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원티드>와 역사교과서 편향성 논란

'신'에 대한 독단자의 지독한 착각

등록 2008.12.01 20:51수정 2008.12.01 20: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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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는 영화가 ‘허구’이든 ‘사실’이든 관계없이 현실에 기반을 두고 있다고 믿는다. 영화도 사실상 사람이 만드는 것이라고 보면 영화도 인간에게 귀속된 현실이기 때문에 비록 상상의 산물이라고 하더라도 어떤 이야기 자체가 현실과 전혀 무관하지 않다는 생각이다.

 

비슷한 맥락에서 영화는 간혹 사회적 이슈를 만들어 낸다. 2005년 영화 <그때 그 사람들>에 대해 법원이 영화에 삽입된 뉴스릴 필름 부분을 삭제하고 개봉하라는 판결을 내렸을 때 ‘MBC 100분 토론’의 주제가 되었던 것을 기억한다. 또한 요즘에는 사회적인 문제인 ‘동성애’가 심심치 않게 영화의 주요 소재로 사용되고 있다.

 

영화 <원티드>는 비록 총알이 휘어서 날아가는 등 물리적 법칙을 왜곡하는 지극히 비현실적인 영화이긴 하지만 스토리는 충분히 현실에서 이슈가 될 만한 내용을 담고 있다.

 

비록 영화가 특정 국가나 집단을 특정하고 있지는 않지만 필자는 <원티드>가 담고 있는 내용이 한국에서 한창 논쟁중인 역사교과서 편향성 논란과 무관하지 않다고 생각했다. 신의 이름으로 부여받은 권력으로 자신의 이득을 챙기는 어느 독단자의 모습이 교과서 좌편향을 주장하는 보수주의자들의 모습과 매우 흡사하기 때문이다.

 

어느 독단자의 탐욕스러운 논리

 

<원티드>는 잠재적으로 세계에 큰 혼란을 야기할 인물들을 암살하는 비밀 결사 단체에 관한 이야기다. 직조 공장을 근거지로 삼아온 이들은 거대한 직조기계가 생산해 낸 천에 기록된 암호코드를 통해 암살 대상의 이름을 계시 받는다. 암살단의 일원들은 모두 자신이 신의 대리인으로서 인류를 위한 거룩한 일을 하고 있다고 믿으며 그것을 운명으로 받아들인다. 

 

하지만 암살단의 지도자인 슬로언이 신탁의 계시를 그대로 따르지 않고 자신의 임의대로 암살 대상을 지정하고 있다는 사실이 밝혀진다. 슬로언은 단원들이 있는 앞에서 그들 모두의 이름이 계시되었다는 사실을 밝히고 다음과 같이 일장 연설을 한다.

 

“우린 지금 누구보다 강하다! 우린 역사의 많은 부분을 바꿔놨지! 우리가 타겟을 정하고 우리의 운명에 따라 세상의 힘을 재분배했다. 늑대의 법이지. 우린 양이 아니란 말이다.”

 

그리고 선택을 하라고 말한다. 신의 사람들로 남든지 운명을 받아들여 자신을 향해 방아쇠를 당기든지.

 

영화에서는 슬로언이 순수하게 자신의 신으로부터 선택받은 자로 생각했는지 아니면 신의 이름을 빌려 사적인 욕망을 채웠는지 명확하지 않다. 만약 그가 전자 쪽이라면 <매트릭스>의 모피어스 정도는 될 것이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슬로언의 논리 자체가 모순이라는 것이다. 신의 계시는 운명처럼 어느 누구도 거역할 수 없다. 만약 개인의 판단이 개입되면 더 이상 그것은 계시가 아니며 운명을 거스르는 일이다. 신의 계시를 따르는 반역자가 되는 것이다. 또 한 가지 문제는 그것이 비록 세계를 구하고 균형을 이루는 일이라 하더라도 사회적 합의가 아닌 독단적인 결정에 의해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민족 혹은 종교라는 명분으로 독단적으로 자행되는 테러의 끔찍함을 우리는 눈앞의 현실에서 목격하고 있지 않은가.

