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섭고 외로운 당신, 도망갈래? 싸울래?

[서평] 이종호 <분신사바>, <이프>

등록 2008.05.31 12:23수정 2008.05.31 1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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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분신사바> 이종호 작가의 2004년 작품

<분신사바> 이종호 작가의 2004년 작품 ⓒ 황금가지


미스터리소설과 공포소설의 가장 큰 차이는 어떤 것일까. 독자가 읽으면서 오싹한 두려움을 느끼는 지의 여부도 포함될 것이다.

하지만 같은 소설을 읽더라도 느끼는 감정은 개인마다 천차만별이다. 일단 독자의 감상은 배제하고 텍스트 자체에만 국한시켜 본다면, 가장 고전적인 분류법은 아래와 같은 것이다.


이 두 가지 소설은 모두 일반적으로는 볼 수 없는 기괴한 상황과 사건을 나열하면서 시작하는 경우가 많다. 소설이 전개되면서 이런 사건들은 연달아 발생하고, 독자들의 호기심은 증폭되어 간다. 그 호기심의 끝에는 '이런 사건들의 정체는 무엇일까?' 하는 점이 포함되어 있다.

문제는 이 부분에 있다. 현실에서 벌어지는 비현실적인 사건들을 어떻게 마무리하는 지가 중요하다. 사건의 발단과 전개, 그리고 결말부분에서 초자연적이고 초현실적인 요소들이 많이 개입할수록 그 소설은 공포소설에 가까워진다.

반면 약간의 억지가 포함되더라도 상식적인 인과관계를 가지고 있다면 그 소설은 미스터리의 범주에 넣을 수 있을 것이다. 여기서 초현실적인 요소들을 극단적으로 끌고 간다면 그것은 판타지소설이 된다.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공포소설 작가 이종호의 작품 <분신사바>, <이프>를 읽으면서 들었던 생각 중의 하나가 '미스터리와 공포의 경계는 무엇일까' 하는 점이었다. <분신사바>는 2004년에 동명의 영화로도 만들어졌다. 그리고 <이프> 역시 영화로 제작될 예정이다. 미스터리와 공포의 경계는 둘째치고, 이 작품들은 모두 현실 속에서 소외된 사람들을 다룬다는 점에서 흥미롭다.

<분신사바> 작은 마을과 학교에서 발생하는 집단따돌림


제목부터가 심상치않은 작품 <분신사바>의 무대는 시골의 작은 마을 Y읍과 그 안에 있는 Y고교이다. 소설은 전개되는 동안 이 읍과 고교를 한 차례도 벗어나지 않는다.

Y읍은 작은 마을이지만 동전의 양면 같은 얼굴을 하고 있다. 극히 단조롭고 평범한 일상이 반복되는 전형적인 농촌마을의 모습이 있는가 하면, 드러나진 않지만 언젠가는 폭발하고 말 것 같은 기묘한 긴장감이 함께 흐르고 있다.


그 긴장감은 기가 막히게 균형을 이루어서 금방 무너질 것 같으면서도 결코 무너지지 않는 단단한 공동체로 지금까지 마을을 유지해 왔다. 그만큼 이 마을은 도심에서 지리적으로나 정서적으로 멀리 떨어진 폐쇄적인 곳이다. 그리고 집집이 액막이용 부적을 모두 하나씩 가지고 있을 만큼 마을 곳곳에 미신의 흔적이 산재해 있다.

이 마을로 어느 날 대도시에서 한 가족이 이사 오고, 그 집의 딸 유진은 Y고교에 다니게 된다. 기존의 학생들은 텃세를 부리면서 유진을 따돌리고, 도시 출신의 유진은 나름대로 시골의 학생들을 무시하고 경멸한다. 그럴수록 학생들은 더욱 심하게 유진을 따돌리고 노골적으로 괴롭히게 된다.

유진이 전학 오고 얼마 후에, 역시 도시에서 미술선생 은주가 Y고교로 부임 받아서 온다. 은주는 어느 모로 보나 시골 고교와는 어울리지 않는 인상을 하고 있다. 화려하지는 않지만 세련된 외모와 옷차림을 한 은주는 오자마자 남학생들의 인기를 독차지하게 된다.

은주와 유진이 오고 난 다음부터 학교에, 그리고 나아가서 마을에 기괴한 일들이 하나씩 발생한다. 따돌림을 참지 못한 유진은 나름대로 아이들에 대한 복수를 계획하고, 어딘지 어두운 구석이 있는 은주는 학교에서 헛것을 보다가 쓰러지기도 한다. 그동안 자신들 만의 공동체를 형성해왔던 마을에서는, 어느 날 갑자기 외부에서 온 이들을 곱지 않은 시선으로 바라본다. 그리고 연달아서 터지는 끔찍한 죽음들.

