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향소 다녀간 어느 공무원 '얼굴 팔릴라'

등록 2009.05.28 15:23수정 2009.05.28 1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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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무하는 곳 가까운 공원에 분향소가 있어서 오다 가다 짬짬이 들른다. 노사모는 아니지만 노사모에 속한 이들이 거의 NGO활동을 겹치게 하는 사람들이 많기도 하지만 그게 이유는 아니다. 아무 이유가 없다. 그냥 가고 싶어서다. 가보면 더러는 방송에서 봉하마을 비칠 때 보였던 얼굴들도 있다.


아예 휴가를 며칠씩 받아 자원봉사를 하는 사람들도 있고 나를 알아보고 악수를 건네는 사람들도 많고. 나 또한 내가 먼저 알아보고 포옹을 하는 사람도 적잖다. 어쩌면 그런 사심없는 만남이 좋아서인지도 모른다. 돌아가신 분을 추모한다고 하지만 정작 살아있는 우리들의 마음을 나누는 것이다.

점심시간 잠깐이긴 하지만 그 잠깐 동안에도 찾아보면 자원을 할 수 있는 일들이 여러 있었다. 조문객에 꽃 나누어주거나 조문리본 달아주기, 쓰여진 조문메모를 컴으로 정리하기, 노란 리본을 줄에 달고 글씨 잘 보이게 하기, 조문객에게 차와 생수 나누기, 바람에 자꾸 쓰러지는 화환 잘 모시기 등등 참 많다.

짧은 점심시간에 업무상 종종 마주치는 공무원인 낯익은 얼굴이 보였다. 그러나 그 장소에는 낯설어 보였다. 왜냐하면 본인이 긴장을 하면서 혹시 아는 사람들이나 기자가 있을까  눈치를 보기 때문이다. 그도 그럴 것이 바로 1-2분 거리에 그 분이 일하는 관공서가 있기 때문이다.

지자체 공문원들은 참 자주 자리가 바뀐다. 다른 부서로, 혹은 같은 부서라도 다른 업무로 바뀌는데 지방에서 한 10년 쯤 일하다면 웬만한 실무 공무원들은 대부분 비속어로 쪽이 팔리게 된다. 사업마다 항상 시장, 도지사가 축사를 하게 되면 그에 관할된 부서장과 실무들이 줄줄이 딸려온다.

그렇게 이미 팔린 얼굴인 셈이신 그 분이 내일 장례식을 앞두고, 오늘 조문을 하러 오기까지는 참 많이 망설이다 왔다는 것을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었다.


그래서 그 분이 조문 마치길 기다려 일부러 북작한 사람들 틈새로 손을 잡고 끌었다. 그리고 눈에 안 띄게 섞여 앉아 반갑다고 악수하며 어렵게 오신 것 같다고 오신 소감이 어떠냐고 물었다.

"처음에는 당연히 안 해도 된다고 생각했어요. 국민장으로 결정이 났을 때도 변함이 없었구요.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마음 안의 숨은 사랑 같은 이 애도의 마음을 표현 안 하면 이 다음 자식들이나 손주들에게서 화제가 나왔을 때도 좀 마음이 불편하고 평생 후회할 것 같아서요. 좀 늦게 온 셈이지요? 선생님!"


내놓고 가보라 하는 기관들도 있어 "분향소 갔다 왔어요!" 하고 편하게 털어놓을 수 있는 곳도 많겠지만, 말로는 국민장이기에 어쩔 수 없이 가보라고 생색 내지만 조문리본을 다는 것도 눈치 보이는 공공 기관들도 적잖다.

마치 옛날의 노론과 소론 또는 북인과 남인들의 정파싸움에서 상대편 진영과 소통하면 내통이라 오해받는 것 같다면 비약일지 모르겠다.

아무튼 그렇게 분향소에 와서 얼굴이 팔리는 것에 신경을 쓰면서 소감을 이야기하는 그 분을 보니 몰래하는 가슴 아린 사랑같았다. 그리고 넘겨도 넘겨도 잘 넘겨지지 않는 어떤 것들을 도로 내뱉아 되새김질 하는 것 같기도 하였다.

그래서 얼른 들어가 보시라고 권했다. 그리고 참 잘 오신 것 같다고 고맙다고 했는데 오히려 그분은 나를 걱정하며 당부하고 들어갔다. 오늘 분향은 늦게 왔지만 그래도 참 잘한 것 같고 마음이 편해졌다며, 저녁의 문화제에 촛불 오래 들지 마시고 조심하시라고 하고 갔다.

그가 조심하라고 한 것이 내 몸의 안위일까? 아니면 전경들일까? 한 달이고 두 달이고 몇 달이고 뒤끝있게 촛불을 든 사람들에게 보내는 벌금통지서 등일까?  에라이, 사람이 그것도 대통령도 돌아가셨는데, 그까짓 것이 뭐가 대수람! 초여름날 한 낮의 햇빛을 받은 노무현 대통령이 큰 영정속에서 그렇게 우리를 향해 모두 훌훌 털어버리라고 크게 웃고 있다.
#노무현 #분향소 #애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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