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멕시코 시티, 황금의 기억

멕시코에 온 지 근 한달 만에 마침내 멕시코시티에 도착했다. 페루의 잉카, 유카탄의 마야에 이어 멕시코시티의 아즈텍까지 이로써 아메리카의 3대 문명을 모두 방문한 셈이 됐다.

도시가 생겨난 지 수백 년이 지난 멕시코시티의 거리는 지어진 지 100년은 족히 넘어 보이는 고풍스러운 건물들이 거리를 에워싸 전형적인 유럽의 구시가지 느낌을 풍긴다.

멕시코 시티를 대표하는 두 건물은 모두 스페인 식민지 시절 아즈텍의 사원을 허물고 지어진 건물이다.
▲ 메트로폴리탄 대성당과 사그라리오 예배당 멕시코 시티를 대표하는 두 건물은 모두 스페인 식민지 시절 아즈텍의 사원을 허물고 지어진 건물이다.
ⓒ 김동주

관련사진보기


본격적으로 도시를 탐험하기 위한 내 발걸음은 자연스럽게 소칼로(Zocalo) 광장으로 향했다. 네 방향으로 넓게 펼쳐진 멕시코시티의 소칼로 광장은 규모 면에서 아메리카의 다른 모든 도시를 압도한다. 여의도 공원만한 크기의 광장 한가운데는 온갖 종류의 행사 차량이 들어서 365일 사람의 행렬이 끊이질 않는다.

정면에는 스페인의 것임에 분명한 대성당과 사그라리오 예배당이 자리잡았지만, 과거 이 도시는 아즈텍 제국의 수도 테노치티틀란(Tenochtitlan)이라 불렸다. 해발 2000미터 고원지대에서는 황금이 쏟아져 나왔고 그로 인해 아즈텍(Aztec)은 최고의 전성기를 누렸다. 황금에 눈이 먼 스페인 침략자들을 '신의 사자'로 착각하기 전까지 말이다.

코르테스(Cortez)가 이끄는 스페인 군과 비교도 안 될 만큼 막강했던 아즈텍 제국이었지만 난생 처음 본 '배'에서 내려 말을 타고 등장한 스페인군을 아즈텍 건국신화에 등장하는 신, '케찰코아틀의 사자'라고 여겼다. 참으로 허무하게 제국의 중심부를 적에게 내어준 아즈텍은 이 후 오랜 기간 치열한 쟁탈전을 벌였지만 결국 싸움을 끝낸 것은 유럽인들로부터 옮겨간 천연두였다.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라고 했던가. 멀리 보이는 대성당 만큼이나 웅장하고 아름다웠을 그 모습은 영원한 신비로 남게 되었다.
▲ 남아있는 테노치티틀란의 유적들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라고 했던가. 멀리 보이는 대성당 만큼이나 웅장하고 아름다웠을 그 모습은 영원한 신비로 남게 되었다.
ⓒ 김동주

관련사진보기


코르테스와 그의 부하들은 전염병으로 멸망하다시피 한 아즈텍의 수도 테노치티틀란을 철저하게 파괴했다. 황금은 녹여서 배에 실었고, 신전은 부숴져 새로 지어진 성당의 터가 되었다. 소칼로 광장의 동쪽에는 코르테스 자신이 머물 궁전을 세우고 엄청난 양의 황금은 본국으로 이송되었다.

실제로 테노치티틀란의 황금은 운반을 위해 녹여져서 금괴나 금화로 만들어 졌다고 하는데, 영화 '캐리비안의 해적' 에 등장하는 바다 속 황금 주화의 정체는 바로 이것이다.
▲ 속죄의 제단 실제로 테노치티틀란의 황금은 운반을 위해 녹여져서 금괴나 금화로 만들어 졌다고 하는데, 영화 '캐리비안의 해적' 에 등장하는 바다 속 황금 주화의 정체는 바로 이것이다.
ⓒ 김동주

관련사진보기


그러나 엄청난 황금을 실은 에스파냐 함선은 도중에 침몰했고, 사람들은 황금을 들고 달아나다 죽은 병사들을 두고 저주받은 보물의 전설을 만들어냈다. 대성당에 들어서면 온통 황금으로 칠해진 화려한 내부장식보다 단상 아래 '속죄의 제단'이라고 적힌 한 줄 글씨가 눈에 먼저 들어오는 것은 이 때문이다.

