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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로 다른 사람의 뼈가 뒤엉켜 드러났다.
 서로 다른 사람의 뼈가 뒤엉켜 드러났다.
ⓒ 심규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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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50년 당시 촬영된 대전 산내 골령골 학살 현장
 1950년 당시 촬영된 대전 산내 골령골 학살 현장
ⓒ 오마이뉴스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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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요 여기! 이것 좀 보세요!"

24일 오전 11시쯤 대전 산내 골령골 집단학살 유해발굴 현장. 조심스럽게 호미질을 하던 발굴팀 자원봉사자가 김민철 총괄 진행요원(민족문제연구소)을 불렀다. 서로 다른 사람의 것으로 보이는 다리뼈와 팔뼈, 두개골이 뒤엉켜 있었기 때문이다. 

박선주 발굴단장(68, 충북대 명예교수)은 "희생자의 시신을 아무렇게나 포개놓은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는 '구덩이 안에 배추포기 쌓듯 층층이 쌓아 놓았다'는 당시 현장에서 살해과정에 참여한 관계자 증언과도 일치한다. 당시 현장 살해 모습이 담긴 사진에도 구덩이 안에 시신을 포개 놓은 장면이 눈에 띈다. (관련 기사 : 64년 만에 드러난 부서진 머리뼈)

오후가 되자 작업자들이 숨소리가 커졌다. 삽질하는 작업자의 이마에는 연신 땀이 흘러내렸다. 유해 발굴지에서 파낸 흙을 옮겨 놓은 흙더미가 높아졌다.

흙더미가 커질수록 드러난 유해도 늘어났다. 수백여 점의 유해 파편이 즐비하다. 검정 고무신과 뒷굽이 있는 신발도 각각 발굴됐다. 흰색 단추도 나왔다. 희생자들을 민간인으로 추정할 수 있는 증거물이다.

서로 다른 사람의 뼈가 뒤엉켜 있는 현장

 희생자의 것으로 보이는 신발
 희생자의 것으로 보이는 신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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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매장지에서 발굴된 M1소총 탄피(아래)와 탄두(원안). 탄두 아래 희생자 두개골로 보이는 뼈가 박혀 있다. 이날 발굴조사단은 M1소총 탄피 3개와 탄두 1개를 각각 발굴했다.
 매장지에서 발굴된 M1소총 탄피(아래)와 탄두(원안). 탄두 아래 희생자 두개골로 보이는 뼈가 박혀 있다. 이날 발굴조사단은 M1소총 탄피 3개와 탄두 1개를 각각 발굴했다.
ⓒ 심규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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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해발굴 구덩이는 가로 2.5m, 세로 약 7m 정도다.
 유해발굴 구덩이는 가로 2.5m, 세로 약 7m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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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 산내 골령골에서는 한국전쟁이 일어난 직후인 1950년 6월 말에서 7월 중순까지 대전형무소에 수감돼 있던 정치범과 보도연맹원 등이 살해돼 묻혔다. 아직 단정하기 이르지만, 뒷굽이 있는 신발과 흰색 단추는 이곳 구덩이에서 주로 대전·충남지역 보도연맹원과 좌익 연루자 등이 살해됐을 가능성에 무게를 더해 주고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유해는 손을 대기가 두려울 정도로 삭아 있다. 단단한 일부 다리뼈 등을 빼고는 대부분 흔적조차 찾아 볼 수 없다. 남아 있는 유해들도 잔뜩 습기를 머금고 손이 닿기가 무섭게 부서졌다. 치아의 경우 곳곳에 흩어져 있다. 지금까지 수습한 치아는 대략 수십 여 개에 이른다.

박 단장은 "습기가 많아 유해가 빠르게 삭아 없어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어 "유해 발굴이 많이 늦었다"며 "더 훼손되기 전에 시급한 발굴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가해자가 누구인지를 알 수 있는 증거물도 출토됐다. 이날 M1소총 탄피 3개와 M1소총 탄두가 발견됐다. M1소총은 당시 남한 군인과 경찰이 사용하던 총기다. 이는 살해주체가 군인과 경찰임을 말해주고 있다. 탄두의 경우 머리뼈와 함께 드러났다. 구덩이 앞에 나란히 세운 뒤 뒷머리 등에 집단사격을 했다는 증언을 떠올리게 한다.

손이 닿으면 부서질 만큼 삭은 유해

 삭아 없어진 희생자 유해
 삭아 없어진 희생자 유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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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해는 지표면을 기준으로 땅속 약 40cm 지점, 약 70cm 지점, 1.5m 지점에서 각각 확인되고 있다. 한 구덩이 안에 유해가 층층이 묻혀 있음을 거듭 설명해주고 있다. 발굴 대상지 구덩이는 가로 2.5m, 세로 약 7m 정도다.

유해가 켜켜이 매장돼 있어 발굴 작업은 매우 더딘 편이다. 지난해 진주시 명석면 용산리 민간인 희생자 유해 발굴 과정에 참여한 한 영남대 학생은 "진주에 비해 유해 발굴 작업이 훨씬 힘들다"며 "돌이 많고 파내야 할 흙이 많다"고 말했다.

이날도 희생자 유가족 10여 명이 발굴 과정을 계속 지켜보았다.

발굴 3일째인 24일에는 자원봉사자들이 늘어 약 30여 명이 발굴작업을 벌인다. 특히 이날 오후에는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소속 7명이 참여할 예정이다.  

'한국전쟁기 민간인학살 유해발굴 공동조사단'(한국전쟁유족회,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민족문제연구소, 민주화운동정신계승국민연대, 4·9통일평화재단, 포럼진실과정의, 장준하특별법제정시민행동)과 '한국전쟁기 대전 산내 민간인학살 유해 발굴 공동대책위원회'(대전지역 19개 시민사회단체)는 지난 23일 부터 대전 산내 골령골(대전시 동구 낭월동 산 13-1번지)에서 오는 3월 1일까지 7일 간 일정으로 유해를 발굴하고 있다.

이곳에서는 1950년 6월 28일부터 7월 17일까지 3차에 걸쳐 국민보도연맹원과 재소자를 대상으로 대량 학살(1차 : 6월 28~30일 1400명, 2차 : 7월 3~5일 1800명, 3차 : 7월 6~17일 1700~3700명)이 벌어졌다. 당시 희생자들은 충남지구 CIC, 제2사단 헌병대, 대전지역 경찰 등에 의해 법적 절차 없이 집단 살해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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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보천리 (牛步千里). 소걸음으로 천리를 가듯 천천히, 우직하게 가려고 합니다. 말은 느리지만 취재는 빠른 충청도가 생활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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