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의 모든 길은 '테르미니'로 통한다

[유럽기행 49] 로마 테르미니(Termini) 역 기행

등록 2008.08.26 10:57수정 2008.08.26 10: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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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테르미니 역 앞 광장 로마의 교통센터 역할을 하고 있다.

테르미니 역 앞 광장 로마의 교통센터 역할을 하고 있다. ⓒ 노시경


로마의 테르미니(Termini)역. 역 앞은 차들이 쏟아내는 빵빵 소리에 소란스러웠다. 유럽의 다른 도시들과는 달리 로마에서만 들을 수 있는 번잡한 소리들이다. 나는 로마 사람들의 급하게 운전하는 습관과 차들의 소음이 우리나라와 참으로 닮았다는 생각을 했다.

역 정문 앞으로 걸어가는데 500인 광장(Piazza del Cinquecento)이 눈에 들어왔다. 이 광장은 1887년, 에티오피아에서 죽은 500인의 이탈리아 무명용사를 기념하는 광장이다. 교통 센터의 역할도 하고 있는 이곳은 20여개 버스노선의 종점이 연결되어 있고, 시티투어 2층 버스 정류장도 함께 있다. 역 바로 앞에는 수많은 택시들이 여행자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테르미니 역 자리는 원래 로마 최초의 성벽이었던 세르비우스(Servius) 성벽이 지나던 자리다. 로마의 6대 황제였던 세르비우스가 기원전 378년에 로마의 일곱 언덕을 둘러싸는 성벽을 쌓았고 그 성벽이 이곳까지 연결하고 있었다. 기원전 390년 켈트족의 침입을 겪은 후 황제가 된 세르비우스가 서둘러 쌓은 성벽이 이 성벽이다.

실제로 이 성벽은 기원전 3세기 말에 카르타고의 한니발(Hannibal)이 침입했을 때 방어 성벽으로서 중요한 기능을 하였다. 그 성벽의 일부가 아직도 역의 광장에 남아 있는 성벽이다. 로마의 역사를 모른 채 보면 그냥 큰 돌, 작은 돌이지만 성벽의 역사를 알고 보면 범상치 않은 곳이다.

기원전 1세기에 율리우스 카이사르(Julius Caesar)가 강대해진 로마제국에는 성벽이 필요 없다고 판단하여 세르비우스 성벽을 철거하였다. 눈앞에 보이는 이 성벽은 그 때에도 살아남은 성벽이고, 건설된 지 2400년이 지났지만 지금도 견고하다. 성벽이 필요 없다고 할 정도로 자신만만한 제국의 위용을 자랑하던 로마 제국은 사라지고 없지만 이 성벽이 그 역사의 편린으로 남아 있다.

이탈리아의 모든 길은 '테르미니 역'으로 통한다

a 테르미니 역 내부 세계의 많은 여행자들이 기차를 기다리고 있다.

테르미니 역 내부 세계의 많은 여행자들이 기차를 기다리고 있다. ⓒ 노시경


대부분의 성벽이 허물어진 후 이 곳에는 작은 목욕탕 건물이 들어섰다. 이 목욕탕 건물은  주변의 디오클레지아노(Diocleziano) 대규모 목욕탕 옆에 자리 잡았던 작은 목욕탕이었다.  1867년에 이 목욕탕 자리에 역이 건설되었다. 목욕탕이나 샘을 뜻하는 라틴어 '테르미(terme)'에서 '테르미니(termini)'라는 이름이 나왔다.


그 후 테르미니 역은 1939년에 재건축이 시작되어 2차 세계대전으로 잠시 중단되었다가 1947년에 거대한 대리석 건물로 완공되었다. 나는 땅 속에 유적지가 산재한 로마에서 너무 유적지 한복판에 역 건물이 세워진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가족과 함께 역 안으로 들어섰다. 로마 전통건축물의 영향을 받았으면서도 왠지 이탈리아의 전체주의적인 분위기가 풍기는 건물이다. 놀랍게도 이 큰 역의 지붕에는 큰 기둥이 거의 없었다. 다양한 행사가 열리기도 하는 테르미니 역 중간 홀은 이러한 지붕 모양 때문에 공룡이라고 불리고 있었다. 20여m에 달하는 곡선 콘크리트지붕을 기둥 없이 지탱하는 것은 당시로서는 최첨단 공법이었다. 1960년대까지만 해도 이탈리아의 시공 기술은 유럽에서 가장 높은 수준이었다고 한다.


