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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했던 가을볕은 사라지고 쌀쌀한 늦가을이 왔다. 글을 쓴 지 일주일밖에 지나지 않은 것 같은데 어느새 지난 한 주일도 바쁘게 지나가 버렸다.

얼마 전, 동생 결혼식 때 입고 가려고 맡겨두었던 한복을 세탁소에서 찾아오는 길이었다. 세탁소 가는 길, 하늘은 높고 파랗고, 길가에 감나무에는 감이 주렁주렁 열려 있었다. 가을의 분위기 속에 폭 빠진 채 동네 길을 걸으며 홈런이에게 이야기 했다.

"홈런아, 벌써 여섯 달째 홈런이가 엄마 배 속에 있어. 홈런이랑 내년에는 같이 단풍도 볼 수 있겠다. 가을 하늘도 얼마나 멋진지 엄마랑 함께 꼭 보자. 이 한복은 엄마가 결혼할 때 입은 건데 이번 주말 결혼식에 입고 갈 거야. 홈런이 외삼촌이 결혼하거든. 외삼촌. 외삼촌이." 

가을 단풍이 한창이다. 가을길을 걸을 땐 감탄을 멈출 수 없다.
▲ 가을 가을 단풍이 한창이다. 가을길을 걸을 땐 감탄을 멈출 수 없다.
ⓒ 곽지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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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순간 가을 감성에 흠뻑 젖어있던 나는 외삼촌이라는 단어를 몇 차례 더 말하며 순간 울컥했다. 내 동생이 외삼촌이 된다니! 그리고 홈런이가 태어나면 외삼촌 옆에 외숙모도 함께 있게 된다. 그냥 어린 동생으로만 생각했는데 어느새 결혼을 결심하고 새 가정을 꾸리기 위해 열심인 동생이 대견해 보였다.

그리고 생각했다. 그냥 '내 동생'이었던 한 사람이 내가 결혼하면서 처남이 되었고, 홈런이가 태어나면 외삼촌이라고 불릴 것이다. 결혼이라는 것이, 또 아이가 태어난다는 것이 그 사실에 머무르지 않고 새로운 관계를 만들어 낸다.

남동생의 결혼, 또 새로운 관계를 만나는 홈런이

친정 아버지는 요즘 친정 엄마가 "지현이 아빠"라고 부르면 싫어하신다. 당신을 "홈런이 할아버지"라고 불러달라고 하신다. 첫 손주인 홈런이가 태어나기도 전에 '헌 호칭'에서 '새 호칭'으로 불리시길 원하시는 것이다. 우리 엄마는 또 즐거워 하시며 열심히 '새 호칭'으로 불러드리려 노력하고 계시다.

지난 주에는 동생 결혼식이라고 큰 손님을 두 번 치르게 되었다. 결혼식 전날, 친척분들이 서울에서, 밀양, 김해, 대구에서 친정집으로 오셔서 이야기 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또, 결혼식에 오시기로 한 시부모님께 우리 집에서 하루 더 지내다 가시길 부탁드려 시부모님과도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특히 이번에 만났던 고종사촌 승경이와 얘기를 많이 하고 아이들과도 함께 놀면서 엄마가 아이들과 함께 하는 것이 얼마나 값진 일인지를 직접 보게 되기도 했었다.

이번에 만난 은률이 소률이, 두 남매가 보석같이 빛났다.
▲ 은률이와 소률이 이번에 만난 은률이 소률이, 두 남매가 보석같이 빛났다.
ⓒ 이승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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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척 중에 승경이는 김해에 살고 있는 고종사촌이다. 승경이의 첫째 아들 은률이는 올해 다섯 살 생일을 지냈고 결혼 전에 자주 봤던 아이였다. 그런데, 얼마 전 돌을 지낸 둘째 소률이는 내가 결혼할 즈음에 태어나서 이번에 처음 얼굴을 보게 되었다. 사진으로는 봤지만 실제로는 처음 만나기에 소률이가 낯을 가리면 어쩌나 걱정했는데, 나를 무척 반겨주었다. 듣기로는 내가 오기 전 한바탕 울음을 터뜨렸다고 했는데, 내가 갔을 땐 방긋방긋 웃으면서 손인사까지 주었다.

승경이는 결혼과 동시에 일을 그만두고 육아에 전념했다. 그래서인지 은률이는 몹시 안정되어 보였다. 엄마가 동생을 재우러 들어갔을 때에는 나랑 친정 아버지와 잘 놀았다. 은률이가 장난감의 이름을 '자이언트 라이언'이라고 소개했더니 아빠는 "그거 공룡 아이가?" 하며 따지시고, 변신하는 장난감을 친정아버지에게 보여주니 아버지의 눈빛이 초롱초롱 해지면서 흥미를 보이셨다.

어찌 보면 은률이가 우리 아버지와 놀아주는 것 같은 모습이었다. 소률이는 너무 예뻐서 홈런이가 저렇게 예쁘면 참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밥도 잘 먹고 의사표현도 확실하게 한다. 방긋방긋 웃는 모습이 지금도 아른거린다.

