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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란한 세상을 향해 순례단이 택한 화법은 침묵이었다. 침묵은 오히려 소음을 뚫고 사람들 가슴에 도달해 진동처럼 울림을 준다.
▲ 침묵에 싸여 한강변을 걷고 있는 순례단. 소란한 세상을 향해 순례단이 택한 화법은 침묵이었다. 침묵은 오히려 소음을 뚫고 사람들 가슴에 도달해 진동처럼 울림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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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4일, 도법스님의 탁발순례가 끝났다. 3년을 예상하고 떠난 길이 5년 동안이나 이어졌다. 벌써 5년이 지났나 싶도록 실감이 나지 않는다. 2004년 2월, 입춘 무렵 그들이 처음 걷기 시작했을 때 내 마음은 복잡했다. 뭔가 가책이 느껴지기도 했고 한편으로는 남들을 불편하게 하면서 하염없이 걷는 순례단이 조금 부담스럽기도 했다.

순례단의 '걷기'자체가 생소하기도 했다. 사회를 향해 발언을 하려면 최소한 뭔가 거창한 주장이나 구호라도 내걸어야 할 텐데 그저 '내가 먼저 평화가 되자' 정도라니. 그럼 그냥 평화가 되면 되지 왜 침묵에 휩싸인 채 저토록 하염없이 걷고만 있었던 것일까.

비바람 눈보라 속에서 풍찬노숙을 마다않고 그들은 걸었다. 단 하루 휴가를 내는 것도 '바빠서 못 한다'며 온갖 엄살을 다 떠는 우리 앞에서 도법스님은 실상사 주지자리도 휙 내던지고 그냥 걸었다.

평화가 무엇인지 알게해준 생명평화 탁발순례

순례단은 5년 동안 매일 100배 명상으로 순례를 시작했다. 하루에 100번씩 남들 발 아래 몸을 조아리는 것만으로도 자신이 맑아지고 옆사람이 맑아지고 세상이 맑아지지 않을까.
▲ 순례단의 100배명상 순례단은 5년 동안 매일 100배 명상으로 순례를 시작했다. 하루에 100번씩 남들 발 아래 몸을 조아리는 것만으로도 자신이 맑아지고 옆사람이 맑아지고 세상이 맑아지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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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엔가 아름다운재단 간사들을 따라 지리산에 갔다가 실상사까지 가 스님 방에서 차를 얻어 마신 적이 있다. 부시가 이라크를 침공하고 무고한 시민들이 무참하게 죽어갈 때라 국내에서도 '반전평화운동'이 일어나던 때였다.

우리 마음 속에 미국 대통령 부시는 악의 화신이었다. 할 수만 있다면 폭탄이나 어떤 저주를 퍼부어 '부시를 쳐 죽여도 성에 차지 않는' 심정이었다. 그것은 비단 나만의 생각은 아니었을 것이다. 도법스님은 그런 우리 일행을 앉혀놓고 '부시는 환자입니다. 부시를 죽이면 평화가 옵니까? 환자에게는 지극한 사랑, 지극한 관심이 필요 합니다.' 이런 말씀을 하셨다.

그러면서 평화운동에도 평화가 없는 것 같다는 말씀도 하신 것 같다. 그 당시 나는 그 고상한 말씀이 불만스러웠다. 무수히 많은 사람들이 무차별 폭격에 피 흘리며 죽어나가는데, 부시를 지극하게 사랑해주라니…, 종교라는 게 이런 것인가. 싶기까지 했다.

그리고 얼마 뒤…, 생명평화 탁발순례가 시작되었다. 이제 와서 생각해보면, 그런 방식이 아니었다면 과연 어떤 잘 조직된 집회와 캠페인이 사람들에게 평화가 어떻게 올 수 있는지, 평화는 무엇을 위해 왜 필요한 것인지 이만큼이라도 진지하게 돌아보게 해주었을까 싶다.

