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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산시 대야면에서 철물점을 하고 있는 이재경씨. 그가 하는 철물점은 3대째 이어지고 있다.
 군산시 대야면에서 철물점을 하고 있는 이재경씨. 그가 하는 철물점은 3대째 이어지고 있다.
ⓒ 매거진군산 진정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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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 김은지라는 여학생이 낙선하게 해 주세요. 무조건 떨어져야 해요. 예쁘니까요."

군산대 사학과 2학년, 스물다섯 살 복학생 이재경씨는 기도했다. 돌아가신 할머니한테. 할머니는 육이오 전쟁이 터졌을 때, 동네 앞산 동굴로 피난 갔다. 일상으로 돌아오자마자 닫아 두었던 철물점 문을 열었다. 재경씨 부모님은 할머니 뒤를 이어 철물점을 했다. 재경씨도 부모님 일을 도왔다. 일주일에 사흘은 학생, 나흘은 60년 된 철물점에서 일하고 있었다.

학생회 선거가 한창인 군산대 캠퍼스에는 포스터가 붙어 있었다. 재경씨와 친구들은 각 후보가 내건 공약을 살피지 않았다. 선거에 나온 여학생들이 얼마나 예쁜가에 대해서만 토론했다. 재경씨는 "총여학생회 부회장 후보 김은지가 예쁘다"라고 했다. 은지씨는 수학과, 재경씨와는 다른 건물에서 공부한다. 후배 한 명이 그에게 "소개시켜 줄까요?"라고 했다.

그날부터 재경씨는 할머니한테 '김은지 후보 낙선 기도'를 했다. 11월인데, 선거운동 한다고 김은지 후보가 옷을 얇게 입고 다니는 게 마음에 걸렸다. 선거 유세도 들어봤다. 야무지게 말을 잘했다. 재경씨는 그럴수록 더 간절하게 기도했다. 그의 바람대로 됐다. 낙선한 은지씨는 마침내 재경씨의 '여친', 두 사람은 결혼했다. 아기 낳고 기르는 학생 부부였다. 

"저는 사춘기가 없이 자랐어요. 어릴 때부터 제가 하고 싶은 것을 말하지 않았어요. 초등학교 들어가면 수수깡이나 가위 같은 거 사가잖아요. 제 생각에 준비물 사는 천 원은 굉장히 큰돈이었어요. 그래서 부모님한테 사달라고 안 했어요. 그냥 학교 가서 혼났어요. 가게 장사는 잘 되는 편이었는데, 제 눈에는 어머니가 고생하는 것만 보였어요." 

어린 재경은 주로 할머니와 시간을 보냈다. 어머니가 보고 싶으면 철물점에 가서 앉아 있었다. 그는 부모님한테 어린아이 특유의 생떼를 부린 적 없다. 단 한 번도. 고등학교 때는 수학여행 안 간다고 버티기도 했다. 중학교 때와는 다르게 수십만 원이 드는 비용 때문이었다. 부모님은 휴일도 없이 가게 일을 하는데, 수학여행 간다고 큰돈 쓰는 게 미안했다.  

삼대째 철물점 이어받은 착한 재경씨

역사를 좋아하는 재경씨는 사학과에 입학했다. '우리 부모님처럼 안 살아야지' 생각한 적도 있었는데 어느새 철물점 일을 겸하고 있었다. 학교에서 강의를 듣다가도 짬짬이 물건 배달을 다녔다. 군산시 대야면 시골에 있는 철물점이 뭐 그리 바쁠까? 재경씨네는 임대료가 비싸서 물건을 많이 들일 수 없는 시내 철물점과는 다르다. 가게는 넓고 물건은 많다. 

그는 한때 "부모님처럼 안 살 거야"라고 했다. 그러나 대학에 들어가고 나서는 철물점 일을 도왔다. 학교 갔다가도 강의가 비면 물건을 배달하러 다녔다.
 그는 한때 "부모님처럼 안 살 거야"라고 했다. 그러나 대학에 들어가고 나서는 철물점 일을 도왔다. 학교 갔다가도 강의가 비면 물건을 배달하러 다녔다.
ⓒ 매거진군산 진정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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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일이 따로 없어요. 건설현장은 일요일에도 일하니까요. 저는 학교 다니는 게 쉬는 셈이었어요. 1학년 다니고 휴학해서 아예 철물점 일을 했어요. 손님들은 다양해요. 건설업체나 인테리어 업체도 오고, 농가나 축사 일 하는 사람들, 소소한 물건을 사러 오는 사람들도 있죠. 찾는 물건을 한꺼번에 살 수 있어요. 여기저기 들르지 않아도 되니까 좋죠."

