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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정한 부모의 학대로부터 죽을 수밖에 없었던 아이에 관한 이야기를 담은 댄스씨어터 창의 <굿(Exorcism)_사도>의 한 장면
 비정한 부모의 학대로부터 죽을 수밖에 없었던 아이에 관한 이야기를 담은 댄스씨어터 창의 <굿(Exorcism)_사도>의 한 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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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보다 슬플 수 있을까. 무용을 보고 눈물을 흘렸던 적이 있었나. 공연을 마치고 필자의 지난 기억을 더듬었다. 감정이 매말랐던 건진 몰라도 첫경험이 아닐까 고백한다. 커튼콜이 올라가고 한동안 자리를 떠날 수 없었다. 아마도 이 공연을 접한 관객이라면 비슷한 감정에 빠지지 않을까 싶다.

60분의 러닝타임이 화살처럼 순식간이다. 이토록 과하게 몰입할 수 있었던 이유는 최근 우리 사회를 떠들썩하게 몰아붙였던 슬픈 사연 때문이다. 어리석은 부모의 학대로 소리없이 죽음을 당해야 했던 '정인이'를 통해서. 이런 비극적인 소식은 하루가 멀다하고 쏟아지는 헤드라인으로 경고를 줬지만, 좀처럼 줄어들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온 사회를 비통하게 만들었던 충격으로부터 얼마의 시간이 흘렀는데, 이 글을 쓰고 있는 1시간 전에도 새로운 학대가 최신 기사를 갱신할 뿐이다. 

죽을 수 밖에 없던 아이들을 무대로 올리다 

끊임없이 메시지를 던지고 있는 무용단 '댄스씨어터 창'은 현대 사회가 대면한 문제를 가감 없이 폭로한다. 아마도 단체가 지켜온 숙명인지, 오랫동안 소명의식을 몸으로 풀어낸 김남진 안무가의 철학인지 몰라도 늘 한결같다. 3년 전, 다른 작품을 통해 그를 만난 적이 있었다. 그것은 당시에 사회적 이슈였던 성에 관한 이야기를 담은 창작무용 <에스(S)>(http://naver.me/GC6N3njx)였다. 조금 더 자세히 얘기하면 '억압받는 여성들의 성'에 관한 이야기.

"우리가 원치 않게 희롱당하고 사죄받지도 못한 채 고통스러워하는 여성들" 때문에 그 작품을 올렸다고 이유를 밝혔다. 그런데 3년이 흘러서 안무가는 다른 주제를 가지고 나의 곁으로 찾아왔다. 이제는 "우리가 원치 않게 학대당하고 사죄받지도 못한 채 죽어가야 했던 아이들"을 들고서 말이다.

'2021년 공연예술창작산실-올해의신작'에 선정된 댄스씨어터 창의 <굿(Exorcism)_사도>(1월14~15일, 아르코예술극장 대극장)는 부모의 학대로부터 죽을 수밖에 없었던 아이에 관한 이야기다. 하지만 이 공연의 부제는 '사도'다. 무속의 종교 제의를 뜻하는 굿을 표면으로 내세웠지만, 안에 담고 있는 내용은 260년 전 사도세자가 등장한다.

1762년(영조 38)에 비극으로 끝난 역사는 유아인(사도세자)과 송강호(영조)의 열연으로 유명세를 치렀던 동명의 영화를 통해 익히 알고 있었다. 아들이고 싶었던 세자는 "내가 바란 것은 아버지의 따뜻한 말 한 마디였소"를 남기고 뒤주에서 죽어야했던 슬픈 사연의 주인공이다. 

<굿_사도>는 그동안 김남진 안무가가 전작에 보였던 몇 가지 특징을 그대로 보여줬다. "현대무용이 주는 난해함을 고민한다"고 고백한 그는 이번 작품에 컨템포러리 서커스를 접목시켰다. 하지만 궁중무용인 '검무'가 중심이면서, 사도의 비극을 재현했기 때문에 한국적 색채를 선뜻 떨쳐낼 수가 없었다. 무대 뒤편에 거문고의 라이브 연주는 무대 앞을 장식하고 있는 다양한 몸동작들과 어우러져 하나의 완전체로 등극한다. 이것은 과거와 현재를 자유롭게 오고가지만 하나의 에피소드처럼 간극을 두지 않았던 연출의 묘미를 발휘한다.  

공연은 시·공간을 초월한 입체적 기법을 선보였다. 주로 영화에서 사용하는 방식이다. 이것은 과거 또는 미래로 시간 여행을 떠나는 것인데, 우리는 타임리프(Time leap)라 부른다. 부모의 아동학대로 죽어간 정인이부터 260년 전 영조의 격노로 뒤주에서 죽을 수밖에 없었던 사도까지 한치의 오차도 없이 절묘하게 오버랩시켰다. 공간 구성은 어떤가. 무대의 중앙에서 내려오는 사각 프레임은 임오년에 갇혀 죽은 사도의 뒤주이자, 자식을 마음대로 조정해 가두고 싶은 비정한 아비의 구속이 아니겠는가. 
 
공연은 시공간을 초월한 입체적 기법을 선보였다. 주로 영화에서 사용하는 방식인 타임리프인데 260년의 세월을 넘나들며 사도세자와 아동학대를 받는 현재를 자유롭게 오버랩시켰다.
 공연은 시공간을 초월한 입체적 기법을 선보였다. 주로 영화에서 사용하는 방식인 타임리프인데 260년의 세월을 넘나들며 사도세자와 아동학대를 받는 현재를 자유롭게 오버랩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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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속 인물을 통해 가족 간의 관계를 묻고 싶어요."

