶어서, 자식으로 인정받고 싶어서 우등생을 놓치지 않았는데 엄마에겐 그런 것도 소용없었어요."

경기도 평택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선혜씨는 착하고 얌전하며 속 깊은 아이였다. 아니, 얌전하고 속이 깊지 않으면 살 수 없었을지도 모른다. 비록 없는 자식 취급을 받고 자랐지만 그런 엄마를 기쁘게 해드리기 위해 공부를 열심히 했고, '나를 왜 이렇게 낳았느냐'는 투정이나 원망도 해보지 않았다.

"살면서 딱 한 번 엄마에게 대들어봤어요. 고등학교 마치고 기숙사가 있는 직장에 다니던 때였지요. 명절이라 집에 내려왔더니 엄마가 절 주려고 옷을 사다놓으셨더라고요. 그때 엄마에게 말했어요. 누굴 위한 선물이냐고요. 내가 선물 달라더냐고. 평생 자식 취급, 사람 취급도 하지 않으면서 옷 같은 게 뭐 대단하냐고요. 옷이 아니라 사랑받고 싶고, 관심받고 싶은 거라고요. 딱 한 번 그랬는데 그것도 돌아가시고 나니 후회가 되더라고요..."

장애를 가지고 태어났다는 이유로 엄마에게조차 사랑받지 못했던 어린 시절. 선혜씨는 그런 자신의 처지를 이해할 수도 없었고 사랑할 수도 없었다.

"누구도 절 사랑하지 않는다고 생각했어요. 바닥에 기어 다니는 벌레를 보면 '나도 저 벌레 같다'고 생각했어요. 거울에 제 모습이 비춰지는 걸 너무 싫어해서 거울도 보지 않았고요. 예쁘다는 말도 놀리고 조롱하는 것처럼 느껴졌어요. 엄마에게 받은 상처가 절 그렇게 만든 것 같아요."

어린 시절의 상처를 깊은 멍울로 가지고 있는 선혜씨. 그 상처는 마흔 중반이 된 지금도 여전히 아물지 않고 기억을 되새길 때마다 서러운 눈물이 돼 흘러내린다. 하지만 예인이에게 만큼은 그런 슬픔을 물려주고 싶지 않았다. 장애를 가지고 있지만 세상 그 누구보다 귀하고 예쁜 딸로 키워내고 싶었던 것이다.  

"제 인생이 너무나 불쌍하고 측은해서... 너무나 보잘 것 없어서 죽으려는 마음도 여러 번 먹었어요. 하지만 예인이 때문에 죽을 수가 없어요. 예인이는 저처럼 불행하면 안 되거든요. 우리 예인이는 꼭 행복해야 하거든요. 척추 뼈가 내려앉아서 뼈마디가 전부 끊어지는 것처럼 아파서 손가락하나 꼼짝할 수 없다가도 예인이가 '엄마 물~' 그러면 나도 모르게 벌떡 일어나져요. 제가 생각해도 신기해요. 죽을 것처럼 앓다가도 예인이가 '엄마~'하고 부르면 바로 일어나 달려가거든요. 예인이가 저를 살린 거고 예인이가 저를 살게 하는 거지요."

엄마로부터 받은 상처를 트라우마로 간직하고 있는 엄마는 또 다른 불행한 딸을 만들지 않기 위해 과잉보호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의 사랑과 관심을 쏟았다. 그래서인지 예인이는 누가 봐도 그늘 없는 아이로 잘 자랐다.

엄마가 슬플까봐 '왕따' 사실도 말하지 않은 딸

엄마는 늘 예인이의 뒤에서 예인이를 바라본다
 엄마는 늘 예인이의 뒤에서 예인이를 바라본다
ⓒ 추연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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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와 토닥거리며 말싸움을 하는 모습이나 심술 난 척 뽀로통한 모습이나, 때로는 엄마를 이겨보려고 억지를 부리고 톡톡 말대꾸하는 모습까지 제대로 사춘기 티를 내고 있는 중3 예인이. 하지만 잠시 앉아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깊은 눈 속 어딘가에 슬픔을 감추고 있음이 느껴진다.

"학교에서 친구들에게 왕따를 당해도, 때때로 힘든 일이 있어도... 엄마가 슬플까봐... 나 때문에 가슴 아플까봐... 말하지 않아요. 엄마가 저를 이렇게 낳았다는 것 때문에 엄청 미안해하는 것도 알고 있거든요. 그래서 더 잘해주려고 하는 것도 다 아니까. 말하기 싫은 거예요. 말하기 힘든 게 아니라 말하기 싫은 거예요."