'분신사바'라는 말은 20여 년 전에 우리나라에서도 유행했던 귀신을 불러내는 주문의 구절이다. 주문을 외우면 펑하고 나타나는 램프의 요정처럼, 이 주문을 적절한 장소에서 외우면 구천을 떠도는 혼이 자신 앞에 나타날지 모른다. 하지만 그 혼이 이승에서의 원한을 간직한 채 잠들지 못하는 원혼이라면 어떻게 할까. <분신사바>는 한국형의 공포물이다. 미신의 기운이 강하게 남아있는 시골마을, 한을 품고 죽어간 수십 년 전의 여인, 원한관계에 따른 인물설정 그리고 마지막 대단원까지.

<이프> 자살하는 동영상을 메일로 받는 사람들

a <이프> 이종호 작가의 2006년 작품

<이프> 이종호 작가의 2006년 작품 ⓒ 황금가지


반면에 <이프>는 이보다 좀 더 복잡한 구성을 갖는다. 작품의 무대도 넓고 인물 간의 관계도 다채롭다. 역시 <이프>의 도입부도 기이한 사건으로 시작된다. 한 남자가 동영상이 첨부된 이메일을 받는다. 그 동영상은 한 여인이 건물 옥상에서 투신자살하는 모습을 담은 것이다.

이메일을 보낸 사람이 누구인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광고메일이나 스팸메일도 아니다. 불특정다수에게 보낸 것이 아니라, 자신만을 향해서 보낸 것이 틀림없다. 메일을 받고 난 다음부터 그의 주변에서 이상한 일들이 발생한다. 그동안 믿어왔던 자신의 모습이 조금씩 어긋나기 시작하는 것이다.

이런 일들은 한 사람에게만 일어나지 않는다. 고등학교에 다니는 남학생에게, 20대의 여대생에게, 그리고 20대의 편의점 아르바이트 직원에게도 이런 일이 발생한다. 이들은 어느 날 갑자기 동영상이 첨부된 메일을 받는다. 그 동영상에는 각기 다른 사람이 끔찍하게 죽는 모습이 담겨 있다.

자살처럼 생각되지만 단순한 자살이라고는 보기 힘든 영상이다. 그렇다고 조작된 것 같지도 않다. 동영상 메일을 받는 사람들끼리 서로 인간관계를 가지고 있는 것도 아니고, 이들은 서로 모르는 사람들이다. 이들 사이에 어떤 공통점이 있는 것도 아니다. 공통점이 있다면 한가지, 메일을 받은 다음부터 이들이 바라보는 현실은 조금씩 왜곡되어 간다는 점이다.

신문기자 도엽은 어느 날 우연히 이 사건에 관계하게 된다. 도엽의 주변에서도 우연한 일치라고 보기에는 이상한 일들이 끊임없이 발생한다. 계속되는 우연은 우연이 아니라 교묘하게 조작된 필연일 가능성이 많다. 도엽은 최면에라도 걸린 듯이 사건 속으로 한발한발 빠져들게 된다.

사회적 소외가 만들어내는 공포

<분신사바>에 비해서 <이프>는 미스터리의 요소가 강하다. 읽다 보면 사방에 흩어져 있던 복선과 단서가 어느새 한곳으로 모인다. 그 배후에는 등장인물들의 운명을 조종하는 한 명의 인물이 있다. 호기심은 크게 두 가지다. 배후인물의 최종 의도가 무엇일까? 그리고 메일을 받은 사람들은 어떤 사연을 가지고 있을까?

<이프>의 희생자들은 모두 사회의 통념이나 편견에 의해서 고통받아오던 사람들이다. 성적 때문에 스트레스 받는 학생, 몹쓸 병에 걸린 환자, 경제적 무능으로 절망에 빠진 가장, 무리한 다이어트로 인해서 오히려 폭식증이 생긴 여성 등. 삶의 끄트머리에서 이들은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희망을 찾아서 허우적댄다. 그리고 이를 통해서 한가지 질문을 던진다. 현실을 왜곡시키더라도, 그동안 고통받던 사람을 잠시라도 행복하게 만들 수 있다면 그것은 가치 있는 일일까?

이런 점은 <분신사바>도 마찬가지다. 대도시로부터 뚝 떨어진 곳에서 폐쇄적 삶을 살아가는 마을의 주민들. 이들은 자신들이 소외된 삶을 살고 있다는 사실도 모르고 이 곳을 찾아오는 누군가를 다시 외면하고 있다. 자신들이 편견의 희생자임에도 또 다른 희생양을 찾아서 응징해야만 마음을 놓을 수 있는 것이다. 그 응징의 형태도 여러 가지다. 집단으로 따돌리고, 폭행하고 급기야는 생명을 담보로 위협하기까지 한다.

<분신사바>와 <이프>의 공포도 그 부분에서 시작된다. 누군가가 자신을 끊임없이 외면한다면, 사회와 단체가 자신을 계속 억압한다면 어떻게 될까. 반응은 두 가지 중의 하나다. 뒤돌아서 도망가거나 아니면 맞서 싸우거나. 어느 쪽이건 자신은 변화하게 되어 있다. 그리고 그 변화는 긍정적인 변화가 아닐 것이다. 계속되는 억압으로 인해서 자신의 모습이 조금씩 변해간다는 것, 그거야말로 가장 끔찍한 공포다.

분신사바

이종호 지음,
황금가지, 2004


#분신사바 #이프 #이종호 #공포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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