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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에 산재한 천후궁의 총본산이며, 타이완 마쭈(?祖) 신앙이 시작된 곳이다.
▲ 루강 천후궁의 내부 전국에 산재한 천후궁의 총본산이며, 타이완 마쭈(?祖) 신앙이 시작된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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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가를 몽땅 털어 큰 맘 먹고 떠난 타이완 여행을 마치고 돌아왔다. 도착한 바로 다음 날, 출근하기가 무섭게 여기저기서 어딜 다녀왔는지, 뭐가 맛있었는지, 자신도 조만간 휴가 내어 한 번 가볼 참인데 괜찮은 곳을 추천해 달라고 야단법석이다. 대개 그러하듯, 그다지 궁금하지도 않으면서 부럽다는 표현을 그렇게 하는 것이다.

그런데 갑자기 이런 생각이 들었다. 만약 진짜 누군가에게 타이완에 간다면 이것만은 꼭 가보고, 맛보고, 경험해보라고 추천한다면 무얼 꼽을까. 물론, 단체 관광을 선택한 경우에는 그런 고민이 필요 없다. 항공권과 호텔, 기타 교통편은 물론 볼거리, 먹거리, 즐길 거리 등을 모두 정해주기 때문이다. 더욱이 빠듯한 일정 탓에 유명한 관광지를 순례하듯 돌며 사진 찍는 것만으로도 벅차다.

타이완은 자유여행이 제격이지만, 불가피하게 단체 관광을 선택한 경우 놓치기 쉬운 것을 소개한다. 어찌 보면 다분히 주관적이라 공감이 되지 않을 수도 있지만, 바쁜 여행 중 소소한 재미와 여유를 줄 수 있으니 타이완엘 가거든 기꺼이 짬을 내보면 좋겠다. 누군가 그랬다. 어느 곳엘 가든 본디 여행이란 정한 목적지보다 그곳을 찾아가는 과정을 즐기는 것이라고.

바쁜 여행 중 소소한 재미와 여유를 줄 팁 몇가지...

8각형 플라스틱 찬합 가득 밥과 다양한 요리가 들어있는 도시락이 우리 돈으로 3천2백 원이다. 다 먹으면 비행기 기내식 서비스처럼 승무원이 치워간다. 삐엔당 중에서도 기차 내에서 판매하는 것을 최고로 친다.
▲ 기차에서 먹는 삐엔당 8각형 플라스틱 찬합 가득 밥과 다양한 요리가 들어있는 도시락이 우리 돈으로 3천2백 원이다. 다 먹으면 비행기 기내식 서비스처럼 승무원이 치워간다. 삐엔당 중에서도 기차 내에서 판매하는 것을 최고로 친다.
ⓒ 서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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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삐엔당(便當)'을 들 수 있겠다. 아무리 한자에 익숙한 사람이라도 그 이름만으로는 도저히 '정체'를 알 수 없다. 같은 중화권이지만 타이완이 중국보다 자유여행하기 훨씬 쉽다고 하는 건, 물론 다른 이유도 있겠지만, 우리와 똑같은 한자를 사용한다는 점인데, 도시 곳곳에 내걸린 이 두 글자 앞에서는 순간 무력해진다.

도시락이라는 뜻이다. 가격도 비교적 저렴한데다, 위생적인 포장에 맛도 좋아 남녀노소 누구나 선호한다. 점심시간 즈음 대로변이든 골목길이든 길게 줄을 선 곳이 있다면 그곳은 십중팔구 삐엔당을 파는 곳이다. 도로든, 건물이든, 기차 안이든 먼지 하나 없을 만큼 깨끗하지만, 앉아서 삐엔당을 손에 들고 먹는 모습을 어느 곳에서나 쉬이 볼 수 있다.

중국 본토에서는 '편리하다'는 의미인 이 단어가 어떻게 도시락이라는 뜻으로 쓰이게 되었을까. 본디 '판허(飯盒)'라고 불리는 중국의 도시락 문화와 일본에서 전래된 그것이 융합된 형태라고 하는데, 옹근 반세기 동안 식민지였던 탓에 용어가 일본식으로 바뀐 것이라고 한다. 말하자면, '밴또(べんとう)'의 타이완식 표기라고나 할까.

메뉴는 그야말로 천차만별이다. 우리가 밥 위에 계란 프라이를 얹듯 돼지고기나 닭고기 튀김을 야채, 과일 등과 함께 곁들인 것이 많지만, 일본식 초밥과 생선회 위주로 담은 것도 있다. 또, 오랫동안 간장에 졸여 시커매진 달걀과 튀긴 두부를 얹은 것에서 육즙이 가득한 만두와 야채를 버무린 것에 이르기까지 종류를 이루 다 헤아릴 수 없다.

