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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졸업 후 몇년 간 모교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다. 교육부에서 대학생을 대상으로 진행한 멘토링 프로그램이었다. 대학에 진학한 선배가 모교에서 후배의 고민을 들어주는 시간으로 기획됐지만 실상은 그룹과외와 자율학습 보조 정도였다.

일주일에 세 번, 수업이 끝나면 선생님들과 회식을 했다. 멘토 서넛과 선생님 대여섯이 삼겹살집에 모여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다. 경력이 오래된 선생님 몇이 이야기를 주도했고, 나머지는 고개를 끄덕이곤 했다.

그날도 회식이 있었다. 내 학창시절 학생주임이던 선생님이 말을 꺼냈다.

"야 이 자식들아, 요즘은 너희들 때처럼 힘이 안 들어. 애들이 어찌나 얌전한지 담배도 안 핀다고."

"정말요?"

"너희들 때는 쉬는 시간마다 담배 피는 놈들 잡으려고 화장실 봐야지, 소각장 봐야지, 쉴 시간도 없었는데 이젠 앉아서 웹툰까지 본다. 하하하."

 
책 표지
▲ 불과 나의 자서전 책 표지
ⓒ 현대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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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르지만 같은 우리들의 이야기

A구와 B구 경계에 있던 고등학교엔 학생들도 두 종류로 선명히 갈라졌다. 절반은 학구열이 높은 A구에서 왔고, 나머지 절반은 B구 아이들로 채워졌다. 가방과 옷차림부터 도시락반찬, 쉬는 시간마다 매점에 가는 횟수까지 조금씩 차이가 났다.

가장 분명한 차이는 성적이었다. 시험을 치르고 나면 A구와 B구 아이들은 물과 기름처럼 극명하게 나뉘었다. 가라앉는 건 언제나 A구 출신이었다. 학원에서 선행학습은 기본이요, 선생님별 기출문제까지 싹 정리를 해온 B구 아이들과 같은 성적을 내는 건 어려운 일이었다.

지금은 재개발돼 깔끔한 아파트가 줄지어 들어섰지만 당시만 해도 A구엔 형편이 어려운 가정이 많았다. 부모는 종일 나가 일했고 비어있는 집이 지루한 아이들은 공터에 모여 함께 놀았다.

"B구 애들이 많이 오면 명문이 되는 거네요."

A구 출신 멘토 하나가 비꼬듯 말했지만 얼큰하게 취한 선생님들은 "그렇지, 그렇지" 하고 고개를 주억거렸다.

"애들이 어찌나 얌전한지 담배 피는 애가 하나도 없어."

차도 하나를 두고 나뉜 사람들

<불과 나의 자서전>은 나의 학창시절을 떠올리게 한다. 차도 하나를 두고 나눠진 남일동과 중앙동에 얽힌 이야기가 십수 년 전 내가 살던 동네를 닮았다.

주인공은 남일동에서 태어난 홍이다. 아버지는 조달청 하청업체 직원이고 엄마는 전업주부다. 벌이가 좋진 않아도 제대로 회사 다니는 사람이 드문 남일동에선 홍이네가 형편이 나은 편이다.

남일동 사람들은 자기 사는 동네를 부끄러워한다. 가게 하는 집 아이들과 어울려 노는 홍이를 다그치면서 "너는 이 동네 애들과 달라"라고 말하는 어머니의 모습에서, "어쩔 수 없이 몇 년 그 동네에 있었던 거지, 어디 가서 그런 말은 꺼내지도 말라"고 단속하던 아버지의 모습에서 남일동에 대한 혐오가 읽힌다. 남일동 사람들이 저 사는 동네에 '섬 도'자를 붙여 남일도라 부르는 모습에선 떠나고 싶지만 떠나지 못하는 주민들의 자조가 그대로 묻어난다.

남일동에 대한 혐오는 시대를 거슬러 이어진다. 아버지가 경매로 집을 산 덕에 남일동을 벗어난 홍이는 중앙동 아이들이 다니는 학교에 입학한다. 그곳에서 아이들은 홍이를 '남토'라고 부르는데, '남일동 토박이'란 뜻이다.

토박이가 난민이 되기까지

시간이 지나 '남토'는 '남민'으로 변한다. 토박이가 난민이 된다. 차별은 선명해지고, 격차는 분명해진다.

