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본들
유혜준
함백산에 야생화가 많다더니 맞네요. 걷는 길마다 색색가지 꽃들이 피어 있습니다. 특히 보랏빛 꽃이 많습니다. 하긴 요즘 벌개미취가 한창입니다. 그런데 이곳에는 개미취와 구절초 등과 같이 무더기로 피어 있네요. 길을 걷다가 야생화에 자꾸 눈길을 빼앗겨 걸음이 더뎌지곤 합니다. 주홍빛 동자꽃, 참 곱습니다.
어렸을 때 장미가 세상에서 가장 예쁜 꽃이라고 들었습니다. 그래서 그런 줄 알았지요. 하지만 요즘은 그렇지 않다는 사실을 깨닫고 또 깨닫습니다. 세상에 가장 예쁜 꽃은 없습니다. 꽃들은 저마다 아름다움을 간직하고 있고, 그것을 서로 비교한다는 것은 아무 의미가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지요.
아, 드디어 함백산 정상에 도착했습니다. 이곳의 높이는 1572.9m. 표지석 앞에 서니 바람이 붑니다. 처음에는 시원하게 느껴졌던 바람이 나중에는 추위를 느끼게 합니다. 배낭에서 바람을 막아주는 얇은 겉옷을 꺼내 입습니다.
'야생화의 천국'이라는 만항재가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걷기 좋은 오솔길은 여전히 이어지고 있습니다. 가끔은 돌길이 나오고, 오르막길과 내리막길도 이어지지만 험하다고 할 수 없는 길입니다. 물론 처음 걷는 사람들에게는 힘겨울 수도 있습니다만 조금 천천히 걸으면 됩니다. 나무를 보고, 들꽃을 보고, 풀을 보고, 하늘을 보고, 구름을 보고, 바람을 느끼면서.
만항재에는 야생화 탐방로가 있습니다. 길을 아주 잘 만들어 놓았습니다. 야생화가 한창이던 지난주까지 야생화 축제가 열렸답니다. 이제는 꽃이 지기 시작하는 계절입니다. 군데군데 시든 꽃들이 보입니다. 세상에는 영원한 것이 없다지요. 아름답게 피어난 시기가 있다면 꽃잎을 떨구고 씨를 머금어야 하는 시기도 있는 법. 그것이 세상의 이치인 것이지요.
야생화 탐방로를 천천히 둘러봅니다. 꽃이름을 알려주는 표지판이 곳곳에 있습니다. 표지판의 사진과 이름을 보고, 꽃들과 비교합니다. 아, 저게 오이풀이야. 저게 노루오줌이고, 저건 뚝갈. 하지만 돌아서면 꽃이름을 금방 잊습니다.
야생화의 이름을 한꺼번에 다 외우는 건 불가능에 가깝지요. 한 번에 두어 개씩만 알아둔다면 점점 이름을 아는 야생화가 많아지지 않을까, 합니다. 그래서 이름을 죄다 외우려는 욕심을 버렸답니다.
만항재, 야생화의 천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