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틴 루터 킹이 상습 표절범?

김종철 선생의 글을 보고 느낀 실망

등록 2009.02.11 08:39수정 2009.02.11 08: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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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히 원로 언론인 김종철 선생의 글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도 표절의혹(미디어 오늘, 2009. 2. 10)을 보았다. 마틴 루터 킹이 통속적인 기준으로 볼 때 순결한 사람은 아니라고 알고 있었지만, 김종철 선생이 적은 내용이 사실이라면 이건 순결하지 않은 것이 아니라 악한이라고 봐야 할 정도였다.

대부분 처음 듣는 얘기라서 조금만 확인해 볼 생각으로 김종철 선생이 인용하는 전거들을 뒤져봤다. 결과는 유감스럽게도 김종철 선생에 대한 실망이었다. 부정확한 전거를 그냥 따왔을 뿐만 아니라, 한번만 더 확인했다면 금방 알아낼 수 있는 실수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김종철 선생이 하는 말이 다 틀린 것은 아니다. 따라서 좀더 세부를 들여다 보자. 김종철 선생이 거론하는 혐의들은 다음과 같이 요약된다.

- 보스턴 대학 박사 학위논문을 비롯한 학창시절의 표절 혐의

박사논문 '폴 틸리히와 헨리 넬슨 위먼의 사상에서 신의 개념 비교'는 표절의 결과다. '대승불교의 주된 특성과 법리'는 다른 저작에서 거의 베꼈다. 미국의 주요 신문들은 킹이 그런 행동을 했다 하더라도 그는 여전히 위대한 사람이라면서 그를 옹호했다. 보스턴 대학은 킹의 부적절한 행위를 인정하면서도 “여전히 학문에 기여하는 바가 있다”면서 학위를 취소하지 않았다.

- 유명한 연설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 표절 의혹

아치볼드 2세가 1952년 공화당 전당대회에서 한 연설과 비슷하다. 새뮤얼 프랜시스 스미스의 노래 “나의 조국은 당신 것입니다” 가사 첫절을 인용하고 나서 여러 산 이름을 대면서 “자유여 울려 퍼져라”고 노래하기 때문이다.


- 인터넷에 “마틴 루터 킹의 표절페이지”(Martin Luther King Jr. Plagiarism Page)까지 있을 정도다.

- 얼룩진 사생활


당시 흑인운동의 양대 지도자였던 말콤 X는 도덕성 문제가 거의 거론되지 않는데 비해, 그보다 훨씬 높은 칭송을 받는 킹은 표절 외에도 사생활이 스캔들로 얼룩져 있다는 비난을 자주 받았다. 그 내용이 너무 끔찍해서 열거하기가 어렵다.

이렇게 말한 후 극우 정치인인 레이건이 대통령으로 재직 중에 마틴 루터 킹 2세 기념일을 국경일로 제정하는 데 서명한 것은 정치적인 계산의 결과라는 말, 그리고 제시 헬름즈와 같은 반대의견은 다수의 목소리에 묻혀버렸다고 김종철 선생은 글을 마무리한다.

내가 조사한 결과를 순서에 따라 제시한다. 깊게 파고든 것은 아니고 간단한 클릭으로 찾아본 결과다.

- 킹은 학창시절에 상습적으로 표절하는 습관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논문들을 직접 확인하지 못해 내 판단을 말할 수는 없지만, 보스턴 대학에서 학위취소까지는 하지 않으면서도 도서관에 보관된 킹의 학위논문에 “적절한 인용과 전거표시 없이 여러 대목이 포함되어 있다”는 쪽지를 붙여놓은 것을 보면 표절이 있었음을 부인할 수 없는 것 같다.

'대승불교의 주된 특성과 법리'는 우리말로는 논문이라기보다는 보고서라고 해야 맞지만, 어쨌든 그 보고서는 거의 통째로 베껴온 것으로 짐작된다. 그러나 김종철 선생이 놓친 점도 있다. 그가 주된 전거로 삼은 위키피디아 기사 '마틴 루터 킹 2세의 저작권 문제'(Martin Luther King Jr. Authorship Issues)에 인용된 랄프 루커는 이렇게 평했다.