5년 동안 8만 명을 만나고 3만리를 걸은 순례단

순례단은 침묵속에 걸었지만 그들이 몸에 두른 '몸자보'에는 당신이 내생명입니다'라는 말이 적혀 있었다. 남의 생명에 의존해 삶을 유지하고 있다는 '단순명쾌한' 진리를 깨닫는 일로부터 평화가 온다고 도법스님은 다니는 곳마다 말하고 다녔다.
▲ 당신이 내 생명입니다. 순례단은 침묵속에 걸었지만 그들이 몸에 두른 '몸자보'에는 당신이 내생명입니다'라는 말이 적혀 있었다. 남의 생명에 의존해 삶을 유지하고 있다는 '단순명쾌한' 진리를 깨닫는 일로부터 평화가 온다고 도법스님은 다니는 곳마다 말하고 다녔다.
ⓒ 김성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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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례단이 전국 방방골골을 다 돌고 서울에 들어올 때, 이런 비유가 옳은지 몰라도 엘바섬을 탈출해 파리로 다가오던 나폴레옹을 두려워하던 기회주의자들처럼 외면하려고해도 외면할 수 없는 어떤 강한 당위와 진실의 힘… 그런 것들이 우리 마음을 움직이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그러나 어찌 보면, 가끔 만나는 순례단의 외양은 일견 초라하기조차 했다. 5년 동안 묵묵히 걸었고, 걸으면서 수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울렸다고 하는데, 여전히 사람들의 마음속에는 평화보다는 분노와 울분이 가득 차 있고 권력은 불의하며 예의 일상을 지배하는 것은 그 불의한 권력의 난폭한 일방주의였다.

아니 지금도 그렇고 그런 현실은 점점 더 나빠지고 있는 것 같다. 이 때문에 순례단은 그저 걸었을 뿐, 세상의 변화는 이와는 무관하게 요원한 일이 아닌가 하는 회의도 들었다.

5년은 금방 지나갔다. 8만여 명을 만나고 3만 리를 걸었다고 하는데, 그동안 언론에서 본 것만 해도 수없이 많은 지역과 읍면과 산골, 농성장, 시설 헤아릴 수 없이 많은 곳을 걷고 또 걸었는데… 철저하게 방관적인 관객의 입장에서 떠올려보면 5년은 이렇게 순식간에 지나갔다.

순례단이 우리 사회에 미친 영향

지난 2004년 순례단이 첫발을 떼던 노고단을 향해 순례단은 회향을 고하고 세상의 생명평화를 위해 나부터 평화가 되겠다는 다짐을 했다.
▲ 노고단을 향해 100배 지난 2004년 순례단이 첫발을 떼던 노고단을 향해 순례단은 회향을 고하고 세상의 생명평화를 위해 나부터 평화가 되겠다는 다짐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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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걷기예찬>에서 다비드 브루통은 걷는 일은 '공간이 아니라 시간 속에 거처를 정하는 일'이며 걷는 사람은 '시간을 장악하므로 시간에 사로잡히지 않는다'고 했다. 평생을 아파트 평수를 늘리기를 위해 하고 싶지 않은 일을 견디듯 하고 단 한 시간도 스스로를 위로하는데 쓸 여력이 없는 사람들에게 들려주기라도 하듯이…. 서울 순례길에서 만난 스님은 이런 말을 하셨다.

"전국에서 수많은 사람들을 만났는데, '이만하면 내 인생이 괜찮다'고 말하는 사람이 단 한 사람도 없었어요. 그들에게 밥을 얻어먹는 순례단 만이 먹고 살만 했고 괜찮았던 모양입니다."

이 말을 곱씹어 보는 것만으로 순례단이 우리 사회에 한 역할은 작지 않다.

도법스님은 걷기를 시작한 노고단에 돌아와 5년만의 회향을 고하고 낮게 엎드려 절을 했다. 지리산의 거대한 질량감. 지리산을 가끔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마치 세례를 받는 것 같은 경험을 할 수 있다. 수시로 치졸해지는 이 얇고 비루한 마음을, 누더기가 된 도시 생활자의 감성을 말이다.

행사에 참가한 사람들이 돌아가면서 서로를 안아주고 악수하면서 '감사합니다. 당신이 내 생명입니다' 이런 말들을 주고받았다. 이 말을 이해는 할 수 있지만 진정으로 가슴에 담을 수 있는 경지는 좀처럼 쉽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남을 이해하고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고서야 어떻게 평화가 가능할 수 있을까.
▲ 다함께 포옹과 악수 행사에 참가한 사람들이 돌아가면서 서로를 안아주고 악수하면서 '감사합니다. 당신이 내 생명입니다' 이런 말들을 주고받았다. 이 말을 이해는 할 수 있지만 진정으로 가슴에 담을 수 있는 경지는 좀처럼 쉽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남을 이해하고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고서야 어떻게 평화가 가능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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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grassrooti.net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도법스님, #탁발순례, #생명평화 , #실상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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