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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당에 만들어놓은 루돌프 위로 눈이 쌓이고 있다.
 마당에 만들어놓은 루돌프 위로 눈이 쌓이고 있다.
ⓒ 조명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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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눈을 뜨니 세상이 하얗다. 간밤에 적지 않은 눈이 내렸다. 지난 1일부터 매일 내리고 있다. 12월은 아내와 함께 시골에 내려온 지 9개월 차이자 '자본주의 급행열차'에서 내린 후 첫 겨울이다. 하지만 첫 추위는 아니다. 지난 3월에 이사 와서 이미 혹독한 시골 추위를 경험했다. 계절은 봄이었으나 날씨는 그렇지 않았다.

그동안 서울의 아파트에서만 살았기에 시골 추위에 대한 '감'이 없었다. 이사 온 첫날밤, 새들이 쪼아놓은 창호지 구멍을 에이포 용지로 막았으나 냉기는 여전했다. 추위와 싸우며 오만가지 생각이 들었다. 나는 누군가, 또 여긴 어딘가. 아내 역시 너무 추워 '여기서 살 수 있을까' 싶었단다. 오죽했으면 텔레비전 켤 때 LG 로고와 함께 뜨는 'Life's Good'이란 문구를 보며 위안을 받았다. 그래, 인생은 좋은 거야!

자다 깨다를 반복한 아침, 양지바른 곳에서 볕을 쬐는데 앞집 할아버지께서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추운데 잘 잤는지' 물으셨다. 예의상 괜찮다는 말보다 너무 추웠다는 말이 먼저 나왔다. 그럴 줄 알았다는 듯 어르신께서는 "추우면 말야" 하면서 충청도 억양으로 천천히 말을 이으셨다. 뭔가 따뜻하게 지낼 수 있는 비법이라도 있는 것인가 싶어 귀를 기울이는데 "두꺼운 이불을 덮어!"하셨다. 아, 네!

자립적으로 해결하는 삶의 기쁨

우리집 난방을 책임지는 화목 난로의 이름은 생김새 탓에 '돼지난로'다.
 우리집 난방을 책임지는 화목 난로의 이름은 생김새 탓에 '돼지난로'다.
ⓒ 조명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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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부터 아내와 '따뜻한 집 구축을 위한 태스크포스'를 꾸리고 단열 및 난방을 위한 마스터플랜을 세웠다. 무엇보다 집 자체가 단열이 잘되지 않아 냉골인 상황을 체계적으로 대응해 추위에서 벗어나자는 확고한 의지의 발로였다. 우선 웃풍의 주범인 두 개의 창호문을 떼어 냈다. 하나는 이중창을 달아 채광을 유지하고 다른 하나는 샌드위치 패널을 넣은 후 합판으로 막았다. 방 안에는 10mm 두께의 단열 벽지를 새로 바르고 화목 난로 설치로 대미를 장식했다. 

인터넷으로 정보를 검색한 후 전문가를 찾아 조언을 구하고 자재를 사와 직접 시공했다. 연통을 잘라 바깥으로 빼고 적벽돌을 바닥에 깔았으며 황토벽돌로 뒷벽을 세워 온기를 최대한 오래 보존하도록 했다. 우여곡절도 많았으나 난로를 설치한 덕에 지난 3월 10° 전반에 머물던 실내 기온이 난로를 피우면 20° 후반으로 올라갔다. 간혹 목초액 냄새가 나기도 했으나 바깥 연통 아래쪽에 구멍을 내서 잡았다.

남은 문제는 장작이었다. 화목 난로가 겨우내 화력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많은 땔감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 여름이 지나 날씨가 선선해진 이후부터 엔진톱과 낫을 들고 간벌한 나무를 찾아 산을 돌아다녔다. 깊은 산 속에서 수십 개의 통나무를 끌고 내려오면 몸은 이미 녹초가 되었고 옷은 젖을대로 젖었지만 마음은 더없이 상쾌했다. 다소 불편하고 피곤한 방식일 수 있으나 자립적으로 해결하는 삶에는 숨은 기쁨이 있다.

하지만 모든 나무를 다 스스로 구한 것은 아니다. 블로그를 통해 올리던 벌목공 경험담이 안쓰러우셨던지 부모님께서 장작 한 트럭분을 선물로 하사하셨다. 살짝 망설였으나 결심을 잠시 접고 기쁘게 받았다. 틈날 때마다 장작을 화목 난로에 들어갈 크기로 자르고 쪼개고 있다. 집 앞뒤 옆으로 장작이 쌓여있으니 마음이 그렇게 든든할 수가 없다. 이젠 추위가 두렵지 않다.

편리와 감각을 바꾼 시골 생활

겨우내 화목 난로의 화력을 유지해줄 장작이 계속 쌓여 간다.
 겨우내 화목 난로의 화력을 유지해줄 장작이 계속 쌓여 간다.
ⓒ 조명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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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골에 온 후, 삶이 확실히 '버라이어티'해졌다. 전에는 하지 않았던 혹은 해보지 못했던 일을 하고 있다는 뜻이자, 전혀 생각지 못한 일을 마주하고 있다는 의미다. 언제 서리가 내리고 물이 어는지 24절기에도 민감해지고 있다.

두꺼운 옷 외에 별다른 준비가 필요 없는 도시와 달리 시골에선 추운 겨울을 나기 위해 수고가 필요하다. 편리와 감각을 바꾼 삶이다. 하지만 서울에 살았으면 결코 경험해보지 못할 일이기에, 더불어 우리가 선택한 길이기에 하루하루의 일상이 만족스럽다.

시골의 겨울은 심심하지 않은지 궁금해하는 이들이 있다. 하지만 해가 짧아져 하루가 더 바쁘고 빨리 간다. 저녁을 먹고 마을 순례 후 난로에 불을 피우면 하루를 마감하는 분위기인데도 채 7시가 되기 전이다. 마을은 이미 깜깜하고 서울의 밤 11시 정도 되는 느낌이다. 활골의 저녁은 도시의 밤보다 더 어둡다. 그리고 그 고요한 틈을 비집고 눈이 내려 마당을 가득 채운다.

눈이 내릴 때 마당에 나와 있으면 산 사이로 눈보라가 휘몰아치는 광경을 보기도 한다. 산에 있는 나무들이 일제히 휩쓸리며 소리를 내는 눈보라에는 뭔가 장엄한 게 있다. "외로워서 하루에 한 번씩 마을로 내려"오는 산 그림자처럼 외로운 숲이 지르는 환호성이랄까. 산골에 내리는 눈은 그렇게 반가운 손님이다.

덧붙이는 글 | '활골닷컴'(hwalgol.com)에도 비슷한 내용이 연재됩니다.



태그:#활골, #귀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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