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로 가야 하나.한해를 마무리 하는 시기지만 백성들은 어디로 가야할지 길을 찾지 못하고 있다.
강기희
"이명박 대통령, 나도 사랑하지 않아요~"'명박산성'을 앞에 두고 분루를 삼키던 밤엔 김밥부대가 날라준 김밥을 먹었고, 어느 밤엔 배가 고파 단체에서 마련해온 순두부를 두 그릇씩 먹기도 했다. 비가 오는 날이면 촛불 소녀가 그려진 우비를 입고 전경대와 마주섰고, 비가 그친 날엔 우비를 아스팔트에 깔고 잠을 청하기도 했다. 새벽 추위를 견디기 위해서는 백성들의 성금으로 구입한 손난로를 만지작거렸으며 이동 차량에서 끓여낸 뜨거운 스프를 먹었다.
그래도 몸이 추워지면 촛불다방에서 커피를 마셨으며, 새벽 시간엔 컵라면으로 출출한 속을 달랬다. 멀쩡하게 해가 뜨는 아침이면 농민들이 보내준 수박으로 허기를 채웠고, 한의사들의 정성이 든 보약으로 지친 몸을 충전하기도 했다. 그러는 중에도 촛불들은 전경들에 의해 흩어졌다 모였고, 밤새 서울 거리를 도망다니기도 했다.
6월 30일 서울광장에서 시국미사를 집전한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 소속 김인국 신부님은 이명박 대통령까지 사랑하자고 했다. 원수조차 사랑해야 하지만 나는 그러겠노라 대답하지 않았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왔고, 이틀 후엔 신부님께 장문의 편지(관련기사:
신부님 말씀 듣고 이틀밤 생각했지만 아직은 이 대통령 사랑 못하겠습니다)를 썼다.
편지를 읽은 김인국 신부님이 내게 쪽지 글을 보내셨다. 내용은 짧았다. 글을 소개하자면 '나도 이명박 대통령 사랑하지 않아요^^'였다. 나는 순간 안도했지만 답답한 현실을 견디지 못해 우울증에 빠진 사람처럼 힘든 하루를 보냈다.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자처하고 살아온 이명박 대통령이지만 신부님도 그를 사랑하지는 않았다. 그것이 진리이자 현실인 대한민국이 서글펐고, 그런 이명박 대통령에게 위탁한 5년이라는 세월이 지나치게 길게 느껴졌다.
거리로 나서는 촛불의 수가 줄어 들었다고 낙담할 일은 아니다. 올 여름 거리를 뜨겁게 달구던 촛불들은 이제 우리의 가슴으로 옮겨 갔다. 우리의 가슴가슴에 피어 오르는 촛불은 날선 방패로도 꺾이지 않을 것이며, 광폭한 물대포로도 끌 수 없는 것이 되었다.
지난 여름 나는 들불처럼 번지고 있는 촛불을 보며 그것이 진정 우리가 기다리는 희망 있는 세상이라고 생각했다. 거리를 가득 메운 촛불은 나이 마흔을 넘긴 내가 살아오면서 본 어떤 장면보다도 장엄했고 감격스러운 모습이었다.
한 해가 저물어 가는 지금도 소외되고 핍박받는 민중의 삶은 여전하다. 그러나 지난 여름 민중이 만들어낸 아름다운 역사의 시작은 촛불이었고, 촛불은 우리의 가슴에 영원히 꺼지지 않는 희망의 촛불을 하나씩 피워 올렸다. 거리에서 만나는 희망들이 다시 하나로 뭉치는 날, 우리가 희망하는 그런 세상이 반드시 오리라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