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몰래 더듬다 혼나더라도 살림방 차리고 싶다"

[리뷰&인터뷰] 시인 문신 첫 시집 <물가죽북> 펴내

등록 2009.01.15 18:53수정 2009.01.15 18: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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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문신 지난 2004년 <세계일보> 신춘문예에 '작은 손'이 당선되면서 시를 옆구리에 차기 시작한  시인 문신(36)이 첫 시집 <물가죽북>(애지)을 펴냈다
시인 문신지난 2004년 <세계일보> 신춘문예에 '작은 손'이 당선되면서 시를 옆구리에 차기 시작한 시인 문신(36)이 첫 시집 <물가죽북>(애지)을 펴냈다 이종찬
▲ 시인 문신 지난 2004년 <세계일보> 신춘문예에 '작은 손'이 당선되면서 시를 옆구리에 차기 시작한 시인 문신(36)이 첫 시집 <물가죽북>(애지)을 펴냈다 ⓒ 이종찬

 

새벽, 저수지를 보면

끈 바짝 조여 놓은 북 같다

야트막한 언덕이 이 악물고 물가죽을 당기고 있어서

팽팽하다

 

간밤 물가죽에 내려앉은 소리들이 금방이라도 솟구쳐오를 것 같다

낮고 빠르게 다가온 검은 새 한 마리

둥-

물가죽 북을 울리고 가는 동안

 

물가죽 북에 이는 파문은

무심결이다

 

물가죽 북이 울어

소리를 눌러두고 있던 반대편 하늘 가죽도

맞받아 운다

 

검은 새 한 마리 버드나무 가지에 앉아

그것들 번갈아가며 냉큼 받아 먹는다

 

-26~7쪽, '물가죽 북' 모두

 

이명박 정부가 들어서면서 하루도 마음 편한 날이 없다. 지난해에 이어 새해 들어서도 지리하고도 끔찍하게 이어지는 경기 침체로 출판시장은 아예 꽁꽁 얼어붙어 버렸다. 출판시장에 고드름이 주렁주렁 매달리자 그렇잖아도 춥고 배고픈 글쟁이들 주머니에서는 짤랑거리는 동전소리조차 듣기 어렵다. 

 

여기에 날씨마저 정말 징그러울 정도로 춥다. 가진 게 없는 사람은 겨울나기가 가장 어렵다는 옛말이 바늘바람이 되어 얼굴을 콕콕 찌른다. 하지만 이렇게 어려운 가운데서도 시인들 시집은 하루가 멀다 하고 잇따라 쏟아진다. 시집을 꾸준히 펴내는 시인이 이기나, 그 시집을 거들떠보지도 않는 독자가 이기나 맞붙어 보자는 투다.

 

지난해 12월부터 새해 들어 시인들이 펴낸 시집만 해도 너무 많아 일일이 읽기조차 힘들다. 시인들 이름도 낯설고, 그 시인들이 쓴 시들도 낯설다. 한쪽 발을 저는 시도 있고, 한 쪽 팔이 없는 시도 있다. 심장이 없는 시도 있고, 심장은 쾅쾅 뛰지만 머리가 없는 시도 있다. 간혹 몸과 마음이 멀쩡한 반듯한 시도 있기는 있다.

 

그중 가장 눈에 띄는 시집이 시인 문신이 까다로운 독자들에게 처음으로 선보인 <물가죽북>이다. 그는 이번 시집에서 "사람들과 잘 어울리지 못하는 천성인 탓에 늘 주변을 맴돌면서 멀리서만 바라보았다"며 "이번 시집을 통해서 비로소 사람들에게 간절한 말을 건네 보려고 했다"고 엄살을 마구 떤다.

 

"나까짓 정도야 천방지축 시늉만으로도 벅차다"

 

시인 문신 문신 시인 첫 시집 <물가죽북>
시인 문신문신 시인 첫 시집 <물가죽북> 이종찬
▲ 시인 문신 문신 시인 첫 시집 <물가죽북> ⓒ 이종찬

"요 며칠 천방지축이라는 말이 내내 머릿속에 들었다. 天方地軸(천방지축). 못난 사람이 종작없이 덤벙이는 일이나, 너무 급하여 허둥지둥 함부로 날뛰는 것을 일컫는 말이다. 내가 그랬다. 그동안……"-'시인의 말' 몇 토막

 

