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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뤼벡에 있는 인형 박물관에서 겪은 일이다. 뤼벡은 박물관을 위한 도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보고 싶고 보면 좋을 박물관들이 많은 곳이다.

그런데 막상 토마스 만이 태어난 도시, 그의 소설과 관련된 도시, 예전 한자 동맹의 도시 중 크게 번성했던 도시 정도의 정보만을 알고는 아무런 준비 없이 기차역에서 내렸더니 도대체 어디로 가야할지도 알 수가 없었다. 대충 사람들 가는 곳으로 방향을 밟아 오던 중 인관광안내센터가 있어서 들어가 이것저것 물어보았다. 그랬더니 박물관 패스를 사면 7일 안 까지는 사용 가능하다고 해 그걸 구입하기로 했다. 그 패스가 있으면 7일 안으로는 거기에 적힌 박물관들을 다 무료로 입장할 수 있었다.

뤼벡의 인형박물관
▲ 뤼벡의 인형박물관 뤼벡의 인형박물관
ⓒ 배수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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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문제는 인형박물관에 들어가 그곳 직원인 60세가 조금 넘어 보이는 할아버지를 만나면서 일어났다. 박물관 패스는 처음 들어간 박물관이 어디든 그곳에서 직접 구매할 수 있고 20유로만 주면 되는 걸로 알고 갔는데 그 할아버지는 이 박물관은 그냥 개인 박물관이라고 우겼다. 나는 이미 안내센터에서 설명을 들었고 이곳도 박물관 패스가 유효한 곳이라고 알고 있 있다고 했더니 아니란다. 그러니 박물관 패스는 여기서 사지 말고 그냥 5유로를 단독으로 내고 들어가라고 했다.

결국 '음, 그런가?'하며 이상하긴 하지만 공식적인 박물관에서 단돈 5유로를 거짓말할리 없을 거라고 믿고는 구경을 마치고 다음 박물관으로 이동했다. 그렇게 찾아간 토마스 만의 집을 박물관으로 꾸민 그곳에 들어가서 박물관 패스를 구입하겠다고 하고는 물어보았다. '인형박물관에 다녀오는 길인데 거기서 이런 일이 있었다'고 했더니 그 여자 분 말씀이 그럴 리가 없단다. '그곳은 당연히 박물관 패스가 유효한 곳이니 본인이 안내센터에 나중에 말해주겠다'고 했다.

그 말을 듣고는 일단 박물관 패스를 구입하고 위층으로 올라가는데 <브텐부르크가의 사람들>이라는 영화의 배경이 된 그 거실을 바라보면서도 배꼽 밑에서부터 울컥 울컥 화가 올라오는 걸 참을 수가 없었다. 결국 도저히 집중되지 않아서 다시 인형박물관으로 발길을 돌려, 마침 누군가와 전화를 하고 있는 할아버지가 전화를 끊기만을 기다렸다.

인형박물관 내부
▲ 인형박물관 내부 인형박물관 내부
ⓒ 배수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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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다시 나타나자 얼굴이 급변한 할아버지가 전화는 끊지 않은 채 내게 왜 다시 왔느냐 물었다. 그래서 "저 박물관에서 여기가 개인 박물관이 아니라 하더라. 분명히 패스가 유효하다고 했다"라고 하니 아주 귀찮다는 듯 "그럼 5유로만 다시 내주면 되는 것이 아니냐고" 했다. 순간 어찌나 당황돼던지. 나는 적어도 그가 얼굴빛이라도 뜨거워질 줄 알았다. 나에게 창피해 할 줄 알았다. "그냥 5유로만 다시 건네주면 되지 않는냐"는 대답은 애당초 내 계산에 없던 일이었다.

