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몇 %나 한국인일까?

[서평] 이동식이 쓴 <찔레꽃과 된장>

등록 2008.01.24 11:34수정 2008.01.24 1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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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책 표지 "찔레꽃과 된장"(이동식) 표지

책 표지 "찔레꽃과 된장"(이동식) 표지 ⓒ 나눔사

“바하를 아십니까?/우륵을 아십니까?, 운명 교향곡을 아십니까?/수제천을 아십니까?, 바이올린은 몇 줄입니까?/거문고는 몇 줄입니까?, 카루소를 아십니까?/임방울을 아십니까?, 당신은 독일 사람입니까?/당신은 한국 사람입니까?”

위 글은 이동식 KBS 부산총국장이 쓴 <찔레꽃과 된장>(나눔사)에 나오는 것인데 대전신학대학교 문성모 총장이 독일에 있을 때 유학 온 한국 대학생들에게 ‘한국인으로서의 자각을 위한 질문’이란 제목으로 던진 질문 17개 가운데 일부다.


질문 중 앞에는 서양 음악과 관련된 것들이고, 뒤에는 한국 전통음악과 관련된 것들이다. 하지만, 한국의 지성인이라 자처하는 대학생들은 바하라는 독일 작곡가는 알겠는데 우륵이라는 사람은 어느 나라에서 무슨 악기의 명인이었는지 생각이 가물가물했다고 한다.

문 총장은 5분의 시간을 주고 오른쪽 한국 전통음악에 관한 질문 가운데 3문제만 맞추면 선물을 주겠다고 했지만 상을 받은 사람은 없었다고 소개한다. 모두 자신 있게 맞춘 것은 마지막 질문 “당신은 독일 사람입니까?/한국 사람입니까?”뿐이었는데 문 총장은 그 대답도 틀린 것 같다고 했다. 그 까닭은 한국 전통음악에 대해 하나도 모르면서 어찌 한국사람이냐는 것이다.

무늬만 한국인 아닐까?

지은이는 자신의 책 <찔레꽃과 된장>에서 이렇게 한국인들에게 몇 %나 한국인인지 묻고 있다. 우리는 정말 무늬만 한국인은 아닐까?

책은 먼저 일제강점기 때 우리 문화를 사랑했던 민예 연구가·미술 평론가 야나기 무네요시가 말한 “쫓기고 억압된 그들의 운명은 할 수 없이 쓸쓸함과 외로움 속에서 위로를 찾았다”란 말을 비판한다. 우리 겨레는 슬픈 민족이 아님은 물론 남을 누르고 웃는 억압자의 웃음이 아닌, 주위를 내 품 안으로 포용하는 웃음, 누가 더 잘 나고 못나고를 따지지 않는 ‘동화(同化)의 웃음’을 웃는 민족이라고 진단한다.


야나기의 말처럼 슬픈 민족이라 흰색을 좋아한 것이 아니라 흰색은 평화와 순결, 자연과의 동화를 상징하는 것이기에 좋아했다고 주장한다. 또 판소리와 풍물굿을 예로 들며, 한민족은 무정형에서 자유를 찾았다고 말한다.

그러고는 “조선 사람들은 동양에서 가장 아름답고 고전적인 미술품을 만들었다. 과장하거나 왜곡된 것이 많은 중국미술이나, 감상으로 치닫거나 지나치게 형식에 얽매이는 일본 미술과는 다르다”라는 안드레아스 에카르트 말을 소개하면서 우리 민족에게 자부심을 불어 넣는다.


책은 제2부 “길 없는 길”에서 우리 예술가들 가운데 보통 사람들이 갖지 못한 창조적인 에너지를 가진 삶들도 얘기도 한다.

그리고 마지막 제3부 “한국을 밟고 가라”에서 한국판 “반지의 제왕”, 조선후기 문인 죽계 김소행의 <삼한습유(三韓拾遺)>를 소개하고, 백운거사 이규보와 네 바퀴 달린 정자 ‘사륜정’을 얘기한다. 또 신흠의 상촌선생집 사습편의 내용을 보여주며, 진정한 선비를 찾고 있다.

지은이 이동식은 책에서 오랜 문화부 기자 생활에서 얻어진 전통문화에 대한 사랑을 절절히 담아낸다.

서양 그릇에 우리 정신 담은 '동도서기'는 옥에 티

하지만, 이 책에도 약간의 옥에 티는 있다. 전통문화에 대해 이야기를 하면서 제2부에 가야금 명인 황병기를 빼고는 전통문화인보다는 주로 서양문화인들을 소개해 아쉬웠다. 물론 판소리를 살려낸 임권택과 김수철, 걸쭉한 토속 노래를 하는 장사익 등은 넓은 범위의 전통문화인일 수 있지만 서양 그릇에 우리의 정신을 담은 동도서기의 모습일 것이기 때문이다.

