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건너 투르크메니스탄의 미래를 바라보다

[우즈베키스탄 도보횡단기 12] 도보여행 11일(사막 3일)

등록 2008.11.28 11:10수정 2008.11.28 1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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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키질쿰 사막 야영을 하고 일어난 아침

키질쿰 사막 야영을 하고 일어난 아침 ⓒ 김준희


새벽에 추워서 잠에서 깼다. 잠들기 전에 약간 열어놓은 환풍창을 통해서 사막의 차가운 새벽공기가 들어온다. 역시 사막답게 밤과 낮의 일교차가 심하다. 어제 낮에는 뜨거운 태양과 무더위 때문에 고생했는데, 지금은 오히려 그 햇볕이 그리워질 만큼 쌀쌀한 아침이다.

시간은 오전 6시. 텐트 위쪽의 문을 열고 밖을 내다보다가 황급히 다시 닫았다. 이크! 텐트 안으로 들어오는 차가운 바람에 잠이 확 달아난다. 결국 텐트 안에서 이리뒤척 저리뒤척하다가 7시가 되어서야 밖으로 나왔다. 어젯밤에는 아늑하게 느껴졌던 텐트 안이 왜 지금은 좁고 답답하게 느껴질까.


여행을 준비할 당시 1인용 텐트에 대해서 여러가지로 조사해 보았다. 어떤 사람은 1인용 텐트에 들어가서 누우면 '꼭 관에 들어가 있는 기분'이라고 묘사했다. 나는 관에 들어가 본적이 없어서 그말이 무슨 말인지 잘 모르겠다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지금은 그말의 의미를 대강 알것도 같다.

텐트와 침낭을 정리해서 배낭에 집어넣고 빵을 먹고 물을 마신 후에 다시 출발한다. 식당이 어디에 있건 그곳에 짐을 풀고 오늘 하루는 푹 쉬고 싶다. 그리고 오늘은 우연하게도 일요일이다. 일주일간 부지런히 걸어왔으니까 오늘 하루 좀 쉬어도 괜찮을 것이다.

사막의 야트막한 고개를 몇 개 넘자 오른쪽 멀리 아무다리야 강이 보인다. 그 강너머는 투르크메니스탄 영토다. 그럴리야 없겠지만 혹시라도 실수로 저 강을 건너가면 나는 투르크메니스탄 영토에 불법입국하는 신세가 된다. 지금 내가 걷고 있는 이 길이 우즈베키스탄과 투르크메니스탄의 국경을 따라가는 길이다.

국경이라고 하지만 우리나라와 북한처럼 국경 전체에 철조망이 둘러져있지는 않다. 국경을 감시하는 군인들도 보이지 않는다. 마음만 먹으면 나도 얼마든지 투르크메니스탄 영토에 들어갔다 나왔다를 반복할 수있는 것이다. 물론 그러다가 현지 군인한테 발각되면 작살나는 수가 있겠지만.

트럭 한대가 다가오더니 내 앞에 멈추어 섰다. 두꺼운 모자를 눌러쓰고 있는 중년의 남성이 운전석에서 내린다.


"어디가는 거야?"

그는 46세이고 일홈이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다. 사막 안쪽의 공사장에서 모래를 트럭에 담아 다른 곳으로 운반한단다. 내가 사막 한쪽에서 잠을 잤다고 하니까 그는 조금만 더 가면 마을이 있는데 왜 이곳에서 자냐고 혀를 찬다. 그는 나에게 작은 페트병에 담긴 녹차를 건네주고 다시 차를 몰고 사라졌다. 이 일대의 공사장에서 운전하고 있다면 아마 앞으로도 나와 자주 마주치게 될 것이다.


사막에서 만난 트럭 운전사

a 키질쿰 사막 이른 아침의 모습

키질쿰 사막 이른 아침의 모습 ⓒ 김준희


a 사막의 운전사 일홈 나는 이후에도 이 아저씨와 여러번 마주치게 된다.

사막의 운전사 일홈 나는 이후에도 이 아저씨와 여러번 마주치게 된다. ⓒ 김준희


일홈의 말대로 2시간 가량을 걷자 작은 마을이 하나 나온다. 어느새 따뜻해진 날씨. 그 마을의 상점에서 차가운 음료수를 한병 사서 벌컥벌컥 들이켰다. 1리터짜리 탄산음료 한병이 우리돈으로 400원 가량이다. 몸이 아무리 피곤해도 차가운 음료수를 마시면 살것 같은 기분이 든다. 그리고 식당으로 들어갔다.

그곳에서 양고기국과 차를 마시면서 현지인들과 대화했다. 이곳에서 5km 떨어진 곳에 식당이 있고 마을이 있다고 한다. 이말을 또 믿어야 할까. 믿건 안믿건 간에 가는 것 이외에는 선택의 여지가 없다. 일단 한번 가보자. 5km면 멀리 보이는 언덕 하나 넘으면 눈에 들어올 거리다. 갔다가 없으면 다시 이리 돌아와서 오늘하루 재워달라고 하면 된다. 어찌되었건 간에 오늘 하루는 푹 쉬면서 내일의 행군에 대비해야 한다. 씻으면서 발의 상태도 점검해보고.

식당을 나와서 걷다보니까 현지인들의 이야기가 맞았다. 5km 정도 떨어진 곳에 갈림길이 있고 작은 마을이 보인다. 아무다리야 강변이라서 그런지 사막인데도 이렇게 마을이 형성되어 있나보다. 버스정거장에 모인 사람들한테 잘곳이 있냐고 손짓으로 물어보았더니 이들은 친절하게도 나를 직접 한 식당으로 데려다 주었다. 식당 안쪽의 넓은 실내를 가리키며 그곳에서 쉬라고 한다.