그가 5유로를 꺼내 다시 주면서 이러면 다 된 것 아니냐는 표정을 짓길래 "이건 내 잘못이 아니다. 당신이 분명 여기가 개인 박물관이라고 했으니까"라고 말했다. 그리고 여기서 더 따져 싸울까 말까를 고민하다가 다시 전화기를 들고 계속 상대와 이야기를 이어가는 그 사람을 보면서 그럴 일이 아니라면 판단이 들었다. 그는 끝까지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을 테고, 나는 필요없는 에너지만 소비하게 될 것이 뻔했다. 자신이 거짓말을 했으면서 그럼 5유로 다시 주면 되지 않느냐는 말하는 사람과 싸우면 무엇하랴!

뤼벡 시내
▲ 뤼벡 시내 뤼벡 시내
ⓒ 배수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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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2곳 정도의 박물관을 더 돌고는 안내센터에 들러 그곳 직원에게 상황을 설명했다.

"인형박물관 직원이 내게 거짓말을 했다. 다른 박물관 직원이 그곳이 개인 박물관이 아니라고 말해주더라. 내 생각엔 그가 내가 여행객이라고 무시한 것 같다. 그래서 거짓말을 했던 것 같다. 하지만 여기는 안내센터이니 너희가 이 사실을 알고 있어야 할 것 같아서 와서 말하는 거다. 분명히 알아두어야 할 것 같아서."

여자는 나의 말에 당황한 듯 보였다. 그리고는 "알았노라고, 무슨 말인지 알겠노라"고 하길래, "그럼 수고하라"고 인사를 하고는 되돌아왔다.

이 일은 내게 독일을 다시 보게 하는 작은 사건 중 하나가 되었다. 뭐든지 정확하고 꼼꼼한 사람들, 결코 틀림이 없는 사람들. 에누리가 없듯 정가 외에 대충 더 받는 것도 없는 사람들이라는 인식은 깨어지고 말았다. 그래, 인간이 한 세상을 살며 온전히 거짓말 한 번 하지 않은 사람이 몇이나 될까? 또 그 무게에 차이가 있다고는 하나, 나 역시 오십 보 백 보일 정도의 거짓말도 살아오면서 해왔으리라.

뤼벡 시내
▲ 뤼벡 시내 뤼벡 시내
ⓒ 배수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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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적어도 그 대응 방식은 달라야 했다고 믿는다. 실수와 잘못은 인간이기에 할 수 있어도 그 이후의 일은 오롯이 그 사람을 말해주는 일이다. 더군다나 여행객에게 혹은 외국인에게 그 나라 사람들의 행동과 말은 결코 개인의 문제로 국한되지 못하고 그 국가 전체의 이미지로 확장되어버리곤 한다. 그러니 공공기관에서라면 더더욱 조심해야 한다.

언젠가 한국에 온 외국인 노동자분들과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었다. 형제 5명이 모두 한국으로 돈을 벌러 왔는데 그 중 한 명은 임금 문제로 살해를 당하고, 그 중 한명은 병원에 있다가 누군가가 건네 준 삶은 달걀을 건네 받고 의식 불명 상태라며 법적 도움을 받으러 왔다. 너무나 믿기지 않는 이야기였지만 그 가족분들께 한국은 어떤 나라로 다가갈지 너무나 마음이 아팠던 경험이 떠오른다.

여행을 다니다 보면, 아무리 멋진 도시이더라도 단 한 사람에 의해 다시는 오기 싫은 곳이 되기도 한다. 반대로 이름도 없는 허허벌판 같은 시골마을이더라도 평생을 두고 잊지 못할 아름다운 곳으로 간직되기도 한다. 그리고 이러한 일들은 여행객 대부분에게 공통적으로 일어난다. 그러니, 한 나라의 이미지는 우리 각각의 개인들에게 오롯이 달려있을 수도 있다. 우리 모두가 외교관이라 해도 과언이 아닌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덧붙이는 글 | 2010년 한달간의 유럽 여행 동안 독일 뤼벡을 방문하고 쓴 여행기입니다.



태그:#유럽여행, #독일 뤼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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