“표절의 양을 보면 자기가 학계 규범의 경계선에 걸린다는 사실을 알았을 것으로 보이지만, 이에 관해 확언할 직접 증거는 없다. 더구나 성년이 된 초기 행동을 보면 자기가 이런 학술성과를 내놓는 학자라는 생각보다는 학술성과들을 활용하는 설교자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점점 짙게 나타난다”.

설교자라고 해서 학기말 보고서나 학위논문에 표절을 해도 괜찮은 것은 당연히 아니다. 그러나 내가 생각할 때, 킹은 1950년대 초반에 대학을 다녔다는 점, 그리고 스스로 설교자로서 생각했다는 점이 그를 악한이라고 매도하기 전에 고려될 사항이다.

- 김종철 선생의 글은 그런데 위 내용을 제목으로 달지 않고 훨씬 자극적으로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를 문제삼았다. 내가 찾아본 결과 이 연설문에 관해 표절 시비가 있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시비가 있다는 것만으로 표절 혐의를 확인할 것이 아니라, 관련된 대목이 짧기 때문에 내용을 검토하면서 판단해봐야 한다.

문제되는 대목은 연설문 중 마지막 두 문단이다. 사뮤엘 스미스의 “아메리카”(원제는 “조국이여 나는 당신을 노래합니다”라는 뜻인데 “아메리카”라는 이름으로도 불린다. 김종철 선생은 제목만 보고 다음 행을 안 본 듯하다) 1절이 나온 후, 그 운을 따라 “뉴햄프셔의 웅장한 고개 꼭대기 위에서 자유여 울려퍼져라, 뉴욕의 장엄한 산에서 자유여 울려퍼져라. ……콜로라도의 눈덮힌 록키 산맥에서 자유여 울려퍼져라…” 등으로 십수행이 이어진다.

아치볼드 캐리 1세(김종철 선생의 작은 오류를 수정했다)의 연설은 이렇게 진행된다. 마찬가지로 “아메리카” 1절 가사를 읊은 후, 그 운을 따라 “버몬트와 뉴햄프셔의 그린 마운틴과 화이트 마운틴 뿐만 아니라, 뉴욕의 캐츠킬스 뿐만 아니라, …… 버지니아의 블루리지 마운틴에서도 …… 자유여 울려퍼져라.”

스미스의 “아메리카”란 영국국가의 곡조에 스미스의 시로 개사한 곡으로서 “성조기여 영원하라”가 국가로 채택되기 전 19세기 말까지는 사실상의 국가 역할을 했던 노래다. 그리고 1절 마지막 줄은 “모든 산등성이에서 자유여 울려 퍼져라”이다.

캐리의 아이디어를 모방한 것은 사실일 수 있겠지만, 이걸 표절이라고 말하기는 어렵다고 나는 생각한다. 김종철 선생이 이 연설문들을 보고서도 표절이라고 말할지가 궁금하다.

- 인터넷에 있는 “마틴 루터 킹의 표절페이지”(Martin Luther King Jr. Plagiarism Page)는 일부 사실을 토대로 삼은 위에, 여러 가지 정황들을 아무 근거도 없이 부풀려서 킹을 폄훼할 목적으로 생긴 사이트라는 사실을 알아채는 데 별로 오래 걸리지 않았다.

한국으로 치면 조갑제 닷컴과 (규모와 영향력에서가 아니라 침소봉대와 왜곡에서) 비슷한 부류인데, 김종철 선생이 그 정도도 알아보지 못해서 실망했다. 인터넷에는 “마틴 루터 킹 2세에 관한 진실”(http://www.truthorfiction.com/rumors/m/mlk.htm)이라는 페이지도 있다. 내가 캐리의 연설문을 확인할 수 있었던 것도 그 덕분이었다.

