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흔히 '장애아'라고 하면 '불쌍하다' '안됐다' 등의 말이 따라붙곤 합니다. 하지만 여기, '행복하다' '네 덕분에 산다'며 미소 짓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들을 키우는 부모들입니다. 사회의 편견을 딛고 한 걸음 한 걸음 사랑으로 사는 그들. <오마이뉴스>와 사회복지법인 밀알복지재단(www.miral.org)이 이들을 만나러 갑니다. [편집자말]
뇌병변장애1급 동욱이(김동욱·16)와 엄마 문은희씨(52)
 뇌병변장애1급 동욱이(김동욱·16)와 엄마 문은희씨(52)
ⓒ 추연만

관련사진보기


병원 입구를 들어서자 특유의 냄새가 코를 찌른다. 소독약 냄새와 약품 냄새 그리고 특유의 사람 냄새까지... 잠시 몸이 아파 병원 신세를 져야 했던 몇 년 전, 무엇보다도 병원 냄새가 싫어서 빨리 퇴원하고 싶었다.

보통 사람이라면 일 주일도 하기 힘든 병원 생활을 10년 가까이하고 있는 아이 동욱이(김동욱·16). 초등학교에 입학하기 바로 전인 여덟 살에 사고를 당해 열여섯이 된 지금까지 병원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동욱이에게 병원은 세상의 전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동욱이는 매일 엄마 문은희(52)씨와 함께 집에 가는 꿈을 꾼다. 열심히 치료받아 걸어서 병원 문을 나서는 날을 기다린다. 다른 아이들처럼 학교도 가고 여행도 가며 귀여운 조카와 함께 축구하는 꿈을 꾼다.

"축구를 좋아해서 밥 먹는 것도 잊고 놀던 아이였어요. 밤이 늦도록 친구들과 공을 차고 놀았죠. 그땐 저렇게 운동해서 축구 선수가 되려나 생각했죠."

3남매의 막내로 태어난 동욱이는 밝고 귀여운 아이였다. 누나들과 열 살 넘는 터울로 태어나 누나 손에 자라다시피 한 아이. 그때는 생활고 때문에 몰랐지만 지나고 나니 엄마는 늦둥이 동생 때문에 마음 편히 놀지도 못했던 두 딸들에게 고맙고도 미안하다. 더구나 동욱이의 사고 이후로 동욱이를 수발하느라 두 딸들이 어떻게 사는지조차 돌아볼 겨를이 없었다.

"남편은 경제력이 없었어요. 노동일을 나갈 때도 있었지만 술에 취해 있었던 적이 많고요. 술에 취하면 폭력을 쓰고, 솔직히 말하면 지금보다 그때가 더 힘들었어요. 남편이 그렇다 보니 동욱이를 낳고도 제가 나가 일을 하지 않으면 먹고 살기가 어려웠어요. 일 나간 동안 누나들이 우유 먹이고 기저귀도 갈아주고 그랬죠.

동욱이를 놀이방에 맡기고 일하러 나가면 딸들은 방과 후에 아이를 집에 데려왔어요. 그때가 한창 사춘기라 친구들하고 놀고 싶었을 텐데 그러지도 못하고 동생을 돌봐야 했으니 얼마나 싫었을까요. 그런데 그게 동욱이 사고 뒤에는 더 심해졌어요. 그때는 제가 동욱이와 병원에서 살다시피 했으니까요. 동욱이와 병원에 있는 동안 두 딸들이 어떻게 살았는지 저도 잘 몰라요. 참 무책임하고 나쁜 엄마였죠."

엄마의 간절한 기도 '식물인간' 아이를 깨우다

하루가 다르게 좋아지는 동욱이를 돌보는 것이 엄마에겐 기쁨이며 보람이다.
 하루가 다르게 좋아지는 동욱이를 돌보는 것이 엄마에겐 기쁨이며 보람이다.
ⓒ 추연만

관련사진보기


초등학교 입학을 한 달 앞둔 2003년 2월의 어느 날. 동욱이는 아빠를 따라 집 근처 안목해변 방파제에 놀러 갔다 사고를 당했다. 아빠와 누나들이 낚시를 하느라 한눈을 판 사이에 3층 높이의 방파제에서 떨어진 것이다. 떨어진 채로 얼마 동안 그곳에 누워있었는지 아무도 몰랐다. 숨만 간신히 붙어 있던 아이, 병원에서는 가망이 없다고 했다.

