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골 오바마, 빨갱이 아녀?

톰 대슐의 사퇴를 보면서 든 생각

등록 2009.02.05 13:38수정 2009.02.05 13: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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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서 보건부장관으로 지명됐던 톰 대슐이 결국 사퇴했다. 탈세혐의가 드러난 후에도 오바마가 지지를 확인한 지 하루만이다. 이에 관해 클린턴 정부에서 노동장관을 지냈던 로버트 라이시가 2월 3일 자기 블로그에 이런 글을 올렸다. 약간 길지만 전체를 옮겨본다.

톰 대슐과 포퓰리즘의 봉기
(Tom Daschle and the Populist Revolt, http://robertreich.blogspot.com/)

오늘 톰 대슐의 사퇴는 워싱턴의 내부자 대부분에게 충격이었다 - 뭐니뭐니해도 대슐은 상원의 핵심인물이었었고, 새 정부에서 중요한 역할을 위해 오바마의 낙점을 받았으며, 새로운 의료보험체계의 입법에 뛰어난 역량을 발휘할 확률이 높았고, 의회 인준에도 충분한 지지표를 십중팔구 얻을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무슨 일인가? 내 짐작으로는 워싱턴의 관행에 대해 국민들이 느끼는 불쾌감을 워싱턴 공직사회가 과소평가한 탓이다.

의회 출입기자들에게 듣기로, 의원 사무실들에 대슐에 관해 (부드럽게 표현해서) 우려를 표시하는 전화와 이메일과 편지와 팩스가 빗발쳤다고 한다. 세금을 내지 않았다는 문제만이 아니라, 상원을 떠난 후 의료산업계의 주요 행위자들과 관계를 맺고 민간부문에서 거액의 자문계약을 맺었다는 점, 그리고 심지어 그중 한 사람으로부터 운전기사가 딸린 자동차까지 받았다는 이유다.

이를 어떻게 봐야 하는가? 월 스트리트 대부분과 마찬가지로 워싱턴의 공직사회도 어쩌면 아직 상황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것 같다.

미국의 보통사람들이 바로 지금 몹시 고통을 받고 있다. 연줄만 잘 잡은 내부자들이 지배하는 체제에서, 까마득히 높은 곳에서 잘 사는 것처럼 보이는 자들은 혐오대상이다. 이익의 충돌, 아늑한 연고관계, 그리고 워싱턴 공직사회뿐 아니라 이 나라에서 가장 큰 은행들과 기업들에까지 뒷거래가 팽배하지 않나 국민들은 점점 더 수상하게 여기고 있다.

요컨대 열심히 일하고, 할 수 있는 한 최대로 저축하면서, 집을 한 채 사고, 법을 지키며, 내야 할 세금을 한 푼도 빠짐없이 납부한 사람들이 봉 노릇밖에 하지 않은 기분이 들기 시작하는 것이다. 일자리가 없어지면서 저축액도 줄어들고, 집값은 구입시보다 한참 밑으로 떨어졌으며, 세금은 이보다 높은 적이 없었다.


그 와중에도 꼭대기에 있는 사람들은 완전히 다른 은하계에서 너무나 다른 생활을 하고 있는 듯이 보인다. 행정부 관리들과 월스트리트의 중개인들은 자기들이 초래한 거품을 이용해서 여러 해 동안 소액 투자자들을 벗겨 먹으면서 왕처럼 살아왔다.

금융계의 광대들은 지금 납세자가 부담하는 수천억 달러의 구제자금을 받아다가 막대한 보너스를 챙기고 흥청망청 파티를 벌이고 있다. CEO들은 기백만 달러 단위의 연봉을 받으면서 수천명의 직원들을 해고한다. 수십억 달러를 굴리는 헤지펀드와 연금펀드 매니저들은 소위 자본수익에 대해 단지 15%의 세금만을 내는 데 비해, 그들에 비하면 쥐꼬리밖에 안 되는 소득에는 세율이 더 높다.


더군다나 워싱턴의 내부자들은 의회나 행정부에서 일했던 경력을 밑천삼아, 한때 자기들이 보조했거나 규제했던 바로 그 회사에 로비스트로 취직해서 수백만 달러를 벌어들인다. 자격을 따지면서 직책이 안배되는 곳, 그리고 “네가 내 등을 긁어주면 나도 네 등을 긁어준다”는 식으로 거래가 이루어지는 곳, 즉 권력 중심부에 속하지 못한 미국인들이 보기에는 체제 전체가 썩은 것 같다.

톰 대슐이 오바마 행정부에 들어가지 못한 것을 나는 아쉽게 생각한다. 국민에게 많은 봉사를 했을 것이고 많은 성과를 보였을 것이다. 그러나 공중은 변화, 진짜 변화, 큰 변화를 원한다. 과거처럼 일을 처리하는 관행에 대해서는 이제 더 이상 관용이란 없다.

"오바마가 이대통령을 잘 따른다더니 이거 한국 얘기랑 비슷하네. 대슐은 사실 부자 친구가 보내준 운전기사와 자가용을 그저 선물인 줄만 알고, 납세대상인지는 몰랐을 뿐이다. 한국에서는 현인택도 신영철도 윤증현도 김석기도 논문이중게재의혹도 절대농지투기의혹도 과잉진압도 '모르고 그랬다'면서 그냥 넘어갈 기센데, 미국은 포퓰리즘이 너무 심하게 가혹한 모양이다."

"그나저나 라이시 이 친구 은근히 체제전복을 선동하는 포퓰리스트 빨갱이 아닌가? 잘 사는 사람들의 뛰어난 능력을 존경하는 것이 아니라, 시기와 질투의 평등주의를 퍼뜨리고 있지 않은가? 잘못 생각하는 어리석은 백성들을 꾸짖고 가르쳐야지, 어떻게 '체제가 썩었다'는 소리를 할 수 있는가? 나라가 온통 경제가 위기라고 법석인데 대통령을 중심으로 단합하기는 커녕, 유능한 사람을 골라 놓으니 별 일도 아닌 것을 트집 잡아서 낙마나 시키고 있으니 미국도 앞날이 캄캄하다. 모르고 안 낸 세금 문제되자마자 냈다는데 왜 그러는 것일까?"

"오바마가 너무 약골인 것 같다. 매케인에게 압승했겠다, 경제도 위기겠다, 의회에서도 민주당이 다수겠다, 그저 밀어붙이면 되는데. 미국 의회는 한국처럼 야당이 점거농성을 할 리도 없고, 임기 시작하는 판에 민주당이 반란할 리도 없고 말이지. 세계 최강의 경찰력과 군사력을 통솔하는 미국군대의 총사령관이 너무 물러 터졌네. 권위라는 건 한번 밀리면 끝장인데, 혹시 오바마 자신이 빨갱이 아녀?"

이런 궁금증을 가질 사람이 대한민국에 적어도 아홉 명은 있는 것 같다. 그들의 궁금증을 풀어줄 만한 방법은 내게 전혀 없다. 다만 이런 의문들이 얼마나 멍청한지를 확인해 보려고 역지사지해서 대신 한번 써봤다. 그래도 워낙 배배꼬인 생각들이라서 이만큼을 쓰는 중간에도 불쑥불쑥 치미는 화를 자제하느라 수양 많이 했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필자의 블로그(http://blog.honi.co.kr/dongcpark)에도 실렸습니다.


덧붙이는 글 이 글은 필자의 블로그(http://blog.honi.co.kr/dongcpark)에도 실렸습니다.
#오바마 #톰 대슐 #라이시 #포퓰리즘 #빨갱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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