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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담낭을 절제해야 합니다."
"뭐라구요?"
"담낭을 떼어내야 합니다."
"담당이라면 쓸개 아닙니까?"
"그렇습니다. 쓸개를 떼어내야 합니다."

청천벽력이다. 우리 몸에는 여러 장기가 있다. 신장이나 폐장처럼 두 개로 한 쌍을 이룬 장기가 있는가 하면 심장처럼 단 하나로 역할을 수행하는 장기도 있다. 그 중의 하나가 쓸개다. 그 쓸개를 떼란다.

"꼭 떼야 합니까?"

"신체발부수지부모(身體髮膚受之父母)"라는 말이 있다. <효경>에 나오는 말이다. 부모에게 물려받은 것은 터럭 하나라도 소중한 것이니 고이 간직하는 것이 효의 시작이라는 공자의 말씀이다. 꼭 그래서가 아니라, 인류가 진화하면서 퇴화한 부분도 있는데 가슴 깊은 곳에 감추어둔 것을 보면 쓰임이 있을 것 같은 믿음이 나를 간절하게 했다.

"담석의 크기가 1.5cm 미만일 때는 경구 용해제를 투여하여 녹여내거나 체외 충격파쇄석술을 시도해볼 수 있습니다만, 환자(나)의 경우에는 담석이 크기 때문에 선택의 폭이 그다지 넓지 않습니다. 복부에 구멍을 뚫어 복강경 수술을 시도해보겠습니다만 여의치 않으면 개복수술을 하셔야 합니다."
"아니. 그러면 쓸개 빠진 놈이 되는 거 아닙니까?"
"그렇습니다. 하지만 살아가는 데는 지장이 없습니다."

의사는 안심시키려는 듯. 사슴, 말, 양, 노루, 비둘기, 고라니 등은 아예 태어날 때부터 쓸개 없이 태어난다고 부연 설명했다. 나는 밥도 먹고 술도 마시고 고기도 먹는 잡식이지만 그네들은 초식동물이지 않은가.

그동안 복통이 심했다. 바늘로 찌르는 듯한 통증은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상상할 수 없는 아픔이었다. 가까운 동네 병원에 가면 주사 놓아주고 약 며칠분 처방해주었다. 그거 먹으면 통증이 가라앉았다. 원인 치료 없는 대증요법이 병을 키운 꼴이다.

수술대 위에 누웠다. 사위는 어둡다. 적막이다. '의료사고가 빈번하게 벌어지지 않은가. 의사도 인간이고 실수할 수 있지 않은가?' 공포가 엄습해왔다. '내가 살아서 여기를 나갈 수 있을까?' 두려움이 스치고 지나갔다.

눈 정면에 6개의 램프가 들어왔다. 초록색 가운을 입은 수련의들이 분주히 오가고 산소마스크가 씌워졌다. 집도의가 시야에 들어오면서 의식이 몽롱해졌다. 눈을 떴을 때는 회복실이었다. 장장 8시간의 대수술이었다. 17년 전 일이다.

'쓸개 빠진 놈' 되기 생각보다 쉽더라

이번 설 며칠 전. 배가 몹시 아팠다. 동네 병원에 갔다. 초음파 검사를 해보더니만 의사가 심각한 표정을 짓는다.

"위 내시경 검사는 언제 했습니까?"
"지난 8월에 했습니다."
"그럼, 위암은 아닌 것 같고 간이나 췌장에 문제가 있는 것 같습니다."
"췌장이라구요?"

췌장이라는 의사의 말을 듣는 순간. 지지난해 췌장암으로 숨진 스티브 잡스가 뇌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세계적인 부호 잡스가 돈이 없어 죽었겠는가? 두려움이 밀려왔다.

"큰 병원에 가 정밀검사를 해보시기 바랍니다."

의사가 진료의뢰서를 써주었다.

"담석 수술은 어디에서 했습니까?"
"k의료원에서 했습니다."
"기왕이면 그곳으로 가보시기 바랍니다."

k의료원으로 가면서 제발 췌장만 아니기를 빌었다. 얼마 후, 병원 초진 접수창구에 섰다.

"어디가 아파서 왔어요?"
"윈지 간인지 췌장인지 모르겠어요."
"여기서 담낭수술을 받으셨군요. 우선 담도와 췌장 전문 선생님을 만나보시도록 하세요."