"그날도 저는 일을 나갔어요. 아이가 다쳤다는 전화를 받고 가보니 의식도 없고 죽어 있는 상태나 다름없었어요. 동네 병원에서는 수술이 어렵다고 해서 아산병원으로 이송하는데 차 안에서 구급대원이 계속 산소 호흡을 하는데도 어느 순간 숨을 거두는 게 보이더라고요. 하나님께 기도했어요. 살려만 달라고요. 아무것도 모르는 식물인간이 돼도 좋으니 데려가지만 말아 달라고요."

엄마의 간절한 기도 덕분 때문이었을까. 아이는 죽지 않았고 긴 무의식 상태 속에 있었다. 그리고 영영 깨어나지 못할 것 같았던 아이가 6개월 만에 눈을 떴다. 기적과 같은 일이 일어난 것이다. 

"눈만 떴지 아무것도 하지 못했어요. 누워서 코로 밥을 먹고 대소변을 받아내는데 하루도 노심초사하지 않은 날이 없었어요. 수시로 열이 오르고, 합병증이란 합병증은 다 오고... 더구나 한 병원에 오래 입원해 있지 못하다 보니 동욱이를 데리고 이 병원 저 병원을 옮겨 다니는 것도 힘들었어요. 병원에서 잘 받아주지 않으려고 해서 아이를 데리고 다니면서도 많이 울었어요."

뇌병변 장애가 뭔가요?
뇌성마비·외상성 뇌 손상·뇌졸증 등 뇌의 기질적 병변에 기인한 신체적 장애. 보행 또는 일상생활 동작 등에 제한을 받는 사람이 포함된다. 이 장애의 주된 증상인 마비의 정도 및 범위, 불수의 운동의 유무 등에 따른 팔다리의 기능 저하로 인한 앉기·서기·걷기 등 이동 능력과 일상생활(동작)의 수행 능력을 기초로 기능장애 정도가 판정된다.
사고 전까지 씩씩하게 뛰어 놀던 동욱이. 그러나 사고가 난 뒤 손가락 하나 움직이지 못하는 장애아가 됐다. 뇌병변1급 장애아가 된 것이다. 그때부터 시작된 엄마와 동욱이의 병원생활은 올해로 10년째. 병원 생활이 지긋지긋할만도 하지만 희망이 있기에, 좋아지는 모습이 보이기에 동욱이에 대한 치료를 게을리할 수가 없었다.

"의사 선생님들은 입으로 밥을 먹으려면 2~3년 넘게 걸려야 한다고 했지만 제가 몰래 연습시켰어요. 의사선생님들 아시면 큰일 나죠. 그래도 미음부터 시작해서 조금씩 목으로 넘기는 연습을 시켰더니 예상보다 빨리 입으로 먹을 수 있게 됐어요. 입으로 밥을 먹기 시작하면서부터는 정말 빨리 좋아졌어요. 감각도 좋아지고 부쩍부쩍 자라더라고요. 희망이 보였어요. 좋아질 수 있다는 희망이 보이니 힘든 것도 모르겠더라고요. 지금도 마찬가지예요. 매일매일 아이가 좋아지는 것 같으니 하루하루 감사하면서 사는 거예요."

동욱이를 살리기 위해 매일매일을 전투를 치르는 것처럼 살아온 엄마. 하지만 그런 전투 같은 삶을 사는 동안 두 딸에게는 마음의 상처를 안겨줬다. 엄마가 동욱이에게 '올인'하는 동안 누구의 도움도 없이 스스로 삶을 책임져야 했던 딸들. 고작 중학생이었던 두 딸들이 지기에는 너무나 버거웠을 삶의 짐들을 생각하면 엄마는 지금도 가슴이 아프다.

