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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여섯 시 전에 퇴근하는 저와는 달리 아내의 퇴근은 늦습니다. 유통업체서 일하는지라 통상 밤 아홉 시는 돼야 퇴근하여 귀가하지요.
늘 가장 먼저 귀가하기 때문으로 ‘무늬 주부’와 가정부 역할까지 도맡아서 제가 하게 된 건 어쩔 수 없는 노릇이었습니다.
아무튼 어제(27일)도 제일 먼저 귀가하여 방 청소를 하고 저녁을 혼자 먹었습니다. 시간이 더 지나 아홉 시 뉴스를 시작한 지도 꽤 되었는데 그때까지도 아내는 돌아오질 않았습니다. 궁금하기에 아내의 핸드폰을 두들겼으나 함흥차사였습니다.
얼추 밤 열 시가 다 될 무렵에야 대문이 열리는 소리가 나더군요. 그리곤 아내의 고함이 이어졌습니다.
“여보, 얼른 나와!”
호들갑스런 아내의 지청구로 미뤄보아 분명 무언가를 사온 성 싶더군요. 그래서 총알같이 현관을 열고 나갔지요. 아내는 땀에 흠뻑 젖어 숨을 헐떡이고 있었습니다.
“왜 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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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홍경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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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라서 물었더니 아내는 대문 밖에 고구마가 있으니 어서 들고 오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얼른 대문 밖에 있던 호박 고구마 박스를 들고 들어왔지요.
거실로 들어서자 아내는 쇼파에 앉아서 숨을 고르고 있었습니다.
“아니, 이 무거운 걸 택시도 안 타고 당신이 직접 들고 온 거야?”라고 물으니 그렇다고 했습니다. 가뜩이나 몸이 약해서 약으로 사는 사람이 가볍지 않은 고구마를 한 박스씩이나 시내버스에서 내려 집까지 들고 왔다니 놀랍기도 했지만 이내 버럭 화가 났습니다.
“핸드폰은 뒀다 국 끓여먹을 거야? 전화하지 그랬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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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내가 공짜로 얻어 들고 온 고구마. ⓒ 홍경석
▲ 아내가 공짜로 얻어 들고 온 고구마.
ⓒ 홍경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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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의 직장동료가 친정에서 가져온 호박 고구마라는데 평소 베푸는 친구가 많은 아내는 그 고구마를 공짜로 얻은 기분에 고무되어 그만 혼자서 번쩍 들고 오고 싶었답니다.
‘어이구∼ 그저 애고 어른이고 공짜라면 사족을 못 쓰는구나…’란 생각에 실소가 터져 나왔지요. 하여간 아내가 가져온 호박 고구마를 주방 뒤의 광에 넣어두면서 몇 개를 뺐습니다.
그리곤 물에 씻어서 몇 개를 쪘지요. 샤워를 마치고 나온 아내에게 찐 고구마를 건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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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홍경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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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홍경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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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마 가져오느냐고 기운깨나 뺐을 텐데 맛이나 보구려.”
누군가는 찐 고구마가 사이다 내지는 냉수가 제격이라지만 제 입엔 역시 잘 익은 김치가 제일입니다. 아내와 함께 김치까지 꺼내 찐 호박고구마를 먹자니 천하일미가 따로 없더군요!
그렇게 밤참으로 맛난 찐 고구마를 먹으면서도 저는 아내를 다시 혼냈습니다.
“아무리 공짜라도 결코 목숨은 걸지 말아!”
아울러 이렇게 혼자 읊조렸습니다.
‘이담에 내가 돈 많이 벌면 호박 고구마를 아예 열 박스씩 사다줄 테니 조금만 더 기다리구려….’
2007.10.31 20:38 | ⓒ 2007 OhmyNew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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