나는 짐을 풀고 물을 한양동이 받아와서 얼굴과 발을 씻었다. 앞으로도 일요일마다 이렇게 하루 쉬어갈 수 있다면 정말 좋을 것이다. 시간은 충분하다. 지금의 페이스라면 역사도시 부하라까지는 10일, 타쉬켄트까지는 30일 정도가 남았다. 그러니까 1200km를 40일이면 주파할 수 있는 것이다.

넓은 식당에서 큰 대자로 누워 낮잠을 자고나서 내일의 일정을 준비했다. 생수를 2.5리터 구입하고 커다란 빵도 2개 샀다. 그리고 계란을 두 개 삶아달라고 부탁했다. 아무 맛도 없는 빵보다는 삶은 계란이 먹기에도 좋고 영양가도 있을 것이다. 물만 보충하면 모레까지도 버틸 수 있다.

마치 무슨 고난이도의 롤플레잉 게임 퀘스트를 수행하는 기분이다. 보스를 잡으러가기 전에 무기와 장비를 수리하고 물약을 보충하는 느낌이다. 그 옛날 사막을 건너던 상인들도 이러지 않았을까.

긴 행군을 앞두고 물과 음식을 준비하고 낙타의 상태도 점검했을 것이다. 당시에 상인들은 낙타에 의지했을테고, 지금 나는 중간에 만나는 현지인들과 핸드카에 의존한다. 상인들이 낙타를 돌보았듯이 나는 핸드카의 상태를 살핀다. 바퀴살과 바퀴축은 괜찮은지 어디 한군데 나사 풀린 곳은 없는지.

아무다리야 강가에 서서

a 작은 마을 소리모이 이곳에서 하루를 쉬었다.

작은 마을 소리모이 이곳에서 하루를 쉬었다. ⓒ 김준희


a 아무다리야 강 그 너머로 보이는 작은 마을은 투르크메니스탄 영토다

아무다리야 강 그 너머로 보이는 작은 마을은 투르크메니스탄 영토다 ⓒ 김준희


모든 준비를 마친후에 나는 마을의 안쪽으로 들어가보았다. 그곳에는 아무다리야 강이 있다. 우즈베키스탄과 투르크메니스탄의 국경 중에서 이 지역만 유일하게 아무다리야 강이 자연적인 경계를 형성한다.

나머지 경계의 상당부분은 육지에 걸쳐져 있다. 이곳에 서면 강건너 투르크메니스탄의 작은 마을이 마치 돌팔매질을 하면 닿을 것처럼 생생하게 보인다. 바람소리와 개짓는 소리, 어디선가 들려오는 아기 울음소리.

한때는 같은 나라였다가 독립을 하면서 나뉘어진 두 국가. 이들은 구소련 스탈린 시절에 임의로 만든 민족간의 경계에 따라서 국경을 정했다. 물론 그것이 민족의 경계를 정확하게 반영한 것은 아니다.

독립을 하면서 투르크메니스탄은 철저한 폐쇄정책을 택했고, 우즈베키스탄은 상대적으로 덜 폐쇄적인 정책을 선택했다. 그 차이는 두나라의 운명을 갈라놓았다. 우즈베키스탄은 1년 내내 수많은 관광객이 북적이는 나라가 된 반면, 투르크메니스탄은 이름조차도 낯선 변방의 빈국이 된 것이다. 두나라의 공통점이라면 수니파 이슬람교를 믿는 사람들이 많고, 지하자원이 풍부하다는 점 정도. 그리고 러시아어가 통한다는 것도 빠질 수 없다.

작년 말에 사망한 투르크메니스탄의 전대통령 니야조프는 거의 20년 동안 철권을 휘두르며 나라를 다스렸다. 곳곳에 자신의 황금동상을 만들고 지방에 있는 모든 도서관을 폐쇄했다. 그 이유는 일할 시간도 없는데 무슨 책을 읽냐는 것이다.

자신의 건강이 나빠져서 의사에게 금연권유를 받자, 전국의 성인남녀들에게 담배를 피우지 못하도록 명령했다. 금니가 눈에 거슬려서 금이빨을 하는 것을 불법으로 규정하기도 했다. 어찌보면 참으로 재미있는 나라가 투르크메니스탄이다.

니야조프가 사망하면서 그의 권력은 무하메도프에게 넘어갔다. 그는 나라의 경제를 생각해서인지 좀더 적극적인 개방정책을 펴고 있다. 투르크메니스탄의 국민들에게 보다 살기 좋은 세상이 펼쳐지는 것일까. '잃어버린 20년'을 되찾지는 못하겠지만 좀더 새로운 미래가 다가오는 것은 분명할 것이다.

해질녁이 되어서 다시 식당으로 돌아왔다. 생선요리를 주문했더니 넓은 접시에 튀긴 생선을 그득 담아서 주었다. 나는 그걸 안주삼아서 맥주를 홀짝이며 현지인들과 대화했다. 이곳에서 35km 정도가면 경찰검문소가 있는데, 그곳에서 잘 수도 있단다. 경찰과 함께 하룻밤이라, 이것도 나름대로 재미있는 경험이 될 것이다.

그 경찰검문소를 지나면 35km마다 또 식당이나 검문소가 있다고 한다. 식당이 여기서 몇 킬로미터가 떨어져 있건 간에, 나는 무조건 아침 일찍부터 걷는 것 이외에는 아무런 방법이 없다. 그런데도 왜 자꾸 거리를 확인하고 싶어하는지 의문이다. 생선과 맥주로 배를 채우고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내일도 힘든 하루가 될 것이다.

a 작은 마을 소리모이 나를 재워준 식당

작은 마을 소리모이 나를 재워준 식당 ⓒ 김준희

#우즈베키스탄 #중앙아시아 #도보여행 #키질쿰 사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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