"장애가 있는 아이, 자라는 것도 무서워요"

병원생활의 무료함을 잊고 소근육 발달에 도움을 주는 작은 게임기. 한쪽 눈에 시력이 거의 없는 동욱이를 위해서 태블릿PC 등 큰 화면으로 바꿔줘야 한다.
 병원생활의 무료함을 잊고 소근육 발달에 도움을 주는 작은 게임기. 한쪽 눈에 시력이 거의 없는 동욱이를 위해서 태블릿PC 등 큰 화면으로 바꿔줘야 한다.
ⓒ 추연만

관련사진보기


"딸들에게는 너무 미안해요. 동욱이 병수발에 매달리다 보니 딸들이 어떻게 사는지 신경 쓸 수가 없었어요. 한 번씩 집에 가면 쌀이 떨어져 있더라고요. 그래도 저는 어떻게 해줄 수가 없었어요. 굶기도 많이 굶었을 거예요. 편의점이나 패스트푸드점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라면만 먹고 학교에 다녔으니... 딸들 고생이야 말로 설명할 수 없을 정도죠. 그런 환경에서도 나쁜 길로 빠지지 않고 착하게 자라 준 딸들이 참 고맙고도 미안해요. 지금도 그때 생각 때문인지 뭐만 있으면 많이 먹으라고 해요. 딸들을 하도 굶겨서 많이 먹으라는 말이 입에 붙었어요."

착하게 자란 두 딸. 집에 쌀이 떨어지고 라면조차 살 돈이 없어 주린 배를 끌어안고 잠을 청할지라도 엄마에게는 '쌀 떨어졌다' '배고프다' 소리를 하지 않았다. 속 깊은 딸들은 엄마도 모르는 사이에 자라 자기 몫을 하는 어른이 됐다.

"큰 딸은 일찍 결혼을 해서 벌써 아이가 일곱 살이고요. 작은딸도 내년에 결혼해요. 저 같은 엄마도 없을 거예요. 딸이 어떻게 학교에 다녔는지, 굶지는 않았는지, 학비는 어떻게 해결했는지, 결혼은 어떻게 했는지 아무것도 모르는 엄마거든요. 불만을 가질 법도 한데 전혀 그러지 않았어요. 엄마는 동생 병수발하는 것만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하는 모양인데 그게 엄마로서는 더 미안하죠."

의식을 되찾은 뒤 한동안 순조롭게 자라던 동욱이에게 3년 전, 위기가 찾아왔다. 갑자기 키가 자라면서 척추 측만증이 온 것이다. 성장력 좋은 동욱이를 척추가 당해내지 못해 휘고 말았다.

"너무 약해서 자라지 않는 줄 알았는데 신발을 맞출 때 보니 많이 자랐더라고요. 몇 개월 만에 아이가 쑥 자란 거예요. 동욱이처럼 장애가 있는 아이들은 자라는 것도 무서워요. 뼈에 이상이 올 수 있거든요. 동욱이도 결국 척추교정 수술을 받았어요. 그때가 동욱이 사고 난 뒤 가장 힘들었던 때였던 것 같아요."

휘어진 척추뼈로 인해 장기에 손상이 우려되던 상황. 의사는 척추에 철심을 박아 교정하지 않으면 장기손상으로 목숨이 위험해지는 상황까지 올 수 있다고 경고했다. 이미 우려가 현실이 될 만큼 측만이 진행된 상태였다.

"머리 수술보다 몇 배는 더 힘들고 무서웠어요. 수술을 마치고 병실로 올라왔는데 아이 몸에 링거가 열 몇 개씩 달려 있고 수술을 한 자리에서는 여전히 피가 흐르고... 아이는 아파서 우는데 5분 간격으로 체형 변경을 해줘야 하니 동욱이나 저나 울면서 지냈던 것 같아요. 동욱이가 너무 고통스러워 할 때는 괜히 수술을 시켰나 후회도 했지만, 지금은 잘했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 후 재활치료를 하면서 똑바로 서게 됐고, 이제는 한 발자국씩 걸음을 떼거든요."

쉰 넘은 엄마, 비상 신호가 오기도

동욱이의 손과발에 채워주는 교정 보장구. 잠든 상태에서 뼈가 강직돼 굳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교정용 보장구를 착용하게 한다.
 동욱이의 손과발에 채워주는 교정 보장구. 잠든 상태에서 뼈가 강직돼 굳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교정용 보장구를 착용하게 한다.
ⓒ 추연만

관련사진보기


누워서 눈도 뜨지 못했던 아이가 일어나 앉고, 휠체어를 타고, 한 발자국씩 걸음을 떼게 되기까지 엄마는 얼마나 많은 노력을 했을까. 주변에서는 엄마의 노력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것이라 말하지만, 엄마는 다른 곳에 고마움을 돌린다.