얼마를 기다렸을까? 전문의와 마주 앉았다.

"상태가 안 좋군요. 정밀 검사를 해봐야겠습니다."

간단한 문진과 촉진을 마친 의사가 정밀 검사를 위해 입원하란다. 원무과에 갔더니 다인실은 없고 1인실과 2인실밖에 없단다. 울며 겨자 먹기로 2인실에 입원했다.

입원실에 입실했으나 금식을 명하고 팔에 링거만 꽂아주고 특별한 조치가 없다. 무료하여 내가 입원한 6층을 둘러보니 4인실과 5인실에 빈자리가 많다. 매출을 극대화하기 위한 병원측의 영업 전략에 한 방 먹은 것 같아 불쾌했다.

'걱정 말라니... 너 같으면 걱정 안 되겠냐'

이튿날. 소변검사, 혈액검사에 이어 CT와 MRI를 찍었다. 그리고 하루가 흘러갔다. 다음 날. 담당의사와 마주 앉았다.

"담도와 간에 돌이 있습니다. 담도의 돌은 빼내고 간의 돌은 도리 없이 잘라내야 합니다."
"간을 잘라내야 한다구요?"
"영상으로 봤을 때 40%정도 잘라내야 하는데 열어보면 변수가 있을 수 있습니다."
"배를 가른다구요?"
"네, 50% 정도로 늘어날 수도 있습니다."

기가 막혔다. '쓸개 없는 놈'에서 이제는 간을 절반 가까이 들어내야 한다니 아득하다.

"간은 재생이 되니 너무 걱정하지 마십시오."
'마십시오 같은 소리 하지 마라. 너 같으면 걱정 안 되겠느냐?'

치밀고 올라왔으나 차마 입 밖에 내지는 못했다. 17년 전 담낭 절제수술을 했을 때 의사는 이렇게 말했다.

"말썽 피우던 담낭을 절제했으니 이제부터는 담석으로 고생할 일은 없을 것입니다. 간을 육안으로 살펴보니 선홍색 색깔도 좋고 건강하니 술도 고기도 걱정하지 말고 드십시오. 단, 회복될 때까지는 조심해야 합니다."

너무 과신했던 것일까. 술도 즐겨 먹고 육식도 가리지 않았다. 한마디로 섭생에 별로 신경 쓰지 않았다. 인과응보인 것 같았다.

간에서 생성된 담즙은 담도를 따라 담당에 저장된다고 한다. 우리가 음식을 섭취하면 그 음식물이 탄수화물이냐 육류냐에 따른 신호를 받은 뇌가 담낭에 명령하여 그 음식물에 맞는 적절한 양의 담즙을 분비하도록 한단다. 담낭을 절제하여 없는 경우. 간에서 직접 흘려보낸다 한다.

그렇다면 왜 간에 문제가 생겼을까? 간에도 미세한 담도가 있는데 어떠한 원인인지는 모르지만 그 길을 작은 알갱이가 막고 있어 담즙의 이동을 원활하게 하지 못하여 통증이 오고 알갱이가 점점 굳어진다는 것이다.

검사의 최종 결과는 간과 담도에 돌이 있으니 배를 열어 담도의 돌은 빼내고 간의 돌은 빼낼 수 없으니 간을 잘라 내야 한단다.

"설이 닥쳤으니 병원에서 명절을 보낼 수 없잖습니까. 일단 퇴원하셨다 수술 일정을 잡아 입원하시도록 하세요."

원무과에 내려가 계산을 하려니 215만1580원을 내란다. 아찔했다. 2박 3일 투숙비(?) 치고는 과했다. 하지만 어쩌랴. 소비자가 갑이고 공급자가 을이어야 하는데 병원은 갑이고 환자는 을인데. 3월 5일. 쓸개 없는 놈이 간까지 떼기 위하여 수술 날짜를 받아놓은 마음 착잡하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나의 수술 이야기' 응모글입니다



태그:#담석증, #담낭, #슬개, #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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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事實)과 사실(史實)의 행간에서 진실(眞實)을 캐는 광원. 그동안 <이방원전> <수양대군> <신들의 정원 조선왕릉> <소현세자> <조선 건국지> <뜻밖의 조선역사> <간신의 민낯> <진령군> <하루> 대하역사소설<압록강>을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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