작은 도시락 하나에 이른바 '육해공'이 다 들어있고, 온갖 다양한 맛과 영양이 가득 담겨있다. '네 발 달린 건 책걸상 빼고 다 먹는다'며 중국 본토 요리의 무궁무진함을 극찬하지만, 거기에다 더해 한국과 일본을 비롯한 인근 아시아 각국과 서구 음식의 맛과 특징까지 두루 융합한 것이 바로 타이완 요리인데, 그것을 어른 손바닥 크기로 집약해놓은 것이 바로 '삐엔당'이다.

타이완식 도시락 '삐엔당', 디저트로 우유차 '전주나이차'

대개 시간 절약을 위해 '테이크아웃'해 가기도 하지만, 요즘 들어 삐엔당 메뉴를 그대로 식당 내에서 파는 곳이 많아졌다고 한다. 그만큼 가격과 품질에서 타이완 사람들의 인정을 받고 있다는 의미다. 특히 기차 안에서 파는 삐엔당이 인기가 높아 그것을 먹기 위해 부러 기차를 타는 사람도 있다고 하는데, 아닌 게 아니라 타이완에서 가장 유명한 곳이 바로 '타이완철로삐엔당(臺灣鐵路便當)'이다.

삐엔당을 먹고 나면 디저트로 먹어야 할 게 있다. 거리 곳곳에서 볼펜보다 더 두꺼운 대롱으로 큰 컵에 든 단팥죽의 새알 같은 것을 빨아먹는 모습을 볼 수 있는데, 언뜻 보면 괴기스럽기까지 하다. 검정 구슬 모양의 전분 알갱이가 담긴 걸쭉한 우유차인 '전주나이차(珍珠奶茶)'다. 우유에 진주(pearl)를 담은 차라는 뜻이다.

타이완을 대표하는 음료로, '열 걸음에 하나' 꼴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전주나이차를 파는 가게가 많다. 열대작물 카사바에서 추출한 반투명의 둥근 알갱이인 타피오카를 '진주'라며 눙치는 것도 재미있는데, 진짜 단팥죽의 새알처럼 쫄깃쫄깃한 게 씹히는 식감이 제법이다. 달콤하고 담백한 우유와 절묘하게 어울리는 맛이다.

이 음료가 등장한 것은 불과 30년도 되지 않은 어느 시골 마을의 노점이었다는데, 타이완 사람들의 입맛을 넘어 지금은 우리나라를 비롯한 세계 전역에 퍼져 수많은 유사 음료를 만들어냈다고 한다. 우리가 즐겨 마시는 비슷한 맛과 모양의 '버블티'의 원조가 바로 타이완의 전주나이차라고 전한다.

놓치기 쉬운 먹거리로 삐엔당과 전주나이차를 추천한다면, 가는 길이 다소 멀고 불편하더라도 반드시 가보라고 추천할 만한 곳을 꼽자면 단연 '루강(鹿港)'이다. 타이베이에서 가자면 버스로 3시간이 넘게 걸리는 서해안의 작은 마을이지만, 주저 없이 이번 타이완 여행의 백미로 꼽고 싶은 곳이다.

두 그루의 향나무가 수문장처럼 지키고 선 이곳은 전국 용산사 중에서 가장 오래된 곳이다. 경건함마저 느껴진다.
▲ 입구에서 바라본 루강 용산사 두 그루의 향나무가 수문장처럼 지키고 선 이곳은 전국 용산사 중에서 가장 오래된 곳이다. 경건함마저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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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자의 원초적인 모습이 어땠을까를 상상한다면 루강엘 가보라. 배낭 메고 지도 한 장에 기댄 채 길을 물어물어 찾아가는 느린 여행자들의 '천국'이 바로 루강이다. 일단 버스에서 내리면 다시 그 버스를 타고 타이베이나 인근 도시로 나가기 전까지 무조건 걸어야 한다. 바쁠 것 없이 동네 마실 다니듯 길을 따라 구석구석 찾아다니다 보면 하루 해가 저문다.

루강에는 택시가 없다. 버스가 다니는 단 하나 간선도로를 제외하고는 차가 다닐 수 있는 도로가 거의 없다. 길이 비좁은 탓이다. 그래서인지 적어도 타이완의 여느 곳에서는 보기 어려운 인력거를 이곳에선 심심찮게 만날 수 있다. 인력거를 빌려 마을 전체를 유람할 게 아니라면 걷는 게 상책이다.

여느 관광지처럼 중요한 곳 몇 군데 들러 사진 찍고 되돌아가기에는 아까운 곳이다. 타이완 전국에 산재한 천후궁(天后宮)의 총본산이라는 이곳 루강의 천후궁도, 또한 전국의 용산사(龍山寺) 중 가장 오래됐다는 이곳의 용산사도, 중요한 유적일지언정 이곳을 대표하지는 못한다. 박물관이 된, 일본 점령기 최고 갑부였다는 가오시엔롱의 대저택도 걷다가 잠시 쉬는 휴게소일지언정 그것을 보기 위해 루강을 애써 찾지 않는다.

