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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아파트 발코니에서 내려다본 모습. 2.5톤 트럭 한 대 분량에 못 미치는 이삿짐을 싣고 서울을 떠났다.
 서울 아파트 발코니에서 내려다본 모습. 2.5톤 트럭 한 대 분량에 못 미치는 이삿짐을 싣고 서울을 떠났다.
ⓒ 조명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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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는 얼굴을 갖고 시골은 영혼을 갖는다." (자크 드 라크르텔)

서울에서 다니던 회사를 지난 2월 말로 그만두고 3월 초에 시골로 내려왔다. 물론 갑자기 결정한 것은 아니다. 미국에서 유학하던 2000년대 초부터 한국에 돌아가면 시골에서 살자고 아내와 이야기해 왔다. 그리고 그 시절 나는 목공을 배웠고 아내는 재봉을 배웠다. 물론 재미있기도 했지만 스스로 필요를 채우는 자급하는 삶을 위한 약간의 준비였고 장기적인 마스터플랜의 일부였다.

구체적으로는 한국에 돌아와 일단 서울에 안착하고 직장생활을 어느 정도 한 후 몇 해 전부터 시골행을 시도했다. 그러나 그때마다 뜻하게 않은 일들로 인해 미루어졌고 올해 들어서야 실행할 수 있었다. 무리하지 않고 주위가 잘 정리되어 다들 편히 받아들일 수 있을 때까지 기다렸다. 그 동안 우리는 서로의 생각을 정리하고 시골에서 집을 찾으며 세 가지 원칙을 정했다.

첫째, 서울에서 2시간 이내 지역으로 한다. 연고지가 없으니 어디든 상관없지만, 양가 부모님과 형제자매가 서울에 살고 있기 때문이었다. 심리적인 거리만큼이나 물리적인 거리도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따로 휴가를 받지 않더라도 주말을 이용해 방문하려면 2시간 이내의 거리라야 부담이 덜 할 것 같았다. 서울사람들을 위한 배려였다.

둘째, 집을 사거나 짓지 않고 빌린다. 집을 살 만큼 넉넉한 돈도 없었지만, 최소한 2년 정도는 살아보고 결정하는 것이 좋을 듯싶었다. 나나 아내나 실제로 시골에서 살아본 경험이 없었기 때문이다. 귀농·귀촌 후 도시로 회귀하는 사람이 많고 이를 실패로 보는 시각이 팽배한 듯하다. 그러나 행복한 삶을 위해 시골로 갈 수도 있고 나올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다만, 그 과정에서 합리적인 결정을 할 수 있는 안전장치가 필요하다고 보았다.

셋째, 개발될 가능성이 전혀 없는 곳을 택한다. 한국이 워낙 변화무쌍한 토건국가이다 보니 언제 어디서 무슨 개발이 일어날지 모르기 때문이다. 새롭게 정착한 보금자리를 골프장이나 시세차익과 바꾸고 싶지 않았다. 이를 피하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 불편은 감수하자고 생각했다. 개발되지 않는 편리한 지역은 어디에도 없을 것이다.

저당잡힌 삶, 저장하는 삶

시골에 차가 많지는 않지만 길이 좁아 주차금지인 곳이 많다. 또한, 빈집이 없지는 않지만 정서상 외지인이 빌리기는 쉽지 않다.
 시골에 차가 많지는 않지만 길이 좁아 주차금지인 곳이 많다. 또한, 빈집이 없지는 않지만 정서상 외지인이 빌리기는 쉽지 않다.
ⓒ 조명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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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전에 돌입하면서 이런 생각을 주위 사람들에게 널리 알렸다. 그리고 이 시골 집찾기 3원칙에 해당하는 집이 있으면 소개해 달라고 도움을 구했다. 그럼에도 시골에서 집을 구하기는 쉽지 않았다. 몇 년 동안 주말에 시간을 내 여러 지역을 방문했으나 서울에서 내려온 외지인이 선뜻 빌릴 수 있는 집을 찾기는 어려웠다. 귀농한 지 10여 년이 넘었다는 한 분은 '시골에서 집 구하기가 귀농·귀촌의 첫 관문이자 가장 어려운 관문'이라고 했다.

사실 시골에 빈 집이 없지는 않았다. 어딜 가나 시골의 고령화를 걱정하고 귀농·귀촌의 활성화로 도시인구의 유입이 있어야 한다는 대의에는 모두 동의했지만, 구체적인 내 집 내 땅을 외지인에게 빌려주고 싶어하지 않아 보였다. 심지어 외지인에게 땅을 내어주면 마을 사람들에게 욕먹는다는 말까지 들은 적도 있었다.

여러 번의 시도 끝에 한두 차례 정도 계약 단계에 이른 적도 있었으나 성사되지는 못했다. 집주인과 땅주인이 다른 상황에서 다툼이 있는 집처럼 전혀 상상도 못해본 복잡한 문제가 있기도 했다. 그러던 가운데 생각지 못한 곳에서 일이 쉽게 풀렸다. 한 회사 선배가 가족의 필요에 의해 충남 금산의 오래된 농가를 고쳐 놓았으나 현재는 비어 있다며 빌려 주겠다고 한 것이다. 누군가의 말처럼 '파랑새는 가까이 있었다'.

충남 금산군 남이면 활골마을. 지난해 10월 9일 집주인인 선배의 차를 타고 이 지역을 방문하면서 '활골'이라는 이름을 처음 들었다. 금산읍에서 진악산을 넘으며 차가 심하게 흔들렸고 속도가 현저히 느려졌다. 그냥 좀 깊은 곳이구나 싶었다. 차는 산을 넘어서도 한참 더 들어왔다. 이런 곳에도 집이 있을까 싶은 생각이 들 무렵 작은 마을이 보였다.

활골은 서울에서 3시간 거리였기 때문에 앞서 언급한 세 가지 원칙 가운데 첫 번째를 충족 시키지는 못했다. 그러나 그 정도는 충분히 그리고 기꺼이 받아들일 수 있었다. 한편으로는 서울에서 조금 더 떨어진 이 거리가 우리로 하여금 서울에 대한 의존을 끊게 해 더 유익하리라는 생각도 들었다.

마을은 조용하고 평온했다. 차를 세우고 집에 들어서니 마당 한쪽에 널빤지를 펴고 호박 널어놓은 것이 보였다. 선배는 대수롭지 않은 듯 앞집 어르신께서 저장하기 위해 말리는 것이라고 했다. 사소해 보이는 이 평범한 시골의 일상이 내게는 강렬하게 다가왔다. 서울에서의 삶이 대출에 '저당잡힌 삶'이라면, 여기는 내일을 위해 '저장하는 삶'이라는 상징처럼 느껴졌다. 그렇게 그의 호박이 내 가슴속으로 들어왔다.

이로써 진천, 괴산, 강릉, 옥천을 거쳐온 시골집 찾기 순례 대장정이 금산에서 막을 내렸다. 생각해 보면 도시는 늘 세련된 모습으로 우리를 대했지만, 그 인위적 얼굴 뒤에는 공허함이 배어 있었다. 비록 볼품없고 초라할 수 있겠지만 자연의 영혼은 위대해 보였고 지금 우리는 시골에서 그 영혼을 찾고 있다.

덧붙이는 글 | '활골닷컴'(hwalgol.com)에도 비슷한 내용이 연재됩니다.



태그:#시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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