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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덕위에서 내려다 보이는 마을 풍경
▲ 독일 여행 2012년 언덕위에서 내려다 보이는 마을 풍경
ⓒ 배수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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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 늦게 돌아간 방에는 이미 소등이 되어 있었고 아침이 되어서야  50대 후반의 독일인 두 교사분과 인사를 나누게 되었다. 내가 늦게 돌아온 것 같더라고 시작된 이야기는 아침 식사를 함께 하면서 길게 이어졌다.

가르치는 아이들과 연수를 왔다며, 그 중 한 분이 내 이름을 한자로 써줄 수 있는지, 그리고 그 뜻이 어떻게 되는지를 물으셨다. 한국인의 이름에 한자가 들어가는 경우가 많다는 것을 어떻게 아시느냐고 물었더니 인도로 여행을 자주 다니게 되면서 동양문화에 대해 조금씩 배우게 되었다고 했다.

종이를 한 장 얻어, 수경(修耿)이라고 쓰고, '닦을 수록 빛이 난다'는 뜻으로 아버지께서 지어주셨다고 하자 그녀가 슬쩍 고개를 떨구었다. 뜻밖의 반응에 왜 그런 표정을 짓느냐고 묻자, 흥미로운 답을 주셨다.

각기 다른 들풀들이 어우러진 6월의 풍경
▲ 유럽의 들판 2012년. 각기 다른 들풀들이 어우러진 6월의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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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넌 이미 빛이 나고 있어, 너만의 빛, 그건 굉장히 아름다운거지! 너무 열심히 살고 지나치게 일에만 몰두하다 보면 네가 지닌 그 빛은 오히려 없어질 수도 있거든..."

낯선 어느 새로운 세상을 만난 듯이 내 얼굴이 불그스레 달아올랐다. 생의 그 어느 부침에서건 '나'라는 빛이 현존하고 있다는 사실을 나는 얼마만큼이나 기억하고 있었던 걸까? 가정, 학교, 혹은 사회에서 우리는 언제나 이런 말들에 익숙해져왔다.

"그래 잘했어, 하지만 조금 더 열심히 하면 다음번에는 더 잘하게 될꺼야."

그것은 엄밀히 말하면 칭찬이라기보다는 또 다른 압력이었다.

"거기서 멈추면 안 돼, 더 가고 더 노력하고, 더... 더... 조금 더!"

독일 뮌헨, 2012년
▲ 어느 집 앞 독일 뮌헨, 2012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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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부모님 세대가 떠올라 나는 그녀에게 한국 사회에 대해서 설명했다. 무엇하나 풍족한 것이 없었던 나라, 전쟁과 식민지로 모든 것이 파괴되었던 나라, 가진 것이라고는 오로지 인력에 의한 노력밖에는 없었던 우리의 부모와 조부모 세대들의 삶에 대해서.

그리하여 한국 사회의 문화에 "느림과 여유, 주류에서 벗어나도 될 자유"는 다른 것이 아니라 틀린 것이며, 생존경쟁에서 탈락한 패배자와 동의어가 될 수밖에 없었던 이유에 대해서.

마치 어디로 가야할지 길을 잃은 듯해 보였던 한 남자.
▲ 기차 역 안의 풍경. 마치 어디로 가야할지 길을 잃은 듯해 보였던 한 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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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신화의 시기인 1960~1980년대를 살아오셨던 나의 아버지도 비슷한 마음이셨을 것이다. 우리 모두가 각자의 빛을 지니고 있는 소중한 존재들이라는 사실을 몰라서는 아니었다. 단지, 사회의 속도와 발맞추어 가기 위해서 우리는 그 진실을 자주 잊었고, 사회적 성공을 위해 자주 희생시켜왔을 뿐이다. 그리고 그 부작용 또한 적지 않았다.

유럽 여행 중 노천 카페에서
▲ 여유있는 시간을 즐기는 모습 유럽 여행 중 노천 카페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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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유럽인들이 의아해 하는 한국인들의 여행 방식 또한 어쩌면 그러한 가치의 연장선에서 이해될 수 있을 것이라고 하자 그녀가 고개를 끄덕였다. 한달 안에 15개국 가까이를 일정에 포함시키거나, 아침에 도착해서 저녁에 그 나라를 떠나는 심리 내면에는 뒤처지지 않아야 한다는 강박이 자리잡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남들이 가보았다는 곳을 나만 놓쳐서는 안 된다는 혹은 제한된 시간을 최대한으로 이용해서 최대의 성과를 거두어야 한다는 강박.