지난 2004년 <세계일보> 신춘문예에 '작은 손'이 당선되면서 시를 옆구리에 차기 시작한  시인 문신(36)이 첫 시집 <물가죽북>(애지)을 펴냈다. 이번 시집은 시인이 바라보는 삼라만상과 우리들 생활언저리에서 흔히 일어나는 여러 가지 일들, 그 일들을 사람들 세상살이에 빗대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모두 4부에 실려 있는 '참깨꽃', '목련, 달빛을 봉하다', '빗방울 꽃' '스윽, 지나간다', '배꼽이 피었더라지', '바람의 무늬', '아직은 아녀', '도배를 하다가', '시도 때도 없이 눈물, 동백', '풍경 끝에 매달린 물고기나 되어', '매화차 한 잔에 눈 멀고', '노을, 그 빛나는 그물', '부음', '좌익', '밥상', '저물녘' 등 53편이 그것.

 

시인 문신은 스스로 "천방지축"이라며 몸을 낮춘다. 이는 아마 이 세상에 첫 시집을 펴내는 그 어떤 설렘과 두려움 때문이리라. 그는 "다시 생각해도 천방지축"이라며 "하늘과 땅이 그러할진대, 하물며 나까짓 정도야 천방지축의 시늉만으로도 벅차다"며, 그가 지닌 천방지축이 단순한 천방지축이 아니라는 것을 스스로 내비친다.

 

당돌하다. "여기에 모은 시편들은 천방지축하고자 하였으나 종작없이 덤벙이기만 했다. 어쩌면 천방지축을 주문처럼 외고 살아야 할지도 모를 일"이라고 말하는 시인은 천방지축하는 하늘과 땅을 닮으려 아등바등 몸부림친다. 이는 시인 스스로 삼라만상이 지니고 있는 천방지축과 우주가 지니고 있는 천방지축이 되고 싶다는 야무진 꿈이다.

 

세상 앞에 엄살을 떠는 시인, 사람에게 엄살이 되는 시

 

"신발을 사면 즉시 뒤축을 깔아뭉개는 버릇이 있다 / 뒤꿈치를 벌겋게 벗겨대는 못된 성미를 놀러놓자는 계산에서다 / 한 번만 뭉개놓고 나면 그 다음부터는 발끝만 닿아도 숙일 줄 안다 / 그렇게 놀러놓은 신방 뒤축이 여남은 켤레나 된다" - 44쪽, '뒤축을 꺾다' 몇 토막 

 

이번 시집은 언뜻 보면 시인이 말한 것처럼 그 어떤 대상을 "오래 들여다보고, 훑어보고, 만져보고, 두드려보고, 뒤집어보다가 된통 혼이 나" 눈물 찔끔 흘린 뒤에서야 아, 하고 깨친 시들로 가득 찬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시린 물에 세수를 한 뒤 다시 꼼꼼하게 읽어보면 그가 심한 엄살을 떨고 있다는 것을 어렴풋이 알 수 있다.

 

이 시집에 들어 있는 시 '뒤축을 꺾다'를 읽어보면 그가 왜 '천방지축'이며 "천방지축을 주문처럼 외고 살아야" 하는지 속속들이 드러난다. 이 시에는 우리 생활, 즉 사람들 마음이나 오랜 버릇 혹은 늘 반복되는 단순한 삶에 대한 반항 따위가 고스란히 녹아 다시 우리들 삶 속으로 자연스럽게 스며들고 있다.  

 

"서슬이란 말을 모르고 살았다 // 깨진 유리조각을 줍다가 피를 보고 나서야 / 서슬이 거기 있었음을 알았다 // 투명한 물컵 하나가 박살났을 뿐인데 / 특공대원들처럼 우르르 쏟아져 흩어지는 서슬들 / 그 서슬을 줍다 / 날 세운 서슬에 놀랐다" - 16쪽 '서슬이 거기 있었다' 몇 토막

 

'서슬이 거기 있었다'도 마찬가지다. 이 시에서 시인이 말하고자 하는 것은 깨진 유리조각, 즉 겨눔이다. 그는 깨진 유리조각을 바라보며 가까운 벗 혹은 사랑하는 사람과 "가끔 마음이 어긋나 오래 토라져 있던 날"을 떠올리며 깨진 유리조각을 서로 맞댄다. 물컵 하나가 깨지지 않았다면 '서슬'도 없었고, "서로에게 예리함을 겨누고" 있을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새로 바르는 벽지 뒤로 사라지는 그 세월