헌법광장이라고도 불리는 이 광장에서는 1년 365일 매일같이 요란한 복장한 아즈텍 전사들의 공연을 볼 수 있다.
▲ 소칼로 광장 헌법광장이라고도 불리는 이 광장에서는 1년 365일 매일같이 요란한 복장한 아즈텍 전사들의 공연을 볼 수 있다.
ⓒ 김동주

관련사진보기


옛 흔적이 전혀 남지 않은 소칼로 광장은 그 자체가 아즈텍 제국의 중심지였다. 지금도 멕시코의 많은 원주민들은 매일같이 이곳에 나와 아즈텍 전사의 복장을 하고 흥미로운 공연을 펼친다. 그 모습이 비장하기 보다 용맹스럽고 슬프기 보다 활기차다.

멕시코 시티의 수많은 궁전들

아픈 역사를 뒤로 하고, 멕시코시티에 세워진 건물들은 하나같이 거대하고 화려하고 웅장하다. 시민들은 그런 웅장함을 여지없이 즐긴다. 숙소 바로 앞에 있던 혁명 탑(Munument de Revolucion) 앞에서는 우리네 광화문 광장처럼, 주말이면 바닥에서 솟구치는 분수에 뛰어드는 아이들과 몸을 닦기에 여념이 없는 부모들로 가득 찬다.

우표를 사러 들른 중앙 우체국은 더했다. 고대 아즈텍의 영광을 재현하려는 듯 하나같이 황금색으로 칠해진 내부의 철제 구조는 혀를 내두를 만큼 화려했다. 겨우 기념우표를 사러 왔을 뿐인데, 어쩐지 금괴라도 사야 할 것만 같은 기분이 절로 든다.

 왼쪽 상단부터 시계방향으로 혁명탑(Monumento de Revolucion), 중앙우체국(Palacio de Correos), 예술궁전(Palacio de Bellas Artes), 국립궁전(Palacio de Nacional). 멕시코시티의 옛 건물들에는 유독 '궁전'이 많이 붙는데, 직접 보면 특별한 설명을 듣지 않아도 고개가 끄덕여진다.
▲ 멕시코시티의 건축물 왼쪽 상단부터 시계방향으로 혁명탑(Monumento de Revolucion), 중앙우체국(Palacio de Correos), 예술궁전(Palacio de Bellas Artes), 국립궁전(Palacio de Nacional). 멕시코시티의 옛 건물들에는 유독 '궁전'이 많이 붙는데, 직접 보면 특별한 설명을 듣지 않아도 고개가 끄덕여진다.
ⓒ 김동주

관련사진보기


예술로 승화된 건축미의 절정을 뽐내는 것은 바로 예술궁전(Palacio de Bellas Artes)이다. 황금빛이 도는 천장의 돔이 인상적인 이 건물은 건물 전체를 하얀색 대리석으로 휘감아 멀리서도 또렷하게 그 윤곽이 드러난다. 주로 오페라와 발레 공연이 열리는 이 예술궁전 앞에서는 시드니의 오페라 하우스도 한풀 그 기세가 꺾일 듯하다.

코르테스가 아즈텍 궁전을 부수고 세운 국립궁전도 아름답기로는 뒤지지 않는다. 소칼로 광장의 동쪽에 있는 이 건물에서 코르테스가 본국으로 돌아간 뒤로 에스파냐의 수많은 권력자들이 머물며 수백 년간 멕시코시티를 식민 통치했으니, 소칼로 광장은 여러모로 이들에게는 잔혹한 과거의 흔적이다.

스페인 정복 이전 아즈텍의 부흥부터 스페인의 침략, 독립과 혁명에 이르기까지 멕시코의 신화와 역사를 독특한 그림체로 빼곡히 그려넣었다.
▲ 국립궁전 내부 디에고 리베라의 벽화 스페인 정복 이전 아즈텍의 부흥부터 스페인의 침략, 독립과 혁명에 이르기까지 멕시코의 신화와 역사를 독특한 그림체로 빼곡히 그려넣었다.
ⓒ 김동주

관련사진보기


지금은 관광객에게 개방이 된 빈 건물이 된 국립 궁전 내부는 그 유명한 멕시코 화가 디에고 리베라의 벽화들로 채워져 있다. 검은 피부의 원주민 사이에 홀로 콧수염을 드러내고 앉아 있는 흰 피부의 남자를 본 순간, 코르테스임을 직감했다. 하지만, 이야기와 역사를 그려내기로 유명한 리베라의 작품들은 보면 볼수록 궁금증을 유발 시킨다. 결국 나는 가이드를 고용하기로 했다.

