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흐의 '특별한 방'을 엿보는 즐거움

[이미지 산책16] '불멸의 화가 반 고흐전'

등록 2008.03.03 08:52수정 2008.03.03 09:33
0
원고료로 응원
a '아를의 반 고흐의 방' 빈센트 반 고흐, 1889년, 57.5 x 74cm, 오르세 미술관. 지난해 '오르세미술관전'에서 전시됐던 작품.

'아를의 반 고흐의 방' 빈센트 반 고흐, 1889년, 57.5 x 74cm, 오르세 미술관. 지난해 '오르세미술관전'에서 전시됐던 작품. ⓒ RMN-Herve Lewandowski


오랜만에 [이미지 산책] 시리즈를 올리게 됐습니다. 지난번 글에 ‘반 고흐전’에서 뵙겠다고 했는데 전시가 거의 끝날 때쯤 글을 올리게 되어 죄송스럽게 생각합니다. 게으름을 용서하세요. 이번 글에서는 ‘오르세미술관전’에 이어 다시 고흐의 작품에 대한 생각을 잇습니다. <기자 주>

“여기 나는 이 좁은 방에 있지만, 나는 ‘문학’과 함께 그 크기를 잴 수 없는 무한한 공간인 내 ‘머릿속’에 있다. 여기가 나의 ‘방’이고, 이것은 나 자신을 성찰하는 방이며, 창조의 신비한 공간이 될 것이다.”


소설가 조경란이 한 신문 칼럼에 쓴 칼럼의 한 부분입니다. 칼럼의 제목은 ‘자기만의 방’이었습니다. 예전 글에서 한번 소개해 드린 적이 있습니다. 지금은 사정이 달라졌는지 모르겠지만, 3년 전의 형편에서 조경란의 방은 좁아터진 옥탑방이었습니다. 침대와 책상이 공간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방에서 그는 첫 소설 <불란서 안경원>을 썼습니다.

네덜란드 화가 빈센트 반 고흐는 타국 프랑스에서 처음으로 자기만의 방을 갖습니다. 태양빛 찬란한 남불 아를에서 발견한 ‘노란 집’의 방을 세 얻은 것입니다. 고흐는 이 방 그림을 화폭에 담았습니다. 그것이 작품 ‘아를의 방’입니다. 그 방은 고흐가 화가 공동체를 꿈꾸며 머물던 방이었습니다. 이 그림은 지난해 ‘오르세미술관전’을 통해 한국에 머물면서 많은 이들의 주목을 끌었습니다.

그런데 ‘집’과 ‘방’은 다른 뉘앙스를 띱니다. 특히 한국사회에서의 집은 소유의 개념이 강합니다. 아파트 값이 천정부지로 솟아오르고, 자기 집을 마련하기 위해 몇 십 년을 저축해야 하는 현실은 가혹하다 싶을 정도입니다. 이에 비해 ‘방’은 거주의 개념이 강합니다. ‘내 방’이라는 표현을 흔히들 쓰지만 이 표현은 ‘내 소유의 방’이라기보다는 ‘내가 머무는 방’이라는 의미가 더 강합니다.

더욱이 전세보다 월세의 개념이 강한 서구에서는 더욱 거주의 의미가 강화됩니다. 이사를 가더라도 기존의 가구는 그대로 남겨집니다. 더욱이 여러 나라가 붙어 있고, 공동체를 이루고 있는 유럽 사람들에게 거주지를 옮길 자유는 우리보다 큽니다.

고흐에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네덜란드 사람 고흐가 화가가 될 결심을 하고서 한참 후가 되긴 했지만 예술의 나라 프랑스로 향한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몇 년 동안 습작 기간을 거친 후 고흐는 파리 몽마르트 거리의 한 아파트에서 동생 테오와 함께 살았습니다. 그렇게 2년을 파리의 바쁜 삶과 긴장에 지치고 나서 아를에 온 것입니다. 고흐의 방은 그 후 셍 레미의 정신병원, 오베르 쉬르 우아즈의 여인숙 방으로 바뀝니다. 고흐는 평생 자기만의 집을 가져본 적이 없습니다. 거주할 ‘자기만의 방’만 있었습니다.