건축 당시부터 혁신적이었던 역 건물 내부에는 이탈리아의 수없이 많은 명품 광고들이 여행자들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수많은 인파가 무려 29개나 되는 플랫폼 앞에 있었고, 많은 사람들이 출발 현황판을 바라보고 있었다. 역사 내는 여기저기 이동하는 사람들로 혼잡하기가 이를 데 없었다.

테르미니 역에는 이탈리아의 각 도시들과 유럽의 대도시들을 연결하는 기차들이 쉴 새 없이 들어오고 있었다. 하루 약 800대의 기차가 발착하고, 그 기차를 하루 약 50만 명이 이용하는 역이 바로 이 테르미니 역이다. 과거에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고 했지만, 현재 이탈리아를 여행하는 사람들은 모두 로마의 테르미니 역으로 향하고 있었다.

나는 나를 스쳐 지나가는 인파 속에서 여행가방과 카메라를 꼭 쥐고 걸었다. 수많은 외국 여행자들이 부산하게 움직이는 이 역은 세계적인 소매치기들의 집결지로 유명한 곳이기 때문이다. 특히 배낭 여행자들 사이에서 테르미니 역은 소매치기들로 악명이 자자한 곳이었다.

소매치기가 역에서 활개를 치는 것은 역을 이용하는 사람들이 수 십 만 명에 이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역의 구조가 우리나라와는 다르기 때문이기도 하다. 우리나라 기차역 플랫폼은 티켓을 개찰한 후에 들어갈 수 있지만, 테르미니 역은 완전히 외부에 개방되어 있어서 수많은 기차에 접근하는 데에 아무런 제한이 없다. 그래서 소매치기들도 역 내부의 기차 안과 플랫폼 어디에도 쉽게 접근하는 것이다.

나는 테르미니 역에서 지하철을 타고 콜로세움(Colosseum)으로 가기로 하였다. 테르미니 역이 지하철 A선과 B선의 유일한 환승역이고, 테르미니 역에서 지하철 B선의 콜로세오(Colosseo) 지하철역으로 가는 지하철을 탈 수 있었다. 나는 로마의 4유로짜리 1일권 교통티켓을 2장 샀다. 딸아이는 어린이라서 지하철 승차요금이 무료라고 한다. 오늘 하루는 로마의 지하철도 타고 버스도 타면서 이동하기로 했다.

소매치기를 보며 떠오른 17년 전 추억

a 테르미니 역 많은 여행자들과 소매치기들로 부산한 곳이다.

테르미니 역 많은 여행자들과 소매치기들로 부산한 곳이다. ⓒ 노시경


지하철역을 찾아가면서 나는 도착 홈에 베니스에서 출발한 기차가 들어온 것이 보였다. 나의 머릿속에는 배낭여행 때의 잊지 못할 추억들이 순간적으로 지나갔다. 나는 17년 전 어느 겨울날, 베니스에서 야간기차를 타고 이 테르미니 역에 내리고 있었다.

지금도 그렇지만 당시에도 이태리 야간열차에는 소매치기들이 들끓고 있었다. 여행자들 사이에 온갖 유언비어도 돌았지만, 베니스-로마 구간의 소매치기 이야기들은 현실이었다. 야간 기차 여행을 걱정하던 베니스 역 구내에 우리나라 대학생 배낭여행족들이 몰려들고 있었다. 우리는 소매치기들을 걱정하며 이야기하다가 남학생들 사이에서 군대 불침번 이야기가 나왔다.

"그렇지! 돌아가면서 불침번을 서면되겠다!"

