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칭 보수단체에 속해 있는 몇 사람이 가수 신해철 씨를 검찰에 고발했다. 신해철 씨가 지난 8일 북한 로켓 발사를 축하하며 인터넷에 올린 글이 국가보안법 위반(7조 찬양·고무)이니 철저히 수사해 엄벌에 처해달라는 주장이다.
지나가던 소가 웃을 일이다. 도대체 왜 한 사람의 자유로운 생각을 폐기돼 마땅한 국가보안법으로 위협할까. 국가보안법은 일본제국주의가 항일애국인사들을 탄압했던 악법인 치안유지법을 이어받아 미국과 소련이 주도한 냉전체제에 편승해 만들어졌다.
1948년 만들어졌으니 벌써 61년이나 됐다. 해외에서 오래 지내다보니 국내 지지기반이 별로 없던 대통령 이승만에게 국가보안법은 막강한 힘을 갖게 해 주었다. 이승만 반대자는 어김없이 '빨갱이'로 낙인 찍혔다. 친일반민족행위자들을 조사, 처벌하려 특별법에 따라 구성된 '반민특위' 활동도 빨갱이로 몰려 좌절됐다.
그런 사회분위기 속에서 1949년 현역 장교 안두희는 통일정부 수립에 앞장섰던 백범 김구 선생을 마음 놓고 살해할 수 있었다. 이승만식 북진통일이 아닌 평화통일을 입에 올려도 '빨갱이'로 몰렸다. 진보당 당수 조봉암을 비롯한 수많은 민족주의자들이 '불순'한 간첩으로 몰려 사형당하거나 감옥에 갇혔다.
부정선거로 장기집권을 꿈꾸던 이승만이 4.19혁명으로 물러난 뒤엔 쿠데타로 권력을 잡은 박정희 독재가 이어졌다. 박정희 독재에 반대하던 학자와 종교인들은 걸핏하면 끌려가 고문당했다. 중앙정보부(국가정보원의 옛 이름) 지하실에서 고문에 지쳐 쓰러지면 신문과 방송이 대서특필했다. "간첩단 적발!" 국가보안법 위반이라 주장했다.
서울대에서 법학을 가르치던 최종길 교수는 고문으로 죽었고, 이른바 인혁당 관계자들은 억울한 누명을 쓴 채 형장의 이슬로 사라져야 했다. 꿈에 그리던 모국에 찾아온 재일교포에게 간첩의 굴레를 씌었고, 임금인상 같은 노동자의 정당한 요구조차 '불순분자'의 행위로 몰려 처벌받았다.
10월 유신으로 영구집권을 노리던 대통령 박정희가 1979년 자신의 심복이었던 중앙정보부장이 쏜 총에 사망한 뒤에도 국가보안법의 위력은 계속됐다. 민주주의를 지키려던 광주시민들은 '불순세력'으로 왜곡됐고, 학살당했다. 학살 주도 세력의 우두머리인 장군 전두환은 '난세의 영웅'으로 둔갑해 대통령 자리까지 올랐다.
국회의원도 국가보안법의 칼날을 피하지 못했다. "이 나라의 국시는 반공보다 통일이 되어야 한다"고 말한 국회의원이 구속됐다. 헌법에 보장된 '양심의 자유', '학문의 자유', '표현의 자유'는 국가보안법의 반국가단체니 이적이니 하는 무시무시한 규정에 유린당했다.
표현의 자유는 자유민주주의의 기본
북한과 관계가 없거나 북한에 대해 비판하는 태도를 보였던 사람도 일부 주장이 북한과 비슷하면 처벌됐다. 예술 작품이나 대학교수의 학술 논문마저도 '이적표현물'이 되곤 했다. 애매모호한 법률 조문 때문에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인 국가보안법은 앰네스티와 유엔에서도 폐지를 권고할 정도로 악명이 높다.
국가보안법은 6·15 남북공동선언으로 열린 통일시대에 맞지 않을 뿐더러 법 전체가 반인권·반민주 조항으로 가득차 있다. 그 중에서도 가장 심각한 조항이 바로 신해철 씨를 걸고 들어간 이른바 '찬양·고무' 조항(7조)이다.
심지어 미국 정부도 국가보안법은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고, 법 해석의 남용 우려가 있다면서 개정을 권고한 바 있다. 하지만 일부 세력은 여전히 국가보안법이 폐지되면 마치 국가안보가 흔들릴 것처럼 호들갑을 떤다. 이런 반응은 극우 반공 논리에 매몰된 '정신착란'일 뿐이다.
국가안보는 사상이나 표현을 통제해서 지켜지는 게 결코 아니다. 오히려 자유로운 사상과 표현의 자유를 누리는 시민은 주인이란 긍지로 더욱 국가와 사회의 안전에 힘쓰게 된다. 더구나 '사상의 자유'와 '표현의 자유'는 그 어떤 이유로도 막아선 안 될 인간 본연의 권리다.
자유민주주의에서 사상의 자유가 갖는 중요성과 관련해 1929년 미국 연방대법원의 홈즈 판사는 "사상의 자유는 우리가 동의하는 사상의 자유가 아니라, 우리가 증오하는 사상의 자유를 보장하는 것"이라고 강조한 바 있다.
오늘 날 전 세계인의 다수가 누리는 자유민주주의도 바로 사상과 표현의 자유를 지키고자 수많이 사람들이 노력했기에 보장된 것이다.
이번에 신해철 씨를 고발한 단체들은 자유민주주의 기본부터 다시 배워야 한다. 진정 임시정부의 법통을 이어받은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지키고, 자유민주주의의 가치를 지키고자 한다면 국가보안법 폐지에 나서야 올바른 도리다.
나는 신해철 씨를 고발한 당신들의 생각에 반대한다. 하지만 당신들이 자신들의 생각과 표현 때문에 탄압받는다면 나는 당신들 편에 서서 싸울 것이다.
사람의 생각을 법으로 가둘 수 있다는 발상은 어제든 히틀러같은 독재자의 득세와 중세 마녀사냥의 악몽을 불러 올 수 있기 때문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수원시민신문(www.urisuwon.com/)에도 보냈습니다.
2009.04.17 18:48 | ⓒ 2009 OhmyNew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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