 

"도배를 한다 / 방 보러 와서 잠깐 마주쳤던, 전에 살던 젊은 부부처럼 / 등이 얇은 벽지를 벗겨내자 / 한 겹 초벌로 바른 신문이 나온다 // 나는 전에 살던 젊은 부부가 떠나던 날을 기억한다 / 벽지 뒷면에 바른 묵은 신문처럼 / 쉽게 찢어지는 내 청춘을 내면 깊숙이 묻어두고 / 돌아서던 그들을 향해 / 나는 하마터면 손을 들어 작별인사를 할 뻔했다" - 70쪽, '도배를 하다가' 몇 토막

  

나도 어릴 때 부모님께서 도배하는 모습을 몇 번 바라본 때가 있었다. 그때 부모님께서는 도배를 하기에 앞서 해 묵고 낡은 벽지부터 먼저 벗겨냈다. 그 벽지를 벗겨낸 자리에는 어김없이 진갈색 신문이 덕지덕지 붙어 있었는데, 그 신문을 바라보고 있으면 자신도 모르게 타임머신을 타고 옛날로 되돌아간 것만 같았다.     

 

그때 그 세월이 진갈색 신문지 속에 검정깨처럼 콕콕콕 박힌 글씨가 되어 되살아나고 있었다. 흐릿하게 잘 보이지도 않는 흑백사진 속에 그때 그 세월에 살았던 사람들이 웅성거리고 있었다. 어떤 사람은 강도를 만나 재산을 몽땅 다 빼앗기고 죽었다는 이야기도 한 귀퉁이에 조그맣게 적혀 있었고, 어떤 사람은 상을 타며 환하게 웃고 있었다.  

 

시인은 도배를 하면서 앞에 살던 젊은 부부가 살아온 세월을 떠올린다. "새로 사온 꽃무늬 벽지를 자르고 / 풀을 먹여 벽에 바르면서 / 나는 벽지 뒤로 사라지는 그들"을 바라본다. 벽지만 그림자처럼 달랑 남겨둔 채 이사를 간 그 젊은 부부도 "분명 한 시절을 총총히 걸어왔을" 것이라 여기며. 하긴, 언젠가는 시인도 벽지 뒤로 사라지는 젊은 부부처럼 시무룩이 이 방에서 사라질 것이 아니겠는가.

 

사물과 시인이 서로 맞닥뜨려 속살을 아프게 꼬집는다

 

시인 문신 첫 시집 <물가죽북>에 실린 시들은 우리들 삶 언저리에 흔하게 흩어져 있는 여러 가지 모습과 움직임에 따른 좌충우돌이다. 시인과 사물, 사물과 시인이 서로 맞닥뜨리며 악악 소리를 지르며 반항을 한다. 때로는 입에 자물쇠를 꼭 채우고 느긋이 지켜보다가 한순간에 그 속살을 아프게 꼬집기도 한다.   

 

"새는 / 전깃줄에 앉아 / 적막 같은 제 알을 그렁그렁 실어 보낼 것이다"(적막)라거나, 나이테를 바라보며 "나무에게도 그리움이 있다는 걸 안다"(나무), 어른들 문안 때문에 "한식날 고향마을 선산에 가서 들꽃 몇 포기 캤다"(문안), 아내 시름처럼 "책장을 들어낸 자리에 피어 있던 푸른 곰팡이"(우리의 생활) 등이 그러하다.    

 

시인 안도현은 "그는 침묵과 말 사이에 다리를 놓는 희한한 직업을 가진 것 같다"며 "전통 서정에 잇닿아 있으면서도 조금은 비껴서 있는 점이 매력"이라고 평했다. 문학평론가 이희중은 "문신은 눈이 밝은 시인"이라며 "그는 삼라만상을 꼼꼼하게 관찰하고 그 결과를 또박또박 차분하고 느리게 적는다"고 덧붙였다.

 

시인 문신은 1973년 전남 여수에서 태어나 2004년 <세계일보> 신춘문예에 시 '작은 손'이 당선되면서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스스로 천방지축이라고 생각하며 "천방지축을 주문처럼 외우고 다니며 살아야 할 것 같다"고 말하는 시인은 지금 전북대학교 어문교육학과 박사과정에 다니고 있다.

