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추위와 빙판길 때문에 늘 두렵던 겨울이었지만 이번 겨울은 홈런이를 만날 생각에 설렌다.
▲ 이번 겨울, 춥지만은 않다 추위와 빙판길 때문에 늘 두렵던 겨울이었지만 이번 겨울은 홈런이를 만날 생각에 설렌다.
ⓒ 곽지현

관련사진보기


홈런이(우리 아기 태명)가 내 안에 자리 잡은 지도 어느덧 여섯 달, 이번 겨울을 보내고 나면 만날 수 있게 된다. 늘 겨울이 올 때마다 나는 '이번 겨울을 어떻게 버티나'가 제일 걱정이었다. 난 유독 추위도 많이 타고, 빙판길에 넘어져서 부끄럽고 아팠던 기억이 많았기 때문이다.

겨울이 두려웠던 나, 올 겨울은 다르다

그런데 이번 겨울은 다르다. 12월부터 2월까지 홈런이의 신생아 용품이나 장난감을 만들기 위한 강좌를 신청했다. 그동안 겨울에는 일하는 것 이외에는 약속도 잘 안 잡았었지만, 홈런이를 만나기 전의 겨울을 예전처럼 '방콕'하면서 보낼 수는 없다. 일주일에 두 번, 한 시간씩 홈런이를 맞기 위한 준비를 하며 겨울을 보낼 예정이다. 나에겐 늘 두렵기만 했던 겨울이었는데 이번 겨울은 홈런이를 기다리는 마음에 많이 설렌다.

지난 한 주 동안 바쁜 일들이 있어 홈런이와 대화를 많이 못했다. 그래도, 예전보다 홈런이와 이야기하는 것이 익숙해졌다. 이제는 태동이 시작되면 "홈런이, 잘 자고 일어났어?"라고 인사도 해주고, 책도 읽어주고 노래도 해준다. 태동이 느껴지면 "잘하고 있어. 그렇게 잘 놀다가 건강하게 나와야해"라고 칭찬과 응원도 해준다.

태동에 대해 알아보니 태아가 움직이는 것은 바깥 세계를 궁금해 하며 탐색하는 과정이란다. 그래서 태동이 느껴질 때 적절한 반응을 해주는 것이 좋다고 했다. 배를 살짝 쓰다듬어주거나 약간 누르거나 두드려주면 좋다고 해서 홈런이가 움직일 때 그렇게 하고 있다. 어쩔 땐 홈런이와 정말 대화하는 기분이 들 때가 있다. 홈런이가 한 번 발로 차면, 나는 손바닥으로 살짝 한 번 꾹 눌러준다. 또 내가 한번 배를 톡톡 쳐주면 홈런이는 온 몸을 움직이는 듯 '꾸물렁'하는 느낌이 든다. 이럴 때면, 실제로 그런지 확인할 수는 없지만 홈런이가 내 손길을 느끼고 대답하는 것 같다.

홈런이는 태동이 시작된 지 2주 후부터 움직임이 많이 심해졌다. 보통 요리할 때, 남편과 손전화로 메시지를 주고받으며 즐거울 때 많이 움직이는데 특히 맛있는 것을 먹을 때에는 깜짝 놀랄 만큼 요란하게 움직인다. 내가 아침에 일어나서 다시 잘 때까지 홈런이는 중간중간 쉬면서 부지런하게 잘 놀고 있다.   

웃고있는 얼굴 같아 보이지만 눈 같아 보이는 것이 신장, 입 같아 보이는 것은 위장이다.
▲ 홈런이의 뱃속사진 웃고있는 얼굴 같아 보이지만 눈 같아 보이는 것이 신장, 입 같아 보이는 것은 위장이다.
ⓒ 곽지현

관련사진보기


나도 어쩔 수 없는 '자식바보'인가봐

지난번 병원에 정기 검진하러 갔을 때의 일이다. 의사선생님이 다 건강한데, 홈런이의 왼쪽 신장의 크기가 평균보다 크다며 앞으로 지켜보자고 했었다. 정확하게 어떤 문제가 있다고 얘기한 것도 아니었지만 "크게 걱정하지 말고 앞으로 지켜봅시다"라는 말을 듣고 덜컥 겁이 나고 걱정도 되었다.

