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마디 한자말 털기 (71) 양(量)

[우리 말에 마음쓰기 668] '많은 양', '양껏' 다듬기

등록 2009.06.13 12:57수정 2009.06.13 12: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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ㄱ. 많은 양을 딸 수 있다

.. 그중 두 그루는 그럭저럭 대추가 잘 열려 가을이면 제법 많은 양을 딸 수 있었다 ..  <김진송-목수일기>(웅진닷컴,2001) 64쪽


'그중(-中)'은 '그 가운데'로 다듬습니다. '거기서'로 다듬어도 됩니다.

 ┌ 양(量)
 │  (1) 세거나 잴 수 있는 분량이나 수량
 │   - 양이 많다 / 양이 적다 / 필요한 양만큼만 가져가세요
 │  (2) (고유어와 외래어 명사 뒤에 붙어) 분량이나 수량을 나타내는 말
 │   - 구름양 / 알칼리양
 │  (3) 음식을 먹을수 있는 한도
 │   - 양이 차다 / 알맞은 양만큼 먹어라 / 그는 원래 양이 많아서
 │  (4) = 국량(局量)
 │   - 그 남자는 겉보기와는 달리 양이 매우 큰 사람이다
 │
 ├ 많은 양을 딸 수 있었다
 │→ 많이 딸 수 있었다
 │→ 많이많이 딸 수 있었다
 │→ 한 가득 딸 수 있었다
 │→ 넘치도록 딸 수 있었다
 └ …

"양이 많다"나 "양이 적다"라고도 하지만, 이렇게 '양'을 넣지 않고 "많다"나 "적다"라고만 해도 됩니다. "속도가 빠르다"나 "속도가 느리다"라고도 하지만 "빠르다"나 "느리다"라고만 말하는 우리 말버릇하고 매한가지입니다.

이 자리에서는 "많이 딸"로 적으면 한결 단출하고, 느낌을 살리며 "많이많이 딸"로 적을 수 있습니다. 뜻을 살리면서 "한 가득 딸"이나 "그득그득 딸"로 적어도 됩니다. "넘치도록 딸"이라든지 "넉넉하게 딸"이라든지 "마음껏 딸"처럼 적어도 잘 어울립니다.

 ┌ 양이 많다 → 많다 / 부피가 많다
 ├ 필요한 양만큼만 → 쓸 만큼만 / 있어야 하는 만큼만
 ├ 구름양 → 구름 부피
 ├ 양이 차다 → 배가 차다
 ├ 알맞은 양만큼 → 알맞은 부피만큼 / 알맞을 만큼
 └ 양이 매우 큰 사람 → 그릇이 매우 큰 사람


그러고 보니, 우리들은 우리 스스로 '부피'라는 낱말을 제때 제곳에 제대로 안 쓰면서 '量'만 써 오고 있구나 싶습니다. 우리가 일찌감치 '부피'를 알맞게 써 오고 있었다면 '구름 부피'나 '알칼리 부피' 같은 말씀씀이가 그리 낯설지 않다고 느낄 터이나, 너무 오래도록 '양'만 쓰고 있으니, 자꾸자꾸 '부피'가 우리 입에서 멀어지는구나 싶습니다.

학교에서는 오로지 '양'일 뿐 '부피'가 아닙니다. 집에서도 '양'을 말하지 '부피'를 따지지 않습니다. 가게에서도 그러합니다. 물건을 만드는 공장과 물건을 다루는 회사에서도 다르지 않습니다. 어느 곳에 가든 온통 '양'입니다. '부피'를 말하는 목소리를 듣기 몹시 어렵습니다.


우리 말은 우리 스스로 살려야 할 말이지만, 우리 말은 우리 스스로 죽이고 마는 말이기도 한 셈일까요. 우리가 얼마나 마음을 쏟느냐에 따라 한껏 북돋우고 살리는 말이지만, 우리가 제대로 마음을 안 쏟고 제대로 생각을 하지 않는 가운데 나날이 시들고 찌들고 주눅드는 말이라고 할까요.

이제라도 살리자면 살릴 수 있는 우리 말 '부피'입니다만, 이제부터라도 알뜰히 살리자고 마음을 쏟거나 생각을 바치는 사람은 몇이나 될는지 모르겠습니다.

ㄴ. 양껏

.. 시레토코의 큰곰은 피하 지방을 양껏 모아서 아마 지금쯤은 자기 몸을 주체하기 힘들어 하고 있겠지 ..  <다케타즈 미노루/김창원 옮김-숲속 수의사의 자연일기>(진선북스,2008) 159쪽

"시레토코의 큰곰"은 "시레토코에 사는 큰곰"으로 손봅니다. '피하(皮下)'는 '살밑'으로 손질하고, "자기(自己) 몸"은 "제 몸"으로 손질합니다.

 ┌ 양껏 모아서
 │
 │→ 배부르게 모아서
 │→ 배터지게 모아서
 └ …

밥을 먹을 때에도 "양껏 먹는다"고 이야기합니다. 이때 가리키는 '양'이란 우리 밥통입니다. 입으로 꿀꺽꿀꺽 삼켜서 몸속에 넣을 수 있을 만한 부피를 가리킵니다. 그래서 이때에는 '배불리'나 '배부르게' 같은 낱말로 가리켜도 되고, 좀더 넉넉히 먹고 싶다 할 때에는 '배터지게' 같은 낱말로 가리켜 줍니다.

또는, '마음껏'이나 '마음대로'나 '내키는 대로'나 '먹고픈 대로'를 쓸 수 있습니다. 이야기 흐름에 맞추어 알맞게 넣으면 됩니다.

 ┌ 실컷 모아서
 ├ 잔뜩 모아서
 ├ 든든히 모아서
 ├ 있는 대로 모아서
 └ …

보기글에서는 겨울잠을 자기 앞서 큰곰이 살밑 지방을 늘리는 모습을 이야기합니다. 이 대목에서는 "살밑 지방을 배부르게 모아"라 하면 좀 어울리지 않으니 "살밑 지방을 실컷 모아"나 "살밑 지방을 잔뜩 모아"라 하면 어떠할까 싶습니다. "있는 대로 모아"나 "모을 수 있을 만큼 모아"나 "뚱뚱해지도록 모아"라 적어 보아도 잘 어울리리라 봅니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을 생각하고, 내가 하고 싶은 말을 어떤 말그릇에 담으면 좋을까를 생각하며, 내가 하고 싶은 말을 듣는 사람은 어떤 느낌일까를 헤아려 봅니다. 알맞게 쓸 말을 즐겁게 찾아보고, 걸맞게 쓸 글을 기쁘게 가다듬습니다. 내 생각을 담는 내 말이니까요. 내 마음을 펼쳐 보일 내 글이니까요.

덧붙이는 글 | 글쓴이 인터넷방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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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마디 한자말 #한자 #우리말 #한글 #국어순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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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꽃(국어사전)을 새로 쓴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를 꾸린다. 《쉬운 말이 평화》《책숲마실》《이오덕 마음 읽기》《우리말 동시 사전》《겹말 꾸러미 사전》《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비슷한말 꾸러미 사전》《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읽는 우리말 사전 1, 2, 3》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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