 

우리는 단지 미천한 인간일 뿐 신이 아니다!

 

지금 교과서 편향성 문제를 제기하고 있는 이른바 보수주의자들은 마치 자신이 비뚤어진 세상을 바로잡는 일을 하는 것처럼 주장을 하고 있다. 그러나 사실 그들의 주장은 슬로언의 연설처럼 단지 괴변일 뿐이다.

 

그들에게는 기존의 역사 서술을 자신의 임의대로 바꿀 수 있는 권한이 없다. 역사는 사실에 대한 기록이어야 하며 사회적 합의에 의해 공정하게 서술되어야 한다. 그들이 문제를 제기하고 있는 금성출판사 근현대사 교과서는 이미 역사학자들에 의해 검증이 끝나고 사회적 합의에 의해 서술된 것이다. 10년 동안 아무런 문제없이 잘 활용되어 왔다.

 

필자가 중고등학교 시절, '근/현대사'라는 과목 없이 국정교과서인 '국사'로 배울 때에도 박정희는 독재자로서 민주주의를 훼손시켰다고 배웠다. 단 한 번도 독재가 경제발전에 의해 미화되어야 한다는 견해를 들은 바가 없다. 단지 독재자이면서 동시에 한국의 경제 발전을 이룩한 대통령으로 배웠을 뿐이다.

 

물론 견해에 따라서 박정희를 독재자로 보거나 위대한 경제대통령으로 볼 수 있다. 하지만 교과서에서 특정 부분을 강조하거나 ‘우익 현대사 특강’에서 강조하듯이 독재를 어쩔 수 없는 것으로 주장하면 안 된다. 또한 남북이 삼팔선으로 갈리지 않았다면 지금 남한은 북한처럼 굶주리고 있을 것이라는 터무니없는 가정도 있어서는 안 된다.

 

결론적으로 그들의 터무니없는 역사적 사명의식은 그 자체로 모순이다. 이들의 신분이 역사학자도 아니기 때문에 더욱 그러하다. 슬로언처럼 자신들의 마치 신적인 힘을 가진 특별한 자들인 것처럼 생각하는 것은 큰 오산이다. 그들은 단지 미천한 인간일 뿐이다.

 

보수인사들이 정권을 장악하자 자신들의 지저분한 역사를 미화하고 권력을 연장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하기 위한 전략이라는 것은 명약관화하다. 그들이 스스로 자신들의 역사를 이야기 하는 것은 마치 살인이 신의 계시이고 운명인양 착각하는 것이며, 단지 사리사욕과 권력을 탐하는 일 밖에는 되지 않는다. 그들은 하루빨리 자신들이 누구인지 스스로 깨달아야 한다.

 

영화에서 슬로언의 비리를 폭로했던 웨슬리는 자신의 정체성에 혼란을 겪고 암살단에 들어감으써 비로소 자신의 정체성을 찾은 그이지만 정체성 따위가 사람을 죽이거나 역사를 좌우할 수 있는 권리를 부여하는 것은 아니다라는 것을 깨닫는다.

 

물론 개인의 입장에서 정체성이란 매우 중요하다. 하지만 그것이 중요하다고 해서 자신의 정체성이 세계의 정체성이나 된 것처럼 과장하고 그것이 진리인양 떠벌인다면 차라리 정체성 없이 좀비처럼 살아가는 것이 세상에 더 이로울 것이다.

 

바벨탑의 신화와 판도라의 상자가 말해주듯이 미천한 인간이 거룩한 신에게 도전하면 그 인간은 파멸하고 만다. 어느 논자가 말했듯이 무오사화(戊午史禍)를 자행했던 광해군이 이듬해에 폐위되었다는 역사적 사실을 반드시 기억해야 할 것이다.

2008.12.01 20:51ⓒ 2008 OhmyNews
#우익현대사특강 #원티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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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남과 머묾은 공간의 문제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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