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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장 아래 돌 틈 사이로 부추꽃이 고개를 내밀고 있다.
 담장 아래 돌 틈 사이로 부추꽃이 고개를 내밀고 있다.
ⓒ 조명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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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꽃은 자연 속에 피어나는 영혼이다." (제라르 드 네르발)

목공소는 일찌감치 컨테이너로 정했다. 공간이 필요했지만, 건물을 짓는 것은 엄두를 내기 어려운 탓이다. 컨테이너의 크기는 기본형인 3×6미터. 생계형이라기보다는 취미형이라 이마저도 과분하다. 굳이 새것일 필요는 없어 금산과 대전에서 근 두 달이나 찾아 헤맨 끝에 중고로 마련했다.

서울 생활을 정리하고 시골로 내려오면서 가장 하고 싶은 것이 목공이었다. 미국 유학 시절, 한동안 목수로 일한 적이 있다. 학교 건물과 1000여 세대의 학교 아파트를 관리하는 시설관리단에 속한 목공소였다. 몸은 고됐으나 가장 행복했던 시절 중 하나로 기억된다.

목공소는 또 다른 학교였고 목공은 훌륭한 커리큘럼이었다. 생활비를 벌기 위한 목적이 컸지만, 배워 두면 자급하는 삶에 큰 도움이 될 거라 생각했다. 도서관 등 좀 더 편한 곳을 마다하고 일부러 선택한 이유는 지루하지 않고 창의적인 일로 보여서였다. 물론 나무를 만지는 일도 좋았다.

익숙하지만 죽은 재료에 불과했던 나무를 새롭게 인식한 것은 시골로 내려와서다. 컨테이너 놓을 자리를 마련하기 위해 평탄 작업과 함께 일곱 그루의 나무를 옮겨 심을 때였다. 대부분 가느다란 사철나무 묘목이었으나 팔뚝 굵기의 복숭아나무도 있었다.

땅 위로 드러난 모양은 왜소했으나 아래는 그렇지 않았다. 사방팔방으로 뻗은 뿌리 주변을 판 후 나무를 잡고 흔들다 중심부의 가지가 약간 찢어졌다. 잠시 후 그 부위에서 점액질의 진액이 고이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 마치 나무의 피처럼 느껴졌다. 그가 생명이 있는 존재로 다가왔고 미안했다. 짧은 순간이었지만, 왜 고대인들이 토테미즘을 숭상했는지 이해할 수 있을 듯했다.

마당의 향연이 막을 내린다

장미, 자연이 스스로 빚어낸 아름다움.
 장미, 자연이 스스로 빚어낸 아름다움.
ⓒ 조명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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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 금산군 남이면 활골. 우리가 사는 이 작은 마을 초입에 넓은 매실나무 밭이 있다. 바로 우리 집 맞은편이다. 추위에 떨며 순간마다 가까워오는 봄을 절실하게 기다리던 때, 활짝 웃으며 우릴 반겨준 것은 매화였다. 아침에 눈을 떠 문을 열면 환하게 핀 매실 꽃들이 넘실대던 감동을 아직도 잊지 못한다. 생명의 기운은 그렇게 꽃들로부터 강렬하게 다가왔다.

세상에는 내가 모르는 꽃들이 그렇게 많이 있음을 여기 와서 새삼 깨달았다. 산과 들에 지천으로 피어나는 그 무수한 생명을 그저 색으로밖에는 구분할 수 없는 '자연맹'이었다. 아는 만큼 보이는 게 맞지만, 자연은 그보다 더 위대해서 알지 못하는 이에게도 기꺼이 아름다움을 선사하는 데 주저하지 않았다.

얼마 전에는 마당에서 풀을 우악스럽게 뽑고 있는데 청초한 아가씨가 활짝 웃는 느낌을 받았다. 담장 아래 무수히 깔린 돌 틈 사이로 빼꼼히 고개를 내민 부추꽃이었다. 심지도 기르지도 않았고, 심지어 그곳에 부추가 있는 줄도 몰랐다. 부추 사이에 피었기에 망정이지 그렇지 않았다면 무슨 꽃인지조차 알지 못했을 듯싶다.

부추가 채소로 기억되기에 꽃은 가려져 있었던 탓인지 살면서 처음 보았다. 사실, 도시인들 대부분이 그러지 않을까 싶다. 부추꽃만 처음 본 게 아니다. 열매를 맺기 전 하얀 고추 꽃이 그랬고 노란 토마토 꽃도 그랬다. 하얀 꽃잎에 노란 꽃이 피는 감자꽃은 더욱 예뻤다.

아름다움으로 높고 낮음을 매기는 것은 무식한 일이겠으나, 그 화려함에서는 장미가 단연 앞서 보였다. 앞집 담장과 나란히 줄지은 장미가 5월 말부터 만개하기 시작했다. 한 차례 비가 내린 뒤로는 가지가 주저앉을 정도로 흐드러지게 피더니 마당을 장미축제로 바꿔놓았다. 집 앞을 오가던 동네 어르신들도 장미가 참 예쁘다며 한 마디씩 관람료를 잊지 않으셨다.

그런 장미가 이제 지고 있다. 이렇게 마당의 향연이 막을 내린다. 그 아름다움을 기뻐하고 나누었듯 쇠함도 기록으로 남긴다. 시간이 흐른 것일 뿐 불편한 것도 부끄러운 것도 아니다. 노 시인의 말처럼 "젊음이 노력으로 얻은 상이 아니듯 늙음도 잘못으로 받은 벌이 아니"니. 빛이 있어 어둠이 있고 기쁨과 슬픔이 교차하는 삶 아니던가. '열흘 붉은 꽃이 없다'(花無十日紅)는 말로 배웅한다. 자연 속에 피어난 영혼이니 자연으로 돌아가리. 덕분에 행복했다오. 잘 가시게.

장미가 진다.
 장미가 진다.
ⓒ 조명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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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활골닷컴'(hwalgol.com)에도 비슷한 내용이 연재됩니다.



태그:#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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