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을 매시더니 손도끼를 잡으신 어머니

<엄마하고 나하고 36회>

등록 2008.01.17 19:33수정 2008.01.17 19: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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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회에 이어)

 

여름이 시작되면서 몸과 마음이 다 왕성해지신 어머니는 새벽에 눈을 뜨면 항상 처음 하시는 말씀이 “오늘은 우리 뭐 학꼬?”가 되어 버렸다. 나들이를 가기 위해 마루에 걸터앉아 신발을 신겨드리고 나면 “또 보듬을락꼬? 혼자 걸어가보지 뭐” 하셨다.

 

토방위에 갖다 놓은 바퀴의자를 마당에 내려놓게 하시고는 엉덩이 걸음으로 마루에서 토방으로, 다시 마당으로 내려 오셨다. 마당에 내려오시면 의자에 앉히기가 몇 배나 힘들었다. 엉덩이를 바닥에서 단 1센티미터도 들어 올리지 못하시지만 어머니 마음은 항상 앞섰다.

 

“비켜봐아. 내가 요리 안적께”

 

한참 바퀴의자의 손잡이를 잡고 용을 쓰다가 어색한 웃음을 지으며 나를 쳐다보면 그때 내가 안아 올린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다. 골목으로 나와 트럭에 올라 탈 때도 나를 비키라고 하셨다. 혼자 올라 타 보겠다는 것이다. 결국 내 손길을 필요로 하면서도 어머니는 혼자서 걷고 싶은 욕망을 멈추지 않았다.

 

골목에 세운 트럭에서 내릴 때도 마찬가지다. 바퀴의자를 갖다 대면 치우라고 한다.

 

“요긴데 뭐. 살살 걸어서 가지 뭐. 맨날 두발 구루마만 타고 다니면 언제 걷것나?”

 

걸어 보겠다는 어머니의 의지는 아주 놀라운 것이었다. 감히 뭐라고 가로 막을 수 없는 어떤 엄한 기운 같은 것이 느껴지기도 한다.

 

뒤에서 어머니 양쪽 겨드랑이 밑으로 팔을 돌려 껴안고 어머니 체중을 모두 떠안은 채 한 발 한 발 체중을 왼쪽으로 옮겼다가 다시 오른쪽으로 옮겨가며 몇 걸음 가다보면 어머니는 슬슬 주저앉는다.

 

a 도끼질 손 도끼로 나뭇가지를 다듬는 어머니

도끼질 손 도끼로 나뭇가지를 다듬는 어머니 ⓒ 전희식

▲ 도끼질 손 도끼로 나뭇가지를 다듬는 어머니 ⓒ 전희식

 

무릎이 접히기 시작하고 다리를 땅에 질질 끌게 되면 어머니 엉덩이는 내 무릎 위에 얹혀 진 채 더 이상 걸을 수 없게 된다. 어머니 무릎이 완전히 꺾이면 이 순간은 바퀴의자는 저 만치 뒤에 있고 어머니는 땅 바닥에 퍼질고 앉아버리는 때다. 내 양 팔과 허리는 끊어질 듯이 아파오는 때이기도 하다.

 

그러나 마당에 풀을 매겠다고 하면 마당에 가빠를 깔아 놓고 풀을 매게 했다. 장갑을 끼시라고 해도 씻으면 되는데 뭣 하러 끼냐고 했다. 위험하지만 않으면 어머니 하고 싶은 대로 하시게 했다.

 

풀을 매면서 옷이 더러워지는 거야 빨면 되지만 금방 해지는 것은 곤란했다. 두꺼운 겨울옷 하나를 뜯어서 엉덩이와 무릎에 대고 깁게 했다. 바느질하기를 좋아하시는 어머니는 당신의 작업복을 만드는 것이라 신나 하셨다.

 

한번은 집 뒤에 있는 대나무밭에서 대 뿌리가 집으로 뻗어 들면서 그늘이 끼고 물이 잘 안 빠지게 돼서 대나무를 많이 잘라 냈다. 뜨거운 햇살에 버석버석 말라가고 있는 대나무를 보고 어머니는 자잘하게 쫒아 주시겠다고 했다.

 

마당에 터를 잡아 자그마한 손도끼를 옆에 놔 드리고 들에 갔다 왔는데 나는 골목에 들어서면서 깜짝 놀랐다. 그 많은 나무를 거의 다 쫒아 놓으셨다. 어머니는 내가 오는 줄도 모르고 손도끼를 내리 치고 계셨다. 근 두 시간을 계속한 도끼질이었다.

 

무슨 일이 벌어 질것만 같았다.

 

급히 방으로 모셨는데 그 후로 사흘 동안을 자리에서 못 일어 나셨다. 온갖 근육통들이 손목 하나도 까닥거리지 못하게 했던 것이다. 몸과 마음의 불일치에서 빚어진 과로였다. 내가 ‘세 가지 요법’을 만들게 되는 길고 힘겨운 시작을 알리는 징조였다. (37회에 계속)


 

덧붙이는 글 <한국농어민신문>에도 실렸습니다.
#어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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