집에 돌아와서 '태아 신장크기'에 대해 검색해보니 나와 같은 걱정을 하는 엄마들이 많았다. 여러 글과 댓글들을 읽다가 위안이 되는 한 엄마의 글을 보았다. 아이가 태어난 후에도 신장의 크기가 크다며 산부인과 의사가 종합병원에서 정밀 검사를 해보라고 했단다. 결국, 종합병원에서 검진 받았는데, 종합병원 의사는 이 정도 크기는 전혀 이상 없다고 하더라는 이야기였다.

그 이야기를 읽고 '그래, 너무 큰 걱정 하지 말자. 홈런이는 건강할 거야' 하며 애써 마음을 다독이며 한 달을 보냈다. 이번에는 산부인과 병원에 친정엄마와 함께 가게 되었는데 엄마가 걱정하실까봐 신장에 대해서는 미리 이야기를 꺼내지 않고, 진료 받을 차례가 될 때까지 아무 말 없이 기다렸다.

초음파 촬영으로 보이는 홈런이는 내 왼쪽 골반 깊숙이 머리를 파묻고 있었다. 그래서 어제 저녁부터 왼쪽 골반이 뻐근했나보다. 초음파 촬영 중에 최고라고 하는 듯 엄지손가락을 치켜 올리기도 했고, 이리저리 촬영하던 의사선생님이 느낄 만큼 발로 뻥 차기도 했다. 남편이 사진 찍을 때 늘 엄지손가락을 올린 채 포즈를 잡는데 벌써 그런 것도 닮는 것일까.

마침 세게 발로 차기도 했고 그동안 태동이 좀 세다고 생각해 의사선생님에게 물어보았다.

"보통 이 시기의 다른 아기들보다 태동이 좀 심하지는 않나요?"

나는 홈런이가 다른 아기들보다 조금 더 뛰어나다는 대답을 듣고 싶었나보다. 여자아이들은 보통 얌전하다고 하는데 태동이 19주 쯤 시작되었고, 태동이 시작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발로 차거나 움직이는 정도가 많이 커졌으니, 은근히 홈런이가 다른 아이들보다 좀 더 활기차고 힘이 있다는 대답을 듣고 싶었다. 그러나 의사선생님은 건조하게 대답했다,

"보통 이쯤 되면 이 정도 움직입니다."

이모에게 농담으로 '홈런이가 이제 한근 넘었다'고 했다가 꾸중을 들었다. 부쩍부쩍 자라고 있는 홈런이.
▲ 홈런이는 이제 643g 이모에게 농담으로 '홈런이가 이제 한근 넘었다'고 했다가 꾸중을 들었다. 부쩍부쩍 자라고 있는 홈런이.
ⓒ 곽지현

관련사진보기

난 왠지 아쉬웠다. 이제 나도 어쩔 수 없는 '자식바보'가 되었나보다. 태동 하나에 홈런이가 운동신경이 뛰어나다고 생각했고, 그걸 자랑하고 싶어 하고 말이다. 또, 역시 이름이 '홈런이'라서 운동신경이 좀 있나 생각하기도 했었으니까 말이다. 벌써부터 이런 식이면, 아이가 무얼 하든지 천재로 보인다는 자식바보의 최고 경지에 이를 날도 머지않은 것 같다.

지난 번과 마찬가지로, 의사선생님은 홈런이의 머리 둘레, 대퇴부 길이, 복부 둘레, 위장의 크기, 심장박동, 신장의 크기를 순서대로 재고 확인했다.

