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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난 때문에 엄마에게 버림받고 애인마저 떠나 버린 슬픈 운명의 은주.
ⓒ imbc
MBC TV 아침드라마 <있을 때 잘해>의 후속 <내 곁에 있어>(월~금 오전 7시 50분 방송)가 첫 방송 시청률 13.5%를 기록하며 순조로운 출발을 보이고 있다.

최명길, 박상민, 이윤지, 정혜선. 임채무 등 대작을 통해 연기력을 인정받은 중견급 연기자의 대거 기용은 물론 아침 드라마로는 최초로 괌 현지 촬영까지 감행하는 등 주말 드라마나 미니시리즈 못지않은 투자를 했다. 그 때문인지 아줌마들 사이에 빠르게 입소문이 퍼지며 언제쯤 아침 드라마의 정상을 차지하게 될지 귀추가 주목되고 있기도 하다.

<내 곁에 있어>의 큰 주제는 빈부갈등 속에 드러나는 다양한 형태의 '모정'이다. 모정은 어떤 것으로도 끊을 수 없다고 쉽게 말하지만 가난 때문에 자식을 버리는 일이 적지 않은 지금 <내 곁에 있어>가 시사하는 바는 적지 않다.

고등학교 때 가난한 강사에게 반해 가출을 감행하고 두 아이까지 낳아 살던 선희(최명길 분)는 친정엄마의 강요로 남편과 아이를 버리고 나와 부유한 의사와 결혼해 더 바랄 것 없는 행복을 누리고 사는 사모님이다.

선희에게 가난했던 지난날은 잊어야 할 악몽이지만 결혼으로 얻게 된 부유한 현실은 과거를 잊게 하기에 충분할 정도로 꿀맛 같은 최면제가 아닐 수 없다. 때때로 칼날 위에 선 듯 두렵기도 하지만 어렵게 얻은 부와 행복이기에 더욱 소중하다.

과거의 시간과 기억을 잊을 수는 있겠지만 남겨 두고 온 자식을 잊는다는 것은 쉽지 않다. 그것이 바로 <내 곁에 있어>가 말하고자 하는 천륜이며 '모정'이다.

▲ 선희와 선희의 친정엄마. 신구간의 대립되는 '모정'을 보여준다.
ⓒ imbc
<내 곁에 있어>는 또 다른 '모정'에도 주목하고 있다. 가난한 딸의 모습을 보다 못해 천륜을 버리고 새 출발을 하도록 강요하는 선희의 친정엄마 배정자(정혜선 분)의 모정이 그것이다. 남의 눈에 피눈물이 나건 말건 내 자식만 잘되면 그만이라는 식의 일방적인 자식사랑이 섬뜩하지만 젊은 부부들의 이혼에 양가 어머니들의 입김이 강하게 작용하는 요즘의 이혼 풍속도를 보면 남의 일만은 아닌 듯하다.

"젊어서 사랑 한두 번 안 해 본 사람 있나? 그 사랑에 인생을 맡기는 건 무책임한 일이야. 결혼은 인생을 바꿀 수 있는 최대의 기회라구. 잘 살 수 있는 길이 있는데 왜 올챙이 시절만 고집하는 거야? 가난한 사람 가난한 이유 있고 공부 못하는 학생 다 이유 있는 법이야."

인생의 쓴맛 단맛을 모두 아는 그녀는 돈만이 모든 것을 해결해 준다고 믿는 배금주의자다. 돈 때문에 사랑을 배신하고 돈 때문에 자식까지 버리도록 강요하지만 죄책감 따위는 없다. 그 모든 것이 내 자식을 위한 거룩한(?) '모정'에서 비롯된 일이기 때문이다.

버리고 나온 자식을 그리워하는 원초적인 모성본능마저 죄악시하게 만드는 비정한 엄마지만 그녀를 향한 무조건적인 비판은 조심스럽다. 자식 일이라면 눈멀고 귀 머는 엄마들에게 이성적이며, 논리적이고, 교양과 양식마저 갖춘 '모정'을 요구한다는 것 자체가 어쩌면 불가능한 일인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 과거를 숨기고 재가한 선희는 부유층의 삶을 살게 되지만...
ⓒ imbc
<내 곁에 있어>와 같이 빈부의 격차가 주요 갈등요인으로 작용하는 드라마의 경우 부유층의 생활을 과장함으로써 과소비를 부추기거나 계층 간 위화감을 조성한다는 비판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하지만 일부 비판에도 부유층의 모습을 보여주는 드라마는 여전히 시청자들에게 인기가 있다.

"구질구질 궁상떨면서 사는 꼴을 보느니 차라리 갈라선 것이 잘한 건지도 몰라. 돈은 원 없이 쓰고 살잖아. 선희 입장에서야 대속할 양이 되어준 엄마가 고맙지 뭐."
"재가해서 저 정도로 팔자 고칠 수 있으면 나도 하고 싶다. 명품 옷에 가방에 리무진까지. 누구는 재가를 해도 저렇게 유능한 남편을 만나는데 내 팔자는 왜 이리 구질구질하냐?"
"그걸 모른단 말야? 당신이 최명길처럼 예쁘지 않아서 그런 거지. 호호호."


아줌마들의 수다 속에 드라마를 보는 잠시 동안만이라도 그들의 화려한 삶에 자신을 동화시키고 싶은 욕망이 드러난다. 지치고 고단한 현실의 삶을 잠시 잊고 잠깐만이라도 드라마 속 주인공이 되어 보고 싶은 것이다.

▲ MBC 아침드라마 <내 곁에 있어>
ⓒ imbc
<내 곁에 있어> 제작진은 지난 3월 7일 제작발표회에서 "아침드라마가 가지는 뻔한 구조에서 탈피, 단순히 자식을 버린 엄마, 버림받은 자식의 분노보다는 그 속에 인간 본성의 밑바닥. 자식을 버릴 수밖에 없는, 그리고 버림받았지만 딸이 아닌 같은 여자로서 용서를 할 수밖에 없는 인간 대 인간의 관계를 그려나갈 예정"이라고 밝힌 바 있다.

방송 초반부터 빠른 전개를 보이며 갈등의 핵 속으로 빨려 들어가고 있는 <내 곁에 있어>는 신구세대 간의 '모정' 대결, 중견 연기자들의 풍부한 연기력, 그리고 사극 이미지로 익숙해 왔던 최명길의 변신 등 풍부한 볼거리를 담고 있다. 아침드라마를 사랑하는 주부 시청자들에게는 종합선물세트 같은 구성이 아닐 수 없다.

주부들의 전폭적인 사랑에도 도를 넘어선 불륜과 치정, 폐륜 등 선정적인 내용으로 비판의 대상이 되어 왔던 아침드라마도 이제는 색다른 돌파구를 찾아야 할 때가 되었다. 그러기에 새 아침 드라마 <내 곁에 있어>에 거는 기대는 적지 않다.

어느 채널을 돌리든 그날이 그날 같은 천편일률적인 아침 드라마 속에서 단연 돋보이는 드라마가 되길 바란다. 싫증 난 시청자들에게 뭔가 색다른 재미와 감동을 주길 바란다면 지나친 욕심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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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아줌마가 앞치마를 입고 주방에서 바라 본 '오늘의 세상'은 어떤 모습일까요? 한 손엔 뒤집게를 한 손엔 마우스를. 도마위에 올려진 오늘의 '사는 이야기'를 아줌마 솜씨로 조리고 튀기고 볶아서 들려주는 아줌마 시민기자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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