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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아침 배달되는 신문을 볼 때, 제일 먼저 펼치는 면이 있다. 문화면과 스포츠면이다. 문화는 머리로 좋아하고, 스포츠는 가슴으로 좋아한다. 그런데 정말 제아무리 문화와 스포츠라고 해도 눈길이 잘 안 가는 소식이 하나씩 있다. 미술의 경매소식과 스포츠의 골프소식이 그렇다. 특히 경제신문의 특성상 경매와 골프를 비중 있게 다뤄야 하는 불가분의 관계가 있을지는 모르지만 유독 그 기사에는 눈길이 쉽게 가지 않는 것이 사실이다.

'K옥션, 박화백 25억대 '목련' 경매, 서울옥션은 14억대 백자 출품'

어제(18일) 모 경제지 미술면의 어느 기사 부제목이다. 수십억 원대의 미술품 가격이 여기저기 눈에 띈다. 저 정도 돈은 나 같은 사람들이 평생 만져볼 수 없는 양이겠지. 돈 얘기로 하여금 괴리감부터 들게 만든다. 아무래도 먼 남의 나라 얘기인가 보다. 언제부터 이렇게 미술이 나에게서 멀어졌는가? 

몇 년 전 한남동에 위치한 리움미술관을 구경갔던 적이 있었다. 입구로 들어가는 길에서조차 예사롭지 않은 디자인에 놀란 입을 다물지 못했다. 동행했던 친구들도 한마디씩 거든다.

"야...이래서 리움, 리움 하는구나!!"
"그만좀 촌티 내라. 다른 사람 볼까 두렵다"
"그래...이런데 오면 남들 눈도 있으니까 처음 오는 척 하지 말고 있어 보이게 행동해야지"

모든 게 새로운 나에게 하나둘씩 핀잔을 늘어놓는다. 그들도 자주 오지 않는 것은 매한가지일 텐데 애써 노블레스하게 차려입는 관객들 덕분에 본색을 숨기게 만드는 분위기다. 정문에 들어서자 바닥에서 천장까지 5미터에 이르는 어느 세계적인 작가의 작품이 눈에 들어온다. 하얀 바탕에 몇 개의 점만 눈에 띌 뿐, 아마추어인 내겐 아무것도 특별하지 않았다. 더욱 놀라웠던 건 그림의 가격이 3억을 넘어섰다는 사실이다.

지난 11일 뉴욕 크리스트 경매에 나온 피카소의 '알제의 여인들'이라는 그림이 1억4천만 달러(한화 1536억 원)라는 사상 최고 추정가를 뛰어넘는 1억7940만 달러(1968억 5562만원)에 팔렸다.

이를 두고 2008년 금융위기를 예측해 '닥터 둠'이라는 별명으로 잘 알려진 누리엘 루비니 뉴욕대 교수는 "고가 미술품 시장이 탈세와 돈세탁의 온상이 되고 있으며 부패로 얼룩져 있다"며 "한 사람이 100만 달러 이상의 값비싼 그림을 살 수 있는 미술품 시장에서는 그림 값을 현금으로 내고 신고할 필요도 없어 금융 규제가 적용되기 어렵다"고 말했다. 실제로 2007년에는 한 브라질 은행가가 돈세탁을 위해 장 미셸 바스키아의 '한니발'이라는 그림을 들고오다 적발된 사례도 있었다.

미술관에는 비싼 작품들이 즐비하다. 작품의 예술적 의미에 대한 이해를 구하는 것도 아마추어들에겐 쉽지 않다. 미술관의 어원은 고대 그리스 로마시대의 신전인 뮤즈(Muse)에서 출발했으며, 르네상스 시대에 들어서면서 귀족들의 수집 장소로 그 역할이 바뀌었다.

20세기 이후의 현대 미술은 벽에 그림을 전시하던 것에서 벗어나 공간을 활용하는 미술로 확대됐다. 단순한 옵저버(observer)의 입장에 국한되었던 소극적 관람자에서 체험, 교육 등 다양한 채널을 통해 '소통'하는 적극적 관람자로 확대된 것이다. 시간이 흐르면서 미술관의 벽이 점차 낮아졌으며, 현대미술에 와서는 일반 대중에게 다가서는 미술의 개념이 생겨났다.

지난해 10월 14일부터 한 달 동안 진행된 네덜란드 출신의 공공미술 프로젝트 작품에 관람객만 500만 명 가까이 몰렸다. 제2롯데월드 공사로 인한 지반침하 논란으로 석촌호수의 수면이 낮아진다는 뉴스가 쏟아지는 그 시점에 플로렌타인 호프먼의 대형 오리인형 '러버덕'은 매일같이 사람들의 관심에 오르내렸다. 아니 한 달간 전시되는 노란 오리를 보기위해 전쟁이라도 난 것처럼 석촌호수는 연일 장사진이었다.

