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 안 써야 우리 말이 깨끗하다 (301)

― ‘이 땅의 삶의 모습’, ‘한국사람들의 죄의 값’, ‘할머니의 마음의 고향’ 다듬기

등록 2009.05.25 19:21수정 2009.05.25 1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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ㄱ. 이 땅의 삶의 모습

 

.. 이 땅의 삶의 모습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까 엄청나게 고민하면서 무지막지하게 사진을 찍고 다녔다 ..  《최광호-사진으로 생활하기》(소동,2008) 82쪽

 

 '표현(表現)해야'는 '나타내야'나 '보여줘야'로 다듬고, '고민(苦悶)하면서'는 '생각하면서'나 '괴로워하면서'나 '골머리를 앓으면서'로 다듬습니다. '무지막지(無知莫知)하게'는 '우악스럽게'나 '되는 대로'나 '마구잡이로'로 손질합니다.

 

 ┌ 이 땅의 삶의 모습을

 │

 │→ 이 땅에서 살아가는 모습을

 │→ 이 땅에서 사는 사람들 모습을

 └ …

 

 '땅'이라는 말도 좋고 '삶'이라는 말도 좋으며 '모습'이라는 말도 좋습니다. 그러나 이 좋은 낱말을 구슬처럼 엮지 못하고 맙니다. 좋은 낱말을 좋은 실로 꿰어 좋은 구슬로 빛이 나도록 해 주면 참으로 훌륭할 텐데.

 

 세 낱말을 그대로 두고 싶다면, "이 땅에서 삶은 어떤 모습인지를"로 적을 수 있습니다. 삶은 사람이 꾸리기 마련이니, "이 땅에서 사람들은 어떤 모습인지를"로 적어도 됩니다. "이 땅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을"로 적어도 어울립니다.

 

 

ㄴ. 한국사람들의 죄의 값

 

.. 일제에 강탈당해 가는 망국의 비운은 한국사람들의 죄의 값이므로 민족의 시련을 하나님의 채찍으로 알고 참고 견디어야 한다는 선교사들의 권고와 가르침에서 형성된 신앙형태인 것이다 ..  《한국기독교 백주년기념사업회 여성분과위원회 엮음-여성! 깰지어다, 일어날지어다, 노래할지어다 : 한국기독교여성백년사》(대한기독교출판사,1985) 30쪽

 

 '강탈당(强奪當)해'는 '빼앗겨'로 다듬고, "망국(亡國)의 비운(悲運)"은 "나라 잃은 슬픔"으로 다듬으며, "민족(民族)의 시련(試鍊)"은 "겨레가 겪는 괴로움"이나 "겨레가 괴로움을 겪는 일은"으로 다듬습니다. "하나님의 채찍"은 "하나님이 휘두르는 채찍"이나 "하나님이 내리는 채찍"으로 손보고, "선교사들의 권고(勸告)"는 "선교사들 말씀"으로 손보며, '형성(形成)된'은 '이루어진'으로 손봅니다. "신앙형태(信仰形態)인 것이다"는 "믿음이다"로 손질해 줍니다.

 

 ┌ 한국사람들의 죄의 값이므로

 │

 │→ 한국사람들이 지은 죄 값이므로

 │→ 한국사람들 죄값이므로

 │→ 한국사람들이 잘못한 탓이므로

 │→ 한국사람들이 잘못한 갚음이므로

 └ …

 

 죄를 지은 값은 '죄값'입니다. 책에 매겨진 값은 '책값'이고, 옷에 붙은 값은 '옷값'입니다. 밥을 먹을 때에는 '밥값'이고, 집을 장만할 때에는 '집값'입니다. '책의 값'도 '옷의 값'도 '밥의 값'도 '집의 값'도 아닙니다.

 

 보기글에서는 앞에 붙은 토씨 '-의'를 어떻게 떨구느냐에 따라서 '죄값'으로 적을지와 '죄 값'으로 적을지가 나뉩니다. 토씨 '-의'를 털어낸다면 "한국사람들 죄값"처럼 적고, 토씨 '-이'를 붙이려면 "한국사람들이 지은 죄 값"처럼 적습니다.

 

 글흐름을 헤아려 보면, "죄를 지은 값"이라고 하기보다는 "잘못한 탓"이라 할 때가 한결 낫지 않으랴 싶습니다. "잘못한 까닭"이라 하거나.

 

 글짜임을 손질해서, "한국사람들이 잘못했기에 일제한테 나라를 빼앗겼고, 겨레가 겪는 아픔은 하나님 채찍으로 알고"처럼 고쳐 볼 수 있습니다. "한국사람들이 잘못한 탓에 일제한테 나라를 잃은 슬픔을 겪었으므로, 겨레한테 주어진 고달픔을 하나님 채찍으로 알고"처럼 고쳐 보아도 됩니다.

 

 

ㄷ. 할머니의 마음의 고향

 

.. 그러나 파스칼레는 할머니의 마음의 고향에 한 소녀가 살고 있는 것을 발견한 것이 아닐까? ..  《가와이 하야오/햇살과나무꾼 옮김-판타지 책을 읽는다》(비룡소,2006) 273쪽

 

 "살고 있는 것을"은 "살고 있음을"로 다듬고, "발견(發見)한 것이 아닐까"는 "찾아내지 않았을까"로 다듬어 줍니다.

 

 ┌ 할머니의 마음의 고향

 │

 │→ 할머니 마음에 깃든 고향

 │→ 할머니 마음에 남은 고향

 │→ 할머니 마음에 새겨진 고향

 │→ 할머니 마음에 자리한 고향

 └ …

 

 보기글을 보니, "할머니 마음"이라 않고 "할머니의 마음"이라 했기에 말썽이 생깁니다. "아버지 마음"과 "누나 마음"처럼 단출하게 적으면 넉넉합니다. "하느님 마음"이고 "부처님 마음"인 한편, "선수 마음"이고 "감독 마음"입니다.

 

 ┌ 할머니 마음이 살고 있는 고향

 ├ 할머니 마음이 머물고 있는 고향

 ├ 할머니 마음이 떠올리는 고향

 ├ 할머니 마음이 꿈꾸는 고향

 └ …

 

 일본사람이 쓰는 글에는 'の'가 많이 쓰입니다. 그래서 일본책을 우리 말로 옮기면서 제대로 마음을 쏟지 않으면 토씨 '-의'가 곳곳에 많이 끼어들고 맙니다. 곰곰이 살피고 찬찬히 가누어 주어야 일본글에서 'の' 구실을 하는 '-의'가 함부로 들러붙지 않도록 추스를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이렁저렁 대충대충 글을 쓴다든지, 너무 서두르거나 얕은 눈길로 서둘로 지나쳐 버리면, '-의 -의'처럼 쓰이는 글투나 '-의 -의 -의'처럼 쓰이는 보기가 글투가 튀어나오고 맙니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 인터넷방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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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5.25 19:21ⓒ 2009 Ohmy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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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씨 ‘-의’ #-의 #우리말 #한글 #국어순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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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꽃(국어사전)을 새로 쓴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를 꾸린다. 《쉬운 말이 평화》《책숲마실》《이오덕 마음 읽기》《우리말 동시 사전》《겹말 꾸러미 사전》《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비슷한말 꾸러미 사전》《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읽는 우리말 사전 1, 2, 3》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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