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업준비생의 '짠돌이 피서법'

시원한 계곡과 오싹한 암벽등반... "더위야 물럿거라"

등록 2009.07.30 10:23수정 2009.07.30 17: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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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여름을 시원하게 시원하게 흐르는 수락산 계곡물. 차가운 물에 발 한번 담가보고 싶다.
이 여름을 시원하게시원하게 흐르는 수락산 계곡물. 차가운 물에 발 한번 담가보고 싶다.유지혜
▲ 이 여름을 시원하게 시원하게 흐르는 수락산 계곡물. 차가운 물에 발 한번 담가보고 싶다. ⓒ 유지혜

여름이다. 8월이 다가오면서 본격적인 '피서철'이 왔다. 그러나 나는 이 한 몸 어디 둘 데 없는 취업준비생 신세. 방에 콕 박혀있는 것도 슬슬 지겨워지고 물이 콸콸 쏟아지는 시원한 계곡물에 발이라도 한번 담그고 싶다. 문제는 돈. 눈치 밥 먹는 상황에서 피서가 웬 말이냐.
 
 그래서 준비해 봤다. 돈 없어 서러운 전국의 취업준비생들을 위해 올 여름 초특가로 다녀올 수 있는 나만의 '짠돌이 피서법'을 공개한다.

 

 오늘의 피서지는 '수락산(水落山)'. 지하철로도 충분히 갈 수 있고 물이 떨어지는 산이라는 그 이름처럼 물도 많고 바위도 많아 등산하기에도 그만이란다. 그간 토익이다 컴퓨터 자격증이다 하며 공부하느라 3개월간 '방콕'(방에 콕 박혀있는 생활)을 했더니 옆구리에 살이 부쩍 쪘다.

 

 시원한 계곡물에 발도 담그고, 등이 오싹해질 정도로 높은 바위도 오르다보면 더위도 잊고 살도 빼고 정말 '일석이조' 아닐까.

 

단돈 5000원에 해결한다...'똑소리 나는 피서법'

 

"이정도는 기본" 짠돌이 피서를 위해서라면 구할 수 있는 음식은 뭐든지 챙기자.
"이정도는 기본"짠돌이 피서를 위해서라면 구할 수 있는 음식은 뭐든지 챙기자.유지혜
▲ "이정도는 기본" 짠돌이 피서를 위해서라면 구할 수 있는 음식은 뭐든지 챙기자. ⓒ 유지혜

7호선 끝에 자리 잡은 수락산역에 도착. 산에 오르는 길에 막걸리, 사탕, 김밥, 얼음물 등 수많은 가게들이 등산객을 유혹한다. 오후에 비가 내릴 거란 예보가 있었는지 우산과 우비를 파는 아주머니도 여러 분 계신다.

 

 그러나 내가 누군가, 닳고 닳은 대한민국의 취업준비생 아닌가. 내 배낭 속에는 얼음물 두통, 땅콩 캐러멜 두 개, 과일 약간, 과자 그리고 비옷과 우산까지 모두 들어있다. 짠돌이 피서의 철칙은 '집 물건을 최대 이용하라'가 아니던가. 집안 구석구석 뒤져가며 챙긴 보물들이다.

 

  가방이 든든해서 그런지 출발할 때 들고 온 단돈 5000원이 엄청 큰 액수처럼 느껴진다. 지금 이 순간만큼은 '꽃보다 남자'에 나오는 '구준표'(드라마에서 재벌로 출연)도 부럽지 않다.

 

깔딱고개 '아이스케키' 어떻게 여기까지 들고 올라왔을까.
열에 아홉은 사먹는 신기한 아이스크림.
깔딱고개 '아이스케키'어떻게 여기까지 들고 올라왔을까. 열에 아홉은 사먹는 신기한 아이스크림.유지혜
▲ 깔딱고개 '아이스케키' 어떻게 여기까지 들고 올라왔을까. 열에 아홉은 사먹는 신기한 아이스크림. ⓒ 유지혜

 

산 중턱에서 맛보는 '아이스케키'

 

 숨이 '깔딱'하고 넘어갈 것 같아서 '깔딱고개'일까. 자잘한 바위로 이어진 깔딱고개가 오늘 코스의 고비다. 그렇다고 포기하진 말자. 고개만 넘으면 반가운 '님'이 기다리고 있으니까.

 

 힘겹게 고개를 오른 순간 믿기지 않는 풍경이 눈앞에 펼쳐진다. 정상과 거의 맞닿아 있는 그곳에서 등산객 열에 아홉은 사먹는 시원한 아이스크림가게가 있었다. 가게라고 해봤자 '아이스케키'라고 써 붙인 작은 아이스박스가 전부지만 어떻게 그곳까지 아이스크림을 들고 왔을까 신기하기만 하다.

 

 하나에 천 원. 가격도 착하다. 나도 얼른 하나 사서 물었다. 땀을 뻘뻘 흘리고 와서 사먹는 아이스크림 맛은 '안 먹어 봤으면 말을 하지 말라'는 말이 절로 나올 만큼 달콤한 천국의 맛이다.