나는 아주 아가들이나 좀 큰 아가들, 한마디로 영유아들 하고는 놀아본 적이 없어 어색했는데 조카들과는 정말 즐겁게 이야기 하고 보기만 해도 미소가 지어졌다. 나로서는 정말 신선한 경험이었다. 그리고 홈런이와도 이렇게 즐겁게 지낼 수 있겠다는 기대를 하게 되었다.

승경이와 아이들을 보면서 크게 느꼈던 것이 있다. 어쩜 내가 지금 공부하고 결심하고 있는 것을 승경이는 저리 자연스럽게 알게 된 것인지 놀라웠던 것이다. 그리고 은률이와 소률이는 그런 엄마의 안정된 보살핌의 덕을 보고 있는 듯 보였다. 아이들이 안정되어 보이고 건강해 보이는 것이 다 엄마 덕 아닐까.

난 아직도 육아에 전념할 것인지 일과 육아를 반반씩 할 것인지 아직도 갈팡질팡 한다. 하지만, 승경이의 아이들을 보고 있자니 아무래도 홈런이와 몇 년 간은 온전히 함께 하는 것이 더 좋지 않을까 생각하게 되었다. 아무래도 '육아의 좋은 예'를 보고 나니 내 결심이 더 굳어지게 된다.    

시어머님이 고아온 잉어, 택배로 부치지 못한 이유

시부모님은 작년 겨울에 우리 집에 오셨고 올해 두 번째로 오시게 되었다. 결혼식 당일 광명역으로 마중을 나갔는데 양손에 바리바리 짐을 들고 계셨다. 잉어를 고아 약으로 내린 것과 이번에 담근 김치 또 감나무에서 따오신 감들이었다. 그 무거운 걸 양 손에 들고 오시다니 죄송스러워 어쩔 줄을 몰랐다.

잉어즙은 택배로 부쳐주시지 어찌 들고 오셨냐고 물었더니, 어제 시장에 가서 잉어를 직접 사셔서 오늘 아침에 약으로 내리느라 택배로 부치실 수 없으셨단다. 어머니가 잉어를 사신 이야기가 재미있었다.

잉어즙을 먹고 인물이 훤한 아들을 보았다는 정보를 입수, 시어머님께서 직접 잉어를 사서 달여주셨다.
▲ 홈런이를 빛나게 해줄 잉어즙이 냉장고에 가득하다 잉어즙을 먹고 인물이 훤한 아들을 보았다는 정보를 입수, 시어머님께서 직접 잉어를 사서 달여주셨다.
ⓒ 곽지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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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어머니와 통화에서 '잉어를 먹은 집 아이가 인물이 좋게 나왔더라' 하시며 잉어를 먹어보는 게 어떨지 물어보셨다. 홈런이가 생기기 전 가물치를 약으로 내려주셨는데 그것이 꽤 비리지 않고 먹을 만 했으니 잉어도 먹을 수 있을 것 같다고 말씀 드렸다.

그래서 대구에서 올라오시기 전날 시부모님이 함께 시장으로 잉어를 사러 가셨다고 했다.잠시 가게를 비운 주인이 돌아오길 기다리고 있는데, 주인이 트럭에서 잉어 한 마리를 바구니에 담아 들고 오다 그만 고놈이 파닥파닥 튀더니 바닥으로 뚝 떨어졌단다.

어머님은 "홈런이가 복이 많은 것 같다. 그 많은 잉어 중에서도 양식장에서 바로 잡아와 수조에 넣기 전의 싱싱한 잉어가 떡하니 앞에 떨어지더라 카이. 펄떡펄떡 뛰는 것 보면 힘이 어찌나 좋겠노 싶어가 수조에 넣기 전에 바로 주이소 해서 사왔다" 하셨다.

이걸 들은 남편은 "가만히 있으면 좀 더 살았을 텐데 괜히 퍼덕거리면서 화내다가 제 명을 단축시키뿐네" 하며 웃었다. 평소 말씀 잘 안 하시는 아버님도 "잉어가 얼굴도 잘생긴 게 아주 괜찮아 보이더라" 하시며 만면에 웃음을 띄셨다.

처음 먹어본 잉어즙은 약간 곰국같은 느낌이다. 직접 잉어를 사시고 또 직접 달여서 갖다주신 정성을 생각해 열심히 먹어야겠다. 작년에 우리집에 오셨을 땐 형님 가족들도 함께 있었다. 그래서 아이들 덕에 분위기가 활기찼는데, 이번에는 태어나지도 않은 홈런이 녀석 덕에 얘기할 것도 웃을 일도 많았다.  조카들도 그렇고 홈런이도 그렇고 함께 같은 공간에 있는 것만으로도 활력을 주고 웃음을 주는 것을 보면, 아이들의 기운이란 참 대단한 것 같다. 

다음 날 우리는 공원에 갔다. 단풍이 절정에 오른 나무들 사이를 함께 걸으며 아버님께 "둘이 걷는 것보다 아버님, 어머님과 함께 걸으니 더 좋으네요" 하니 허허 웃으셨다. 내년에, 아니, 내년은 좀 빠르겠구나. 홈런이가 아장아장 걸을 때가 되면 그때는 넷이 아니라 다섯이 함께 웃음꽃 뿌리면서 걷게 되겠지. 머지않아 홈런이와 함께 걸을 날을 그려보니 이 추운 날이 춥지가 않다.


태그:#임신, #태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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