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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적경제는 최근 우리 사회의 뜨거운 이슈다. 협동조합기본법 발효 후 협동조합 신고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는 현상이나, 전체 경제 규모의 1%도 되지 않는 사회적경제 분야가 심심치 않게 언론에 등장하는 것은 그만큼 사회적경제가 많은 이들의 주목을 받고 있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그러나 그와 같은 사회적 관심에도 불구하고 사회적경제는 선뜻 이해하기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경제'만 해도 머리가 아파오는데, '사회적'이라는 수식까지 따라 붙으니 통 감이 오지 않는다. 경제 분야의 하부 개념인지, 경제를 사회적으로 풀겠다는 이야기인지 일반사람들로서는 도통 헷갈리기 짝이 없다.

거기다 사회적경제를 주창하는 사람들의 면면을 보자. 박원순 서울시장을 필두로 정태인 새로운사회를여는연구원 원장, 이원재 전 한겨레경제연구소 소장 등 대부분의 인사들이 여권과 보수언론들이 소위 좌파라고 딱지를 붙이는 이들이다. 보수층에게는 하나같이 불온한 사람들이다. 그런데 그들이 갑자기 사회적경제를 운운하고 나섰으니 의심스러울 수밖에. 이거 혹시 '사회적경제'의 '사회'가 '사회주의'의 '사회'와 같은 거 아냐?

사회적경제에 대한 오해를 풀기 어려운 이유


박원순 서울시장이 6일 서울시청에서 개막한 국제사회적경제포럼(Gsef2013)에서 환영사를 하고 있다.
 박원순 서울시장이 6일 서울시청에서 개막한 국제사회적경제포럼(Gsef2013)에서 환영사를 하고 있다.
ⓒ Gsef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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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전체제의 레드컴플렉스와도 무관하지 않은 잘못된 의심들. 문제는 사회적경제와 관련된 이와 같은 오해를 불식시키기가 만만치 않다는 점이다. 도대체 무엇 때문에 그럴까? 이는 크게 세 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

첫째, 사회적경제와 관련된 우리 사회의 미천한 경험이다. 물론 혹자들은 두레와 계의 전통을 이야기하며 우리 역시 사회적경제의 유전자를 가지고 있다고 주장하지만, 이는 역설적으로 그만큼 우리에게 사회적경제가 낯설다는 것을 의미한다. 캐나다의 퀘벡이나 이탈리아의 볼로냐 등과 같은 사례가 없기 때문에 굳이 100년 이전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 아닌가.

주체의 의지와 상관없이 식민지 형태로 근대화를 당하고, 분단 이후에는 급격한 산업화와 함께 공동체의 붕괴를 겪고, 미국식 자본주의를 추구하며 경쟁만을 최고의 가치로 생각하던 이들에게 사회적경제는 어려울 수밖에 없다. 그것은 '함께'라는 가치를 바탕으로 '나만 아니면 돼'라는 생각을 극복할 때 비로소 오롯이 보이는 개념이기 때문이다.

둘째, 사회적경제를 둘러싼 과도한 정치적 해석들이다. 현재 사회적경제는 그 바탕을 사회주의가 아닌 자본주의에 둔다. 공유를 주장하지만 사회주의와 달리 개인의 소유권을 인정하며, 국가의 일방적인 지원이나 기획보다는 시장체제 안에서 비즈니스의 한 모델로서의 생존을 중요시 한다. 미국이나 유럽 국가들이 신자유주의 등장 이후 위기에 처한 자본주의의 대안으로서 사회적경제를 지목하는 것은 그것이 결코 이념적이지 않다는 증거이다.

그런데 현재 우리나라 현실은 어떠한가? 앞서 언급했던 오해에서도 볼 수 있듯이 사회적경제를 운운하는 것부터 빨간 색안경을 끼고 바라본다. 전 세계가 인정하고 있는 신자유주의 체제에 대한 비판적인 생각서부터 빨갱이 덧칠을 한다. 그것은 결국 무식하거나 저열한 정치적 의도가 깔려있기 때문인데 후자의 가능성이 높다. 현재 누리고 있는 특권을 놓고 싶지 않은 기득권 세력들이 사회적경제를 왜곡하고 폄훼하며, 많은 사람들이 그 농단에 놀아나고 있는 것이다.

한국의 사회적경제
 한국의 사회적경제
ⓒ Gsef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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셋째, 사회적경제에 대한 애매한 정의다. 현재 사회적경제는 국가와 학자들에 따라 그 정의가 조금씩 다른데, 그만큼 강조하는 지점도 미세하게나마 차이가 존재한다.

