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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에게 전화가 왔다.

"야야, 내가 늙었는갑다. 몸이 말을 안 듣네. 우짜노? 큰일일세. 김장도 해야 하는데."

차라리 김장을 하러 오라고 대놓고 이야기를 하셨다면 핑계라도 대었을 것이지만 이 말을 듣고 가지 않을 수 없었다. 사실, 작년까지 갖가지 핑계를 대며 김장 하는 일을 피해왔었다. 이번에는 그럴 수가 없다. 얼마 전 백수가 되었기 때문이다.

"엄마, 내가 가서 다 해줄게. 걱정 마."

엄마는 언니들에게도 전화를 걸어 집으로 모이라고 했다. 집 뒤 텃밭에는 삼백 포기의 배추가 바둑판 모양으로 열을 맞춰 자라 있었다. 줄로 몸을 결박당한 채 묶여 있는 모습이 빨리 뽑아달라고 소리치는 것 같았다. 6시간 동안 버스를 탄 탓에 피곤이 밀려왔고 해가 기울어 가고 있어 일을 할 수는 없었다. 그래서 다음 날 아침, 배추를 뽑기로 했다.

첫날, 이른 아침부터 부모님과 텃밭으로 나가 배추를 뽑았다. 배추를 뿌리 채 뽑느라 온 힘을 다 쏟아야 했다. 어깨도 뻐근하고 팔이 저려 왔다. 배추는 필요한 부분까지만 칼로 잘라내면 될 일이었다. 그런데 나는 뿌리 채 통으로 뽑겠다며 안간힘을 썼으니 몸이 힘들었던 것이다. 이 일은 정오가 넘어서 끝이 났고 씻고는 곧 잠이 들었다.

본격적인 김장은 시작도 안 했는데, 병원행?

다음날, 우리는 뽑아 둔 배추를 다듬기 시작했다. 배추 가장자리에 있는 파란 배춧잎을 일부 떼어내고 반으로 가르는 작업이었다. 배추를 매우 좋아하는 나로서는 파란 부분을 더 남기려고 애썼고, 부모님은 길이가 맞지 않는다며 뜯어내라 하셨다. 나는 파란 배춧잎을 버리지 못하고 한 곳에 모아두었다.

뜨거운 물에 데쳐 두었다가 '시래기 된장국'을 끓여 먹을 생각이었다. 엄마와 내가 다듬어 가른 배추를 아버지께서 마당에 놓인 평상 위에 차곡차곡 쌓으셨다. 이른 아침에 시작된 일은 정오를 넘기고 오후 1시가 되어서야 끝이 났다. 마당에 쌓인 배추는 큐브처럼 반듯하고 네모나게 쌓여 있었다. 얼마나 높이 쌓여 있던지 내 작은 키를 넘을 것 같았다.

낮잠을 자고 일어나 밥상 앞에 앉은 부모님과 나는 서로의 얼굴을 보며 놀랐다. 아버지는 입술 주위로 대상포진이 자리했고 엄마는 양 볼이 핼쑥해졌으며 눈 밑이 검게 그을려 있었다. 나는 흰자 위의 실핏줄이 터져 눈동자가 붉어져 있었다. 놀란 부모님은 빨리 병원을 다녀오라고 했다.  

과로다. 아니 이틀 밖에 일을 하지 않았고 아직 본격적인 김장에 들어가지도 않았는데 과로로 눈의 실핏줄이 터지다니 부끄러웠다. 편히 쉬라는 의사에 말에 작은 목소리로 네, 라고 말하곤 집으로 와서는 벌레가 들어가서 그런 것이라 말했다. 연세가 지긋하신 부모님도 별 탈이 없으신데 젊은 내가 골골거릴 수는 없었다. 내가 다 해주겠다는 말만 하지 않았다면 자리에 누웠을 터이지만 뱉은 말을 주워 담을 수 없으니 허리가 끊어지는 한이 있어도 김장을 끝내야 했다.

셋째 날 오후, 가까이 사는 언니가 일찍 찾아와 함께 배추를 절이기 시작했다. 입술이 부르터진 아버지는 방에서 쉬시도록 했지만 엄마는 끝까지 들어가지 않으셔서 감독을 부탁했다. 이 일은 감독님의 성화로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지만 과정이 조금 복잡했고 허리가 끊어질 것 같은 고통을 감내해야 했다.

먼저, 물을 끓여서 소금으로 간을 한 후 찬물과 섞는다. 이것은 절이는 시간을 줄이기 위한 방법이다. 마당에 산처럼 쌓여 있던 배추를 하나씩 물 속에 입수시키고 그것을 다시 건져 다른 통에 담아 소금을 뿌린다. 이 일을 몇 시간 반복하자 쌓여 있던 배추가 바닥을 드러냈다.

나는 이 일을 하면서 엄마에게 화를 냈다. 이 일은 시간이 정해진 것이 아니어서 여유를 갖고 즐겁게 하고 싶었다. 하지만 허리를 펼 시간도 주지 않고 빨리 해치우자는 엄마의 성화에 허리를 펴고 쉴 수가 없었다. 이삼백 포기의 김치를 후딱 해치운다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 녀석들이 반으로 쪼개졌으니 그 수는 배가 되지 않았겠는가. 

"엄마, 허리 좀 피자. 이러다 끊어지겠어. 우리가 알아서 할 테니까 제발 들어가."

나는 허리를 두 번 폈던가. 구부정한 자세로 3시간 반을 보내고 나서야 곧게 허리를 펼 수 있었고 엄마는 일이 끝날 때까지 들어가지 않았다. 이렇게 힘든 김장을 엄마는 삼십 년이 넘도록 해오고 계셨다니 놀라운 일이다. 맛나게 먹을 때는 몰랐다. 이렇게 과정이 복잡하고 힘이 드는지. 