엄마가 아플까봐 슬퍼할까봐 자신이 받았던 고통을 말하지 않는다는 예인이. 초등학교 때부터 자신이 다른 친구들과 다른 특별한 몸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았고, 그것 때문에 놀림감이 돼 왕따를 당하고 심지어는 동정과 무시의 대상이 됐지만 단 한 번도 엄마에게 속상한 이야기 하지 않았다.

"왕따는 항상 꼬리표처럼 따라다녔지요. 부당한 대우도 많아요. 아이들이 저를 많이 놀리고 무시했거든요. 초등학교 때는 친구들이 항상 절 빼놓고 놀았어요. 저는 줄넘기 같은 거나 뛰는 걸 할 수 없으니까요. 초등학교 때는 말이나 수다로 친해지는 게 아니고 놀거나 장난치면서 친해지는데 저는 그럴 수 없었어요."

약한 몸과 작은 키 때문에 친구들과 뛰어놀 수 없었던 예인이는 언제나 멀리서 친구들의 놀이를 부러운 눈으로 지켜볼 뿐이었다. 많이 울고 많이 슬펐지만 엄마 앞에서는 늘 웃음을 잃지 않았던 예인이. 하지만 어린 마음에 쌓여가던 상처는 마침내 병이 되고 말았다.

"학교에서 일상적으로 하는 심리검사에서 제 심리 상태가 아주 심각하다는 결과를 받았어요. 솔직하게 대답했는데 상담이나 치료를 받지 않으면 위험한 상태라고... 그래서 얼마 전부터 심리상담과 치료를 받고 있어요."

상처를 치유하고 있는 지금도 예인이는 숨겨진 고통을 드러내지 않는다. 아무 일도 없다는 듯 엄마 앞에서 밝게 웃고, 떠들고, 장난치고, 투정까지 부리는 예인이. 하지만 때때로 엄마보다 더 어른스럽고 사려가 깊어 애늙은이 같다는 소리를 듣는 아이. 그래서 엄마는 더욱 가슴이 미어진다.

"장애 때문에 엄마처럼 불행하게 살지 말렴"

꿈 많고 욕심도 많은 예인이.
 꿈 많고 욕심도 많은 예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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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라리 아프다, 슬프다, 고통스럽다, 엄마가 밉다, 원망스럽다 그렇게 말하면 좋겠어요. 억울하다, 답답하다, 미치겠다 쏟아 놓았다면 병이 되지는 않았을 텐데. 엄마가 부족해서, 모자라서, 약해 빠져서 어린 딸이 그 짐을 다 짊어지니 너무나 가슴이 아픈 거예요. 우리 예인이는 '엄마가 우는 모습이 제일 싫다'며 절대 울지 말라는데 바보같이 자꾸 울어요."

선혜씨는 또 눈물을 찍어 낸다. 인형처럼 작은 체구의 엄마에게서 태어난 인형 같이 작은 아이 예인이. 작고 어리지만 마음만은 아이답지 않게 깊고 넓어서 그것마저 엄마의 마음을 더 아프게 하는 딸. 엄마는 그런 딸을 생각할 때마다 가슴이 아려 복받치는 눈물을 주체할 수 없다.

"어쩌면 제가 예인이를 힘들게 한 것이 사실이에요. 언젠가는 제가 예인이 곁을 떠나야 하는데, 그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것 같아 마음이 조급하거든요. 예인이는 잘 살았으면 좋겠어요. 장애가 있다고 엄마처럼 가난하게 살지 말고, 장애 때문에 엄마처럼 불행하게 살지 말고, 좀 더 나은 환경에서 행복하게 살게 하고 싶어요. 그래서 자꾸 잔소리를 하는데 그러다 보니 예인이 마음만 다치게 하는 것 같아요."

내려앉는 척추로 인해 어느 날엔가는 일어설 수 없는 몸이 될 것임을 알기에 엄마는 자꾸 조급해진다. 아직은 일어설 수 있을 때, 아직은 걸을 수 있을 때, 아직은 몸을 움직일 수 있을 때 예인이를 위해 뭔가를 준비해둬야 하는데 아무것도 준비한 것 없이 시간만 흘려보내는 것 같아 애가 타는 것이다.