"병원에 있다 보면 우리보다 어려운 사람들을 정말 많이 보게 돼요. 거기에 비하면 지금도 얼마나 고마운지 몰라요. 저야 엄마니까 당연하지만, 치료해 주시는 의사선생님이나 간호사 선생님, 도움을 주시는 사회복지사 선생님들... 다들 정말 고마워요. 동욱이랑 매일 이야기해요. 욕심부리지 말고 늘 감사하면서 살자고요."

날로 좋아지는 동욱이의 모습을 보면서 늘 감사하고 있다는 동욱이 엄마. 그러나 감사한 중에도 생활의 어려움을 느낄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벌써 10년째 아무 일도 하지 못하고 동욱이 병수발에만 매달리다 보니 경제적 어려움이 적지 않은 것이다.

"강릉에 살다가 동욱이 치료 때문에 서울로 이사 왔어요. 중곡동에 보증금 500만 원에 월세 35만 원짜리 반지하 방을 얻어 살고 있는데, 집이야 뭐 말도 못하지요. 벽에서 물이 줄줄 흘러서 곰팡이가 끼고 여름엔 덥고 겨울엔 춥고 사시사철 습하고... 그런 집이라도 병원보다 좋은지 동욱이는 늘 집에 가자고 해요. 한 번 병원 쉬는 날 데리고 갔는데 동욱이는 좋아하지만 저는 힘들더라고요. 동욱이 몸무게가 미달이라고 해도 30kg이거든요. 아이를 안고 계단을 오르내리고 문턱을 넘는 게 힘에 부치더라고요."

동욱이네 한 달 수입은 60만 원. 동욱이 앞으로 나오는 장애인 수당 20만 원과 생활보조금40만 원이 수입의 전부다. 기초생활수급자라 병원비는 들지 않는다고 하지만, 매달 나오는 월세를 내고 나면 기저귀 값 대기도 빠듯한 형편. 한참 자라는 동욱이를 위해 양질의 단백질 음식을 해 먹이고 싶지만, 지금 형편으로는 어림없는 일이다.

"어른들도 병원 밥 며칠 먹으면 못 먹겠다고 하는데 동욱이는 10년을 먹었으니 얼마나 지겹겠어요. 다른 환자들은 집에서 입에 맞는 반찬도 해오고 사골국도 끓여 오지만, 제가 집에서 가져오는 건 콩자반·멸치·김이 전부랍니다. 그래도 병원 반찬보다는 집에서 해오는 반찬을 좋아하는데 이것저것 입에 맞는 반찬을 해주지 못하는 게 늘 안타깝죠."

잘 먹지 못하는 것이 어디 동욱이뿐이랴. 엄마는 보잘것없는 식사도 편히 앉아 먹을 여유가 없어 끼니를 거르는 일이 다반사다.

"오전 8시 30분에 치료를 받으러 가려면 오전 6시에 일어나 준비를 시켜야 해요. 아이 대소변 처리해 주고 씻기고 먹이고 하다 보면 어느새 치료받으러 갈 시간이죠. 그 시간을 지키지 못하면 한참을 기다려야 하니까, 그리고 한 번이라도 더 치료를 받으려면 일찍 준비하는 게 좋거든요. 하루에 치료가 몇 번 있는 경우도 있어요. 그럴 때는 낮 12시가 넘어서야 겨우 밥을 먹죠."

불편한 잠자리와 부실한 먹거리. 자신을 돌보지 않는 삶. 주변에서는 동욱이를 위해서라도 엄마 건강 먼저 챙기라고 조언하지만, 이미 늦었는지 쉰이 넘으면서부터 자꾸 비상 신호를 보내는 것 같아 불안하기만 하다.