그녀는 언젠가 한국에도 여행을 오고 싶다고 했다. 나 또한 소중한 이야기를 나누어 주어서 내 자신을 바라볼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고, 고맙다는 인사를 전했다. 이유를 알게 되면, 그 어느 곳의 어느 사람들에 대한 이해 또한 깊어진다. 내게도 그런 경험이 있었다.

민들레로 와인을 담구었던 모습.
▲ 민들레 와인 민들레로 와인을 담구었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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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인 박사님의 식사초대를 받아 선물을 준비해야 했던 적이 있었다. 경제적으로 여유가 많은 분이어서 돈으로는 쉽게 살 수 없는 것으로 궁리를 하다가 민들레를 떠올렸다. 마침 봄철이라 쉽게 구할 수 있는 것이어서 수제 초콜릿을 만들어 갈 요량이었다.

베를린에서 꽤나 유명하다는 식당에서 그와 긴 이야기를 나누다가 선물을 꺼내었다. 민들레로 와인을 담구어 초콜릿을 만들었다고 하니 놀라워했다. 화제는 자연스럽게 음식 이야기로 이어졌다.

포장지가 마땅치 않아서 구입한 초콜렛을 빼고 민들레 와인과 말린 과일을 넣어 직접 만든 초콜렛으로 채웠던 선물.
▲ 민들레 와인 초콜렛 포장지가 마땅치 않아서 구입한 초콜렛을 빼고 민들레 와인과 말린 과일을 넣어 직접 만든 초콜렛으로 채웠던 선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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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가 가지 않는 것이 하나 있는데요, 왜 독일인들은 민들레를 먹지 않나요? 많은 여행객들이 독일은 특별한 전통 음식이 거의 없다는 불평을 해요. 제가 보아도 그렇거든요. 소시지나 맥주 정도? 물론 독일 빵도 조금은 특별하지만 독일을 대표할 수 있는 전통 요리가 무엇인지 잘 모르겠어요."

양배추 절임이라고 불리는 독일의 대표 음식 중 하나
▲ 독일식 김치, Sauerkraut. 양배추 절임이라고 불리는 독일의 대표 음식 중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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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록 전공은 물리학이지만, 그가 종이 위에 독일 지도를 그리더니 세로축으로 주요 역사적 연도들을 적어가며 설명을 해주었다.

"독일은 1871년에 비스마르크에 의해 통일되기 전까지는 수많은 소지역들로 구성되어 있었죠. 당시 남쪽에서 북으로 종단을 하려면 통행증을 100여 번이 넘게 보여주어야 했을 만큼 분열이 심했어요. 땅도 넓어서 기후적으로 지역 마다의 특색이 있었기에 음식 또한 통일된 어느 하나로 발전할 수는 없었죠. 양배추 정도가 가장 무난했다고 할까요? 독일에서의 양배추 절임을 한국의 김치와 비슷한 의미로 보면 틀리지 않을 거예요. 

더불어 독일이 산업화를 이루면서 주변 국가에서 많은 음식들을 수입해왔어요. 음식이 풍부해졌죠. 아주 옛날, 가난했던 시기에 사람들은 집 주변의 풀들을 음식에 사용하기도 했지만, 이후에는 민들레 같은 식물들은 주목받지 못했어요. 그러다가 유기농이나 내가 사는 지역 안의 농산물을 소비하자는 문화가 독일에서도 바람을 타면서 요즘엔 민들레 같은 식물에도 주목하는 경향이 많아졌죠."

유럽 여행 중 기차 안의 풍경
▲ 기차 안 유럽 여행 중 기차 안의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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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은 현실과 얼마만큼 맞닿아있는 것일까? 그의 설명이 흥미롭기도 했지만, 현상의 이면을 매번 놓치고 또 한번 쉽게 판단했구나 싶었다. 프랑스의 작가, 마르셀 레자(Marcel Réja)는 "나는 나의 지리를 알기 위해서 여행을 한다 (Je voyage pour connaître ma géographie)" 고 했다.

하지만, 여행은 나와 더불어 당신의 지리를 알기 위한 조금은 숭고한 경험일지도 모른다. 우리가 고흐의 '별이 빛나는 밤'이라는 그림을 사랑하는 이유처럼. 즉 눈에 드러나는 점 하나로서의 별이 아니라, 그 안에서 일어나고 있는 생명의 파동을, 흐르거나 멈추었을 어느 숨결들을 드러내주고 바라보게 된다는 점에서.

다시 여행을 가게 된다면 오후 햇살에 낮잠을 자보기도 하고, 마음에 드는 어느 작은 마을에서는 밤하늘을 바라보고 들판을 산책하는 일에 한 주를 몽땅 보내고 싶어지기도 한다. 잊고 있었던 내 안의 빛을 그렇게 다시 불러보는 여행을.


태그:#나와 너에 대한 이해, #독일음식, #한국의 발전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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