"구성원이나 공공을 위한 목표, 경영의 자율성, 민주적인 의사결정 과정, 수익 배분에 있어서 자본보다 사람과 노동의 중시라는 네 가지 원칙을 따르는 사회적 기업, 협동조합, 마을기업, 자활기업, 상호공제조합, 민간단체에 의해 수행되는 경제활동"(서울시 사회적경제지원센터)

"사회적경제는 사회적 목적을 사명과 실천의 중심에 놓는 조직들을 위한 연결개념이며, 분명한 경제적 목표를 갖고 있고, 자신들이 제공하는 서비스와 구매를 통해 일정한 경제적 가치를 창출하는 활동"(J. Quarter)

특히 우리 사회의 경우는 시장이나 국가로부터 차별화된 제3섹터로서 전통을 가지고 꾸준히 성장해온 서구의 사회적경제와는 달리, 정부가 사회적경제에 직접적으로 개입함으로써 그 정의가 더욱 혼탁해졌다. 정부가 '취약계층에 필요한 서비스의 제공' 또는 '취약계층의 고용'에 초점을 두고 사회적경제를 지원함에 따라 사회적경제가 많은 부분 굴절된 것이다. 예컨대 현재 정부가 운영하는 사회적 기업 인증제도는 세계적으로 유일한 경우다.

그렇다면 과연 어떻게 이 한계들을 극복하고 사회적경제를 좀 더 활성화 시킬 수 있을까?

'서울선언'을 주목하라!

서울선언문이 발표되고 있다
 서울선언문이 발표되고 있다
ⓒ 이희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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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와 관련하여 우리가 주목할 만한 것은 11월 초 서울에서 개최되었던 국제 사회적경제 포럼(GSEF(Global Social Economy Forum) 2013)의 결과물인 '서울선언'이다.

박원순 서울시장은 이탈리아 볼로냐와 에밀리아로마냐 주, 캐나다 퀘백과 몬트리올, 일본 교토와 요코하마, 필리핀 케손, 태국 방콕 등 8개 도시 대표와 함께 이 선언문을 채택함으로써 한국의 사회적경제가 세계의 사회적경제와 함께 할 것을 천명했는데, 이는 현재 우리 사회의 사회적경제 활성화에 중요한 기점이 될 가능성이 높다. 앞서 언급했듯 사회적경제의 가장 큰 걸림돌 중 하나는 그 개념이 명확하지 않다는 점인데, '서울선언'은 관련된 세계의 여러 주체들이 모여 사회적경제 발전에 관해 동의한 최소한의 합의이기 때문이다.

'서울선언'은 무엇보다 현재 세계 각처의 사회정치적인 위기가 신자유주의에서 비롯된 경제위기와 결코 무관하지 않음을 지적하며, 그 해결방안이 곧 사회적경제임을 분명히 밝혔다. 규제 없는 금융세계화와 맹목적인 시장 지향은 인류 전체를 위기로 몰아가고 있는데,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사회적경제라고 표현되는 '다원적 경제'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와 함께 '서울선언'은 사회적경제가 지향하는 바에 대해 분명히 하였다. 신뢰와 협동을 바탕으로 한 효율성과 형평성, 지속가능성, 인간 존엄성의 회복, 공동체의 형성과 식량 안보, 풀뿌리 참여 민주주의를 거론하며 이 모든 것이 글로벌한 연대를 기반을 두어야만 해결될 수 있음을 이야기했다. 90년대 초 정부가 그토록 외쳤던 '세계화'가 이제는 전혀 반대의 의미로서 필요하게 된 것이다.

박원순 서울시장, 마거릿 멘델 캐나다 칼폴라니정치경제연구소장 등 국제사회적경제포럼 참가자들이 7일 오후 서울시청에서 '서울 선언'을 발표한 뒤 기념촬영하고 있다.
 박원순 서울시장, 마거릿 멘델 캐나다 칼폴라니정치경제연구소장 등 국제사회적경제포럼 참가자들이 7일 오후 서울시청에서 '서울 선언'을 발표한 뒤 기념촬영하고 있다.
ⓒ 김시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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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몇 개 도시들이 모여 발표한 '서울선언'이 무슨 의미가 있느냐며 비웃을 수도 있다. 이것도 결국 내년 지방자치 선거를 위한 박원순 시장의 생색내기가 아니냐며 폄훼할 수도 있다. MB시절 별것도 아닌 국제행사만 열려도, 대기업이 자그마하게 사회적 공헌을 한다고만 해도 열렬히 보도했던 보수언론들이 이번 포럼과 관련하여 조용했던 것은 앞선 생각 때문인지도 모른다. 굳이 거론하여 비판해봤자 오히려 사람들의 관심만 모을 수 있으니 차라리 무시해 버리자는 옹색함 아니었을까?

