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천정. 태종의 하계 별장 겸 이궁이다.
이정근
세종이 천달방 신궁에 문안한 다음 부왕을 모시고 살곶이에 나가 매사냥하는 것을 구경했다. 낙천정에서 점심을 들고 태종은 천달방 신궁으로 돌아오고 세종은 창덕궁으로 환궁했다. 그런데 바로 그날 저녁, 태종이 고열에 시달리며 자리에 누웠다.
세종이 급히 신궁으로 나아가 부왕을 간호하며 밤을 새웠다. 급보를 받은 종친·부마·문무 2품 이상 관원들이 천달방 신궁으로 달려왔다. 종친은 궁중에서 유숙하고 병조와 대언사도 모여서 숙직하였다.
병석에 누운 태종이 자리를 털고 일어나지 못했다. 의정부에서 도전(道殿)과 불우(佛宇)와 명산에 기도드리기를 청하니 세종이 각처로 사람을 나누어 보내 기도하게 하는 한편 전국 각지의 수령들에게 왕지를 내렸다.
“부왕 전하께서 여러 날 편치 못하시니 이죄(二罪) 이하의 죄인은 판결된 것이나 아니한 것을 막론하고 모두 석방하라.”
전국 각처의 형옥에 투옥되어있던 죄수들을 풀어 준 세종은 양녕대군 이제를 유배처에서 불러와 부왕을 간호하게 했다. 성산부원군 이직을 종묘에 보내 기도드리고 좌의정 이원을 소격전(昭格殿)에 보내어 기도드리게 했다.
오르는 길보다 내려오는 길이 어렵더라태종의 병환에 차도가 없자 문안하는 신하들의 출입을 금지시키고 군대로 하여금 신궁 주위를 엄하게 호위하게 했다. 세종이 어찌할 줄을 모르고 있는데 유정현과 이원이 다시 신당과 불전 중 영험이 있는 곳에 기도하고 한양과 지방의 형옥에 갇혀있는 일죄(一罪)이하의 죄수를 석방시키자고 주청했다.
“신당과 불전에 비는 것은 그만두라. 모반대역과 부모를 때리거나 죽인 자, 처나 첩으로 남편을 죽인 자, 노비로 상전을 죽인 자는 이미 발각된 것이나 발각되지 아니한 것을 불문하고 모두 사면하여 석방하라.”세종은 여러 위(衛)에 영을 내려 태종이 있는 천달방 신궁의 동구를 나누어 지키게 하고 수직하는 갑사(甲士)의 수를 증원했다. 의정부와 제조(諸曹)의 현임과 전임 재추(宰樞)로서 문안 온 자는 궁 앞에 나오지 못하게 하고 각각 동구에 모여서 정부당상(政府堂上) 한 사람과 제조당상(諸曹堂上) 한 사람이 병조에 들어와 문안하고 물러가게 했다.
영험한 곳에 기도드리자는 유정현의 청을 물리친 것이 마음에 걸린 세종은 우의정 정탁을 흥천사, 곡산부원군 연사종을 승가사에 보내어 약사정근(藥師精勤)을 배설하고 판좌군도총제부사 이화영을 개경사에 보내어 관음정근(觀音精勤)을 베풀도록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