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링(鵝嶺)공원 아침산책 삼아 올라간 어링공원에서 태극권을 연마하는 중국인들을 만날 수 있었다.
김대오
태극권을 연마하고 삼삼오오 춤을 추는 아주머니, 아저씨들은 정겹게 외국관광객들의 카메라세례를 맞이해 준다. 공원 정상쯤에 이르자 중국인들이 배드민턴을 치고 있었다. 연수단 최정용 선생님과 함께 그곳 아저씨들과 한 세트에 100위엔(우리 돈 2만원) 내기를 걸고 시합을 하게 되었다. 물론 라켓이나 셔틀콕은 모두 중국 아저씨들에게서 빌린 것이었고 나는 샌들이고 최선생님은 맨발로 시합에 나섰다.
학교 동호회에서 익힌 실력으로 첫 세트를 아슬아슬하게 우리가 이기자 공원에서 제일 고수 분들이 등장한다. 공원에 아침운동을 하던 사람들이 둥그렇게 몰려들어 한-중 배드민턴 시합을 관람하는 가운데, 두 번째 세트도 접전 끝에 우리 팀이 이겨 그 공원의 고수들 체면이 말이 아니게 되었다.
조금 미안하였지만 막상 시합이 시작되니 승부욕이 생겨 질 수가 없었다. 중국 분들과 함께 기념 촬영을 하고 공원을 내려오는데 창지앙(長江)과 지아링지앙(嘉陵江)이 합류되는 강가로 형성된 충칭의 도시 전경이 발 아래로 훤히 내려다보인다. '촉나라의 개는 해를 보면 짖는다(蜀犬吠日)'는 말이 있을 정도로 충칭은 안개 끼는 날이 많다고 하는데 역시 뿌연 아침 안개 속에 현대화된 빌딩들이 강가에 갈대처럼 솟구쳐 있는 모습이다.
'중국의 게르니카', 아픔 딛고 부활하는 충칭
버스를 타고 충칭인민대회당으로 향하는데 현지 가이드는 안개 끼는 날이 많아 충칭에는 하얀 피부색의 미녀가 많고 그래서 운전 중에 미녀들을 보느라 교통사고도 자주 발생한다고 소개해 버스 안에 한바탕 웃음이 쏟아졌다.
하지만 가이드가 충칭의 역사를 소개하자 버스 안은 이내 숙연한 분위기로 바뀌었다. 일본군이 국민당 정부의 수도였던 충칭에 1938년 2월부터 1943년 8월까지 총 약 2만 발의 폭탄을 민간인 지역에 무차별적으로 투하해 사망자만 약 1만 2천명에 달했다는 내용이었다.
충칭은 그러니까 '중국의 게르니카'였던 셈이다. 도시 곳곳에 아직도 흉물스럽게 남은 방공호는 당시의 참혹했을 아픔을 묵묵히 대변하고 있는 듯하다. 시내를 가로지르는 동안 대단히 현대화된 번화가를 보면서 과거의 아픔을 딛고 화려하게 부활한 충칭의 발전상이 놀라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