또 “나의 것, 남의 것”에서 덕유산 국립공원 안에 외래종 꽃을 심은 것에 환경단체들이 반발하는 것은 무조건 이분법적 구분을 하는 것으로 우리 자신을 위해 바람직하지 않다고 말했지만 이는 조금 좁은 시각인 것으로 보였다. “자연공원법 내용은 잘 몰랐다”는 발전소 측의 해명은 참 궁색했고, 화려한 서양종 꽃보다는 소박한 토종 들꽃이 더 낫다는 생각을 할 수도 있지 않을까?

그런 약간의 옥에 티가 있음에도, 이 책의 훌륭함은 절대 지워지지 않는다. <찔레꽃과 된장>은 읽어가는 내내 소박한 찔레꽃의 아름다움을 볼 수 있고, 구수한 된장 맛이 느껴지기 때문이다. 독자들은 이 책을 읽는 동안 하루 이틀 쌓은 것이 아닌 30년 동안 문화부 기자로 쌓은 내공의 위력을 감지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지은이는 우리나라가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나라가 되기를 염원했다는 김구 선생의 말을 소개하면서 독자들에게 가장 아름다운 나라가 되는 방법을 함께 고민하자고 주문한다. 이제 무자년 새해도 밝았다. 돼지해에 우리는 새해 첫 달부터 이 책을 통해 진정 우리가 몇 %나 한국인인지 되돌아보고 가장 아름다운 나라가 되는 방법을 함께 고민해보자.

a 이동식 찔레꽃과 된장 지은이 이동식

이동식 찔레꽃과 된장 지은이 이동식 ⓒ 김영조

- 보통 문화 담당 기자들은 서양문화에만 관심을 둔다. 그런데 서양문화가 아닌 전통문화에 관심을 둔 까닭은 무엇인가?
“80년대 초 병아리 기자 시절 문화부로 배정을 받아 음악을 취재하는데, 국악을 취재하면 모르는 것이 너무 많아 기사를 쓰기가 어려울 정도였다. 서양 음악에 대해서는 물론 어느 정도 기본 지식은 있던 나는 그야말로 문화적 충격이었다.

그래서 우리에게 이런 현상이 온 까닭을 생각해보니 일본에 나라를 뺏겨 전통문화가 위축, 사장된데다, 해방이 된 이후도 새로운 서양문명이 밀려들어 오면서 서양에서 공부한 사람들이 우리 문화를 평가하고 이를 교과서에 반영하는 과정에서 생긴 것임을 알게 되었다. 90년대 중반 베이징특파원으로서, 중국의 전통문화를 보고 그 실태를 안 다음 그런 생각이 더욱 굳어졌으며 전통문화에 애정이 깊어갔다.”

- 책 이름을 “찔레꽃과 된장”으로 붙인 까닭은?
“우리 문화의 특질을 정의하면 조윤제 씨가 말한 '은근과 끈기'가 문학 관점에서 본 대표적인 것이고, 이어령 씨의 '신바람의 문화'가 동적인 면에서 본 것이라고 한다면 그런저런 다방면의 특질을 아우를 수 있는 말이 무엇일까 고민하다가 나온 제목이다.

중국이나 일본의 예술에 비해 그리 화려하지도 두드러지지도 않으면서도 짙은 향기와 품격이 있는 문화, 같은 된장이 동양 3국에 다 있지만 가장 된장을 맛있게 잘 만들어 먹는 사람들의 문화, 그래서 그런 이름을 생각해 본 것이다. 루스 베네딕트가 일본의 문화를 '국화와 칼'이라고 정의한 것이 유명한데, 같은 논법이라면 우리 문화는 '찔레꽃과 된장'이라고 하는 것이 어울리지 않을까?”

- 책에는 신흠이 말한 “가짜선비” 얘기가 나온다. 어느 시대건 “가짜선비”는 있게 마련인데, 이 시대는 어떤 사람들이 “가짜선비”라 할 수 있을까?
“어느 시대나 새로운 정권이 들어서면 새로운 정치가나 지식인들이 등장한다. 그들은 성급하게 이전의 정책은 다 문제가 있다고 규정하고 새로운 정책을 급조해서 발표하는 것은 물론 그전 정권에서 그런 역할을 했던 사람들의 문제점을 그대로 답습한다.

그들이 겉으로는 개혁을 표방하고 개선을 이야기하지만 결국에는 자신들의 생각만이 옳다는 독선과 오만에 빠지는 것이다. 그렇게 해서 다른 생각을 하는 사람들을 사회적으로 매장시키는데 이것이 과거 조선시대 흔히 우리가 당쟁으로 부르는 권력투쟁 시대의 가짜 선비와 다르지 않을 것이다.”

- 우리 전통문화에 담긴 철학 가운데 어떤 것이 가장 중요할까?
“참 선비정신이라고 생각한다. 선비정신이란 말이 참으로 이해하기도 어렵고 도달하기도 어려운 것 같지만, 자신만, 어느 특정 집단으로서의 우리만 잘되려는 생각을 버리고 우리 사회를 한 가정으로 보며, 우리 국민 하나하나를 가족으로 생각해서. 우리와 남들을 포함한 모두의 아픔을 두루 어루만지는 그런 마음가짐이 선비가 가져야 할 것이 아닌가 생각해본다.

