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보, 공짜라도 목숨은 걸지 말구려...

호박 고구마 단상

등록 2007.10.31 20:38수정 2007.11.01 16: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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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여섯 시 전에 퇴근하는 저와는 달리 아내의 퇴근은 늦습니다. 유통업체서 일하는지라 통상 밤 아홉 시는 돼야 퇴근하여 귀가하지요.


늘 가장 먼저 귀가하기 때문으로 ‘무늬 주부’와 가정부 역할까지 도맡아서 제가 하게 된 건 어쩔 수 없는 노릇이었습니다.


아무튼 어제(27일)도 제일 먼저 귀가하여 방 청소를 하고 저녁을 혼자 먹었습니다. 시간이 더 지나 아홉 시 뉴스를 시작한 지도 꽤 되었는데 그때까지도 아내는 돌아오질 않았습니다. 궁금하기에 아내의 핸드폰을 두들겼으나 함흥차사였습니다.


얼추 밤 열 시가 다 될 무렵에야 대문이 열리는 소리가 나더군요. 그리곤 아내의 고함이 이어졌습니다.


“여보, 얼른 나와!”


호들갑스런 아내의 지청구로 미뤄보아 분명 무언가를 사온 성 싶더군요. 그래서 총알같이 현관을 열고 나갔지요. 아내는 땀에 흠뻑 젖어 숨을 헐떡이고 있었습니다.


“왜 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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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홍경석

ⓒ 홍경석

놀라서 물었더니 아내는 대문 밖에 고구마가 있으니 어서 들고 오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얼른 대문 밖에 있던 호박 고구마 박스를 들고 들어왔지요.


거실로 들어서자 아내는 쇼파에 앉아서 숨을 고르고 있었습니다.


“아니, 이 무거운 걸 택시도 안 타고 당신이 직접 들고 온 거야?”라고 물으니 그렇다고 했습니다. 가뜩이나 몸이 약해서 약으로 사는 사람이 가볍지 않은 고구마를 한 박스씩이나 시내버스에서 내려 집까지 들고 왔다니 놀랍기도 했지만 이내 버럭 화가 났습니다.


“핸드폰은 뒀다 국 끓여먹을 거야? 전화하지 그랬어!”

 

a  아내가 공짜로 얻어 들고 온 고구마.

아내가 공짜로 얻어 들고 온 고구마. ⓒ 홍경석

아내가 공짜로 얻어 들고 온 고구마. ⓒ 홍경석

아내의 직장동료가 친정에서 가져온 호박 고구마라는데 평소 베푸는 친구가 많은 아내는 그 고구마를 공짜로 얻은 기분에 고무되어 그만 혼자서 번쩍 들고 오고 싶었답니다.


‘어이구∼ 그저 애고 어른이고 공짜라면 사족을 못 쓰는구나…’란 생각에 실소가 터져 나왔지요. 하여간 아내가 가져온 호박 고구마를 주방 뒤의 광에 넣어두면서 몇 개를 뺐습니다.


그리곤 물에 씻어서 몇 개를 쪘지요. 샤워를 마치고 나온 아내에게 찐 고구마를 건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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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홍경석

ⓒ 홍경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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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홍경석

ⓒ 홍경석

“고구마 가져오느냐고 기운깨나 뺐을 텐데 맛이나 보구려.”


누군가는 찐 고구마가 사이다 내지는 냉수가 제격이라지만 제 입엔 역시 잘 익은 김치가 제일입니다. 아내와 함께 김치까지 꺼내 찐 호박고구마를 먹자니 천하일미가 따로 없더군요!


그렇게 밤참으로 맛난 찐 고구마를 먹으면서도 저는 아내를 다시 혼냈습니다.


“아무리 공짜라도 결코 목숨은 걸지 말아!”


아울러 이렇게 혼자 읊조렸습니다.


‘이담에 내가 돈 많이 벌면 호박 고구마를 아예 열 박스씩 사다줄 테니 조금만 더 기다리구려….’

덧붙이는 글 | 교통방송에도 송고했습니다 

2007.10.31 20:38ⓒ 2007 OhmyNews
덧붙이는 글 교통방송에도 송고했습니다 
#일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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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서: [초경서반]&[사자성어는 인생 플랫폼]&[사자성어를 알면 성공이 보인다]&[경비원 홍키호테] 저자 / ▣ 대전자원봉사센터 기자단 단장 ▣ 月刊 [청풍] 편집위원 ▣ 대전시청 명예기자 ▣ [중도일보] 칼럼니스트 ▣ 한국해외문화협회 감사 / ▣ 한남대학교 경영대학원 최고경영자과정(CEO) 수강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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