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은 새벽 산책길에 늘 안개를 만난다. 고층 빌딩의 창만 열면, 어디서나 바다가 환히 보이는 부산, 그래서 부산은 바다의 도시다. 그리고 안개의 도시다. 안개의 나라, 영국의 출신 작가 디킨스는 "웅덩이마다 습기 찬 안개가 자욱이 끼어 있고, 그 안개는 마치 쉴 곳을 끝내 찾지 못한 악령들처럼 절망적인 배회를 고개턱까지 거듭하고 있었다"고 영국 안개의 이미지를 이야기 한다.
그렇다면 부산의 안개는 한마디로 표현하기 힘든 신비스러운 안개군단이다. 이 안개군단이 새벽 일찍 골목길을 누빈다. 그러나 새벽 일찍 골목길로 나와야 만날 수 있는 부산 안개... 부산 안개는 정말 조병화 시인의 표현처럼 안개로 오는 사람, 인간의 목소리에 잠적한 새벽의 적막 같다 하겠다.
부산 안개는 이란의 여성들이 쓰는 차도르처럼, 자연의 아름다움을 더욱 신비롭게 만들어 주는 듯하다. 우리가 살아가는 삶 속에서 사람과 사람 사이 너무 환히 알고나면 신비감이 사라지는 것처럼, 아침 새벽 안개는 우리가 살고 있는 일상의 남루를 살짝 가려주는 것처럼 내 몸에 비단 옷을 휘감은 것처럼 신비롭다.
자욱한 안개비 내리는 골목길을 누비며 새벽 산책길은 '해월정사'까지 발길이 닿았다. 그리고 먼산도 빌딩도 거리도 스르르 녹아 버린 듯 희미한 골목길로 다시 발길이 닿았다. 그 희뿌연 안개 속에 파란 불빛, '순두부' 집 간판이다.
나는 어느 먼 곳을 다녀온 듯 심한 허기를 느낀다. '축축하게 젖은 땅 위에 들릴락 말락한 소리를 내며, 흘러가는 물 위에 꿈 같이 덮인 뽀안 안개, 그것은 자연의 아름다움 가운데 가장 인정다운 아름다움의 하나다'는 어느 시구처럼 안개 속의 풍경은 가장 인정다운 아름다움의 하나처럼 다가온다.
정말 오랜만에 안개 속에 등교하는 동네 아이들과 함께 버스정류장에서 출근할 버스 기다린다. 이 안개 속에 휩싸인 몽환 같은 아름다움은 돈으로 살 수 없는 자연의 선물 중에 가장 인정스러운 선물 같다.
앞이 보이지 않는 안개 속으로 걸어 들어온 발길은 해안의 막다른 골목길에 닿았다. 바다역시 안개가 자욱한데 파도가 높다. 드뷔시의 '바다'의 음악처럼 파도 소리도 힘차다. 새벽 산책길은 날마다 똑 같은 풍경 속에 낯선 풍경을 새벽마다 보여주는 듯….
안개로 가는 사람
안개로 오는 사람
인간의 목소리에 잠적한
이 새벽
이 적막
<안개로 가는 길>-'조병화'
2009.07.15 11:21 | ⓒ 2009 OhmyNew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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