김남진 안무가는 공연에 앞서 의도를 이렇게 설명했다. 작품의 전체를 관통하는 하나의 메시지가 엿보인다. 조선시대를 통치했던 왕족이기 이전에 아버지와 자식이라는 일촌 관계에서 좁혀지지 않는 갈등을 보고만 것이다. 죽음으로 결말을 맺는 상황이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비극적이라 한동안 절망과 슬픔에서 헤어나올 수 없었다. 공연을 마치고 자리를 뜰 수 없었던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었다.

작품을 바라보는 또 다른 관점은 현대무용에 대한 자유로운 접근 방식이다. 무용이 던지는 클래식함에서 벗어나 다양한 조합을 유도했다. 최근 축제에서 단골손님으로 떠오르고 있는 동시대 장르가 컬래버레이션됐다. 일곱 명의 퍼포머가 펼치는 서커스는 현대무용의 그것과 대비되면서 같은 듯 다른 움직임을 보여준다.

여기에 디아볼과 구슬 저글링으로 대표되는 아이템은 거리예술과 서커스의 백미를 그대로 들여왔다. 뒤주에서 죽어가는 절망의 순간은 어둠에서 불빛 하나에 의존한 디아볼이 자연스럽게 소화했다. 잡을 수 있을 것 같지만, 좀처럼 손에 닿지 않는 구슬은 아이가 그토록 바랐던 아버지의 따뜻한 말 한마디가 아니었을까. 

또한 눈에 띄는 한 가지는 무용에 도입한 연극적 요소다. 이것은 안무가가 전작에서 펼쳤던 연출 기법 중 하나이기도 하다. 다양한 오브제의 도입, 다양한 대사의 접목, 다양한 장르와 컬래버레이션 등으로 이어지는 융복합은 이번 작품의 핵심 요소로 손꼽힌다.

무엇보다 양의 탈을 쓴 늑대와 같은 부모의 등장은 앞으로 전개될 작품의 이해를 돕고 있다. 객석에서 등장하는 사회자가 첫 무대를 장식한다. '자랑스러운 어버이 상'을 받는 부모는 대중 앞에서 "제가 이 상을 받을 자격이 있는지 모르겠어요"라며 속내를 숨긴다. 하지만 축배의 잔을 가차 없이 내리치며 앞으로 일어날 사건을 넌지시 귀뜸했다. 

"너무 무서웠어요. 아빠의 큰 손은 나를 파랗게 만들었어요. 당신의 아버지는 당신을 붉게 물들였네요. 고슴도치도 지 새끼가 예쁘다던데."

절규에 사로잡힌 넋두리는 검무와 함께 고통으로 휩싸여 관객의 숨통을 죄어간다. 회초리로 내려치는 강렬한 바람 소리는 상상력을 더해 잔혹함만 증폭시킨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칠흑 속에 아이가 부르짖는 말 한 마디가 얼마나 고통스러웠는가를 가늠할 뿐이다.

"아빠, 너무 무서워요. 불 좀 켜주세요."

아이를 때려서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씬이 충격적이지만, 이것은 우리가 뉴스에서 봤던 실제 사실을 토대로 만들어진 것이다. 한줄기 불빛을 따라가지만, 이내 다른 곳으로 사라져버리면서 희망은 더이상 아이의 편이 아니다. 이것은 260년을 거꾸로 올라가 사도세자의 그것과 다르지 않다. 시대는 다르지만 동일하게 반복되는 패턴을 보니 좌절만 늘어간다. 

이 공연이 말하고 있는 절절한 메시지 
 
세자로 태어나 아버지의 따뜻한 말 한 마디가 듣고 싶었던 사도는 영조의 지시에 의해 뒤주에서 죽음을 당한다.
 세자로 태어나 아버지의 따뜻한 말 한 마디가 듣고 싶었던 사도는 영조의 지시에 의해 뒤주에서 죽음을 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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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와 자식 간에는 끊을 수 없는 줄로 이어져있건만 나는 너를 품을 수 없다. 나는 임금이 아니고 너가 임금의 자식이 아니였으면, 어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겠느냐? 나는 자식을 죽인 임금으로 기억될 것이고, 너는 미쳐서 아비를 죽이려한 광인으로 기억될 것이다. 이것이 너와 나의 운명이다. 너는 더이상 나의 자식이 아니다. 뒤주를 가져와라."

영조의 지시에 고통 속에 몸부림쳤던 사도는 아동학대로 죽어가야 했던 아이의 그것으로 반복된다. 

무대의 중앙 뒤편에 배치된 반사판. 아니, 거울이라 말하고 싶다. 260년이 흘렀지만 아무것도 나아지지 않았던 비극은 우리에게 어떤 메시지를 던지고 있을까. "해결되지 않았던 인간의 고통, 나아지지 않았던 사회적 문제, 우리가 이 장면을 통해 정말로 반성하고 있나요?" 무대 위에서 펼쳐지는 60분은 일방적으로 메시지를 전달하지 않는다. 아마도 다른 각도에서 자신의 내면을 바라봐달라는 애절한 소원으로 들리기 때문에 더욱 애잔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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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는 빼고 문화만 씁니다." 문화예술 전문 월간지<문화+서울>(문화플러스서울) 편집장을 지냈으며, 매주 금요일마다 한겨레신문에 예술가를 만나 이야기를 들어보는 '사람in예술' 코너에 글을 쓰고 있다. sortirong@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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