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 없애야 말 된다 (221) 잠정적

― '나의 잠정적 결론', '우리 나름의 잠정적 결론' 다듬기

등록 2009.06.13 16:30수정 2009.06.13 1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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ㄱ. 나의 잠정적 결론

.. 나의 잠정적 결론은 나방은 털로, 나비는 깃털로, 나비 중에서 유리처럼 투명한 나비는 톱니로 덮여 있다는 것이다 ..  《마리아 지빌라 메리안/윤효진 옮김-곤충ㆍ책》(양문,2004) 30쪽


'나의'는 '내'로 고치거나 글흐름에 맞게 '내가 내린'이나 '내가 생각한'으로 고쳐 줍니다. "나비 중(中)에서"는 "나비 가운데"로 손보고, '투명한'은 '속이 비치는'이나 '속이 보이는'으로 손봅니다.

 ┌ 잠정적(暫定的) : 임시로 정하는
 │   - 잠정적 합의 / 잠정적 결정에 따르기로 합의했다 / 잠정적인 결론 /
 │     잠정적인 활동 중단
 ├ 잠정(暫定) : 임시로 정함
 │   - 잠정 사항 / 잠정 조처
 │
 ├ 나의 잠정적 결론은 이렇다
 │→ 내가 임시로 내린 결론은 이렇다
 │→ 나는 얼추 이렇게 본다
 │→ 나는 지금은 이렇게 생각한다
 │→ 나는 이러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 내 나름대로는 이렇게 생각한다
 └ …

"임시로 무엇을 한다"고 하는 '잠정'입니다. '임시(臨時)'란 "미리부터 무엇을 하기로 생각하거나 따지지 않고 그때그때 흐름에 맞추어 무엇을 하기로 하는 일"을 가리킵니다. 그래서 "잠정 사항"이나 "잠정 조처"라는 일은 "임시 사항"이나 "임시 조처"하고 똑같은 셈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잠정이나 임시란, 한 마디로 하면 '땜질'입니다.

땜질을 하는 일이란, 오래도록 이어가는 일이 아닙니다. '잠깐 동안' 하는 일이며, '한동안' 지키는 일입니다. '그때그때' 맺은 일이요, '그 자리에서' 다짐한 일이며, '지금으로서는' 이와 같이 하자는 일입니다.

 ┌ 잠정적 합의 → 임시 합의 / 한동안 모으기로 한 뜻 / 이 자리에서 모은 뜻
 ├ 잠정적 결정에 따르기로 합의했다
 │→ 임시로 세운 결정에 따르기로 했다
 │→ 지금은 이대로 따르기로 했다
 │→ 한동안 이렇게 따르기로 했다
 └ 잠정적인 활동 중단 → 한동안 활동 안 함 / 한동안 쉬기로


낱말뜻과 낱말쓰임을 곰곰이 살피는 동안, '잠정'이나 '임시'나 이냥저냥 써도 그리 큰 탈은 없겠구나 싶습니다. 그렇지만 이냥저냥 써도 괜찮기는 할 테지만, 우리들은 이와 같은 한자말에 어떠한 뜻이 담겨 있고, 어떠한 쓰임새가 있는지를 거의 돌아보지 않는다고 느낍니다. 뜻을 살피지 않고 쓰임새를 헤아리지 않으면서, 정작 그때그때 가장 알맞게 쓸 우리 말을 놓치거나 잃는다고 느낍니다.

 ┌ 잠정적 사항 / 잠정적 조처
 └ 잠정 사항 / 잠정 조처


우리가 뜻과 쓰임새를 올바르게 살핀다면 "잠정 사항"이라고만 해도 넉넉할 말투를 "잠정적 사항"처럼 쓸 일이란 없습니다. 한자말 '잠정'을 쓰는 일이 옳으냐 그르냐를 따지기 앞서.

"잠정 조처"와 "잠정적 조처"는 얼마나 다르거나 벌어지기에 이처럼 '-적'을 붙이기도 하고 안 붙이기도 할까요. 또한, "잠정 결론"처럼 쓰는 말과 "잠정적 결론"처럼 쓰는 말은 얼마나 다르게 되거나 벌어지게 될까요.

 ┌ 내 나름대로 생각해 보니
 ├ 내가 곰곰이 생각해 보니
 ├ 내 깜냥껏 생각한 끝에
 ├ 나 스스로 여러모로 생각한 끝에
 └ …

한자말 '잠정'을 쓴다고 하여 우리 말이 무너지거나 흔들리지는 않습니다. 한자말 '잠정'을 안 쓴다고 하여 우리 생각과 뜻을 못 담아내거나 못 펼치지 않습니다.

한자말을 쓰든 토박이말을 쓰든 영어를 쓰든, 쓰고픈 사람 나름대로 제 말을 찾아서 가꾸면 됩니다. 그러나, 어떠한 말을 쓰든 '말을 하는 까닭'과 '말로 제 생각을 펼치려는 까닭'을 돌아보아야 합니다. 누구하고 말을 나누려 하는지, 누구한테 말을 건네려 하는지, 누구와 함께 말을 주고받으려 하는지를 찬찬히 새겨야 합니다.

ㄴ. 잠정적인 결론

.. 우리 나름의 잠정적인 결론은 이러했다 ..  《장차현실-작은 여자 큰 여자, 사이에 낀 두 남자》(한겨레출판,2008) 132쪽

"우리 나름의"는 잘못 쓴 말투입니다. '나름'은 뒤에 '-대로'가 붙어 "우리 나름대로"처럼 적거나, "그도 그 나름이지"처럼 '-이지'나 '-이다' 같은 말을 붙여서 끝마무리를 지어야 합니다. '결론(結論)'은 그대로 두어도 되나, 글흐름을 살피며 알맞게 풀어내어도 됩니다.

 ┌ 우리 나름의 잠정적인 결론은
 │
 │→ 우리 나름대로 내린 결론은
 │→ 우리 나름대로 내린 생각은
 │→ 우리 나름대로 생각한 이야기는
 └ …

생각을 곰곰이 한다고 하여 뾰족한 풀이를 얻어내지는 못합니다. 오래오래 생각한다고 하여 속시원한 풀이를 얻어내지는 못합니다. 그러나 생각을 안 한다고 하여 나아지는 우리 삶이 아니며, 생각을 짧게 그치는 일이 좋다고만 할 수 없어요.

 ┌ 우리 나름대로는 이렇게 생각했다
 ├ 우리 나름대로 이렇게 생각하게 되었다
 ├ 우리 나름대로 생각한 끝에 이런 이야기가 나왔다
 └ …

그저 우리는 우리 나름대로 생각하며 살아갈 뿐입니다. 우리 나름대로 삶을 일구고, 우리 나름대로 일을 합니다. 우리 나름대로 놀이를 즐기고, 우리 나름대로 사람을 만납니다. 우리 나름대로 살림을 꾸리고 우리 나름대로 우리 몸과 마음을 가꿉니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 인터넷방이 있습니다.

[우리 말과 헌책방 이야기] http://hbooks.cyworld.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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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자전거 : 인천+부천+수원 자전거 사랑이] http://cafe.naver.com/inbus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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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 #적的 #우리말 #한글 #국어순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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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꽃(국어사전)을 새로 쓴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를 꾸린다. 《쉬운 말이 평화》《책숲마실》《이오덕 마음 읽기》《우리말 동시 사전》《겹말 꾸러미 사전》《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비슷한말 꾸러미 사전》《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읽는 우리말 사전 1, 2, 3》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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