 

얼음장처럼 시원한 계곡물 계곡물에 발담그고 재잘 재잘. 
한낮에는 즐거운 다이빙 놀이까지.
얼음장처럼 시원한 계곡물계곡물에 발담그고 재잘 재잘. 한낮에는 즐거운 다이빙 놀이까지.유지혜
▲ 얼음장처럼 시원한 계곡물 계곡물에 발담그고 재잘 재잘. 한낮에는 즐거운 다이빙 놀이까지. ⓒ 유지혜

 

뼈 속까지 시원한 계곡물에 두 손을 담그면

 

 과연 물이 떨어지는 수락산(水落山)답게 계곡도 지천에 널렸다. 규모는 작지만 어른 가슴께 오는 깊이의 물웅덩이도 있다. 물놀이하는데 충분한 깊이다.

 

 삼삼오오 모여 발을 담그고 담소를 나눈다. 무서운 줄 모르고 바위에서 다이빙을 하는 아이들도 여럿 있다. 시원한 그 소리에 이끌려 나도 손과 발을 담가본다. 척추까지 흐르는 차가운 기운에 찌는 듯한 더위가 싹 날아간다. 시원한 계곡물에 발을 담그고 챙겨왔던 과일을 먹었다. 계곡 바로 옆에 보이는 수락산 명물 '물개바위'를 바라보면서 간식을 먹으니 신선이 따로 없다.

 

'등골이 오싹' 한낮의 암벽등반

 

깍아지른 절벽 보기에도 섬뜩할 정도로 직각으로 서있는 바위들.
깍아지른 절벽보기에도 섬뜩할 정도로 직각으로 서있는 바위들.유지혜
▲ 깍아지른 절벽 보기에도 섬뜩할 정도로 직각으로 서있는 바위들. ⓒ 유지혜

 올 여름 더이상 TV에서 방영하는 납량특집은 필요 없다. 깎아지른 절벽에 매달리면 한낮에도 등 뒤로 식은땀이 흐를 테니까. 수락산의 진정한 '명물바위'를 보려면 화강암으로 되어있는 거친 암벽을 타고 올라야 한다. 물론 튼튼한 밧줄과 디딤못(한 걸음 폭마다 바위에 박혀있는 못)이 있지만 거의 직각으로 솟아있는 바위를 줄 하나 달랑 잡고 오르락내리락 해야 한다니 생각만 해도 다리가 후들거린다.

 

 "줄에 의지하지 말고 무릎과 발에 힘을 줘서 올라가세요"라는 친절한 설명을 듣고 한 발 한 발 내딛는데 중간쯤 갔을까, 위에서 탄성이 들려온다.

 

마음을 다잡고 돌아본 그곳에는 산으로 겹겹이 쌓인 서울의 모습이 펼쳐져 있었다. 정상에 근접했기 때문인지 바람도 시원하다. 등골까지 오싹한 그곳은 서울의 아름다운 경치를 한눈에 볼 수 있는 '베스트 뷰 포인트'였다.

 

다이어트 효과까지

 

 전날 저녁부터 내린 비가 새벽녘에 겨우 그쳤기 때문일까. 하늘이 맑지 않다. 해가 없어서 등산을 하기엔 좋은 날씨라지만 하늘에 회색 비구름이 낮게 깔린 걸 보니 아무래도 한바탕 비가 쏟아지려나 보다. 고온 다습한 날씨 덕분(?)에 오늘 다이어트 효과는 제대로 볼 것 같다.

 

 등산은 과학적으로 증명된 효과적인 유산소 운동이다. 실제로 같은 시간을 운동한다고 가정할 때 등산은 마라톤의 3배에 달하는 칼로리를 소비하고, 조깅보다 2배 이상 지방을 감량할 수 있다. 특히 아랫배와 옆구리 부위의 피하지방 감량에 효과적이다.

 

 '청계산 날다람쥐'로 불리는 '몸짱 스타' 이효리가 등산으로 다이어트를 한다는 것은 이미 그녀의 이름만큼 유명한 이야기다. 등 뒤로 흐르는 땀을 닦으면서 '오늘 1~2kg은 빠지지 않을까' 했었는데 집에 와서 확인해보니 역시 1.5kg이 빠져 있다. 여름 맞이 비키니 다이어트를 시작해야 하는 여성들에겐 이만큼 좋은 운동이 또 있을까. 

 

 등산은 피곤하기만 한 운동인 줄 알았다. 그러나 오늘 내가 가본 수락산은 어떤 피서지보다 더 짜릿하고 시원한 곳이었다. 운동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라면 계곡물에 발만 한 번  담가 보자. '더위'라는 말까지 싹 잊어버릴 것이다. 나무에서 나오는 '피톤치드' 물질을 온몸으로 느낄 수 있는 삼림욕도 물론 강력추천이다.

 

 돈도 없고 며칠 동안 떠나는 여행도 부담스럽다면, 단돈 5000원에 해결할 수 있는 '짠돌이 피서'를 떠나보자. 이번 주말에는 몸과 마음까지 건강해지는 아주 특별한 '웰빙'휴가를 떠나보는 게 어떨까.

덧붙이는 글 | '2009 이 여름을 시원하게' 응모

2009.07.30 10:23ⓒ 2009 OhmyNews
덧붙이는 글 '2009 이 여름을 시원하게' 응모
#여름 휴가 #수락산 계곡 #취업준비생 #시원한 여름 #피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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