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켈란젤로, 솜씨 좋은 사기꾼이었을까?

[책소개] 이연식의 <위작과 도난의 미술사>

등록 2008.05.09 14:40수정 2008.05.09 14: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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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길아트

ⓒ 한길아트

화가는 자기가 그린 그림이 아니라고 했다. 미술관과 감정협회는 그 화가가 그린 게 맞는다고 했다. 이런 경우 누구 말이 맞는 것일까? 설마 작가가 자기가 그린 그림을 몰라볼까, 하는 의문이 당연히 생기지만 그림을 너무 많이 그리다보니 착각을 하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추측을 할 수 있다.

 

이 사건은 바로 우리나라에서 실제로 일어났다. 천경자 화백의 <미인도>가 그 사건의 중심에 있다. 천 화백은 "이 그림이 자기가 그린 다른 작품을 흉내 낸 것이고, 붓질이나 제작연도를 표기하는 방식이 자기와 다르며, 자기가 한번도 그려본 적이 없는 흰 꽃이 등장한 점" 등을 지적하면서 자신이 그린 것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현대미술관 쪽에서는 "그림에 대한 현미경 분석과 안료에 대한 화학적 실험, 이 그림이 국립현대미술관에 들어오게 된 경위" 등을 내세워 진품이라고 주장했다.

 

이렇게 양쪽의 주장이 팽팽하다면 전문가가 감정을 하면 되지 않을까? 해서 한국화랑협회 감정위원회가 나섰다. 결과는? 진품이란다. 그렇다면 <미인도>는 천 화백이 그린 것이 확실할까?

 

천경자의 <미인도>, 위작일까 진품일까?

 

이 사건으로 천 화백은 자신의 주장과 다른 결론을 내린 미술관과 협회 측의 태도에 큰 충격을 받아 절필선언을 하고 미국으로 떠나는 것으로 마무리되었다. 이 대목에서 고개를 갸웃하게 된다. 천 화백이 붓을 꺾을 정도였다면 그 그림 혹시 가짜?

 

그런데, 이 그림을 그렸다는 자칭 위조범이 나타났다. 자칭 위조범은 "화랑을 하는 친구에게 돈을 조금 받고 달력 그림 몇 개를 섞어서 이 그림을 만들었다"고 고백했다. 천 화백이 자기가 그린 그림이 아니라고 했고, 그림을 그렸다고 주장하는 위조범도 나타났으니 <미인도>는 가짜임이 분명하다는 결론이 내려졌을까?

 

국립미술관 측은 그의 폭로는 앞선 감정 결과를 뒤집을 만한 근거가 되지 못한다며 기존 입장을 고수했고, 검찰에서는 미술품 위조사건의 공소시효가 3년이라는 이유로 수사를 하지 않았기 때문에 사건은 다시 한 번 유야무야되었다.

 

위작 사건은 이것 말고도 많다. 가깝게는 지난 2005년 이중섭과 박수근의 유작을 둘러싸고 위작 논란이 일었다. 검찰이 수사에 들어갔으니 '논란'으로만 끝났다고 할 수는 없겠다.

 

이연식의 <위작과 도난의 미술사>는 우리나라를 비롯한 외국의 미술품의 위작과 도난에 대한 이야기를 1부(솜씨 좋은 사기꾼들 - 미술품 위작의 세계)와 2부(탐욕이 폭력과 결합할 때 - 미술품 도난의 세계)로 나누어 아주 흥미진진하게 다루고 있다. 어지간한 추리소설보다 더 드라마틱하고 재미있다.

 

미술품의 위작이 관심을 끄는 것은 유명 작가의 미술품이 상상을 초월한 엄청난 값으로 거래되기 때문이다. 가짜를 진짜인양 속여서 판다면 엄청난 폭리를 얻을 수 있다. 소액의 투자(?)를 통해 거액의 이윤(?)을 창출할 수 있는 것이다. 한마디로 남는 장사라는 얘기가 되겠다.