그러나 ‘자기만의 방’이 꼭 실물적인 것만은 아니라는 것을 소설가 조경란의 경우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동경하는 거주지가 상상 속에서 만들어집니다. 평생 소유할 수 없는 곳이라고 해도 상상 속에서는 아무런 비용을 들이지 않고 거주할 수 있습니다. 상상 속에서 소유는 허무합니다. 그러나 거주는 행복합니다. 실제의 방마저 없는 이들도 상상 속에서는 ‘자기만의 방’을 가질 수 있습니다. 어떻게 거주하느냐에 따라 그 집은 무한대로 커지고 빛날 수 있습니다.

a '노란 집' 빈센트 반 고흐. 72 x 91.5cm, 반 고흐 미술관.

'노란 집' 빈센트 반 고흐. 72 x 91.5cm, 반 고흐 미술관. ⓒ 반 고흐 미술관


지난해 11월부터 서울시립미술관에 고흐의 작품 ‘노란 집’이 ‘거주’하고 있습니다. ‘방문객’들이 무척 많지요. 40만 명이 넘었으니까요. 지난 2월 28일 세번째로 고흐 작품을 보러 찾아갔을 때는 봄방학을 맞이해 찾아든 관람객들로 북새통을 이루고 있었습니다. 어쩔 수 없이 '방문'을 포기하고 말았습니다.


새파란 하늘과 대조된 노란색의 집이 넓은 대로 모퉁이에 자리 잡고 있습니다. 이 집 2층에 바로 고흐가 거주하던, 동생의 도움으로 매달 월세를 내고 머물던 ‘아를의 방’이 있습니다. ‘아를의 방’에서 보였던 녹색 창문도 보입니다. 이 집 뒤로 카페 테라스도 그려져 있습니다. 1888년의 1년 남짓 거주한 이 집과 이 동네 주변에서 고흐는 187점의 유화를 그렸습니다.

한편 고흐는 ‘아를의 방’ 그림을 세 편 그렸는데, 이 중 두 편을 귀를 자르고 나서 요양원에 머물러야 했을 때 그렸습니다. 다시는 돌아가지 못한 ‘자기만의 방’을 상상하며 화폭에 담았습니다.

사람에겐 누구나 안식을 하고 자신만의 세계를 창조할 ‘자기만의 방’이 필요합니다. 바쁘게만 살면 지금 실제로 거주하고 있는 방도 자기만의 방이 되지 못합니다. 소유에만 집착해도 그렇습니다.

드디어 ‘공식적으로’ 봄이 됐네요. 학생들에겐 새 학기가 시작됐고요. 바쁠 때지만 그러는 동안에도 ‘자기만의 방’에 머물러 새로운 계획을 구상하는 시간은 필요할 것 같습니다. 실제의 방에서든 상상 속의 방에서든 새로 마련된 처소에서든 말입니다. 다시금 고흐의 ‘아를의 방’이 보고 싶어집니다.

덧붙이는 글 | '불멸의 화가 반 고흐전' : 3월 16일까지. 평일은 밤 10시, 주말은 8시까지. 저녁 7시 이후 입장권 구매시 2000원 할인.


덧붙이는 글 '불멸의 화가 반 고흐전' : 3월 16일까지. 평일은 밤 10시, 주말은 8시까지. 저녁 7시 이후 입장권 구매시 2000원 할인.
#이미지 산책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프랑스어 번역가이자, 산문 쓰기를 즐기는 자칭 낭만주의자입니다. ‘오마이뉴스’에 여행, 책 소개, 전시 평 등의 글을 썼습니다. 『보따니스트』 등 다섯 권의 번역서가 있고, 다음 ‘브런치’ 작가로도 활동하고 있습니다(https://brunch.co.kr/@brunocloud).


AD

AD

AD

인기기사

  1. 1 최근 알게 된 '평생직장', 정년도 은퇴도 없답니다 최근 알게 된 '평생직장', 정년도 은퇴도 없답니다
  2. 2 경남, 박근혜 탄핵 이후 최대 집회 "윤석열 퇴진" 경남, 박근혜 탄핵 이후 최대 집회 "윤석열 퇴진"
  3. 3 "은퇴 하면 뭐 하고 살거냐?" 그만 좀 물어봐요 "은퇴 하면 뭐 하고 살거냐?" 그만 좀 물어봐요
  4. 4 임종 앞둔 아버지, '앙금'만 쌓인 세 딸들의 속내 임종 앞둔 아버지, '앙금'만 쌓인 세 딸들의 속내
  5. 5 "V1, V2 윤건희 정권 퇴진하라" 숭례문~용산 행진 "V1, V2 윤건희 정권 퇴진하라" 숭례문~용산 행진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