조선시대 선비들이 이 세상과 우주의 원리가 무엇인지를 고민하고 자신이 바른 생각과 몸가짐을 하고 있는지 늘 반성하는 것을 기본으로 삼았다면 이 시대에도 그런 자세로 공동체적인 사회를 만들어가는 것이 중요하다. 그러한 사상과 철학이 가장 잘 담긴 것이 전통음악일 것이다.”

- 우리의 전통문화는 세계에 당당한 것인데도 실제 제 나라 사람에겐 인정을 못 받는다. 그 까닭은 무엇이며,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까?
  “전통문화를 저급한, 열등한 것으로 생각하고 스스로 부끄러워해서 배우려 하지 않았고 그것을 빨리 버리는 것이 세계 속에서 모범적인 사람이 된다고 생각해 온 데 따른 것으로 생각한다.

우리 어릴 때에 초가집을 부끄럽다고 모두 헐어버린 것에서부터, 전통음악은 기생음악이므로 서양의 고전음악을 가르쳐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 우리의 정치발달사는 오로지 정쟁과 모함의 역사였다고 잘 못 알고 그렇게 배워 우리 민족을 열등한 민족으로 생각해 온 것, 이런 생각이 잘못되었음을 인식하는 것만으로도 우리 전통문화는 새롭게 부활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가 그동안 수천 년 역사 속에서 가꾸어 온 전통문화가 결코 저급문화가 아니라 고급문화라는 인식을 하는 것, 오늘날 세계를 휩쓰는 서양문화도 중국이나 일본문화와 마찬가지로 문화의 한 현상이나 특징이지 그것 자체로 절대가 아니라는 것을 인식하면, 우리는 세계인들 앞에서 결코 주눅이 들지 않고 자랑스럽게 우리가 배워온 것, 생각한 것을 펼칠 수 있다. 그것이 곧 전통문화의 세계화다.”

- 전통문화 가운데는 왜곡된 것들이 많다. 예를 들면 종묘제례와 일본에서 역수입된 녹차와 다도, 풍물굿을 ‘농악’이라 부르고 성격이 다른 ‘사물놀이’와 같은 것으로 여기며, 일본말 찌꺼기를 마치 우리말처럼 예사로 쓰는 등이 그런 것일 게다. 그 까닭이 어디에 있다고 보며 어떻게 바로잡아야 할까?
“그것이야말로 가장 중요한 것인데, 그 까닭은 우리가 우리 문화를 중요시하게 생각하고 이를 기록하고 전수하는 것을 꺼렸기 때문일 것이다.

다도와 관련해 생각해보면 우리는 중국이나 일본과 달리 곳곳에서 샘처럼 나오는 물이 맑아서 굳이 차를 마시지 않아도 된다는 토양적인 차이가 있기 때문이라고도 할 수 있지만, 고려시대에 사찰에서 행해졌던 헌공다례 등의 의식이 구체적인 기록으로 전해지지 않으니까 근세에 들어서서 일본 다도를 응용해서 추정하는 것이고, 그러다 보니 일본식이 많이 들어오게 된 것이다.

풍물굿을 농악이라고 부르는 것도 우리가 뒤늦게 남이 정리한 우리 전통문화론을 배우느라고 생긴 현상으로 생각된다. 그러므로 우리의 전통문화를 바로 세우려면 전통문화를 제대로 연구하고 이런 관점에서 우리 문화를 알릴 문화론을 보급해야 한다. 이 책의 '우리에게 없는 것'이란 제목의 글에서도 언급했지만 오카쿠라 텐신과 같은 사람이 많이 나와야 할 것이다.”

- 전통문화와 관련된 앞으로의 계획은?
  “나는 지금 거문고 음악에 관심이 많은데 거문고를 통해서 동양의 음악세계를 들여다보고 있다. 음악은 단순한 오락이 아니고 가장 중요한 교육수단이고 심신수양의 방법임을 동양에서는 아득한 공자 이전단계에서부터 역설해 왔다. 이 음악의 세계를 여행해보고 이를 많은 사람에게 알리고 싶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다음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다음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찔레꽃과 된장 - 세계를 감동시킬 한국문화

이동식 지음,
나눔사, 2007


#찔레꽃과 된장 #이동식 #나눔사 #전통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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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으로 우리문화를 쉽고 재미있게 알리는 글쓰기와 강연을 한다. 전 참교육학부모회 서울동북부지회장, 한겨레신문독자주주모임 서울공동대표, 서울동대문중랑시민회의 공동대표를 지냈다. 전통한복을 올바로 계승한 소량, 고품격의 생활한복을 생산판매하는 '솔아솔아푸르른솔아'의 대표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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