 

물론 아무나 만든다고 진짜 같은 위작이 되는 건 아니다. 전문적인 감정가들의 눈을 속일 수 있을 정도로 정교해야 한다. 그래서 다양한 방법이 동원된다. 위조하고자 하는 작가가 살던 시대의 캔버스나 물감을 입수하거나 만들어서 사용하는 건 기본이다.

 

위작은 아무나 만드나... 전문가를 속여라

 

아무리 그렇다고 하더라도 전문가들이 속는다는 건 문제가 있다. 위작을 진품이라고 감정을 해주면 위작에 날개를 달아주는 격이 아닌가. 이런 얼빠진 전문가들 때문에 위조범이 자기가 그린 그림이 위작이라고 고백해도 오히려 거짓말 하지 말라고 다그치는 일마저 일어난다.

 

오죽했으면 위조범이 자신이 가짜 그림을 그렸다는 사실을 증명하기 위해 위작하는 모습을 시연하는 해프닝까지 벌어질까. 이쯤 되면 전문가들의 감식안을 선뜻 믿을 수 없다는 불평이 터져 나올 수밖에 없다. 덕분에 미술품의 진위를 알아내는 감정의 기술이 빠르게 진보할 수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위작은 이렇게 돈에 눈이 먼 자들만 만들까? 아니다. 저자는 미켈란젤로 역시 위작을 만든 적이 있다는 재미난 에피소드를 소개한다.

 

미술품을 위협하는 또 다른 문제는 바로 도난. 유명 미술품은 몸값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엄청나다니 훔쳐다가 팔면 돈이 되지 않을까, 이런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하나둘이 아니라고 한다. 실제로 도둑에게 털린 미술관이 여럿 있다.

 

미술품이라는 게 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그 모습을 보여주면서 지켜내야 하는 이중성을 지니고 있다. 해서 감시체계가 잘 갖춰져야 한다. 그런데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프랑스의 루브르 미술관에서도 그림을 도둑맞은 적이 있으며, 노르웨이 국립미술관에 소장되어 있던 뭉크의 <절규>도 한 때 도둑을 맞기도 했다. 솔직히 어이가 없다. 아무리 열 장정이 한 도둑을 못 지킨다고 해도, 국제적인 명성이 있는데 말이다.

 

도둑은 루브르 미술관도 털었다

 

도둑이 미술품을 노리는 건 다른 나라 이야기만은 아니다. 우리나라의 미술품도 도둑의 집요한 시선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게 현실이다. 김흥수의 화백의 <나부좌상>도 도둑맞았다가 되찾았다.

 

<위작과 도난의 미술사>에는 도난당한 미술품에 관한 이야기뿐만 아니라 그것을 훔쳐간 도둑들의 이야기도 다룬다. 

 

동생을 감옥에서 빼내려고 그림을 훔쳤으나, 똑똑한 변호사 덕분에 동생이 석방돼 어쩔 수 없이 25년간 그림을 갖고 있어야 했던 비운(?)의 도둑 이야기가 있는가 하면, 그림을 훔쳐서 팔면 쉽게 돈을 벌 수 있을 것 같아 그림을 훔쳤지만 끝내 팔지 못한 도둑의 이야기도 있다. 이런 경우 왜 훔쳤니, 하면서 조롱해주고 싶다.

 

영화 속에서 명화를 훔치는 도둑들은 나름대로 미술품에 대한 감식안을 가지고 있는데 실제로 도둑들도 그럴까? 훔친 그림은 어떤 경로를 통해서 유통되는지 혹은 다시 미술관으로 돌아오게 될까?

 

이런 의문들을 저자는 미술품에 대한 문외한도 이해하기 쉽게 탁월한 이야기꾼이 되어 술술 풀어낸다. 덕분에 별다른 기대감 없이 첫 장을 넘겼다가 마지막 장까지 단숨에 읽을 수 있었다. 미술품들을 둘러싼 요지경 속을 적나라하게 보고 싶다면 이 책을 권한다.

2008.05.09 14:40ⓒ 2008 OhmyNews

위작과 도난의 미술사 - 허위와 탐욕의 양상

이연식 지음,
한길아트, 2008


#이연식 #미술사 #위작 #도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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