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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암전된 무대 위로 검은 하의를 입은 무용수가 등장한다. 입에 작은 빛을 물고 시작하는 첫 장면엔 무거운 음악이 잔잔하게 들린다. 어두운 배경을 뚫고 새어 나온 희미한 불빛은 무용수들의 세밀한 근육을 돋보이게 한다. 다른 건 볼 수 없고 오직 빛에 의지한 몸짓만 눈에 들어온다.

#2. 칠흑 같은 어두움을 가르는 한 줄기 조명. 남녀 무용수는 길게 늘어선 빛줄기를 가운데 두고 천천히 움직인다. '매트릭스'에 나오는 레이저를 비껴가듯 이들의 몸짓은 맞닿을까 아슬아슬하다. 선으로 그려진 빛은 무대 위 원형 조명과 대비된다. 구도 잡힌 한 폭의 그림처럼 무용수는 오브제로 사용된다.

#3. 제 몸보다 더 큰 상자에 짓눌린 무용수는 무대 위 여기저기로 끌려다닌다. 거대한 물체엔 무대의 한쪽을 밝히는 빛이 흐른다. 가끔 보이는 무용수는 가위에 짓눌린 악몽을 꾸는 듯 흐느낀다. 간혹 들리는 외마디 비명은 그곳에서 벗어나고픈 몸부림을 가늠한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올해의 신작 공연예술창작산실 중 무용에 선정된 <블랙>(노네임소수) 중 한 장면
▲ #1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올해의 신작 공연예술창작산실 중 무용에 선정된 <블랙>(노네임소수) 중 한 장면
ⓒ 이규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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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봐왔던 여느 무용과는 느낌이 다르다. 후기를 한 문장으로 요약한다면 이렇게 말하고 싶다. "한 편의 공연이 아니라 한 폭의 그림을 넋 놓고 바라본...". 객석에서 응시한 스테이지라기보다는 갤러리 한복판에 선 느낌을 어떻게 전해야 할까. 필자의 생각은 무용 <블랙(BLACK)>(안무/연출 최영현)을 만든 최영현 안무가의 사전 인터뷰에서 신뢰를 더한다.

"이 안무는 모든 움직임을 포괄하는 확장된 개념에서 출발합니다. 그래서 안무라고 말할 수 있고, 또 다른 한편으로는 인간의 자연스러운 움직임이라고 할 수도 있어요."

그는 다른 작품과 차별점을 이렇게 밝혔는데, 이를 위해 "무대 위에서 의도적으로 제거한 신체 움직임"을 강조했다. 주제를 드러내기 위해서 무언가를 배제한다는 역설적 표현이 처음엔 이해가 안 갔다. 하지만 시간이 거듭될수록 그의 말에 저절로 고개가 끄덕이게 됐다.

"인간의 극대화된 감정을 시각화하고 싶었어요"

80분간 이어진 이 옴니버스 공연들은 오직 인간의 움직임과 감정에만 집중했단다. 아마도 그 둘 사이엔 불가분의 관계를 느꼈는데, 자세히 보면 움직임은 감정을 표현하기 위한 수단으로 사용됐다. 마치 최 안무가는 그런 동작에서 내면에 숨겨진 인간의 감정이 폭발되길 기대했나 보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올해의 신작 공연예술창작산실 중 무용에 선정된 <블랙>(노네임소수) 중 한 장면
▲ #2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올해의 신작 공연예술창작산실 중 무용에 선정된 <블랙>(노네임소수) 중 한 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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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말해, 슬픔·기쁨·고독·외로움·고통·쾌락·긴장·불안·당혹·전율·공포 등 인간이 느끼는 다양한 감정은 오직 무용수의 몸짓을 통해서만 관객에게 전해진다. 하지만 주목할 점은 인간의 감정을 이해하기 위해서 얼굴이 필요하지 않다는 것. 전통적인 패턴을 부정하고 의도치 않게 생각을 전하는 이런 방식은 오히려 공연에 집중하는 효과를 불러왔다. 

결국, 얼굴을 보고 감정의 순간이나 깊이를 이해하려 했던 처음의 의도완 다르게 다른 선택을 고민해야 한다. 누구도 구체적인 형태를 본 적 없는 인간의 감정들. 그것을 느끼는 유일한 길은 오직 내면에서 찾아야 한다.

인간의 감정을 표현하는 방식은 예술의 장르만큼 다양하다. 그러나 눈에 띄는 것은 그 반대인 '공통점'에 주목하고 싶다. 문학이나 시각도 마찬가지다. 형태가 없는 인간의 감정을 가시적으로 표현하기 위해서 가장 손쉬운 방법으로 '색'을 활용해왔다.

특정 색과 교감하여 도출된 감정은 누구나 있기 때문에 감정과 색 사이엔 떼려야 뗄 수 없는 연관성이 느껴진다. 마치 색깔이 주는 감정을 굳이 정의하지 않아도 각자의 경험이 있기 때문에 가능하지 않을까. 더불어 이번 작품을 보면서 한 폭의 수묵화를 보는 느낌이 들었다. 이 또한 절제된 흑백만으로도 인간의 감정을 완벽하게 구현했다는 공통점은 덤이다.