홍이는 남일동에 이사를 온 주해와 수아 모녀를 알게 되며 미처 몰랐던 남일동의 실체에 눈을 뜬다. 어쩔 수 없는 사정으로 새 동네에 적응해야 했던 이들이 온갖 노력에도 적응하지 못하고 떠나가는 모습은 어딘지 현실적이어서 서글프게 느껴진다.

산동네란 이유로 소외됐던 마을에 버스정류장을 만들고, 매주 마녀시장이란 이름의 동네시장을 열며, 마을 어귀에 동네도서관까지 들여오려고 동분서주하던 주해의 노력을 알아주는 이는 아무도 없다. 쇠락한 마을에 아파트를 세우고 한 채에 몇 억 원씩이나 하는 번듯한 집주인이 되겠단 욕망만이 들끓는다. 주해 역시 그 욕망에 삼켜져 끝내 저 멀리 어딘가로 뱉어지고 만다.

<불과 나의 자서전>은 남일동에서 나고 자란 홍이의 시선으로 공고해지기만 하는 남일동과 중앙동의 격차를, 그 격차가 스며든 사람들의 마음을 짚어보는 작품이다. 중앙동이 남일동을, 남일동 주민들은 그들 중에 못한 사람을 구분 짓고 따돌린다. 구분의 선 하나를 넘기 위해 온갖 노력을 다하여도 실패만이 거듭된다. 주해의 실패를 지켜보며 홍이는 비로소 제 곁에 늘 그어져 있던 구분의 선을 실감한다.

마음 속에 스며드는 빈부의 차이

소설에서 인상 깊은 장면 중 하나는 주인공 주해가 제 딸 수아를 길 건너 중앙동 초등학교로 입학시키려다 빚어지는 일이다. 학교는 석연찮은 이유를 들어 수아의 입학을 막지만 거세게 항의하는 주해에 밀려 입학을 허락하게 된다. 그러나 더 참담한 건 그 다음이다. 중앙동 아이들은 수아를 남일동 아이라 구분짓고 따돌리기 시작한다. 어른에게 깃든 차별이 아이라 해도 없을리 없는 것이다.

아이들은 수아를 남일동 주민이란 뜻으로 남민이라 부른다. 그저 말만 줄인 게 아닌 것이 남민은 발음이 비슷한 난민을 연상케 하는 것이다. 주해와 수아 모녀를 지켜보는 홍이는 과거 남일동 토박이란 뜻에서 남토라 불렸던 제 과거를 떠올린다. 어디 이런 일이 소설 속에만 있을까. 남일동 주민들이 스스로 말하던 '남일도'란 말은 수십년 만에 환골탈태한 내가 살던 동네에도 분명히 있었으니까.

얼마 전 '한남더힐 아무개', '트라마제 홍길동' 따위의 이름으로 SNS 프로필을 만든다는 갓 열두 살 난 초등학생들이 뉴스에 나왔었다. 임대주택에 사는 아이들을 '휴먼시아 거지'라고 부른다는 뉴스가 채 잊히기도 전이었다. 사는 집이 자가냐 전세냐 월세냐를 두고서, 부모 월급이 200만 원이냐 300만 원이냐를 두고도 전세충이니 이백충이니 하는 멸칭이 쓰인다고 하였다.

생각해보면 그리 충격적인 일도 아니다. 수아를 구분지은 중앙동 아이들의 차별은 홍이가 살아온 시대와 내가 자란 시대에도 언제나 있었다.

수아가 떠난 뒤 제가 겪어온 과거를 떠올린 홍이를 보며, 차별이 차별인 줄도 모르고 살았던 나를 반성한다. 어제 끊지 못한 구분과 차별의 장벽이 내일 더 심한 차별의 이유가 된다는 걸 <불과 나의 자서전>이 짚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덧붙이는 글 | 김성호 시민기자의 브런치(https://brunch.co.kr/@goldstarsky)에도 함께 실립니다. '김성호의 독서만세'를 검색하면 더 많은 글을 만날 수 있습니다.


불과 나의 자서전 - 김혜진 소설

김혜진 (지은이), 현대문학(2020)


태그:#불과 나의 자서전, #현대문학, #김혜진, #한국소설, #김성호의 독서만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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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평론가.기자.글쟁이. 인간은 존엄하고 역사는 진보한다는 믿음을 간직한 사람이고자 합니다. / 인스타 @blly_kim / 기고청탁은 goldstarsky@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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