 

시인 문신 1973년 전남 여수에서 태어나 2004년 <세계일보> 신춘문예에 시 '작은 손'이 당선되면서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시인 문신1973년 전남 여수에서 태어나 2004년 <세계일보> 신춘문예에 시 '작은 손'이 당선되면서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이종찬
▲ 시인 문신 1973년 전남 여수에서 태어나 2004년 <세계일보> 신춘문예에 시 '작은 손'이 당선되면서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 이종찬

 

다음은 15일(목) 낮 12시 문신 시인과 전화로 주고 받은 일문일답이다.

 

- 언제부터 시를 쓰게 됐나?

"고등학교 다닐 때 사춘기를 겪었다. 그때 마음을 잡지 못하고 이리저리 방황하던 중 우연찮게 소설집 한 권을 읽게 됐다. 그 소설집을 읽고 난 뒤 '아, 나도 문학을 하면 되겠구나' 생각하고, 스무 살 무렵부터 시를 끄적이기 시작했다."

 

- 시를 짓기 위한 주춧돌이자 뿌리라고 하는 이미지는 어느 순간 가장 잘 떠오르는가?

"그 어떤 새로운 상황이 벌어지거나 자신도 모르게 무언가를 봤을 때 시 이미지가 잘 떠오른다. 저는 시를 쓸 때 딱히 그 어떤 목적의식이나 의도성을 갖지 않고 순간 순간 떠오르는 감성으로 쓴다."

 

- <물가죽북>은 첫 시집이다. 첫 시집은 세상에 첫 선을 보인 시인이 독자들을 신부로 맞아들이는 것과 같다. 이 시집이 독자들에게 어떻게 읽히기를 바라는가? 

"대개 고수는 고수를 한눈에 알아보는 법이라 한다. 하지만 고수가 못 되는 보통 사람들(나 같은)은 들여다보고, 훑어보고, 살펴보고, 만져보고, 두드려보고, 뒤집어보고, 그리고 된통 혼나 본 뒤에서야 비로소 그것이 무엇인지를 어렴풋하게나마 깨달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인지 저는 어떤 것들에게 호된 꾸지람을 듣고 나서야 뒤늦게 아차, 하며 무릎을 치곤 한다. 그동안 제가 쓴 시편들 역시 그렇게 해서 나온 것들이다. 그러므로 다소 어눌하고 부족한 것이 사실이다. 혹시라도 제 시집을 읽어보는 독자들이 있다면 그런 점을 감안해서 오래 만지작거리며 읽어주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 이번 시집을 읽은 독자들이 심하게 혹평을 한다면?

"그 혹평은 제 시가 아직 서툴기 때문이라고 받아들일 것이다. 아직 덜 혼났기 때문이려니 여기겠다. 하지만 제 시를 읽다보면 제가 무엇을 들여다보고 훑어보았는지 제 눈길과 손자국과 만날 수 있으리라는 생각이 든다."

 

- 이건 좀 우스운 물음이지만 이번 시집에서 특별히 좋아하고 아끼는 시가 있다면?

"'살구꽃', '세수법', '뒤축을 꺾다', '작은 손', '도배를 하다가'이다. 이 시들은 작품의 완성도를 떠나 이 시들을 쓸 때 가졌던 어떤 각오들이 지금까지 시를 쓸 수 있도록 이끌어 준 힘이었다."

 

- 어떤 시를 쓰고 싶은가?

"제 시는 화려한 말잔치가 아니라 투박하고 좀 머뭇거리더라도 사람들에게 어떤 기억이랄지 아니면 애써 묻어두고자 했던 사연들을 한 번쯤 꺼내 볼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주는 시이기를 원하고, 앞으로도 그런 시를 쓰고 싶다."

 

- 앞으로 계획은?

"지금까지 그래왔던 것처럼 앞으로도 저는 이것저것 더듬거리며 혼나며 그래도 모르겠으면 아예 그것들과 함께 뒹굴면서 시를 쓸 것이다. 그렇게 해서 제가 만지작거리는 것들과 남몰래 살림방이라도 차려보고 싶다. 그 궁핍한 살림방에 독자 몇몇과 둘러앉아 서로 살 맞대고 서툰 이야기들로 밤을 지새우는 날이 많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덧붙이는 글 | <유포터>에도 보냅니다

2009.01.15 18:53ⓒ 2009 OhmyNews
덧붙이는 글 <유포터>에도 보냅니다

물가죽 북

문신 지음,
애지, 2008


#시인 문신 #물가죽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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