"눈 오면 조카랑 눈싸움하고 싶다고 했잖아"

어느새 엄마보다 더 자란 동욱이. 동욱이의 성장이 기쁘지만 그만큼 엄마에겐 부담도 늘었다.
 어느새 엄마보다 더 자란 동욱이. 동욱이의 성장이 기쁘지만 그만큼 엄마에겐 부담도 늘었다.
ⓒ 추연만

관련사진보기


"몇 년 전까지 만해도 동욱이를 번쩍번쩍 안고 그랬는데 이제는 못해요. 매일 목욕시키고 깔끔하게 관리하니까 욕창도 없고 냄새도 나지 않고 누구보다 깨끗했지요. 하지만 지금은 힘이 달려서 매일 목욕은 엄두도 못 내요. 요즘에는 저도 제 몸을 챙기려고 해요. 시간이 나면 병원에서라도 조금씩 운동도 하고요. 우리 동욱이를 위해서라도 건강해야 하니까요. 그렇지? 동욱아? 엄마랑 동욱이랑 건강하게 살아야지?"

"예~."

어눌하지만 분명하게 대답을 하는 동욱이. 말문을 연 지 얼마 되지 않아 할 수 있는 말은 거의 없지만, 엄마는 희망을 갖는다. 동욱이의 기능이 하루하루 놀랍게 좋아지는 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동욱이는 제게 기쁨이에요. 동욱이가 저를 이렇게 열심히 살게 하는 거고요. 매일 아침 오늘은 또 어떤 변화가 있을까 기대하면서 눈을 떠요. 지금은 말 한마디, 걸음 한 발자국이지만 열심히 치료하다 보면 예전처럼 건강해져 걸어서 병원을 나갈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을 가져요. 지금까지 견뎌준 동욱이도 고맙고, 제가 동욱이 곁을 지키는 동안 엄마 손 없이도 잘 자라준 딸들에게도 고맙죠."

대화를 나누다 보니 병실로 저녁식사가 들어온다. 음식을 잘게 잘라 먹일 가위·물·휴지·집에서 만들어 온 반찬 등 식사를 준비하는 엄마 손이 바쁘게 움직인다.  

"동욱아 배고프지? 밥 먹자, 오늘 반찬은 뭘까? 비짓국하고 나물하고 또... 동욱이 좋아하는 반찬이 없네. 그냥 김하고 엄마가 만들어 온 멸치하고 먹자. 착한 동욱이 밥도 잘 먹어요. 많이 먹어야 쑥쑥 크고 뼈도 건강해지지. 그렇지? 동욱아?"

계란 하나 고기 한 점 없는 부실한 밥상에도 밥투정하지 않는 아이 동욱이. 엄마가 떠 넣어주는 밥을 잘 받아먹는다. 이렇게 한 수저 한 수저 떠먹여 이렇게 아이를 키워놨으니 그 엄마에게 '대단한 엄마'라는 호칭을 붙여도 부족함이 없을 듯하다.

"우리 동욱이가 집에서 통원 치료할 수 있을 정도로만 회복돼도 좋겠어요. 10년을 병원에서 보냈더니 이젠 병원 생활도 진력이 나요. 동욱이랑 둘이 살 수 있는 작은 임대아파트라도 허락되면 좋겠지만 반지하 방이라도 병원보다는 좋으니 나갈 수 있는 만큼만이라도 회복되기만 바라는 거예요. 동욱아 집에 가고 싶지? 눈 오면 조카하고 눈싸움도 하고 싶다고 했잖아. 그러려면 밥 잘 먹어야 해. 그럴 거지?"

"예~."

병원에서 외삼촌이 돼버린 동욱이. 내년 겨울에는 더욱 건강해져 어린 조카들과 눈싸움도 하고 축구도 하면서 놀 수 있길 바란다. 엄마의 소망처럼, 누나들의 바람처럼, 또 많은 사람들의 기대처럼 누구보다도 멋진 삼촌·동생·아들이 되길 바란다.

덧붙이는 글 | 장애아 가족에게 격려와 사랑을 전달해 주세요. 밀알복지재단(02-3411-4664)에 전화하시면 후원에 관한 구체적 정보를 얻을 수 있습니다. 또 [밀알복지재단 누리집]을 통해서도 사랑을 실천하실 수 있습니다.



태그:#뇌병변장애, #김동욱, #밀알복지재단, #장애아 부모로 산다는 것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대한민국 아줌마가 앞치마를 입고 주방에서 바라 본 '오늘의 세상'은 어떤 모습일까요? 한 손엔 뒤집게를 한 손엔 마우스를. 도마위에 올려진 오늘의 '사는 이야기'를 아줌마 솜씨로 조리고 튀기고 볶아서 들려주는 아줌마 시민기자랍니다.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