대중이 접점하는 미술의 긍정적 효과를 톡톡히 누리는 순간이었다. 우리는 이것을 일종의 공공미술(public art, 公共美術)이라 부른다. 영국의 존 윌렛이 1967년 '도시 속의 미술(Art in a City)'에서 처음 사용한 공공미술이라는 용어는 일반 대중에게 공개된 장소에 설치, 전시된 작품을 지칭하며, 지정된 장소의 설치미술이나 장소 자체를 위한 디자인 등을 포함한다. 일상에서 만나는 공공미술의 예시는 상상 그 이상으로 우리 생활에 깊숙이 침투되어 있다.

문화예술진흥법 제9조라 불리는 '건축물 미술작품제도'도 인해 공공거리에서 대형건축물 주변에 마술작품을 쉽게 관찰할 수 있게 됐으며, 미술시장에 있어서도 양적 팽창이 이루어졌다. 우리가 알고 있는 광화문 흥국생명 빌딩 앞에 설치된 '해머링 맨(Hammering Man)'이 대표적인 공공미술의 작품으로 들 수 있다.
▲ 해머링 맨 문화예술진흥법 제9조라 불리는 '건축물 미술작품제도'도 인해 공공거리에서 대형건축물 주변에 마술작품을 쉽게 관찰할 수 있게 됐으며, 미술시장에 있어서도 양적 팽창이 이루어졌다. 우리가 알고 있는 광화문 흥국생명 빌딩 앞에 설치된 '해머링 맨(Hammering Man)'이 대표적인 공공미술의 작품으로 들 수 있다.
ⓒ 이규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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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정 규모(1만 제곱미터) 이상의 건축물을 건축하려는 자는 건축비용의 일정 비율(0.7%)에 해당하는 금액을 미술작품의 설치에 사용하거나, 문화예술기금에 출연하도록 규정한다'

실제로 문화예술진흥법 제9조라 불리는 '건축물 미술작품제도'로 인해 공공거리에서 대형건축물 주변에 미술작품을 보다 쉽게 관찰할 수 있게 됐으며, 미술시장에 있어서도 양적 팽창이 이루어졌다. 흔히 우리가 알고 있는 광화문 흥국생명 빌딩 앞에 설치된 '해머링 맨(Hammering Man)'이 대표적인 공공미술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사람들이 많이 다니는 곳에 위치한 외국 유명 작가의 대형작품이 공공미술을 대표한다고 말할 수 있는가?

"공공미술은 공공이 함께하는 것에 의미가 있다. 우리가 알고 있는 대형 건물 앞에 유명 작가의 작품들은 우리가 알고 있는 공공미술의 여러 유형 중 하나일 뿐이다. 최근 6~7년 전부터 골목 깊숙이 미술이 스며드는 작업이 유행하고 있으며, 이것은 이전의 대형작품 설치와는 다른 의미의 공공미술로 받아들여야 한다.

골목에서 시행하는 소소한 공공미술은 지역 주민이 직접, 간접적으로 참여해 받아들인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이런 작품들을 경험해보는 것이 한 번이라도 전시장에 가게 만들 수 있으며, 그들이 본 작품에 대해서 평가하는 기준(?)이 생기는 것이다. 이것은 대중에게 미술관의 진입 장벽을 낮춰주는 결정적인 계기가 될 수 있다고 본다."

인제빙어축제, 태백눈꽃축제 등 국내외에서 미술축제 예술감독을 역임한 김래환(53, 미도조형아트 대표)씨는 공공미술의 유형과 의미에 대해서 언급했다. 실제로 몇 해 전부터 '장소 자체를 위한 디자인'의 공공미술이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벽화그리기와 골목 프로젝트를 통해서 잘 알려진 동숭동 낙산공원 벽화마을과 부산의 감천문화마을의 경우는 공공미술이 얼마나 마을에 침투했는지를 잘 보여주는 사례다.