사실 루강은 중국 본토와의 교역을 감안할 때 타이완에서 가장 먼저 발달한 항구도시다. 그래서인지 바닷길의 무사 안녕을 기원하는 사당과 당시 부를 축적한 상인들의 대저택과 상점, 은행 등 청나라 때의 건물이 많이 남아있다. 전국 최고라는 천후궁과 용산사도 루강이라는 유서 깊은 도시에 기댄 유적인 셈이다.

부를 찾아 사람들이 몰려들다 보니, 공터는 물론 사람이 지나다니는 길까지 잠식하며 성냥갑 같은 집들이 다닥다닥 붙어 지어졌다. 도시계획이라는 말조차 생소했던 그 시절, 자연 발생적으로 마을이 커지다 보니 길이 거미줄처럼 복잡해져 버렸다. 그런 탓에 '미로 체험'은 '과거로의 시간 여행'과 함께 루강 여행의 핵심 테마가 됐다.

'젖꼭지가 스쳐지는 골목길'이라는 뜻의 '모루샹'

좁은 곳은 폭이 60여cm에 불과하다. 오래되고 낡은 그대로 보존하고 있어 세월의 무게가 느껴진다.
▲ 반대편에서 본 모루샹 좁은 곳은 폭이 60여cm에 불과하다. 오래되고 낡은 그대로 보존하고 있어 세월의 무게가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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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 100m도 안 되는 골목길인데 하도 길이 구불거려서 이름 붙여졌다는 '주취샹(九曲巷)'과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청나라로 건너온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키는 '라오제(老街)'는 걷기 여행의 재미가 어떤 것인지를 느끼게 해준다. 그러나 압권은 단연 '모루샹(摸乳巷)'이다. 조금 낯뜨거운 이름인데, 해석하자면 '젖꼭지가 스쳐지는 골목길'이라는 의미다.

과거 마구잡이로 집이 들어차다 보니 불이 나면 불을 끄기는커녕 사람들이 대피조차 할 수 없었다고 하는데, 이 골목길을 내어 소방도로로 활용했다고 한다. 인근 가옥들에 피해를 최소화하려다 보니 길을 좁게 낼 수밖에 없었던 모양인데, 문제는 폭이 어른 한 명 지나가기도 불편한 불과 70cm 정도라는 점이다.

두 사람이 길 가운데서 만나기라도 하면 서로 벽에 등을 댄 채 지나가야 하는데, 만약 그 둘이 체격이 건장한 사내들이거나 가슴이 풍만한 여성들이라면 이름 그대로 젖꼭지가 스칠 수밖에 없을 듯하다. 아무리 긴급한 필요에서라지만 이렇게 길을 낸 사람들도 그렇지만, '적절한 비유'로 골목길을 명명한 사람들의 재치가 놀랍다.

하루 종일 여유롭게 루강을 거닐다 보면, 신화와 역사 그리고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곳임을 느끼게 된다. 사라져도 진작 사라졌을 이런 쓸모없는 골목길을 마구 개발하지 않고, 낡고 오래된 옛것에 애정을 쏟아가며 보존하고 있는 '느려터진' 루강을 타이완 여행의 백미로 추천하는 이유다.

재미있는 건, 타이완 어느 곳엘 가도 한국인 단체 관광객들을 쉽게 만날 수 있는데, 루강에서는 단 한 명도 만나지 못했다는 사실이다. 인솔 자체가 어려우니 단체 관광객들에게는 그다지 어울리지 않는 곳이긴 하다. 짧은 시간에 많은 곳을 둘러봐야 한다는 욕심 많은 관광객들에게는, 설령 교통 여건이 허락한다고 해도, 루강은 결코 진면목을 내보여주지 않을 것이다.

문패가 달린 옆 좁은 골목이 모루샹이다. 찾는 여행자들이 많아 곳곳에 낙서를 남겼다. '민망함'을 피하려면 반대편에서 사람이 들어오면 한참을 기다렸다 지나가야 한다.
▲ 모루샹 입구 문패가 달린 옆 좁은 골목이 모루샹이다. 찾는 여행자들이 많아 곳곳에 낙서를 남겼다. '민망함'을 피하려면 반대편에서 사람이 들어오면 한참을 기다렸다 지나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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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이번엔 타이베이와 타이중을 중심으로 한, 타이완 북서부를 두루 여행했다. 혹자는 타이완 최고의 여행지는 원주민의 문화가 살아있는 타이완 동부라고 말한다. 타이완에서의 감동이 사라지기 전에, 머지않아 타이완의 동남부를 찾아볼 생각이다. 늘 그렇듯 여행은 한 뼘씩 나를 성장시킨다. 자꾸만 여행 통장에 눈이 가는 이유다. 잔고가 없다. 다시 허리띠를 졸라매야겠다.



태그:#타이완 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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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미뤄지고 있지만, 여전히 내 꿈은 두 발로 세계일주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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