"예인이가 어엿하게 대학교를 나와 사회인이 되는 것을 보면 아무 걱정이 없겠어요. 그때까지는 제가 아무리 아파도 이를 악물고 참으면서 뒷바라지해줄 거예요. 저렇게 태어나게 한 것도 미안한데 제가 짐이 되면 큰일이잖아요. 누워서 일어나지 못하는 상태가 되면 요양원으로 갈 생각이에요. 예인이도 도움이 필요한 아이인데 누워있는 엄마를 수발하라고 할 수 없으니까요."

이미 20대에 '마흔이 넘으면 걷지 못할 것'이라는 진단을 받았다는 선혜씨. 그러나 마흔다섯을 넘기고 있는 지금도 집안일과 바깥일을 잘 해내고 있다. 일어나지 못할 만큼 극심한 통증 속에서 진통제의 힘을 빌려 살고 있지만, 예인이를 바라보며 죽을 힘을 다해 참고 있는 것이다.

딸에게 아픈 모습을 들키지 않으려는 엄마와 엄마에게 슬픈 모습을 들키지 않으려는 딸. 그런 아픔과 슬픔을 알고 있으면서도 엄마는 딸을 위해 딸은 엄마를 위해 눈물을 감추고 더욱 밝고 환하게 웃는다. 세상에 이보다 더 아프게 사랑하는 모녀가 또 있을까.

"엄마, 우리는 평소에 정말 친구처럼 서슴없이 서로에게 장난 같은 말도 하고 진지한 말도 하고 친구처럼 지내잖아. 그러다 보니 오히려 할 말 안할 말도 막 하게 되고... 서로 상처 주는 말도 하게 되는 것 같아. 미안해. 나도 엄마한테 말 예쁘게 하려고 하는데, 마음대로 안 되네... 좀 이해해줘. 노력할게. 앞으로 서로서로 배려하자. 사랑해."

"힐끔 거리는 시선, 두렵습니다"

예인이의 꿈을 응원합니다
 예인이의 꿈을 응원합니다
ⓒ 추연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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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고 여린 딸이 살아가기에는 너무나도 각박한 세상. 남부럽지 않게 잘해준 것도, 넉넉하게 남겨줄 것도 없기에 엄마는 오늘도 잠을 이루지 못하지만 예인이는 되레 어른스럽게 다가가 엄마의 눈물을 닦아주는 아이다. 하지만 그런 예인이에게도 비장애인들의 시선은 상처가 아닐 수 없다. 인터뷰에 응하기까지 큰 용기가 필요했다는 예인이. 인터뷰를 통해 비장애인들에게 부탁하고 싶은 말이 있다고 한다. 그동안 그 어린 가슴에 맺혀있던 아픔에 대한 이야기다.

"차별하지 말아주세요. 몸이 작다고 해서 뇌가 작은 건 아니거든요. 제가 아무렇지 않은 듯 웃어넘긴다고 해서 '그래도 된다'고 생각하지 마세요. 저도 머리가 있고 생각이 있거든요. 그리고 학교든 사회든 장애가 있어 못할 거라고 제외시키지 말아주세요. 저도 할 수 있거든요. 기회를 주세요. 그리고 제발 이상한 눈으로 쳐다보지 말아주세요. 힐끔거리는 시선이 어딜 가나 제일 두렵고 싫어요."

10대답게 고민이 많다는 예인이. 좋아하고 잘하는 것, 이것저것 해보고 싶은 것이 너무 많단다. 글도 쓰고 싶고 네일아트도 배워보고 싶고, 중단했던 피아노도 다시 하고 싶다는 욕심 많은 아이. 하지만 욕심을 내기 전에 책을 많이 읽으면서 책속에서 차분히 자신의 미래를 찾고 싶다는 당찬 소녀. 비록 몸은 작지만 꿈만은 세상에서 제일 큰 소녀가 아닐 수 없다.

작은 예인이의 큰 꿈이 이뤄지길 기원한다.

덧붙이는 글 | 장애인가족에게 격려와 사랑을 전달해 주세요. 이 기사를 읽고 장애인과 그 가족들에게 후원하고 싶은 분들은 [밀알복지재단 누리집]을 통해 사랑을 실천하실 수 있습니다.



태그:#연골무형성증, #밀알복지재단, #장애아 부모로 산다는 것, #전예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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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아줌마가 앞치마를 입고 주방에서 바라 본 '오늘의 세상'은 어떤 모습일까요? 한 손엔 뒤집게를 한 손엔 마우스를. 도마위에 올려진 오늘의 '사는 이야기'를 아줌마 솜씨로 조리고 튀기고 볶아서 들려주는 아줌마 시민기자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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