최 안무가는 사전 인터뷰에서 이 작품이 추상미술의 거장 '마크 로스코(1903~1970)'로부터 영향을 받았다 고백했다. 마크 로스코는 누군가. 사물을 재현한 주제보다 형태·공간·색채 등 그림의 형식에 집중한 화가. 커다란 캔버스에 경계선이 모호한 색면을 그리는 예술가가 아닌가.

기하학적으로 분할된 종이에 다양한 색을 겹쳤는데, 그의 작품을 보고 있으면 어느덧 감정의 늪으로 점점 빠져드는 착각이 든다. 인간의 감정을 색으로 극대화한 마크 로스코의 방식처럼 최 안무가도 단조로운 색감으로 감정을 시각화한 무용을 구상했다.

"감정을 표현하고 싶었지만, 얼굴을 보여주지 않는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올해의 신작 공연예술창작산실 중 무용에 선정된 <블랙>(노네임소수) 중 한 장면
▲ #3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올해의 신작 공연예술창작산실 중 무용에 선정된 <블랙>(노네임소수) 중 한 장면
ⓒ 이규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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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기쁨과 슬픔을 단번에 알아채는 곳은 어디일까. 대개 감정이 극명하게 드러나는 곳은 '얼굴'이다. 그러나 안무가는 얼굴을 배제했다. 감정을 표현하고 싶었지만, 얼굴을 보여주지 않았다. 이유가 궁금했다.

"인간의 감정이 표정을 통해서 읽을 수 있지만, 그것은 사회적으로 제어된, 구축된 것이잖아요."

그래서 해답에 도달하는 편한 과정을 의도적으로 삭제했다. 이렇게 관람을 불편하게 만드는 의도는 공연시간을 오히려 짧게 만들었다. 관람 방법은 간단하다. 내가 가진 감정의 경험을 축적한다. 상대방이 말하고 싶은 감정의 힌트를 찾아 비교한다.

그것이 맞는지 아닌지에 정답은 중요하지 않다. 단지 우리의 경험에서 축적된 몇 개의 단서를 조합해 감정을 추측할 뿐이다. 이것은 마크 로스코가 밝힌 작품을 감상하는 비법과 묘하게 겹쳐 보인다.

"관람자와 내 작품 사이엔 아무것도 놓여서는 안 됩니다. 작품에 어떤 설명도 달아선 안 되고요. 그것이야말로 관객의 정신을 마비시킬 뿐이에요. 내 작품 앞에서 해야 할 일은 침묵뿐입니다."

언젠가 한 비평가가 마크 로스코의 작품을 두고 악평을 쏟아내자 "내 작품을 변호할 의도가 없어요. 내 작품은 스스로 방어하기 때문"이라 설명했다. 그림 앞에선 사람들은 무너진 경계와 오묘한 색감을 통해 격렬한 감정의 소용돌이에 빠진다고 말했다. 이런 메시지는 <블랙>을 접한 관객들에게 어떻게 기억됐으면 좋겠냐는 질문에 최 안무가도 비슷한 대답을 내놓았다.

"어떤 것 하나 명확하지 않고 모든 해석이 가능한 작품으로 기억되길 바랍니다."

코로나19의 사회적 거리두기가 극심해짐에 따라 그동안 대면공연으로 진행해왔던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창작산실'도 안전을 위해서 비대면 방식을 피할 순 없었다. 오프라인 공연에서는 관람객 수를 제한했으며, 모두의 안전을 위해 일부는 온라인에서 라이브로 생중계했다.

지난 19~20일까지 대학로예술극장 대극장에서 공개된 <블랙>은 신체와 빛을 결합해 충돌과 대립을 보여준 무용으로, 공연에 사용된 두 오브제는 인간의 감정을 시각화하는 촉매제로 사용됐다. 특히 주목할 것은 그동안 철저하게 조연이었던 '조명'이 작품의 핵심 요소와 밀접하게 연결돼 주연으로 나선 점이다.

오직 몸과 빛만으로 작품의 메시지가 전달되는 파격적인 공연. 한정 짓지 않았던 새로운 도전과 미묘한 색 처리는 관객들에게 많은 여운을 남겼다. 처음엔 '블랙'이라는 제목이 의아스러웠지만, 점차 왜 이런 이름을 지을 수밖에 없었는지 이해가 됐다. 그리고 몸과 빛만으로도 인간의 감정을 극적으로 뽑아내는 시도가 놀라울 따름이다.

덧붙이는 글 | 본 게시글은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창작산실 공식 블로그(blog.naver.com/jump_arko)에 동시에 게대됩니다.


태그:#창작산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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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는 빼고 문화만 씁니다." 매주 금요일마다 한겨레신문에 예술가를 만나 이야기를 들어보는 '사람in예술' 코너에 글을 쓰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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