거실에 대형 비닐 펼친 엄마... "그걸로 뭐할라고?"

내가 낮잠을 자고 깼을 때 거제도와 부산에서 온 언니들이 저녁을 먹고 있었다. 부모님의 입술과 내 눈을 본 언니들은 미안함을 감추지 못했다. 그래서 절인 김치를 씻는 일은 언니들이 하겠노라고 말했다. 그때 나는 늦도록 잠을 잘 생각이었다.

나흘 째 되던 날, 아침부터 언니들은 김치를 씻는 일을 했다. 다섯 살짜리 조카가 나에게 장난을 처대고 방안을 온통 어지럽히는 바람에 늦도록 잠을 잘 수가 없었다. 언니들이 일을 하는 동안 집안 청소며 조카와 놀기는 나의 차지가 되었다.

정오를 지나 시작한 일은 생각보다 오래 걸렸다. 꼼꼼한 언니들이라 배추를 말끔하게 씻어대느라 그랬을 것이다. 엄마는 옆에서 김치소를 만들고 있었고 그것을 그냥 보지 못한 나는 팔을 걷고 내 키의 절반이나 되는 큰 나무 주걱으로 김치소를 휘저어댔다. 그렇게 한 시간을 휘젓고 나자 파김치가 되어 오랜만에 만난 언니들과 대화도 나누지 못하고 잠들었다. 나는 정말 잠을 자고 밥을 먹고 오직 김장하는 일에만 에너지를 쏟았다. 조금의 여유도 없었으며 움직이기만 하면 골아 떨어졌다.

그날 저녁 거실에는 가로 400, 세로 600 정도 되는 큰 비닐이 중앙에 깔렸다.

"엄마, 이걸로 뭐하려고? 여기다 버무리려고? 그냥 대야 하나씩 갖고 하자."
"사람 수가 몇이고? 고추장 묻은 걸 언제 씻을라꼬. 이렇게 비닐 깔고 모다서 해야 일이 편하지. 내가 김장 한두 번 하나. 내 말대로 하는 게 좋을끼다."

나는 몇 번을 더 우겼던 것 같다. 하지만 김장을 처음 하는 사람과 사십 년을 해온 사람 중 누가 더 지혜로울까. 내가 그녀의 경험을 어찌 따라 가리요.

아버지가 절인 배추를 날라주면 우리는 절인 배추에 김치소를 버무렸다. 엄마와 세 명의 언니 그리고 조카까지 합세를 했다. 삼백 포기의 김치를 버무리는데 4시간은 족히 걸렸던 것 같다. 다섯 살 난 조카도 열심이었다. 작은 고무장갑과 앞치마까지 미리 준비해 온 터였다. 김장 하는 폼이 그럴싸했다. 녀석은 절인 배추를 가로로 놓고 김치소를 사정없이 좌우로 문질렀다.

조카의 버무린 배추를 보니 웃음이 났다. 배추가 걸어가다 김치소가 묻은 그릇에 넘어졌다 일어난 것처럼 맨 윗부분에만 붉은 색을 띠었다. 김장을 돕겠다고 녀석이 장갑에 앞치마까지 들고 왔는데 어찌 하지 말라고 할 수 있을까. 조카는 두 시간 가량을 가만히 앉아 김치 버무리는 일에 집중했다. 녀석의 손놀림이 점점 느려지고 있었다. 그러더니 잠깐 자기 엄마의 귓속에 뭐라고 속삭였다. 팔이 아프고 졸렸던 것이다.

어린 녀석이 한 자리에 오래 앉아 있기는 했다. 장갑과 앞치마를 벗더니 안방으로 들어갔다. 몇 분이 지나자 코고는 소리가 들렸고 조카는 큰 대자로 뻗어 잠들었다. 김장은 오후 9시 35분에 끝났고 네 명의 딸들은 일을 분담하여 뒤처리를 말끔하게 끝냈다. 우리가 김치소를 넣는 동안 둘째 언니가 수육을 만들었다. 김장이 끝나고 굴과 김치에 수육을 곁들여 술을 한 잔하기로 했었다.

"김장 왜하는지 모르겠다" 했던 내가...

엄마는 김장이 끝나자마자 여러 곳으로 전화를 했다. 이웃들에게 김장을 나눠주고 나서 부모님은 혼자 사시는 이웃 두 분을 부르셨다. 네 명의 언니와 부모님 그리고 두 분의 이웃과 함께 우리는 작은 소줏잔을 주고받았다. 안주는 당연 금방 한 김치에 얹은 굴이나 수육이었다. 어른들과 함께 하는 술을 기울이며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우리 가족은 술기운에 노곤함에 자정을 넘기지 못하고 각자의 꿈 속으로 들어갔다.

나는 왜 이런 고생을 해 가면서까지 김장을 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각자의 집에서 열 포기 정도만 하면 되고 먹고 싶을 때 겉절이를 해서 먹거나 사서 먹는 편이 더 수월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번 김장을 통해서 알게 되었다. 김장은 겨울을 나는 반찬을 만들기 위해 시작되었지만 다 함께 모여 김장을 하면 흩어져 있던 가족들이 모일 수 있고, 서로 소원하던 이웃들이 김장을 도우며 얼굴을 마주하는 기회가 생기게 되는 것이며, 부모님의 노고를 알게 되는 계기가 되는 것이다.

대한민국의 모든 아들, 딸들이여! 그대의 입 속으로 들어가는 붉은 김치는 부모님의 피땀이라는 사실을 잊지 마시길 바랍니다. 우리 김장 함께 하실래요?

덧붙이는 글 | '김장' 응모글



태그:#김장, #절임 배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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