재경씨는 스물두 살에 입대했다. 전남 장성에서 장교들을 교육하는 조교로 근무했다. 웃는 모습이 선해 보이는 그는 "(웃음) 조교니까 무섭게 잘 했죠. 남들이 3박 4일 휴가 받을 때, 저는 하루 더 긴 휴가 나올 정도로요"라고 했다. 고등학교 다닐 때처럼, 대학 다닐 때처럼, 재경씨는 휴가 나오면 철물점에서 부모님 일을 도왔다.

"저도 친구들이 부러운 적 있었어요. 하고 싶은 걸 해보잖아요. 자격증 시험공부도 하고, 공무원이나 입사시험 공부도 하고, 알바도 하고요. 불확실한 미래에 부딪혀가면서 뭔가 해나가는 모습들이 좋아 보였죠. 실패도, 성공도, 다 자기 거잖아요. 저는 이미 미래가 정해져 있다는 생각을 했어요. 상황이 그랬어요. 제가 빠지면, 가게가 어떻게 될지 모르니까요."

재경씨는 스물여섯 살 때, 본격적으로 철물점 일에 몸을 던졌다. 첫딸도 태어났다. 아기 엄마가 된 아내 은지씨는 성적이 뛰어나서 교직이수까지 했다. 그는 고민했다. 80% 넘는 사람들이 가는 대학, 나중에 그의 딸이 자라서 대학 중퇴한 아빠를 부끄럽게 여기면 어떡할까? 재경씨는 학사경고를 면할 정도로만 출석했다. 가까스로 졸업했다. 

"쉰 살 되는 날, 가게 그만 둔다!"

재경씨 어머니의 오랜 꿈이었다. 그가 서른 살 되던 해에 어머니는 쉰 살. 철물점 운영에 대한 부담을 내려놓던 싶었던 어머니는 재경씨에게 통장부터 내줬다. 오전 6시에 가게 문 여는 것부터 그의 책임이 되었다. 하루에도 몇 번씩 거래처에서 계산서 수정 요구를 하면 응대하는 일도, 서류정리, 물건 판매와 배달, 주문도 완전한 그의 몫이 되었다.

해외출장 가는 철물점, 제가 사장이에요

사람 사는 게 좋을 때만 있나요? 힘든 일이 생겨도, 저희 가게에 물건 사러 오는 손님들한테는 웃죠.
 사람 사는 게 좋을 때만 있나요? 힘든 일이 생겨도, 저희 가게에 물건 사러 오는 손님들한테는 웃죠.
ⓒ 매거진군산 진정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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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님 접대는 안 어려워요. 재밌어요. 물건 값 떼먹고 도망가는 경우가 힘들죠. 물건을 사가고 나서 법인을 없애 버리는 경우가 있어요. 법적으로 소송 걸어서 이것저것 처리하는데 시간이 오래 걸려요. 돌아오는 돈도 반절밖에 안 되고요. 30~40년 된 거래처한테 떼일 때도 있어요. 그 때는 소송 안 걸어요. 기다리고 봐요. 자기 사정 풀리면 주기도 하니까요.

사람 사는 게 좋을 때만 있나요? 힘들 때가 더 많죠. 어떤 사람들은 결제 안 해주면서도 계속 물건을 가져가요. 차라리 물건 가져가면서 얼굴 보는 게 나아요. 아예 그런 것도 안 하고, 연락도 끊어 버리면 너무 힘들잖아요. 그렇게 조심해도, 1년에 한두 번씩은 무조건 물건 값 떼먹히는 일이 생겨요. 결제 못 받는 게 3천만 원쯤 되는 시점에서, 어머니랑 의논해요."

어머니는 수십 년 거래한 정이 있으니까 "조금만 더 믿어 보자"고 한다. 발등에 불이 떨어진 재경씨는 "멈춰야 돼요"라고 한다. 될 일은 되고, 터질 일은 터진다. 그래도 재경씨는 담담하게 웃는단다. 물건 사러 온 다른 손님들한테 처진 모습을 보여줄 수 없으니까. 털 수밖에 없다. 장사는 신용, 재경씨는 대출 받아서 자신의 거래처에 결제를 해준다.  

재경씨네 가게에서는 못, 톱, 전기재료, 보일러, PVC, 수도 배관, 벽돌, 시멘트, 건설자재 등을 판다. 그는 더 좋은 물건에 대해서 항상 고민했다. 자동차용품점을 하는 한 후배가 중국제 물건을 쓰면서 "싼 것만 찾아서 그렇지. 중국 것도 비싼 건 다양하고 좋아요"라고 했다. 재경씨는 그때까지 상대조차 안 했던 중국 물건을 1년 넘게 탐색했다. 