그러나 '서울선언'을 그렇게 무시하고 넘어가기에는 현재 우리의 현실이 너무 척박하다. 전체 경제 규모의 채 1%가 되지 못한 사회적경제를 자본주의의 대안으로서 생각할 만큼, 현재 우리의 경제체제는 위기에 봉착했다. 99%가 아닌 1%만이 행복한 사회. 결국 '서울선언'은 이와 같은 사회를 바꿔보자는 이들의 시작점이다.

사회적경제가 얼마나 클 수 있을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것이 자본주의의 대안일지 역시 알 수 없다. 그러나 기껏해야 장애인 몇 명 일자리 만들어 내는 것이 사회적경제라는 편견을 극복할 수 있다면, 그리고 좀 더 많은 이들이 지금의 자본주의 체제가 잘못되었다고 생각하게 된다면, 사회적경제는 자본주의의 대안이 될 수도 있다. 결국 경제도 사람이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좀 더 많은 이들이 사회적경제에 관심을 갖길 바란다.

서울선언문 전문

세계의 위기와 사회적 경제

2008년 미국의 금융위기로 촉발된 위기가, 2011년 유럽 재정위기, 그리고 최근 아시아 및 신흥경제의 금융불안으로 이어지고 있다. 이러한 위기가 시장원리에 대한 지나친 강조와 규제 없는 금융세계화의 결과라는 사실을 부정할 수 없다.

경제위기는 소득 양극화와 사회적 배제를 초래했다. 이에 따라 경제위기는 종종 사회정치적 위기로 발전하고 있다. 또한 화석연료 의존 체제는 기후온난화, 생물다양성의 파괴, 그리고 에너지-식량 위기등 인류 전체의 생존 자체를 위협하는 생태 문제를 낳고 있다.

이러한 위기를 맞아서, 우리는 "다원적 경제"를 모색하는 다양한 움직임에 주목한다. 지금 전 세계에서 일고 있는 "사회적 경제 운동"은 경제의 양극화, 사회적 불평등과 배제, 그리고 생태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새로운 희망으로 떠오르고 있다. 우리 참석자들은 사회적 경제가 "더 나은 세계", "더 나은 삶"을 인류에게 선물할 수 있을 것이라고 믿는다.

사회적 경제는 왜 중요한가?

사회적 경제는 신뢰와 협동을 바탕으로 효율성과 형평성, 그리고 지속가능성을 동시에 달성하려 한다. 협동조합, 마을기업, 사회적 기업(영리기업 제외), 신용조합과 마이크로 금융, 그리고 비영리단체가 사회적 경제를 구성한다. 물론, 자선단체와 사회투자부문도 매우 중요하다. 이러한 사회적 경제가 공공부문, 그리고 시장경제와 조화를 이룰 때 현재의 글로벌 위기를 극복할 수 있을 것이다. 사회적 경제는 지역과 국가, 그리고 글로벌 차원에서 경제, 사회, 문화, 그리고 생태 문제에 통합적으로 접근하는 특징을 지니고 있다.

사회적 경제는 무엇보다도 사회적으로 소외된 사람들이 일자리를 만들고 존엄성을 회복하는 데 필수적이다. 특히 교육과 보육, 보건과 돌봄서비스 등 관계재(relational goods)를 공급하는 사회 서비스 부문에서 사회적 경제는 놀라운 성과를 거뒀다. 또한 사회적 경제는 지속가능한 공동체의 형성과 식량 안보에 있어 매우 중요하다. 사회적 경제는 그 동안 충족되지 못한 필요(needs)를 사회 구성원의 협동으로 해결한다는 점에서 사회혁신(social innovation)의 가장 중요한 토대이다.

지역공동체의 지속가능한 에너지 생산, 로컬푸드운동, 공정무역 등 다양한 사회적 경제는 우리가 당면한 생태위기를 극복하는데 효과적임을 입증해 왔다. 생태문제의 해결을 위해서는 지역의 사회적 경제가, 국제협약 가입과 국가 차원의 에너지체제 전환 등을 통해 세계와 나라의 여러 제도와 결합해야 한다.

