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스한 손길을 내밀어야할 계절이 왔습니다

[포토에세이] 겨울 초입에

등록 2008.11.18 13:41수정 2008.11.18 13: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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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더덕 된서리에 미쳐 피지 못하고 시들어버린 더덕꽃

더덕 된서리에 미쳐 피지 못하고 시들어버린 더덕꽃 ⓒ 김민수


된서리가 내렸습니다.


뒤늦게 피어난 더덕꽃이 된서리에 화들짝 놀라 미처 다 피지 못하고 말라버렸습니다. 꽃이 피었다고 다 열매를 맺는 것은 아니라지만 바짝 말라있는 꽃을 보니, 전쟁의 포화로 말미암아 무너진 건물 잔해 속에서 발굴된 어린아이를 보는 듯하여 마음이 아픕니다. 가해자들은 일말의 양심적인 가책을 느낄 수도 없습니다.

살다 보면 된서리를 맞을 때가 있습니다.

예상치 못한 상황이 우리의 삶을 굴레로 몰고 갈 때 쓰는 표현입니다. 그러한 경험을 가진 사람들은 그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압니다.

a 까치밥 누군가를 배려하는 것이 소중한 계절

까치밥 누군가를 배려하는 것이 소중한 계절 ⓒ 김민수


앙상한 감나무 가지에 남아있는 감을 보면 마음이 넉넉해집니다.
까치밥으로 남겨두었다고 하기에는 너무 많은, 그러나 많아도 추하지 않은 아름다움을 봅니다. 살을 에는 듯한 추위와 한낮의 따스함을 오가면서 어린 새들도 먹기 좋은 홍시가 될 것입니다. 자신을 위해서라기보다는 남을 위해 남겨놓은 자신의 수고, 오늘 우리가 땀 흘리는 수고 중에서 아주 작은 것이라도 남을 위한 땀 흘림이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러한 노동이 들어 있는 노동이야말로 참된 노동일 것입니다.

a 방가지똥과 이슬 방가지똥 이파리에 맺힌 이슬방울

방가지똥과 이슬 방가지똥 이파리에 맺힌 이슬방울 ⓒ 김민수


추위에 방가지똥 이파리마다 가시가 성성합니다.
그 성성한 가시들 사이로 내어놓은 노동의 결과물이 아침 햇살에 이슬이 되어 빛나고 있습니다. 제 몸에 쌓아두지 않고 자신을 비울 줄 아는 마음, 그래서 자연에는 비만이 없습니다.


그 마음을 잃어버린 사람들만이 비만이라는 병을 얻게 된 것입니다. 간혹 사람들의 손에 길든 동물들이 비만에 걸리긴 하지만 굶주림으로 고통당하는 이들이 있음에도 자신만을 위해 가득 쌓아 놓고 나눌 줄 모르는 사람과 비교할 바는 아닐 것입니다.

내 안에 있는 것을 내어놓았을 때, 저 이슬방울처럼 아름답게 빛나는 것들이 내 안에 들어 있길 소망합니다.


a 씨방 목단의 씨방

씨방 목단의 씨방 ⓒ 김민수


이른 봄 싹을 내고,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고, 씨앗까지 온전히 출가를 시킨 대견스러운 모습을 봅니다.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을 때까지만 해도 몸 어딘가 물기가 남아 촉촉했는데 겨울이 오기 전에 씨앗을 내어놓고 자신의 역할을 다했다고 물기 하나 없이 말라있습니다. 추운 겨울이 와도 얼어 터질 일이 없겠습니다.

고난의 시절 어떤 것들이 넉넉하게 살아갈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것 같습니다.
비울 줄 아는 사람, 배고파 본 사람, 힘든 것이 무엇인지를 경험해 본 사람은 고난이 와도 ‘이쯤이야!’하며 넉넉하게 이겨나갈 수 있을 것입니다.

a 단풍 올해 마지막 단풍일지도 모르겠다.

단풍 올해 마지막 단풍일지도 모르겠다. ⓒ 김민수


겨울바람이 불어오기 시작했습니다.
저 단풍도 이제 곧 겨울바람에 떨어져 버리겠지요. 단풍이 떨어지면 나목이 되어 눈 오는 날이면 눈꽃을 녹여 꽃눈에게 전해주겠지요.

‘이 겨울이 지나면 봄이 온단다. 봄이 오면 네 안에 있는 푸른 생명이 움틀 거야!’

이렇게 속삭이며 긴 겨울을 날 것입니다.
겨울, 가난한 사람들에게는 가장 힘든 계절입니다. 이 계절에 가난한 이들에게 내미는 따스한 손길들이 많아졌으면 좋겠습니다.
#겨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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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을 소재로 사진담고 글쓰는 일을 좋아한다. 최근작 <들꽃, 나도 너처럼 피어나고 싶다>가 있으며, 사는 이야기에 관심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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