작년에 재경씨는 아버지, 철물점 직원과 함께 중국 광저우 '캔톤페어 박람회'에 갔다. 젊은 사람이 2박 3일간 쉴 새 없이 걸어야 다 볼 수 있을 만큼 박람회장은 넓었다. 신기한 물건이 많았다. '중국 물건은 후지다'는 생각, 한국에서 천 원 하는 물건을 중국에서 백 원에 사와서 그런 거였다. 5백 원짜리 중국 물건은 한국의 천 원짜리 물건보다 좋았다.

그는 정식으로 바이어 카드를 발급 받았다. 새의 이처럼 생긴 전지 가위, 세차할 때 쓰는 건(물총) 300개(단가가 높았음). 수도꼭지 뒤쪽으로 있는 선에 연장이 들어가기 힘든데 플라스틱 깍지가 달려 있어서 쉽게 끼우고 뺄 수 있는 호스 1만개, 전기선을 깔기 어려운 시골집 마당에 꽂아놓거나 설치하면 불이 들어오는 태양광 등을 계약, 직접 수입했다.

"철물점 하면서 늘 물건 연구를 하죠. 저는 이게 경쟁력이라고 봐요. 직접 가서 보고 가져온 물건을 파니까요. 비록 시골에 있는 가게지만, 좋은 물건 있다면 안 가리고 찾아가죠. 그렇게 물건 사와서 실패도 해요. 실패하면서 물건 보는 눈이 생기더라고요. 지금 제 관심사는 무선충전기예요. 중국은 이미 일상적으로 써요. 실내 인테리어 쪽도 관심 많고요."

봄이 왔다. 철물점 일은 경기 영향을 받아서 아직 춥다. 어느 한 곳에서 결제가 안 되기 시작하면, 그 한 번으로 끝나지 않는다. 거래처들은 연달아서 물건 값을 갚지 못한다. 그는 "사는 게 그런 일들의 연속이죠"라고 하면서 다시 광저우 '켄톤 박람회' 얘기를 했다. 1년에 두 번 열리는 박람회. 올해는 언제쯤 갈 것인지, 그는 시기를 가늠하고 있다.   

재경씨가 거래하는 곳은 군산, 익산, 전주를 넘어섰다. 제주도나 수도권까지 확장되어 있다. 작년에 열렸던 인천 아시안 게임, 재경씨는 요트 경기장 짓는 건설 현장에도 물건을 납품했다. 2년 전에 재경씨에게 철물점 일을 물려준 어머니는 날마다 가게에 나와서 일을 돕는다. 하루에 12시간에서 14시간씩 일하는 아들의 고된 일을 너무나도 잘 알기 때문이다.

"가끔씩 슬럼프 같은 게 와요. 뭘 하고 싶은지, 뭘 해야 좋을지 모르겠어요. 지금 하는 일의 의미를 못 찾을 때가 있어요."

부모님 뜻을 헤아리며 순하게만 자란 청년 재경씨는 말했다. "이게, 뒤늦은 사춘기인가요?"라면서 웃었다. 가끔은 혼자서, 아무 생각도 안 하면서 있고 싶단다. 그러나 그의 머릿속에 꽉 찬 철물점 일은 절대 비워지지 않는다. 쉬운 인생은 없다. 재경씨 아내 은지씨도 연년생 딸 둘을 키우며 살림을 살고 있다. 힘들 때마다 진하게 커피를 마신다는 재경씨가 말했다.

"제 주장만 펴기가 어려워요. 저만 힘든 게 아니잖아요. 주위에 안 힘든 사람이 없거든요. 그러니까 그냥 철물점 일을 열심히 하게 돼요."   

군산시 대야면 시골에 있는 철물점. 할머니와 부모님의 대를 이어 재경씨가 운영하고 있다. 좋은 물건이 있다면, 어디라도 간다.
 군산시 대야면 시골에 있는 철물점. 할머니와 부모님의 대를 이어 재경씨가 운영하고 있다. 좋은 물건이 있다면, 어디라도 간다.
ⓒ 매거진군산 진정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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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편집|박순옥 기자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매거진군산 4월호에 실렸습니다.



태그:#3대째 하는 철물점, #군산 대야철물 이재경, #광저우 ‘캔톤페어 박람회’, #좋은 물건을 찾아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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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는 사람이 되고 싶다면』 『소년의 레시피』 『남편의 레시피』 『범인은 바로 책이야』 『나는 진정한 열 살』 『내 꿈은 조퇴』 『나는 언제나 당신들의 지영이』 대한민국 도슨트 『군산』 『환상의 동네서점』 등을 펴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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