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즈베키스탄 도보횡단구르렌 가는 길
김준희
간밤에 술을 마셨다고 해서 게으름을 피울 수는 없다. 나는 아침 7시에 일어나서 루스탐에게 작별인사를 하고 다시 길을 나섰다. 오늘 목적지인 구르렌까지는 약 45km라고 한다. 머나먼 길이다. 하지만 주변환경이 좋기 때문에 그다지 힘들지는 않을 것이다.
"한국 친구! 차 한잔 마시고 가!"
도시를 벗어날 때쯤 되자 넓은 집에서 뛰쳐나온 두 명의 젊은이가 날 부른다. 저 사람들은 누구지? 내가 한국인이라는 걸 어떻게 알았을까?
출발 전에 대충 요기라도 하고 싶어서 나는 그들의 집으로 들어갔다. 이 두 명은 형제 사이다. 집 안쪽의 평상에 앉자 이들은 차, 전통빵, 포도, 토마토 등을 차례대로 내온다. 맏형의 이름도 루스탐이다. 우즈베키스탄에서 '루스탐'이란 이름이 흔한 이름인가 보다.
이들은 어젯밤에 시내에서 날 보았다고 한다. 내가 현지 친구들과 어울려서 술판을 벌이던 도중에 자기들과 악수하고 인사했단다. 그런데 난 아무리 기억을 더듬어도 이들을 만난 적이 없는 것 같다. 술 마시고 필름이 끊기는 현상은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나타난다. 뒤끝이 좋은 보드카도 이런 점에 대해서는 속수무책이다.
걸어서 타슈켄트까지 간다니까 루스탐은 공책에 그림을 그리면서 설명한다. 여기서 구르렌까지는 도중에 작은 마을도 있고 식당도 많아서 어려운 점이 없다. 대신에 사막에 들어가면 좀 힘들거다. 사막에 가면 50km마다 경찰 검문소가 있는데 거기 가면 잘 수도 있고 쉴 수도 있다.
말이 안 통하면서도 루스탐은 이런 점들을 차분하게 설명한다. 아직은 사막을 생각할 때가 아닌데도 이 친구의 말을 들으니까 걱정이 된다. 50km라, 내가 하루에 사막에서 그 거리를 걸을 수 있을까.
빵과 포도를 배부르게 먹고 나는 다시 길을 나섰다. 도로 양쪽으로는 넓은 목화밭이 펼쳐져 있지만 내 머릿속에는 방금 들은 사막, 50km가 떠돌고 있다. 그 거리를 걷기 위해서는 물과 식량이 얼마나 필요할지 모르겠다. 군대 신병훈련소의 기억이 떠오른다. 내가 입소했던 때는 한참 더운 7월이었다. 그때 조교가 이런 말을 했었다.
"한여름에 야외에서 훈련받으려면 물을 많이 마시지 마라. 많이 마신 물은 땀으로 배출되고, 그러다보면 탈수증이 생긴다. 물은 적게 마시고 대신 소금정제를 먹어라."반면에 여름에 걸어서 사막을 통과했던 프랑스의 베르나르 올리비에는 다른 이야기를 한다. 간단하게 말해서 여름에 걸으려면 물이 많을수록 좋다는 것이다. 이 사람은 당시에 하루 10리터의 물을 마시고도 부족했단다. 이 두가지 이야기 중에서 어떤 것이 옳은 것일까. 아니 두 상황은 서로 다른 것이니까 둘 다 맞는 이야기일까.
출발 전에 준비물을 챙기면서도 마지막까지 고민했던 것이 바로 소금정제다. 인터넷을 여러가지로 찾아보았는데 이 소금정제는 찬반양론이 아주 치열했다. 우유부단한 나는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그냥 떠나오는 수밖에 없었다.
우즈벡인들은 왜 외국인에게 친절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