- 킹의 여성편력은 어지간히 알려진 사실이다. 단, “너무나 끔찍해서 열거하기 어렵다”는 이야기는 아마 “마틴 루터 킹의 표절 페이지”에 나온 이야기를 김종철 선생이 그대로 믿은 모양인데 (거기 보면 무슨 FBI 요원의 증언이니 뭐니 해서 나온다), “마틴 루터 킹 2세에 관한 진실”을 보면 그런 소리는 사실이 아니라고 판정이 되어 있다. 근거는 킹의 가까운 친구였던 애버나시의 1989년 자서전이다. 킹의 여성편력에 관해 확언할 입장은 전혀 아니지만, 지금 나보고 정해서 답하라면 “끔찍해서 열거하기 어려운” 일들은 사실이 아니라고 말할 것이다.

한국사회에서 표절 시비는 근래 자주 발생한다. 하지만 명확하게 표절이다 아니다가 판명되지도 못한 채 문제 자체는 흐지부지 끝나면서, 아무개의 거취로만 관심이 집중된다. 나는 그 이유 중에 언론계의 대단히 잘못된 관습이 크게 작용한다고 본다. 이런 경우처럼 그저 유명하다는 사람에 대해 악의적인 시비든 근거가 있는 시비든 별로 가리지 않고 써갈겨 버리는 태도 말이다.

확인을 해서 써야 진짜 잘못한 일과 크게 문제 삼지 않아도 될 일을 구분할 수 있을 것이다. 그래야 잘못한 사람을 골라서 벌을 주든지 징계를 하든지 할 수가 있다. 그저 시비만 있으면 모두 잘못이라고 치부해버린다면, 목소리 큰 놈만 살아남는 그레샴의 법칙이 활개를 칠 뿐이다.

킹은 결혼한 후에도 여자관계가 있었다. 킹은 목사였지만 금욕의 모범은 아니었다. 킹은 학창시절에 표절을 했다. 그것이 얼마나 큰 잘못인지를 알고 했는지, 어차피 설교자로 갈 거니까 괜찮다는 생각에서 했는지는 알 수 없다. 어쨌든 자랑스러운 일은 절대 아니다. 그 때문에 그가 받은 모든 칭송이 매도로 바뀌어야 하고, 그를 존경하던 사람들이 모두 배신감을 느껴야 하고, 그가 생전에 이룩한 업적이 전부 쓰레기통으로 들어가야 하는가? 각자 알아서 판단할 일이지만, 나는 전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킹을 칭송하는 목소리가 미국 백인 사회에서 높은 데에는 물론 약간의 비린내가 나는 것이 사실이다. 킹을 칭송하는 것이 주류인 세상에 편승하려는 풍조가 분명히 있다. 그러나 킹을 매도한다고 해서 그 비린내가 없어질 것 같지는 않다. 나아가 미국 사회가 오늘날 킹을 선양하는 데에는 과거 흑인에게 저지른 만행에 대한 속죄의 의미와 함께 생색의 의미도 분명히 있다.

생색이 섞였다는 이유로 속죄를 비난해야 할까? 미국 사회의 주류가 킹을 찬양한다고 흑인들 개개인의 삶이 나아질 것은 별로 없겠지만, 개인들의 삶이 죽은 킹과 어차피 별 상관이 없다면 킹이라도 영웅이 되는 것이 누구한테 폐가 되지도 않는 것 같다. 표절이나 여자관계에도 불구하고, 이 세상에 영웅이라는 것이 아예 쓸데없는 소리라면 모를까, 영웅이라는 게 있기는 하다면 킹은 분명 그 중 하나일 테니까.

덧붙이는 글 | 필자의 블로그(http://blog.hani.co.kr/dongcpark)에도 실렸습니다.


덧붙이는 글 필자의 블로그(http://blog.hani.co.kr/dongcpark)에도 실렸습니다.
#마틴 루터 킹 #표절 #김종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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