반갑게도 이번 검사에서는 신장의 크기가 평균 크기라면서 걱정 안 해도 된단다. 그동안 걱정을 안 하려고 노력했지만 잘 되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의사의 한 마디, 한 마디에 나는 하늘과 땅 사이를 널뛰기하는 것 같다.

이번엔 손가락과 발가락의 개수도 세어주었다. 모두 다 정상. 입과 코 사이에 검은 부분이 없으니 언청이도 아니라고 확인해 주었다.  

'하트 뿅뿅' 우리 두 바보도 자란다

병원에서 나와 남편에게 연락했다. 그동안 신장에 대해 아무 말도 없던 남편은 제일 먼저 홈런이 신장이 괜찮은지 물었다. 그래서 신장도 괜찮고 머리 크기도 정상이고(사실, 남편의 머리 둘레가 평균보다 좀 큰 편인 것 같아 홈런이도 머리가 클까봐 걱정했다) 지난번 354g였던 무게도 이젠 643g이나 되었다고 신나서 이야기를 해주었다. 남편은 다 내덕이라고 고맙다고 했다. 난 "자기가 나를 잘 돌봐주어서야"라고 답했다. 홈런이가 생긴 후 우린 세상에 고마운 것도 많아졌고 사랑도 더 커졌다.  

요즘 우리 부부에게 새로운 일과들이 생겼다. 첫 번째 일과는, 내가 샤워를 마치고 배에 로션을 바른 후에 남편에게 튼살 방지 크림을 가져가는 것이다. 그러면 남편이 배에 크림을 발라준다. 남편은 크림을 바르며 내 배를 보고, 나는 그런 남편을 본다. 아직 우리는 신혼이니 늘 '하트 뿅뿅'(서로에 대한 사랑이 가득 차서 서로를 보는 눈이 하트모양이 되는 상태)이지만, 이때가 되면 좀 더 업그레이드 된 '하트 뿅뿅'의 눈빛이 된다.

남편은 "홈런이가 안에서 정신없겠다" 고 웃으며 말한다. 내 배에 크림을 바르는 동안, 아마도 홈런이는 배 안에서 흔들흔들 거리거나 빙글빙글 돌고 있겠지. 크림을 바르는 동안 옅게 보이는 예비 아빠의 미소를 보며 나는 이 남자와 또 사랑에 빠진다. 

두 번째는, 남편이 출근할 때 홈런이를 쓰다듬으면서 다녀오겠다고 하는 것이다. 이때 나는 나도 모르게 배를 더 앞으로 내민다. 그러면 남편이 배를 쓰다듬으며 홈런이에게 하루 종일 잘 놀고 있으라고 한다. 이때도 남편은 내 배를, 나는 남편의 그 눈빛과 입가에 머금은 미소를 본다. 

어느 두 바보의 눈빛과 두 바보의 미소. 한 생명이 세상에 태어나길 기다리면서 두 바보는 조금씩 더 자라고 있다. 홈런이가 태어날 때 우리는 얼마쯤 더 자라있을까. 

우리 아빠와 엄마도 우리처럼 바보였을까? 그저 한 생명이 우리 집에 왔다는 사실에 감사하고, 아이의 몸짓 하나에도 더없이 행복하게 웃으며 시름을 잊던 바보 말이다. 살면서 아빠를 미워한 때도 있었는데, 요즘엔 행복해하는 남편을 보면서 아빠가 떠오른다.

어릴 적 내 똥 기저귀를 매번 손으로 빨았다는 아빠, 식사 땐 늘 무릎에 앉혀두고 식사하셨다는 아빠, 어렸을 때 나를 몹시도 아껴주셨던 아빠를 떠올리며 아빠의 바보 눈빛, 바보 미소를 떠올려본다. 아, 괜히 눈물이 나네. 이래서 자식을 낳고 키워봐야 부모의 마음을 안다는 말이 있나보다.


태그:#임신, #태교
댓글1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