야간열차 여행시간은 8시간. 불침번은 1시간에 2명씩 16명이 필요했다. 우리는 여학생들을 제외하고 남학생들의 수를 세어보았다. 놀랍게도 남학생 수는 정확히 16명이었다. 우리는 불침번 순서를 정하는 사다리 타기를 했고, 나는 정말 운 좋게도 가장 마지막 1시간 동안 불침번을 서게 되었다.

불침번을 서는 남학생들을 향해 여행에서 만난 한국 여학생들은 동포애를 느끼고 있었다.

"오빠! 고마워, 수고 좀 해 줘"

로마행 야간열차의 한 객차를 한국 배낭족들이 차지하고, 그 복도에서 남학생들이 불침번을 서기 시작했다. 나는 객실로 들어가서 눈을 붙였다.

아침에 일어나서 불침번을 섰던 친구들에게 들으니 마지막 객실에 있는 이탈리아 녀석들이 수상하다고 했다. 가끔 문을 열어보면서 우리 불침번들의 동정을 살펴보고 있다는 것이다.

나는 세수를 재빨리 한 후 동족들을 지킨다는 사명감으로 불침번을 섰다. 군대 훈련이 여기에서 실전 적용될 줄은 몰랐다. 나의 불침번 동료는 이탈리아 여행지에서 계속 마주쳤던 '가죽 잠바' 3인조 여행팀의 한명이었다. 덩치 좋고 말투가 시원시원한 그와 함께 불침번을 선 것도 행운이었다.

객차의 마지막 객실에 있던 소매치기들이 드디어 움직였다. 이 녀석들은 우리가 탄 객차를 피해서 다른 객차로 가고 있었다. 그리고 한참 후에 돌아왔다. 그들이 옆 객차에서 실적을 올리고 돌아오는 길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나의 불침번 동료는 그들을 보고 참지 못했다. 태권도 유단자인 그는 다리를 들어 기차 복도의 천정을 찍고 내려왔다. 우리 객차의 한국인들에게는 접근하지 말라는 경고의 표시였다.

다행히 우리 한국의 배낭족들은 별일 당하지 않고 로마의 테르미니 역에 무사히 도착했다. 역 구내에는 아침햇살이 쏟아지고 있었다. 기차의 소매치기들은 기차에서 내리지 않고 우리들을 물끄러미 쳐다보고 있었다. 우리 불침번들은 모두 소집되어 한 번씩 '하이 파이브'를 하고 헤어졌다. 우리는 서로에게 로마 여행 잘 하라는 인사들을 하고 헤어졌다.

그 친구들이 지금은 어디서 무엇을 하는지 참 궁금하다. 40대 초반이 되었을 그들이 힘든 세파를 잘 헤쳐 나가는지….

나는 다시 로마 테르미니 역의 한복판에 있었다. 나는 아내와 딸을 데리고 소매치기로 유명한 로마의 지하철을 타러 내려가고 있었다. 수많은 인파가 내 주변을 지나가고 있었다. 귀중품과 현금은 모두 내 몸에 있었고, 나는 어깨에 멘 여행 가방을 손으로도 잡고 걸었다. 

나와 아내, 딸 앞에 지하철이 와서 멎었다. 지하철 내에 참 많은 사람들이 타고 있었다. 나는 지하철 한 대를 그냥 보냈다. 그리고 지하철의 가장 앞 객차가 도착하는 자리로 이동했다. 다시 로마의 지하철 한 대가 우리 가족 앞에 와서 섰다.

a 로마의 지하철 타기 낡은 지하철을 수많은 사람들이 이용하고 있다.

로마의 지하철 타기 낡은 지하철을 수많은 사람들이 이용하고 있다. ⓒ 노시경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U포터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덧붙이는 글 이기사는 U포터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이탈리아 #로마 #테르미니 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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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와 외국을 여행하면서 생기는 한 지역에 대한 궁금증을 해소하는 지식을 공유하고자 하며, 한 지역에 나타난 사회/문화 현상의 이면을 파헤쳐보고자 기자회원으로 가입합니다. 저는 세계 50개국의 문화유산을 답사하였고, '우리는 지금 베트남/캄보디아/라오스로 간다(민서출판사)'를 출간하였으며, 근무 중인 회사의 사보에 10년 동안 세계기행을 연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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