사회적 경제는 풀뿌리 참여 민주주의(participatory democracy), 그리고 지역의 사회적, 경제적 재생의 토대이다. 사회적 경제에 내재해 있는 민주적 의사결정과 참여는 현재의 위기를 극복하는 데 필수적이다. 위기를 극복하고 사회통합을 이룩하며 연대와 지속가능성의 정신을 일깨운다는 점에서 사회적 경제의 중요성은 국제협약에서부터 개인의 규범에 이르기까지 모든 차원에서 나날이 증대되고 있다.

글로벌 사회적경제 네트워크를 향하여

지금 인류가 맞닥뜨린 문제는 어느 한 나라도 홀로 해결할 수 없는 문제이다. 우리가 당면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글로벌한 연대를 추구해야 하는 첫 번째 이유가 여기에 있다. 다자간 국제 네트워크를 통해 우리는 지역공동체와 국가를 포괄하는 글로벌한 사회 경제적 연대를 구축해야 한다.

2013 국제사회적경제포럼(GSEF)은 아이디어와 경험을 공유하는 통로이며, 전 세계 우리 모두의 미래를 향한 새로운 사회적 경제 패러다임을 열기 위해 적극적으로 협력하는 장이다.

본 포럼은 세계공동체가 사회적경제 운동의 성장을 지원함으로써 미래의 새로운 의제를 제시하는 중요한 기회이다.

우리는 다음과 같은 진전을 다 함께 이루기 위해 노력할 것을 다짐한다.

1. 각 지방정부는 공공-민간-공동체 파트너십을 통해 지속가능한 사회적경제 네트워크를 구축하여 주요 사회적경제 주체들 간의 교류 협력을 촉진한다.

2. 우리 모두는 시민 권한의 중요성을 인정하고 각 사회적 경제의 다양하고 광범위한 공동체 리더십을 지지한다.

3. 우리 모두는 사회적 경제에 대한 인식을 고양하고 상이한 집단을 위해 적절한 학습 프로그램을 개발하며 그 성과를 상호 공유한다.

4. 우리 모두는 사회적 경제를 진흥하기 위해 표준적인 교과서와 시민 교육 프로그램을 공동 개발할 것이다. 이러한 노력은 시민사회의 영향력과 역량을 증진시킬 것이다.

5. 우리 모두는 사회혁신을 위해 우리의 경험과 비전을 공유하고, 인적 자원의 육성을 위하여 도시 간 사회적경제 인적교류 프로그램을 적극 운영한다.

6. 우리 모두는 실시간으로 인터넷 및 기타 소통수단을 통해 사회적 경제 관련 정보를 교환하고 사회적경제의 새로운 연구 성과를 토론하고 공유한다. 각 도시정부는 이러한 정보에 입각해서 정책을 수시로 조정하도록 노력한다.

7. 우리 모두는 사회적 경제와 시장경제, 공공경제가 조화를 이루는 발전모델을 개발한다. 정부의 공공정책은 이런 목적을 달성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8. 우리 모두는 사회적 경제 연합체와 사회적 경제 지원조직을 형성하려는 노력을 적극 지지하며, 이러한 조직들이 사회적 경제 활동의 방향을 결정하고 공동 프로젝트를 추진하는 데 있어서 결정적 역할을 한다는 점을 깊이 인식한다.

9. 우리 모두는 심각한 저개발과 빈곤 문제를 겪고 있는 개발도상국에 대한 책임의식을 공감하며 사회적경제를 통해 빈곤국가의 경제, 사회, 문화, 환경에 대한 통합적 접근을 통한 해결방안을 모색한다.

10. 우리 모두는 사회적경제의 글로벌 공동 행동을 추진하고, 사회적 경제의 운영과 발전을 위한 글로벌 협의체 형성을 지원할 것이다. 여성 단체와 노동 단체, 환경 단체 등 사회적경제 운동 등 다양한 운동들도 이러한 과정에 함께 참여할 것이다.

글로벌 사회적경제 협의체 건립을 추진하기 위해 서울에 임시 사무국을 만들어 2014년에 총회를 개최할 수 있도록 준비한다. 모든 참여자는 2014년 총회에서 주최 도시 선정, 사업 확정 등을 위한 구체적인 활동 계획을 수립하는 데 협력한다.

2013 국제사회적경제포럼
11월 5~7일 서울에서 모임

본 선언문은 대한민국 서울에서 채택됨



태그:#사회적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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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와 사회학, 북한학을 전공한 사회학도입니다. 물류와 사회적경제 분야에서 일을 했었고, 2022년 강동구의회 의원이 되었습니다. 일상의 정치, 정치의 일상화를 꿈꾸는 17년차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로서, 더 나은 사회를 위하여 제가 선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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