공공미술을 쉽게 접할 수 있는 두 가지 방법

최근 출시된 '공공미술산책' 앱에는 서울지역에 설치된 2000여 점의 공공미술 작품이 소개되어 있다. 최신 등록순으로 작품을 볼 수 있으며, 지금 내 위치를 기준으로 가까운 거리순으로 확인이 가능하다. 이밖에도 11개 지역 데이트 코스를 추천하는 '아트로드데이트'를 비롯해 '바람난 미술'의 전시 정도도 제공된다. 가장 주목할 만한 기능으로는 내 앞에 근사한 작품을 직접 등록하고 추천하는 것도 이용해 볼 수 있다.
▲ 공공미술산책 최근 출시된 '공공미술산책' 앱에는 서울지역에 설치된 2000여 점의 공공미술 작품이 소개되어 있다. 최신 등록순으로 작품을 볼 수 있으며, 지금 내 위치를 기준으로 가까운 거리순으로 확인이 가능하다. 이밖에도 11개 지역 데이트 코스를 추천하는 '아트로드데이트'를 비롯해 '바람난 미술'의 전시 정도도 제공된다. 가장 주목할 만한 기능으로는 내 앞에 근사한 작품을 직접 등록하고 추천하는 것도 이용해 볼 수 있다.
ⓒ 이규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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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공미술을 길거리에서 (우연히) 만나는 것 말고 조금 더 쉽게 접할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공공미술을 주제별로, 지역별로 (카테고리화해서) 찾아볼 수 있다면 좋겠어요..."

최근 공공미술의 형태가 다양하고 복잡해짐에 따라 대형화된 작품 위주에서 소규모로 점차 변하고 있다. 공공미술의 주역 또한 작가 중심에서 주민들이 함께하는 공동 프로젝트로 이동하고 있으며, 더 작은 공간에서 기발한 작품이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무수하게 쏟아지는 공공미술을 무분별하게 받아들이는 것도 한계가 있으며, 때로는 내가 원하는 것을 맞춤으로 볼 수 있는 요구사항이 생겨나고 있다. 그래서 수천 가지의 공공미술 작품을 재미있게 즐기는 방법 두 가지를 소개하고자 한다.

먼저 소개할 것은 지난 5월 초에 오픈한 네이버 테마지도의 <공공미술과 함께 걷기> 서비스다. 이 테마지도는 도심 속 공원을 예술의 공간으로 바꾸었던 '도시공원 예술로'부터 주민의 손으로 만들고 감상하고 이야기를 나누었던 '공공미술 2.0', 지난해 4천 명이 넘는 응모자가 참여한 '공공미술 사진 컨테스트' 수상작, 마을을 알록달록 물들인 '마을미술 프로젝트'까지 테마별로 다양하게 공공미술을 접할 수 있다. 이 서비스는 한 가지 주제에 대한 장소 정보와 상세한 설명뿐만 아니라 위치정보 서비스도 제공한다.

공공미술을 쉽게 접하는 두 번째 방법은 모바일앱을 이용하는 것이다. 최근 출시한 '공공미술산책' 앱에는 서울지역에 설치된 2000여 점의 공공미술 작품이 소개되어 있다. 최신 등록순으로 작품을 볼 수 있으며, 지금 내 위치를 기준으로 가까운 거리순으로 확인이 가능하다. 이밖에도 예술과 함께하는 11개 지역 데이트 코스를 추천하는 '아트로드데이트'와 전시장의 문턱을 낮추고 시민의 삶 속으로 찾아가는 미술인 '바람난 미술'에서 진행 중이거나 예정인 전시 정보가 제공된다. 또한 모바일 앱의 특성을 활용해 가장 주목할 만한 기능으로는 내 앞에 근사한 작품이 있는데 이 앱에 정보가 없다면 작품을 직접 등록하고 추천하는 '내가 담는 공공미술'을 이용해보는 것도 좋은 팁이 될 것이다.

미술의 영역은 점차 대중에게 손짓하고 있다. 앞에서 언급했던 '건축물 미술작품제도'도 1972년 미술장식 설치를 '권장'하는 수준에서 문화예술진흥법이 등장에 따라 1995년에는 의무조항으로 바뀌게 되었다. 또한 2000년에는 1%였던 비율을 0.7%로 규제를 낮춤으로 대중에게 다가서려는 노력을 끊임없이 진행해왔다.

"나는 미술을 배워본 적도 없으며, 제대로 볼 줄도 모른다."
"미술관에서 볼 수 있는 작품은 내가 살 수 있는 물건이 아니고 돈 있는 부자들의 취미생활일 뿐이다."

미술을 볼 줄 모른다고 마음을 닫는 것은 내 안의 진입 장벽을 스스로 세우는 것이다. 이미 서울에서만도 수천 개의 공공미술 작품이 일상생활에 퍼져 있다. 우리는 지금도 동네와 길거리라는 거대한 미술관에서 살고있는 셈이다. 당장 어플을 열어 내 주위에 있는 공공미술을 검색하는 것부터 마음의 문을 여는 것은 어떨까.

덧붙이는 글 | 거리라는 거대한 미술관...



태그:#공공미술, #공공미술산책, #공공미술과 함께 걷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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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는 빼고 문화만 씁니다." 매주 금요일마다 한겨레신문에 예술가를 만나 이야기를 들어보는 '사람in예술' 코너에 글을 쓰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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