전 세계 어디를 가도 대통령이 집무하던 궁전의 내부가 벽화로 장식된 경우는 드물다. 그만큼 오늘날 멕시코 사람들은 멕시코의 역사를 중요시 한다는 반증이 아닐까.
▲ 스페인 정복 이후부터의 근현대사를 모두 담은 벽화 전 세계 어디를 가도 대통령이 집무하던 궁전의 내부가 벽화로 장식된 경우는 드물다. 그만큼 오늘날 멕시코 사람들은 멕시코의 역사를 중요시 한다는 반증이 아닐까.
ⓒ 김동주

관련사진보기


테노치티틀란을 정복한 코르테스, 멕시코의 꼭두각시 황제 막시밀리안, 혁명군을 이끌고 대통령이 된 베니토 후아레스, 독재자 디아즈 등 멕시코의 모든 근현대사를 담아낸 그의 벽화 속 인물들은 하나같이 정교하고 사실적이다.

헌법을 들고 있는 후아레스 대통령을 그려 그가 민주주의로 선출된 최초의 대통령임을 표현하는 것만 봐도 그렇다. 스페인 군인에게서 심장을 빼내고 있는 아즈텍 사제와 유독 추하게 그려진 코르테스의 얼굴도 마찬가지다.

멕시코의 독립전쟁100주년을 기념하는 황금 천사상은 멕시코 시티를 상징하는 존재가 되었다.
▲ 엘 앙헬(El Angel) 멕시코의 독립전쟁100주년을 기념하는 황금 천사상은 멕시코 시티를 상징하는 존재가 되었다.
ⓒ 김동주

관련사진보기


멕시코 시티는 이집트의 카이로만큼 역사가 오래된 도시다. 기원전부터 사람들이 살았고 아즈텍 이전에 발생한 여러 문명의 중심지이기도 했다. 황금으로 일어선 도시는 황금을 노린 침략자에 의해 철저히 파괴되었고 이제는 옛 향수를 느낄 수 없을 만큼 변해 버렸다.

그러나 에스파냐의 군대도, 혹독한 천연두도 이들의 진짜 정신은 지배할 수 없었다. 거리 공터에서는 아즈텍 후손들의 역동적인 춤사위가 펼쳐지는가 싶더니 또 한 곳에서는 송진과 풀로 만든 향을 피우며 나쁜 영혼을 쫓는 정화의식이 치러진다. 그 오랜 시공간 속에서도 여전히 알싸한 살사 냄새가 거리를 지배하는 이 고대 도시는, 거대한 기둥 위의 황금 천사상이 내려다 보는 가운데 21세기를 살고 있다.

간략여행정보
한국에서 멕시코 시티에 갈 때는 보통 미국의 LA를 거쳐야만 갈 수 있다. 영화 속에서 납치, 마약, 강도 등 질 나쁜 범죄의 온상으로 그려지기 일쑤다. 하지만 현재의 멕시코 시티는 과거의 오명을 벗기 위해 여러 가지 노력을 기울이고 있으며, 거리 곳곳에 가득한 경찰들은 이를 반증한다.

멕시코 시티를 여행하는 데에는 여러 가지 방법이 있지만, 문명이 탄생했던 곳인 만큼 역사를 아는 것만큼 좋은 것이 없다. 제일 먼저 소칼로 광장 동쪽의 국립궁전을 방문해 가이드를 고용할 것을 추천한다. 디에고 리베라의 벽화를 따라 설명을 듣다 보면 멕시코 신화와 역사 모두를 알 수 있다. 이를 바탕으로 과거 이야기들이 펼쳐졌던 소칼로 주변 건물들을 하나씩 탐험해보자. 우리 돈 천 원이면 먹을 수 있는 맥주와 타코는 덤이다.



태그:#멕시코시티, #아즈텍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